여성장애인 단체들 같은 목소리 내야한다 > 기획 연재

소박하게 장애인 운동의 정의를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정리해 본다. 운동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만 장애인과 관련해서는, 소외의 그늘을 걷어내고, 차별에 저항하며,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한 복지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운동의 지향점이었다. 지금 장애인 운동이 어디에 와있고, 운동의 성과가 어떻게 구체화 됐는지를 평가하는 잣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장애인들은 싸워왔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걸음은 장애인 운동과 그 역사를 같이해 왔다는 것이다. 분명히 강조하지만 <함께걸음>은 장애인 운동을 위해 태어났다. 운동이 목적이 아니었다면 굳이 언론을 만들 어떠한 이유도 필요성도 없었다. 그래서 <함께걸음>은 창간 이후 지속적으로 장애인 운동의 필요성을, 어떻게 장애인 운동을 전개할 지를, 장애인 운동이 무엇을 목표로 할지를, 고민하고 지향점을 제시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해 왔다. 그렇게 장애인 운동과 함께 해온 지 어느덧 20년이다. 장애인 운동과 함께 숨 가쁘게 달려온 <함께걸음>의 역사가 20년을 에둘러 여기에 도달했다. 이 시점에서 장애인 운동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은 장애인들의 인간다운 삶이라는,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장애인 운동의 목표를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기 장애인 운동의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장애인 운동을 위해 장애인들은 무엇을 고민했는지, 운동의 목표가 어떤 과정으로 구체화 됐는지, 지금부터 먼 여행을 시작해 보자. Ⅰ. 20년 장애인 운동사 ①        - 장애인 운동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이뤘나 Ⅰ. 20년 장애인 운동사 ②        - 경증에서 중증으로 운동주체 바뀌다 Ⅰ. 20년 장애인 운동사 ③        - 차별이 존재하는 한 싸울 수밖에 없다 Ⅱ. 좌담 장애인 운동 길을 묻는다 Ⅲ. 장애인 역사 20년 부분별 성과와 과제       - 시설 : 여전히 험난한 탈시설로 가는 길       - 지적장애인 : 지적장애인을 위한 특별법 제정돼야       - 정책 :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보다 더 효율적인 조직 필요       - 여성 : 여성장애인 단체들 같은 목소리내야 한다       - 고용 : 고용의무제의 실효성 확보방안 강구해야       - 이동권 : 여기서 만족할 수 없는 이동할 권리       - 교육 :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는 통합교육

지난달에 ‘장애여성공감’의 창립 10주년 기념행사에 다녀왔다. 함께 일하는 동지들과 행사에 가며 떨리는 마음을 자꾸 진정시켜야 했다. 참 오랜 만에 가져보는 깊은 가슴 설렘의 날이 아닐 수 없었다. 여성장애인운동의 세월이 고스란히 밀려오는 시간이었다.

10주년 초대사에서 공감은 “…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행복하고 보람된 일이 더 많았다. 장애여성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 문제를 장애여성의 시선으로 재해석해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고 말했다.

그 의미 있는 행사가 다 마칠 때까지 지켜보고 귀가하며, 그동안 걸어온 여성장애인운동의 길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필자가 한국여성장애인연합에서 경험한 세월이 함께 어우러져 파노라마처럼 돌아보아졌다. 10여 년의 세월들과 현재의 자리들, 미래의 여성장애인운동에 대하여 여기 작은 소견을 풀어보려고 한다. 물론 필자가 여성장애인 운동 전체를 정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한계를 분명히 밝히면서 말이다.

여성장애인의 길, 10년의 세월은 어떠했는가?

여성장애인 운동의 역사는 마치 너무 견고하고 결코 용납하지 않을 콘크리트 틈을 비집고 나온, 어느 시인의 말처럼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풀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함께걸음 자료사진

장애인 운동 속에서도, 여성운동 속에서도 드러나지 못했던 여성장애인들. 그러나 ‘장애우권인문제연구소’에서 1994년 발기모임을 거쳐 탄생한 ‘빗장’이 그랬을 것이다. ‘빗장’은 여성장애인 조직을 최초로 이끌어 내게 한 원동력에 대해 기여한 바나 상징성으로서의 그 이름이 길이 남을 것이다(한국에서 장애여성의 이름으로 설립된 단체는 1976년 ‘한국맹인여성회’가 처음이다. 그러나 이글을 90년대 중반부터 다루는 관계로 생략하고자 한다).

또한, 1998년 빗장의 일부 운영위원과 회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장애여성공감’의 창립 역시 힘겹게 콘크리트 속을 비집고 나온 그 풀을 보고 경험한 이들이 더 무성한 다른 풀들로 자라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성장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은 내년에 10주년을 맞이한다. 1999년에 전국에 7개 지부·2개 회원단체로 출발을 했다. 그 출발 또한 먼저 일어선 이들의 은근한 떨림처럼 그러나 바람보다 먼저 누웠으나 먼저 일어나는 풀처럼 길을 헤쳐왔다. 그와 같은 세월의 선상에서 ‘장애여성문화공동체’가 단일 조직으로 세월을 쌓으며 활동을 하고 있으며, ‘내일을 여는 멋진 여성’이 전국단위조직을 두고 출발한지 여러 해, ‘장애여성네트워크’의 탄생 등과 함께 장애단체 조직 속의 여성위원회 등과 각 지역의 작은 자조모임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현재에서 뒤돌아 보는 길!

10년 전, 작은 틈새를 비집고 나온 여성장애인들은 첫째, 자신들의 존재자체를 비로소 알려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별히 교육부분만 살펴보더라도 2005년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현황은 여성장애인 62.5%가 초등학교 이하의 학력을 가진 집단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 속에서 분명히 숨 쉬고 있었지만 삶의 주기를 거론할 때 거의 없다시피 하는 불분명한 존재였던 것을 증명한다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년은 여성장애인 존재를 분명히 드러내는 역할을 한 세월이었던 것이다.

그 세월동안 여성장애인은 자신들의 모습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로 자신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억압을 사회에 알렸던 것이다. 실제로 오랜 기간 강요된 침묵 속에 잔혹하게 자행되었던 여성장애인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이슈화 시키고 반성폭력을 선언하고 대응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몸과 영혼을 함께 보여주는 연극, 다큐 등의 문화 활동을 통하여 사회와 소통의 범위를 넓혔으며, 국제사회에 참여하여 한국의 여성장애인을 알리고 활동하고 기여한 것, 여성장애인의 정치세력화를 통화여 국회에 진출한 것 등등 10년이라는 세월을 쌓으며 기어이 그 존재를 알려내고 나아가 사회의 일원임을 인식시키는 주체로서의 존재를 말하고 확인시킨 시간이었던 것이다.

둘째, 여성장애인 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성장의 시기였다고 본다. 그러한 의미에서 여성장애인 운동은 성장 그 자체를 다양한 각도에서 감당하고자 함을 보여주었으며 앞으로 나아갔던 시기였고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갈 가능성에 대하여 펼쳤던 시기였다고 본다. 여성장애인운동단체들은 사안에 따라 각기 우리사회에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펼쳐왔다.

1980년대 중반부터 대두되어 이슈화 되었던 여성장애인 폭력근절 운동·여성장애인 의식·역량강화 교육, 여성장애인 문화운동, 여성장애인 모성의 권리, 일할 권리 등을 비롯하여 여성장애인 관련 실태 및 현황을 조사 연구하고 정책을 제시한다.

나아가 여성장애인 조직들이 단일조직이건, 전국조직이건 최근 몇 년간 공통으로 함께해온 운동으로는 국제연대로 2006년 12월에 UN에서 채택된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제6조 여성장애인’부분에 대한 기여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3장 장여여성’ 부분을 비롯한 법률 제·개정활동의 성과와 자립생활운동에 대한 공동의 과제를 함께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각 조직에서 분별하여 사안별로 장애계·여성계와 연대하며 공통의 문제를 모색하고 해결하는데 기여해왔다.

지난 10년 전 여성장애인들은 오랜 기다림과 뜨거운 열정으로 당사자로서 기어이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갈 수밖에 업었던 첫 발을 내디뎠다. 그 시작은, 누가 가지 않았던 아예 없었던 길을 만들며 걸어가야 했던 길이었다. 그 길을 만들어 내면서 무수한 가시 넝쿨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을 것이며, 깊은 계곡을 미로처럼 헤매며 힘겨웠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을 함께한 동지가 있고 고통스럽지만 묵묵히 자기 길을 가고자 했던 동지들이 있어서 갈 수 있었던 길이리라. 모두에게 그 길은 결코 멈출 수 없는 길이었던 것을. 오늘처럼!

그렇게 존재와 지속성을 확인했던 10년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매우 큰 것은 사실이나 그것 자체가 자동적으로 여성장애인 운동의 성숙을 더불어 가져오진 않았다고 본다. 왜냐하면, 10년을 다져온 여성장애인 운동은 이제 막 아동기를 벗어나고픈 욕망이 가득한 시기며 청년기를 거쳐 성인으로 가려는 선상에 서있기 때문이다. 성숙한 성장과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세월이었다고 본다.

여성장애인 운동 10년은 어떻게 가야 하는가?

	▲ 함께걸음 자료사진

여성장애인 운동 무엇을 더욱 정비해야 하는가? 여성장애인 운동은 이제 조금씩 성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성장애인들의 존재를 알리는 수단으로서 눈에 보이는 시급했던 우리들의 공통의 아픔을 드러내고 변화시키고 인식시킨 10년이었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치열하게 ‘당사자성’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우선 당사자로서 주체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정착시켰는가? 깊이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재충전으로서의 깊은 돌아봄이 필요하다.

그동안 산재해 있는 과제를 보며 달려오기만 한 세월을 이때쯤 한번은 고요히 들여다보며, 소진된 몸과 영혼을 돌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아가야 한다.

둘째, 돌아봄과 함께 여성장애인 조직화에 더욱 힘써야 한다. 이것은 여성장애인을 더욱 이끌어 내고 함께하는데 기여하며 리더의 양성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여성장애인들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정치권 진출과 맞물려 있는 사회적 정황에 맞물려 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정치에 진출한 여성장애인이 있고 정치에 참여하고자 애쓰는 여성장애인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어느 순간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여성장애인 당사자로서 정치적 파워에 휘말리기도 하고 이용당하기도 하는 현실에 있다.

물론 여성장애인의 정치세력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분명한 것은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기 성장과 조직화의 과제를 동시에 성숙시켜야 하는 과제를 도시에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은 각자가 있는 조직의 역량강화 만을 위해서 걸어온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당사자 단체건만 때때로 불건강한 오해와 미움, 비하들이 간간히 있어왔다. 이것은 같은 길을 걷는 과정에서 서로 잘 익지 않아 풋풋한 이들이 겪어내야 하는 호된 시행착오 아니었을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서로를 등 떠미는 활력 또한 아니었을까? 그랬어도 이제는 좀 더 긍정적으로 달라져야 할 것이다.

‘장애여성공감’은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은 ‘장애여성문화공동체’는 ‘내일을 여는 멋진여성’은 ‘장애여성 네트워크’ 등등은 이제부터는 열심히 같이 가야 한다. 그러나 각 기관이 해내야 하는 것들은 ‘따로’ 해야 할 것이지만,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에는 ‘같이’ 해야 할 줄 알아야 한다. 두터운 연대의식으로 가야한다. 새로운 10년은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 부분을 확실히 챙기고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