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 40시간 판정, “죽으란 얘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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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가 되기만을 기다려
am 10:00 ~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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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심 씨의 아침은 10시에 시작한다. 사실 새벽 3시부터 깨있을 때도 있지만 혼자 움직일 수 없으니 활동보조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 조은영 기자 |
아니, 사실 새벽 3시부터 깨어있을 때도 있고 7시쯤에야 깰 때도 있지만 혼자 움직일 수 없으니 활동보조인이 올 때까지는 꼬박 누워 있어야 한다. 라디오가 켜져 있으면 라디오를 듣고, 때로 아무 것도 켜져 있지 않으면 그냥 천정을 바라본다.
그래서 활동보조인이 제 시간에 오지 않으면 조바심이 난다. 그는 약속된 10시에서 조금 늦었을지 모르지만 선심 씨는 10시가 되기를 몇 시간씩 기다린 거니까.
10시에 활동보조인이 오면 선심 씨는 우선 씻는 것부터 한다. 세수하고 이를 닦고 나면 아침을 챙겨먹고, 설거지 및 간단한 집안 청소를 한다.
일주일에 한번은 이 시간에 목욕도 하는데 목욕하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목욕하는 날은 다른 일들을 생략한다고. 그래도 선심 씨는 몸집이 작아서 목욕하는데 시간이 적게 드는 편이다. 어떤 사람들은 목욕하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단다.
분주하게 움직여도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 12시다.
“달력에서 빨간 날 좀 없어졌으면 좋겠어”
pm 12:00 ~ 1:00
이 시간에는 또다시 혼자다.
그래도 선심 씨는 손을 움직이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장애가 심한데다 돌봐 줄 가족조차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긴 시간 활동보조서비스(이하 활보서비스)를 받아 왔다. 보통은 활동보조인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서비스가 끊기기도 하는데, 여러 사람의 도움 덕에 선심 씨는 아직 그런 적은 없었다고.
“이렇게 잠시 혼자 있는 건 그래도 괜찮아. 쉬는 날이 문제지. 활동보조 구하는 게 어렵거든. 달력에서 빨간 날이 싹 사라졌으면 좋겠다니까. 활동보조 못 구하면 그땐 밥도 굶고 화장실도 못가고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만 하니까. 남들은 쉬는 날인지 몰라도 내겐 공포야.”
선심 씨는 또다시 누워서, 혹은 휠체어에 앉은 채로 오늘 할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pm 1:00 ~ 3:00
1시가 되면 다른 활동보조인이 온다. 벌써 여러 달 째 아주머니 한 분이 활동보조를 하고 있다.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 서울북부실업자사업단 강북지부 소속인 정성자씨는 사회적 일자리를 통해 선심 씨 활동보조를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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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심씨는 월, 수 목요일 야학에 가고, 화요일은 국립재활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는다. 여유가 나는 금요일엔 활동보조인과 함께 시장에 들러 다음 한주동안 쓸 식료품과 물건을 산다. ⓒ 조은영 기자 |
월, 수, 목요일은 야학에 가기 때문에 공부에 필요한 교재를 챙기고, 화요일은 국립재활원에 재활치료를 하러 갈 준비를 한다. 여유시간이 나는 금요일은 한주동안 필요한 식료품과 물건 구입을 위해서 장을 볼 준비를 한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3시가 훌쩍 넘는다.
활보, 비용은 늘고 시간은 줄어
조사조차 않고 0시간 판정하기도...
pm 3:30 ~5:00
야학에 가는 날은 우선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노들센터)로 간다. 그곳에서 승합차를 타고 학교에 가기 때문. 걸어서 대략 30분 정도 걸리는데, 보통 차가 오는 5시보다 먼저 간다. 그래야 사람들도 만나고 이런 저런 소식도 듣기 때문이다.
요즘은 활보와 관련된 소식에 특히 관심이 많다. 생존이 걸린 문제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가운 소식이 별로 없다.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만 저만 걱정되는 게 아니다.
“활보시간 판정 결과가 40시간으로 나왔어. 시범사업 기간에도 60시간은 필요하다고 판정해놓고... 활보 비용은 늘었는데, 오히려 시간은 줄었다니까.”
선심 씨는 현재 주당 80시간이 넘는 활보서비스를 받고 있다. 시범사업을 통해 센터에서 월 60시간 서비스를 받고, 사회적 일자리를 통해 하루 5시간씩 주5일, 월 100시간을 받는다.
주말엔 노들센터가 비용을 대 하루 8시간씩 활동보조를 해왔다. 센터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선심 씨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판단해 감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조차 쉽지 않다. 활보서비스가 제도화되면서 서비스 시행만으로도 센터에 어마어마한 적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국 선심 씨는 그동안 월 224시간(하루 8시간)의 서비스를 받다가 한꺼번에 40시간(하루 1시간 남짓)으로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생존을 위해선 모자란 시간은 전액 자비를 들여서라도 활동보조를 받아야 할 판이지만 수급권자인 선심 씨 입장에서 이 역시 쉽지 않다.
노들센터엔 선심 씨처럼 시간이 깎인 사람들이 많았다. 시범사업기간동안 60시간 판정을 받았던 사람이 이번에 0시간 판정을 받은 경우도 3명이나 됐다. 이들 중에는 아예 조사조차 받지 못한 사람도 있다고.
“이들에겐 생존이 걸린 일인데 조사조차 않고 0시간 판정을 내리다니, 어처구니없죠. 현재 시간이 깎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의신청을 낼 계획이에요. 구청에선 복지부가 판정표를 수정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지만, 당장 죽게 생겼는데 마냥 기다릴 순 없죠.” 노들센터 코디네이터인 조한나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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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가 자립생활센터의 코디네이터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선심 씨는 야학 승합차를 기다리면서 야학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있었다. ⓒ 조은영 기자 |
예습, 복습을 하는 동안 활동보조인은 연필을 잡지 못하는 선심 씨를 위해 손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학습도우미 역할까지 한다.
5시, 드디어 야학에 가는 승합차가 도착했다.
활보비용, 월 1만원에서 19만원으로 대폭 늘어... 막막
pm 5:00 ~ 10:00
월, 수, 목 3일은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야학에서 수업을 받는다. 때문에 활보서비스도 5시까지만 이용한다. 야학이 끝나면 차로 데려다 주고 운전사가 집에 들어와 눕혀주고 가는 덕에 그나마 활보서비스 이용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물론 씻지도 못하고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자야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10시에 씻고 옷을 갈아입느라 활동보조인을 구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을뿐더러 최대한 이용시간을 줄여야, 더 절실히 필요한 다른 때 이용이 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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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으면서 시설에서 독립한지 벌써 9개월째지만, 사실 선심씨는 현재 살고 있는 서울 구경을 한 적이 별로 없다. 그나마도 앞으로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이 줄면 이런 외출은 아예 불가능할 듯 하다. 사진은 지난 4월 15일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 후 찍은 사진. ⓒ 조은영 기자 |
야학에 가지 않는 화요일과 금요일엔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또다시 혼자 ‘시체놀이’를 해야 한다. 천정 무늬는 이제 눈을 감아도 자세히 그릴 수 있다. 어디에 먼지가 껴서 색이 변했는지까지 정확하게 말이다. 때로는 활동보조인이 라디오를 틀어놓고 가기도 하지만, 라디오가 재미있어서 듣는 게 아니라 그저 떠드니까 들을 뿐이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노라면 8시쯤 활동보조인이 온다.
선심 씨는 활동보조인이 있는 이 시간 동안 옷을 갈아입고 밥을 먹고, 씻고, 밤 시간을 대비해 기저귀를 찬다. 사실 기저귀를 차는 일은 대단히 불편하다. 가끔씩 피부가 눌리거나 쓸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밤새 혼자 있어야하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
사고 공포에 잠 못 드는 밤
pm 10:00 ~ am 10:00
10시가 돼 활동보조인이 돌아가면 또다시 혼자다.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지면 공포와 싸워야 한다. 전화조차 못하니 혼자 있다가 사고를 당하더라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하다. 그렇게 두려움과 싸우다보면 보통 새벽 1시가 돼야 잠이 드는데, 그나마도 깊이 잠들지 못한다. 어떨 땐 새벽 3시에 깨는데 그러면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다. 누군가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들지만 그저 바램일 뿐이다.
“한번은 새벽 2시에 견딜 수 없을 만큼 다리가 아프더라고. 초저녁부터 아프던 것을 그냥 참았는데 새벽 2시에 통증이 초절정이었어. 고통이 밀려오면서 나도 모르게 몸부림이 쳐질 정도였거든. 근데 머리 바로 옆에 놓인 핸드폰에 손이 닿질 않는 거야. 누구한테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대략 1시간쯤 헤매다 우연히 노들자립생활센터 소장님과 통화가 됐다. 소장님도 새벽에 걸려온 전화에 놀란 듯 했다고. 얼마 후 사람이 왔다. 그때가 대략 3시 반.
선심 씨처럼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한밤중에 사고가 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도 그날 선심 씨는 운 좋게 통화가 됐지만, 보통은 아침에 활동보조인이 올 때까지 사고가 난 상태로 그대로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하는 김상희 씨 역시 뇌성마비 장애로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데, 한번은 한밤중에 몸을 뒤척이다 침대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고 했다. 다리가 꺾인 채로 떨어졌는데 밤새 그대로 있어야 했다고. 다음날 활동보조인이 집에 와서야 그는 병원에 갈 수 있었다.
근육장애인의 경우엔 장애정도가 심해지면서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도 혼자서는 자세조차 바로 잡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단지 한두 시간 옆에 사람이 없는 것만으로도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이현준 열사 역시 혼자 있던 밤 가래가 기도를 막아 호흡곤란으로 세상을 등진 바 있다. 이런 공포 때문에 혼자 있게 되면 공황장애를 겪기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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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월 31일 제대로 된 활동보조인제도화를 요구하며 장애인 당사자 20여명이 삭발을 했다. 김선심 씨도 이 날 삭발을 참여해 눈물을 흘렸다. ⓒ 조은영 기자 |
“시설에서 독립한지 9개월짼데, 요즘은 딱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절대로 다시 시설에 가고 싶지 않은데, 활보시간을 이렇게 줄여버리면 나 같은 사람은 죽으란 얘기잖아.”
선심 씨는 그동안 활보서비스가 제도화되기를 바라며 단식농성에도 참여하고 삭발도 했다. 하지만 잘라낸 머리카락이 채 자라기도 전에 약속은 무참히 짓밟혀 버렸다. 오히려 지금보다도 열악해진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할 뿐이다. 선심 씨의 꿈이 현실이 되려면 또 얼마나 싸워야 할지, 그리고 이번엔 그렇게 얻어낸 약속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
*** 이것으로 기획연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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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남궁경문님의 댓글
남궁경문 작성일
선심씨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지만 어째든 잘 지내고 행복하기를 바랄게요.
자신의 무의미한 한마디가 혹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걸 잊지마세요
처음 서울여행 같이갈때 시설에 입주했을때 어머니와 선심씨는 나에게 엄청난 은헤를 입었다며 수도 없이 감사했잖아요. 결국 시설을 통해 자립생활도 할 수 있었구요 .우리가 자립생활 센터에 갈때도 본인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헸는데 ...어째든 잘지내세요
남궁경문님의 댓글
남궁경문 작성일많은 고생을 했던거 기억안나나 보죠. 늘 이기적인 생각과 아집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한것도 생각이 안 나나보죠. 사람이 그러는게 아닙니다.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딱 이짝이네요 . 앞으론 그렇게 살진 마세요,참 실망스럽네요.자신을 돌아보고 남에 대해 평가해 보세요. 우리도 절대 선심씨 같은 사람은 시설에 들이고 싶지 않아요 절대로 (너무 사람을 힘들게 해서)
남궁경문님의 댓글
남궁경문 작성일
선심씨 잘 지내나요.선심씨가 있었던 시설 원장입니다.
글을 보면서 아쉬운 생각도 들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이상하게 변해버린 모습이 왠지 낯설기도 합니다.어쩌면 장애인 단체에 쇄뇌어 되어버린
사람처럼 보이네요. 시설에 살때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정도 들었던거 같은데 우리가 완전
몹쓸사람 처럼 말 하는군요. 사람이 그럼 안 됩니다.물론 시설이 어쩔수 없이 제약적인 부분이 있지만 우리 가족들도 선심씨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