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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고

[기획연재] ③ 희귀난치성질환 사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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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희귀난치성질환 선고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상 패가망신을 의미한다.
엄청난 치료비가 들어가지만 언제 나을지도 모르는데다, 이들을 바라보는 따가운 사회적 시선 때문에 육체와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은 시간문제.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해 가족이 해체되거나, 자살을 생각하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앓는 이들이 100만 명에 육박하지만 정부는 뒷짐 진 채 모든 책임을 환자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제도권에서 방치되다 시피 살아가고 있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의 삶을 <함께걸음>이 조명했다.


  undefined       ▲ 수포성표피박리증을 앓고있는 환자의 다리 ⓒ함께걸음     체계적인 진단체계 없어 오랫동안 고생
사례 1/이 00(40. 수포성표피박리증)

“처음엔 단순한 피부병인줄 알고 개인병원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하지만 증세가 호전되질 않아서 유명한 피부과를 전전하다가, 입소문으로 찾고 찾아서 간 대학병원에 가서야 진단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때까지 걸린 시간이 약 1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체계적인 진료 안내를 받은 적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희귀난치성질환을 앓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 들었다.
만약 내가 1차 진료기관에서 이 질환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면, 병명을 아는 데까지 들인 노력과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의료보호 1종이어서 약값에 대한 부담을 사실 덜었다.
하지만 내 경우는 약값이 많이 드는 병은 아니다. 오히려 피부를 매일 드레싱 하고 건조하지 않게 관리하기 위해 거즈나 바셀린, 오일, 보습제에 드는 돈이 훨씬 많다.
한 달에 못해도 30만 원 이상 지출하고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지원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는 아이가 둘인데, 질환 때문에 그 어떤 경제 활동도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이 돈은 내게 큰 부담이다.”

심리적 지지 받을 곳 없어 자살 생각하기도
사례 2/ 이 00(38. 복합부위통증증후군)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외상이나 수술 후 후유증으로 생기는 후천적인 질환이다. 나는 발병한지 5년째인데, 다행히 아내가 의료인이어서 확진을 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 증후군은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는 있지만, 나는 지원받는 의료비 외에도 매달 50여만 원이 추가 비용을 지출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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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합통증증후군을 앓고있는 환자의 다리를 촬영한 모습. 아픈 부위의 색온도가 틀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함께걸음  
 
의료비 문제도 힘들게 하지만, 더 힘든 부분은 심리적인 지지를 받을 곳이 없다는 현실이다.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통이 많은데, 이를 털어놓고 상담할 체계가 없다.
질환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기도 하지만, 우울증이나 심리적 공황상태일때 우발적으로 자살을 하기도 한다.

현재 복합부위통증증후군환우회원 중에서 작년에만 두 명이, 올해 들어 한 명이 자살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심리상담전문가에게 상담 받을 수 있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또 워낙 희귀한 병이고 치료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에 나도는 근거 없는 치료정보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심리를 악용하는 장사꾼도 많다고 들었다. 우리들이 전문가에게 적합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해줬으면 좋겠다.”

치료받을 의료센터 전국서 단 한군데, 그나마 시장논리 밀려 폐쇄 위기
사례 3/유00(선천성혈관기형이 있는 7세 된 아이의 부모)

“선천성 혈관기형은 의료비 지원 대상 질환이 아니다.
이 질환은 신체의 각 혈관, 그러니까 동명, 정맥, 모세혈관, 임서 등에서 기형인 형태가 나타나는 것인데 천명이면 천 명마다 다 다르다. 비슷할 수는 있지만 똑같은 질환은 있을 수가 없다. 이는 선천적이지만, 후천적으로 발병할 수도 있다.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다가 성인 때 발병하는 경우도 많은데 내 딸은 출생 직후에 알았다.

이 질환은 혈관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혈관 종양으로 오진 받을 확률이 높아 외과 수술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혈관기형은 뭣 모르고 건드리면 더 악화되기 쉬운 질환이다. 그래서 사망한 경우도 많다.
혈관기형은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고,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질환인 사람도 있을 정도로 천차만별이다.

현재 국내에서 전문적으로 진료 받을 수 있는 곳은 서울 삼성병원의 혈관기형클리닉인데, 여기 등록된 혈관기형 환자만 2천여 명이라고 한다.

전문병원이 전국에 하나 밖에 없다보니 부산, 거제도, 통영 등 전국에서 혈관기형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삼성병원으로 모인다.
그러나 혈관기형클리닉에 오더라도 완치되는 것은 아니고, 발병부위를 줄이거나 악화를 막는 수준이지만, 현재 다른 수가 없다. 그저 진료 순번이 오기를 맘 졸이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순번이 돌아와 시술에 들어가더라도 최소 일주일 이상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혈관기형을 앓고 있는 이들과 보호자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 혈관기형클리닉 마저도 병원에서 퇴출 1순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병원 입장에서는 이 질환으로 돈을 벌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일 게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삼성병원이 이정도니, 다른 병원에서의 혈관기형 전문 클리닉 설치는 상상하기 어렵다.

시장논리로 인해 진료 받을 기회조차 없는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 나서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전문과를 설치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혈관기형은 아직 치료제가 없어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 병세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평생 병원을 드나들어야 하지만, 의료비 지원 항목에조차 포함돼 있지 않으니 그 부담은 엄청나다.

내 딸은 “의료적으로 할 수 있는 치료가 더 이상 없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다. 즉 목숨이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질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현재 내 딸 아이는 혈관기형 때문에 오른쪽 허리부터 발가락까지 비대 성장하고 있다. 즉 오른쪽이 왼쪽보다 더 길고 큰 상황인데 양쪽의 길이차이가 5센티미터 이상이 안 된다는 이유 때문에 지체장애로 등록할 수도 없다.
딸아이의 질환은 평생 가는 것이고, 오른쪽과 왼쪽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텐데, 당장 해당사항이 없다고 교정신발조차 지원받을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할 뿐이다.

undefined   ▲ 혈우병 환자의 환부 모습 ⓒ함께걸음   오염된 치료제 때문에 에이즈 등 2차 감염 환자 수 엄청나
사례 4/ 김00 (42. 혈우병)

혈우병은 약값지출이 굉장히 크다. 약 값 비용은 몸무게마다 다소 다른데, 몸무게 50kg인 중증 환자일 경우 1회 주사비용이 60만원인 약을 3병씩 맞아야 한다.

정부는 이 고가의 약값을 100% 지원한다고 선전하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병원에 입원해 약을 맞게 되면 병원에선 환자에게 사용된 약값을 청구한다. 그러면 이 금액을 전액 병원에 지급해 줘야 하는데, 건강보험공단심사평가원에서는 약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단골 삭감대상에 포함된다.
병원입장은 환자를 치료해주고 약값을 받지 못하니 혈우병 환자 치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생겨났다. 제때 혈우병 치료제를 맞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데, 병원 찾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약값이외에 추가비용도 엄청난 부담이다.
수시로 입원을 해야 하는 질환 특성상 대부분의 혈우병 환자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가 없다.
돈은 없는데 자주 병원에 가다보니 의료비 이외에 교통비, 숙박비, 병실이용비 등 2차비용이 만만찮게 된다.
게다가 응급환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병실을 미리 예약할 수 없는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5인 이상 병실은 찾기 어렵다. 4인실 역시 몇 만원씩 비용을 내야하지만 이나마도 구하기가 힘들다.

약 값과 관련한 비용도 문제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오염된 치료제로 인한 2차감염이다.
혈우병 치료제는 혈액에서 응고인자를 채취해 만드는데, 오염된 혈액제로 인해 에이즈나 C형간염에 감염된 혈우병 환자 수가 각각 25명, 650명에 이를 정도로 혈액안전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선진국에서는 혈액에서 체취하지 않고 유전자제조학 기술로 혈우병 치료제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이 기술이 5년 전 한국에도 들어왔는데 약값에 차이가 있다 보니 새로운 환자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으로 묶어 놨다. 이에 대해 혈우병 환자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1988년생 이후만 이 새로운 약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법으로 명시해 놨다.

그렇다면 21살 이상은 에이즈에 걸려도, C형 간염에 걸려도 된다는 이야기인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새로운 약품의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국내업체서 만드는 기존의 혈우병 치료제의 수요를 보전해주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있을거라는게 우리들의 생각이다.

약값이 비싸기 때문에 안전하고 좋은 약제를 못 쓰게 법으로 막아놓는 것은 문제 아닌가.
정부가 혈우병 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작성자전진호, 최희정 기자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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