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과 맞바꾼 18년 인생
전남완도군에서 벌어진 장애인 착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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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아니, 그렇다고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에 잘 나오는 무슨 유령 같은 것도 아니고,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심령체 같은 것도 아니다.
나는 실체를 가진 인간이며, 살도 있고 뼈도 있고, 힘줄도, 체액도 다 있는 인간이다. 게다가 내게는 정신도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보이지 않는 건, 다름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랠프 엘리슨의 '보이지 않는 인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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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진호 기자 | ||
전남 완도군의 한 섬에 있는 미역가공 공장에서 15년 이상씩 일을 했지만 받은 임금이라곤 담뱃 값이 전부라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며칠씩 무인도에 가둬놓곤 한다는 제보가 전남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이하 전남 연구소)에 접수됐다.
새벽 4시부터 노동 시작, 하지만 받은 돈은 한 푼도 없어
사실 확인을 위해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인권 활동가들과 함께 지난 3월 23일 전남 완도군 금일읍을 찾았다. 전남 강진에서 뱃길로 한 시간, 차로 10분가량을 달리자 금일읍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임금갈취와 학대상황에 놓여있다는 류상민(가명 46), 최영호(가명 미상) 씨가 일하는 대진식품을 찾기 위해 마을주민들에게 물어보니 “혹시 이들 부모와 연락이 돼서 찾아온 거냐”고 반문하는 투가 이들의 생활상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듯 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입을 다물었다.
제보만으로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어서 직접 피해자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영호 씨와 상민 씨가 있는 대진식품은 금일읍 척지리에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100여 평이 넘는 규모의 공장에서 이들이 하는 일은 한눈에 봐도 무척 힘들어 보였다.
바다에서 건진 미역을 기계로 가지고 오면 몇몇의 아줌마들이 분류작업을 하는데, 이를 모아 차에다 싣는 일이 상민 씨와 영호 씨의 역할이다.
영호 씨에 따르면 “다른 이들은 6시가 되면 퇴근한다지만 우리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일감이 다 끝날 때까지 계속 일을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일하고 받는 품삯은 고작 담배 몇 갑이 전부였다.
총 30여명의 직원 중 7명이 이곳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는데, 영호 씨와 상민 씨의 방을 둘러보니 그들이 이곳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생활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십여 년이 넘게 생활한 곳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옷가지 몇 벌이 전부였다. 사장이나 다른 인부들이 생활한다는 공간과는 한눈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진호 기자
“먹여주고 재워주기 때문에 내 돈이 더 들어가?” 이들의 처한 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기위해 이들과 대화를 나눠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라치면 처제라고 불리는 이들이 계속 감시해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없었고 이를 의식했는지 상민 씨는 ‘힘들다’, ‘돈을 받고 일한다’, ‘여기서 계속 살고 싶다’ 등 몇 마디만 내뱉곤 자리를 피했다.
결국 이들의 이야기를 사장을 통해 들어볼 수밖에 없었다.
사장에 따르면 이곳에 이들이 오게 된 게 영호 씨가 14년, 상민 씨가 17년이 됐고 둘 다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긴 하지만 돈이 없어서 장애등록을 하지 못했고, 기초생활수급권자도 아니라는 것. 영호 씨는 주민등록증조차 없었는데 이 역시 비용이 많이 들어 만들어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곳에 오게 된 계기를 물어보니 “상민이는 제 발로 이곳으로 들어왔다. 해남에 가족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소식도 알릴 겸 찾아갔으나 싫어해 이곳 척지리로 호적까지 옮겼다. 영호는 완도에 있는 부도난 협력업체에 물건이라도 가져오려고 갔더니 영호가 밥을 굶고 있기에 불쌍해서 데려왔다”고 주장했다.
임금은 얼마씩 지급하는가 물어봤더니 “오히려 이들 때문에 일 년에 1천만 원씩 까먹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역공장의 특성상 1년에 석 달만 일을 한다고. 나머지 기간 동안 밥 먹이고 재워주고 담배 사주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임금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어 사장은 “여기서 일하고 간 인부들이나 읍사무소 직원이 임금착취라는 소릴 한 적이 있었지만 이 같은 내용을 모르고 하는 헛소리”라며 “그런 소리 할 거면 데려가라고 했지만 읍사무소서 아무 조치도 없던 걸 보더라도 괜한 시비만 거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사장의 주장은 사실일까.
우선 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임금보다 많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게 간단한 계산을 통해서 금방 알 수 있다.
하루일당 7만원씩, 석 달 일한 걸로 계산해보면 6백30만원, 두 명이면 1천2백60만원에 이른다. 사장이 이들에게 들어간다는 비용인 식대와 담배 값을 밥값 1만원, 담배 3갑으로 잡고 계산 해봐도 약 9백59만 원이 들어간다.
또 일 년에 석 달만 일하고 있다고 사장은 주장했지만 미역시즌(2월초~4월말)이 끝나면 다시마와 관련된 일을 두 달 가량 하고 있었으며 짬짬이 근처 농사, 바다일 등을 한 것으로 봐 이들이 받아야 할 액수는 훨씬 많다.
ⓒ전진호 기자
사장의 주판알 놀음, 관계관청 외면 속에 착취 상황 계속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 관청 등이 사장의 ‘가족처럼 지낸다’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은 건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을 갈취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장 역시 “수급권자로 만들어 놓으면 내가 갈취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일부러 안했다”고 주장했지만 조금만 따져보면 충분히 속셈이 보인다.
금일읍사무소 사회복지담당요원에 따르면 “1997년 경, 사장 소유의 선박을 비롯해 트럭 등이 상민 씨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고. 사장내외가 신용불량자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재산을 상민 씨 명의로 올려놓은 것.
추측컨대 명의도용으로 인해 상민 씨가 수급권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사장은 장애등록을 해봤자 수급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별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수급권 신청은 물론 장애등록도 안한 것으로 보인다.
영호 씨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 비용과 시간 때문에 주민등록을 신청 안했다고 주장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군하나 잃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작용했을 것이다. 또 정신적 장애가 있다는 걸 확인받고 장애등록을 하기 위해선 최하 6개월 이상의 치료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이 기간 동안 들어가는 비용이 아까워 장애등록을 안했던 것이다.
결국 관계 관청의 외면, 사장의 주판알 놀음에 상민 씨와 영호 씨는 그 어떤 사회적 시스템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채 몇 십년간 차디찬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일하고 있었다.
ⓒ전진호 기자
관계 관청, 손 놓고 뒷짐만 이들의 피해사례를 해결하기 위해 전남 연구소는 지난 3월 31일 완도 경찰서와 완도구청, 금일읍사무소 사회복지 담당관이 참석한 가운데 영호 씨와 상민 씨와의 면담을 실시했다.
면담을 진행한 전남 연구소 인권센터 김수연 팀장에 따르면 “상민 씨는 18년 전 목포의 한 직업소개소를 통해 이곳까지 오게 됐으며, 고향인 해남에 가족들이 있으나 배다른 형제라는 이유로 그의 생사에 관심이 없었다”며 “영호 씨는 사장의 주장과 달리 다른 미역공장에서 일하다 그 곳 사장에게 이끌려 이곳에서 생활하게 됐으며, 지문을 채취해 신원을 조회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팀장은 “당초 제보에 의하면 상민 씨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인도에 갇혔던 걸로 알았다. 하지만 면담결과 영호 씨가 사장 부인의 옷을 찢었다는 이유로 매를 맞고 무인도에 감금된 적이 있었으나, 다른 학대사례는 없었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피해상황에 대한 심증은 있으나 진술이 워낙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어이없는 건 관계 관청의 태도다.
피해자들이 맞는 등 가혹행위를 당한 적이 없다고 부정하고 있고,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뚜렷한 물증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조처를 취하기 어려운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제보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을 오랫동안 지켜본 이들 등의 증언을 들어보는 등 적극적인 사실 확인을 해볼 노력은 전혀 없이, ‘그런 일들이 없었다’고 단정 지은 채 임금체불에 한정지어 결론 내리려는 태도는 납득되지 않는다.
게다가 임금체불에 대한 보상조치마저 적극적인 조사와 추가 피해상황에 대한 방지 없이 시민단체의 의견서가 올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리는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진호 기자
장애등록 안됐고 수급권자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 줄 수 없었다? 설사 학대상황이 없었다 하더라도 ▲사장의 재산등록으로 인해 수급권 해택을 받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묵인한 점 ▲광식 씨의 경우 주민등록증조차 없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노력도 없었던 점 ▲임금체불과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관계관청의 불성실한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에 대해 금일읍사무소 사회복지담당요원은 “당시 조사를 통해 이들이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과 상민 씨 명의로 선박 등이 등재돼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개인적인 사항이라 어쩌지 못했다. 이 사실에 대해 군청에 보고하긴 했지만 어떤 지시사항도 받지 못했다”며 군청으로 책임을 넘겼다.
또 영호 씨가 주민등록조차 없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는 우리가 담당하는 게 아니라 민원실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어떻게 처리됐는지 잘 몰랐다”고 답했다.
‘복지 도우미’서비스에서 이들이 제외된 이유에 대해 묻자 “둘 다 장애등록이 안되어 있고, 수급권자도 아니기 때문에 관리대상에서 제외됐다”며 “나 역시 이곳에 온지 얼마 안됐는데, 인사이동 과정에서 제대로 인수인계가 안 된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당시 보고를 받은 후 어떻게 사후처리 했는지에 대해 완도군청 장애인담당과 직원에게 묻자 읍사무소와 비슷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서류상으로 보고를 받은 건 사실이나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지 못해 모르겠다는 것.
한술 더 떠 이들을 위해 바로 조치를 취했다며 자랑스럽게 설명한 건 “이들이 고소 고발을 진행할 경우 그곳에서 생활하기 힘든 상황을 대비해 신안군에 있는 종교시설에 연락해 이들이 입소가능토록 준비했다”고.
여태껏 스스로 일을 하며 생활해오던 이들을 왜 시설에 입소시키려고 하는가 물었더니 “이분들이 지금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은 시설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전진호 기자
학대상황은 반복되는데, 이를 막아줄만한 사회적 시스템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어 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지적장애인에게 행해지는 임금착취와 학대사례에 대한 방영이 나간 이후 이들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인식은 많이 바뀐 게 사실이다.
아이러니한 건 조금씩 바뀌고 있는 시민의식에 비해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미리 막아야 할 관계기관의 의식은 제자리걸음이라는 사실이다.
당초 제보자는 이들의 피해상황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광주 사무소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의 상황을 조사한건 인권위가 아니라 인권위의 의뢰를 받은 전남 연구소 인권센터였다.
이에 대해 인권위 광주 사무소 관계자는 “제보의 경우 심각성을 판단해 사실관계를 조사하게 되지만, 대부분 진정이나 상담처리에 바빠서 처리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해당 관청은 어떨까.
앞서의 상황을 보듯 행정 처리에만 신경 쓸 뿐 ‘장애등록이 안되어 있고, 수급권자가 아닌 이’들이기 때문에 어떤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전라남도는 여러 차례 지적장애인 학대사례가 벌어진 지역이다. 전라남도는 이 때문에 네티즌 등의 몰매를 맞자 지난해 ▲섬 지역의 지적장애인에 대한 일제조사 실시 ▲‘복지 도우미’운영 등의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일제조사는 신안군에 국한 됐으며, 월 40만원씩 지급받는 도우미를 지정, 독거노인이나 지적장애인을 위해 서비스를 하게 되어 있는 ‘복지 도우미’는 형식에 그치고 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런 상황을 보다 실질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이에 대해 전남 연구소 허주현 소장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장애인 권익옹호 시스템을 만들어 내야 해결 가능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지역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피해사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장애인복지법 등 법적 테두리 안에서 운영하는 센터개념의 구심점이 있어야 반복되는 피해사례를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바라봤다.
따지고보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공적 시스템의 지원만 있다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차상의 문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목소리 높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적 구조가 지적장애인과 관련한 피해상황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것 아닐까.
결국 상민 씨와 영호 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고, 그 존재성마저 부정당하며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작성자전진호 기자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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