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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차별은 나쁘다!”

차별금지법의 올바른 제정을 위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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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희정 기자  
 
‘정상’이라는 기준이 뭔가?

차별은 나쁘다. 그리고 누구나 ‘차별은 나쁘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왜 이렇게 차별이 빈번히 일어나는 걸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말할 것도 없이 차별은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게다가 차별은 중층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매우 복잡하게 드러난다.

가령, 남성 장애인과 여성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차별은 같을까? 장애인으로서 당하는 차별은 비슷할 수 있겠지만, 장애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은 어떨까?

청소년·녀 성소수자들 역시 이중 삼중의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
13~23살 청소년·녀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서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강병철, 하경희, 2005년)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70% 이상이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로 자살에 대해 고민해본 경험이 있고, 45.7%가 실제 자살을 시도했다.

‘나이’에 따른 차별도 심각하다. 선거권·피선거권이 없는 ‘(법적)미성년자’들은 단지 그 이유만으로 정당 가입도, 선거운동도 불법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선관위가 ‘미성년자’는 선거권이 없으므로 선거 관련한 UCC를 제작·배포하는 것 역시 불법이라고 결정했다고 한다.

일상생활에 별 문제가 없는데도 B형 간염, 고혈압, HIV/에이즈 감염인 등과 같은 병력이 있다고 해서,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고 해서, 결혼을 안 했다고 해서, 소위 ‘정상가족’이 아니라고 해서, 범죄 전력이 있다고 해서, 사회적 신분이 다르다고 해서….
공공연히 일어나는 차별은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인권위가 권고한 ‘차별금지법’안의 내용

이와 같이 심각한 차별 현실 속에서 ‘차별의 의미와 판단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며 적극적으로 차별 구제를 도모’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를 중심으로 정부는 기본법으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준비해왔다.

애초 인권위의 차별금지법 권고법안(인권위안)은 앞에서 언급한 20개의 차별 사유에서 ‘언어’가 빠진 대신 ‘고용형태’를 차별 사유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20개의 차별 사유를 이유로 ▲고용(모집, 채용, 교육, 배치, 승진, 임금 및 임금 외의 금품 지급, 자금의 융자, 정년, 퇴직, 해고 등) ▲재화·용역·교통수단·상업시설·토지·주거시설 등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법령과 정책의 집행 ▲광고 등과 같은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했다.

그리고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직접차별 뿐만 아니라,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하였으나 그 기준이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야기하고 그 기준의 합리성 내지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한’ 간접차별, 그리고 성별, 장애, 인종, 출신국가, 출신민족, 피부색,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괴롭힘 역시 ‘차별 행위’로 정의했다.

인권위안을 보면, 차별 피해에 대한 구제조치로써 국가인권위는 ‘차별을 한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차별의 양태가 심각하고 공공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경우, 위원회는 차별의 중지, 피해의 원상회복, 차별의 재발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로써 시정명령을 할 수 있다.

시정명령의 행사요건은 제한하되, 신속하고 실질적인 차별 구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피해자를 보호함으로써 차별시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또 차별로 인정된 사건 중에서 차별 가해자가 국가인권위의 결정에 불응하고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인권위가 해당 사건의 소송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법원은 차별에 관한 소송 제기 전 또는 소송 제기 중에 피해자의 신청으로 차별이 ‘인정’될 경우 판결이 나기 전이라도 차별의 중지 등 적절한 임시조치를 내릴 수 있다.

그리고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차별 중지, 임금 기타 근로조건의 개선, 차별 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 및 손해배상 등을 판결할 수 있다.

차별행위가 악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법원은 ‘징벌적’으로 통상적인 재산상 손해액 외에 손해액의 2배~5배에 달하는 배상금 지급 판결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하한을 ‘5백만 원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차별과 관련된 소송에서 증명책임은 ‘가해자로 소송된 사람’이 진다. 말하자면, 차별 가해자로 소송된 사람이 자신이 차별하지 않았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차별분쟁 과정에서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경우에서와 같이, 차별 가해자일 가능성이 높은 사용자에게 정보가 편재돼 있는 현실, 그리고 간접차별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할 때 피해자가 차별을 증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차별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누더기’가 된 차별금지법 법무부안

하지만 법무부는 차별 사유와 실효성이 대폭 축소된 ‘누더기’ 차별금지법안을 확정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법무부는 인권위안에서 ‘고용형태’가 빠지고 ‘언어’가 추가된 기존의 20개 차별 사유에서 ‘병력,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성적 지향, 학력’ 등 7개 사유를 삭제함으로써 오히려 삭제된 차별 사유를 조장하는 법안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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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희정 기자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한 후 한기총, 동성애자차별금지법안저지의회선교연합, 동성애반대국민본부 등과 같은 보수 기독교계 단체들은 ‘동성애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은 동성애허용법’이라며 대대적으로 차별금지법 반대운동과 더불어 동성애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급기야 이들은 “며느리가 남자라니 웬말이냐.”와 같은 선정적인 구호를 외치며 11월 1일과 8일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게다가 재계에서 나이, 학력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것에 반대한 결과, 법무부는 7개 사유를 삭제해버리고 말았다. ‘괴롭힘’ 사유에서 역시 인종, 출신국가, 피부색, 성적 지향을 삭제했다.

정부는 법안에 ‘등’과 같은 표현이 있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열거된 차별 사유가 아니더라도 해석상 ‘등’에 포함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삭제된 사유에 대해서는 ‘차별해도 된다.’는 인식을 만들어버림으로써 차별을 금지하고자 하는 본래의 의도가 무색하게 오히려 ‘차별을 조장한다.’는 인권단체들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차별 금지의 실효성 역시 법무부안은 인권위안에서 대폭 후퇴하고 말았다. 법무부는 차별시정기구의 시정명령권을 인정하지 않고 법원의 구제조치만 남겼다. 차별시정기구의 소송지원도 인정하지 않았다.

또 악의적 차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인권단체들은 인권위안에서 징벌적 손해배상금의 하한으로 5백만 원을 규정한 것에 대해서도 ‘차별금지의 실효성을 얻기에는 부족하다.’고 비판했는데, 법무부는 이마저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차별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을 ‘피해자’가 부담하도록 함으로써 차별로 인한 피해 주장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가령, 고용 상의 차별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피해 노동자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회사의 ‘기밀’을 몰래 빼내야 하는 노릇이다.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차별금지법·반차별운동이 필요하다
모든 차별을 금지할 수 없다면, 그것은 ‘차별금지법’이 아니다.

‘차별 사유’조차 차별하는 법이 어찌 차별을 금지할 수 있다는 말일까. 차별금지법이 금지하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안되지만, 장애인 인권운동을 통해 ‘범죄전력’이 생겼거나 성소수자거나 저학력이거나 특정 병력이 있거나 ‘정상가족’이 아니거나 ‘가난한 나라’ 출신인 장애인은 차별당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차별금지법 법무부안에서 삭제된 차별 사유에 해당하는 성소수자·보건의료·이주노동자 등과 같은 분야의 단체들과 법무부안에 남은 차별 사유에 해당하는 여성·장애인·종교 등의 단체들, 그리고 인권 사회단체들이 함께 모여 차별금지법의 올바른 제정을 위해 나서고 있다.

‘합리적 이유 없이 어떠한 차별도 차별 금지에서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차별을 금지할 수 없는 차별금지법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차별금지법의 올바른 제정은 멋진 법안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차별을 정당화하며 공공연히 자행하고 있는 차별세력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차별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얼마나 반인권적으로 차별을 자행하고 있는지, 우리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차별이 일어나고 있고 그러한 차별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등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알려나가는 게 필요하다.

가해자로서든 피해자로서든 모든 차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차별을 없애나가는 운동이 중요함과 동시에 우리 안에서 차별을 없애나가는 운동도 중요하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가 나쁜 사회이듯,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을 차별하는 진보 역시 나쁘다. 모든 사람이 차별로부터 자유로운 사회, 모든 사람들의 해방을 기획할 수 있는 진정한 진보, ‘누더기 차별금지법’ 앞에서 반차별운동이 우리 사회와 진보운동에 던져준 과제다.
작성자박석진(인권운동사랑방)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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