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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카메라가 돌아간다, 나와 만난다

기획 Ⅰ. 연극, 영상을 통해 본 장애인 문화

본문

장애인들이 문화를 통해 자신의 솔직한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사회와의 적극적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그 움직임은 문화의 영역 중 연극, 영화를 통해 더욱 활발히 드러나고 있다.

장애인들의 이러한 움직임들은 21세기 들어 활개를 띠기 시작했는데, 장애인이 객체화되던 수준에서 장애인이 적극적 문화생산자로 나서면서 최근 장애인 문화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장애인 문화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최근 장애인들이 주체가 되어 생산하고 있는 문화 생산물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함께걸음>에서 장애인들의 연극, 영화 활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하겠다.


Ⅰ. 연극, 영상을 통해 본 장애인 문화 ①
      - "카메라가 돌아간다, 나와 만난다"
Ⅰ. 연극, 영상을 통해 본 장애인 문화 ②
Ⅱ. 지적장애우가 만든 영화 ‘봉천 9동’
Ⅲ.국내 유일 농영화 제작 중인 박재현 감독
Ⅳ. 배우 6인이 말하는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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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여성공감 '춤추는 허리'의 2004년 정기공연 작품 '여기에 있긴 있는데 여기 있는 게 안 보여?'. 장애여성들이 생리, 연애, 결혼을 통해 겪게 되는 차별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 춤추는 허리>  
 

2003년 장애여성공감 연극팀 ‘춤추는 허리’ 초연 무대.
장애여성의 독립을 다룬 극 ‘갑자기’가 막을 내렸음에도 배우들이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조명이 은은해지고, 음악이 흐르더니 전동휠체어 위에 앉아 있던 한 장애여성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살짝 틀어진 팔과 다리를 가진 장애여성은 자신의 팔을 흐느적거리며 무언가를 표현하려 했고, 휠체어에서 내려온 또 다른 장애여성은 옆에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짧고 보행할 힘이 없는 다리를 가진 장애여성은 비장애여성에 기대어 경쾌하게 왈츠를 추면서 공중에 이리저리 다리를 흔들어보였다. 관객들의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장애인 문화란 무엇일까?

당시 무대 위의 장애여성들은 장애여성으로서 자신이 겪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본인의 장애유형에 맞는 몸짓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풀어내보였다.

이는 장애계가 문화와 관련하여 고민하는 지점, 문화를 통해 어떻게 하면 장애인의 욕구와 언어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끄집어낼 수 있을까 등에 대한 고민들을 묻어낸 것이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은 각각 다른 몸을 가졌고, 그 몸으로 인해 갖게 되는 경험과 각종 문화사회적 환경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는 유감스럽게도 ‘비장애’ ‘남성’ 중심 담론으로 돌아가고 있기에 장애인의 욕구와 언어는 ‘정상’적인 것이 아니며 생소하면서도 이상한 것으로 치부돼왔다.

이러한 현실에서 장애인 문화는 어떻게 이야기돼야 할 것인가?

장애인으로서 몸소 살아온 장애인들이 문화 생산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몸을 근간으로 한 경험을 바탕으로, 솔직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이를 사회와 소통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데 있어 ‘춤추는 허리’의 장애여성들이 바닥을 구르고, 비틀어진 몸으로 다른 춤을 선보였던 것처럼 장애가 있는 몸을 근간으로 한 움직임이어할 것이다.

이러한 고민과 움직임은 다행스럽게도 ‘춤추는 허리’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들어 많은 장애인 단체들이 문화를 통해 사회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데, 여러 문화 영역 중 특히 연극, 영화 등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연극, 영화가 장애가 있는 몸을 그대로 내보임으로써 활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나 관객들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장애가 있는 몸과 만날 수 있게 하는 강렬한 자극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들 영역은 글이나 사진보다 사람들이 쉽게 흥미를 가지고 흡수할 수 있으며 그 파급효과 또한 크다.

이러한 매력에 이끌려서인지 연극, 영화와 관련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곳들이 있다. 어떤 단체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일단 알아보도록 하자.

장애인 감수성 바탕으로 연극, 영화 만들자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기지개를 켠 장애여성문화공동체는 소속 극단 ‘끼판’의 창단공연 ‘몸짓하나 나는 나’(2000)를 시작으로 각종 퍼포먼스와 미디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여성문화공동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미디어교육 ‘장애여성, 필름을 뒤집다’는 2004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4회째를 맞고 있다.

장애인 전문극단을 지향하는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소속 극단 휠은 2001년에 창단해 취업과 여행을 주제로 한 워크숍 ‘문밖 세상을 향해’를 창립 해에 선보였다.
2003년부터 정기공연을 시작하여 2007년까지 매해 꾸준히 정기공연을 올리고 있다. 활동을 시작하며 교육, 훈련의 중요성을 절감한 휠은 2005년부터 장애인연극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장애인 연극인을 양성하고 있다. 올해 상연한 연극 ‘사랑’은 장애인연극아카데미 1기 졸업생들이 모여 만든 작품이다.

앞서 소개한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은 ‘춤추는 허리’를 꾸려 2003년부터 매해 연극을 상연해왔고, 여성영상집단 움과 함께 독립한 장애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거북이 시스터즈’(2003)를 제작해 장애인 단체, 여성단체는 물론 각 진보진영 단체로부터 상영요청을 받았다.
또한, 공감은 미디어 교육에도 손을 뻗어 2006년에는 여성단체 ‘연분홍 치마’와 다큐멘터리 제작 교육을 진행하였으며, 2007년에는 방송위원회의 후원으로 공감이 단독 기획, 진행한 ‘휠체어, 카메라, 그녀들의 이야기’ 미디어 교육을 실시했다. 올해 기획한 미디어교육 ‘휠체어…’는 극영화 중심으로 이뤄졌다.

노래패 ‘시선’의 창립과 함께 2003년에 문을 연 장애인문화공간은 420투쟁과 맞물려 매해 서울장애인권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장애인문화공간은 이를 통해 파편화되어 있는 장애인 인권 영화들을 한 곳에 모아 영화를 통해 장애인들이 사회와 소통하는 창구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영화를 소개하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2005년부터 장애인 미디어 교육을 실시해 장애유형에 맞게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는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와 연계하여 ‘발달장애청소년 영상미디어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노래패 ‘시선’의 활동을 근간으로 ‘나는 장애인이다’(2006) ‘타락한 장애인’(2007) 등의 노래극을 선보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외에도 농인독립영상제작단 ‘데프미디어(Deaf Media)’도 2005년 ‘농인영화동호회’에서부터 시작해 2007년 열한 번째 영화 ‘이방인’을 선보였으며, 지난해 ‘여행’이라는 극 형식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강성국 씨처럼 개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들도 있다.

장애인 단체는 아니지만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도 2004년 장애인문화공간과 미디어교육을 연계 실시한 이후 매해 꾸준히 장애유형별 장애인 미디어 교육을 별도로 진행 중이다. 2006년에는 장애인문화공간, 국립특수교육원, 다큐인, 푸른영상 등과 함께 장애인 미디어교육 가이드북 ‘장애인, 미디어힘’을 출간했다. ‘장애인, 미디어힘’에는 장애유형별 미디어교육 접근에 대한 내용도 담겨있다.

이들이 만든 작품들은 영화의 경우 장애인 관련 영화제나 각종 인권영화제에 소개되고 있고, 공중파의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인 KBS1의 ‘열린채널’을 비롯해 RTV 등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되기도 한다. 연극의 경우 장애인 인권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주로 관람하고 있지만, 실험적 예술을 시도하는 곳에서도 종종 상연요청을 해온다고 한다.

자립생활, 당사자주의, 장애인을 문화 생산의 주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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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상영작인 영화 '숨바꼭질'의 한 장면.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는 지적장애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장애인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문화 생산자로 성장하기 위한 이러한 움직임은 장애인을 객체화시키고, 소외시키면서 장애인 문화를 형성하려 했던 기존 비장애 중심의 문화담론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장애인문화공간 최재호 대표는 “주류 매체들이 장애인을 대상화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장애인 미디어교육, 서울인권영화제를 시작하게 됐다.

TV, 방송 등의 대중매체는 장애인이 겪고 있는 내면적 아픔에 대한 이해 없이 시혜적 시선으로 장애인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단순묘사하곤 했다. 장애인이 실제로 몸을 부딪치면서 겪게 되는 실제적인 이야기들을 문화를 통해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며 창립 이유를 말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이를 바탕으로 한 활동은 90년대 말 장애계에 유입된 자립생활, 당사자주의와 깊은 연관관계를 맺는다. 자립생활과 당사자주의로 인해 중증장애인 중심의 장애인 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장애인 문화 또한 장애인이 주체가 되는 문화를 생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형성되기 시작됐다.

2000년대 초반에 보여진 장애계의 연극, 영화들은 운동성을 강하게 드러내 보이며, 강력하게 주장할 무언가를 갖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영화 부분에서는 이동권 투쟁 일지를 담은 다큐멘터리나 최옥란 열사 추모 영상 등 투쟁과정을 담은 영화들이 많았고, 연극 부분에서도 편의시설, 자립생활, 취업 등 당시 장애계의 화두가 되는 이슈들을 문제제기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장애계 거대 이슈들을 주로 다루던 장애계의 연극, 영화 관련 문화는 점차 장애인 개개인의 일상생활을 소소하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2007년 서울장애인권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날 닮아 기분 좋은 우리 아이들’(김선영 연출)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장애여성이 두 자녀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담아냈다. 극단 휠이 지난해 상연한 연극 ‘사랑’은 비장애여성과 장애남성이 사랑하고 결혼하는 이야기에 무게 중심이 맞춰져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장애인 운동계의 거대 담론에 장애인들이 스스로의 욕망을 꿰어 맞추기보다 장애인들이 장애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과 만나고 솔직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이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은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기존 사회에 균열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개인의 경험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거대 담론으로 사회에 침투하려는 것보다 그 접근이 더 용이함은 물론이다.

장애인들도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장애인의 몸을 ‘열등하다’ 여기니 스스로를 긍정하는데 사회적 방해를 받았지만, ‘장애인이 할 수 없다’ 여겨지는 연극, 영화 작업을 해내며, ‘장애인이 할 수 없다’는 건 허울뿐인 말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울러 몇 겹의 차별적 억압에 둘러싸여 볼 수 없었던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발견하는 계기까지 갖게 된다.

끼판 구성원들은 장애인으로서의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몸을 근간으로 한 연극,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비장애 중심 사회가 가려놓았던 다양한 언어들 중 하나를 끄집어내는 실험적 시도로 읽혀져 변방연극제나 프린지페스티벌에 초청되기도 했다.

장애인들의 이러한 문화 활동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받아들이게 함은 물론, 사회적으로 문화의 언어를 다양하게 만드는 기능 또한 하고 있는 것이다.

작성자소연 기자  cool_w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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