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예고된 정신보건법, 인권보호를 위한 적극적 개정이 필요하다
본문
지난 6월 7일 보건복지부는 「정신보건법」개정안을 내, 6월 한 달간 입법예고했다. 복지부는 ▲자의입원환자에 대한 퇴원자유의사 고지의무를 신설하고 ▲무연고 환자에 대한 신원조회를 강화하며 ▲폭행, 가혹행위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 두는 것 등을 중심으로 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그러나 이번 복지부의 개정안은 그동안 「정신보건법」이 정신장애우들은 물론 비장애우들의 인권침해 수단으로 빈번하게 악용되는 현실을 단속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함께걸음〉에서는 장애우들의 입장에서 정신보건법의 구조적 결함을 적극개정해야 한다는 염형국 공익변호사의 주장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정신병원, 생사람 잡는다
지난 2001년 정씨 여인이 정신병원에 강제 감금됐다가 71일 만에 극적으로 구출된 사건이 있었다. 정씨는 종교문제로 남편으로부터 심한 폭행에 시달리자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왔다. 이후 다시 잘해보자'는 남편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갔지만 곧바로 정신병원으로 끌려가 갇혔다.
정신병원에서 정씨는 산책은 물론 법이 보장하는 통신권마저 일체 차단됐다. 정씨는 입원기간 내내 병원 측에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설명하며 퇴원을 호소했지만 정씨의 호소는 간단히 무시되었다. 궁리 끝에 정씨는 구조를 요청하는 편지를 몰래 써서 병원을 나가는 사람 편에 보냈고, 결국 두 달여 만에 정신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정씨는 생사람을 정신병원에 잡아가둔 남편과 정신과 의사를 상대로 감금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하였다. 법원에서는 2006년 4월 정씨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킨 남편에 대한 감금 혐의에 관하여 유죄를 선고했지만, 정신과 의사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병원 측은 반드시 정신병 환자로 확진되어야만 입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비정신병적인 정신장애가 의심만 돼도 입원할 수 있다며 의료적인 판단에 따라 입원을 결정했다고 하였다." 법원에서도 정신과 진료의 특성을 감안, 의사가 재량권을 벗어났음을 증명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정신병원은 90% 이상이 강제입원
정씨 여인의 사례는 강제 입원된 일수가 71일밖에 되지 않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경우이다. 밝혀지지 않은 부당한 강제입원에 의하여 지금도 정신병원에 입원되어 있는 환자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에의 강제입원은 인신의 자유를 구속하는 행위로서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질 필요가 있으나, 정신보건법상의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규정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입원을 보호의무자의 입원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인의 진단만으로 손쉽게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앞서 본 것처럼 부당한 강제입원을 조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2003년을 기준으로 하여 자의에 의한 입원은 7.9%에 지나지 않았으나,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74.8%, 지자체에 의한 입원이 15.6%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 대부분이 강제 입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자의입원이 68.6%에 달하고,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28.2%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정신과 시설에의 평균재원일수도 1994년을 기준으로 국․공립 정신병원은 262일, 사립 정신병원은 962일에 이르고, 정신요양시설은 무려 2,526일에 달한다.
또한 강제 입원된 환자의 상당수는 정당한 보호의무자가 아닌 자에 의한 입원 내지 법에서 정한 요건에 위반한 입원으로 판단되고 있다.
강제입원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의 경우에 보호의무자는 민법상의 부양의무자 또는 후견인, 예외적으로 시장․군수․구청장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매형, 동거녀, 사촌처남, 시누이, 외조카, 심지어는 시설원장, 목사, 지인 등이 입원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이 정당한 보호의무자가 아님을 정상적인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데도 우리나라 정신병원에서는 보호의무자로서 입원을 동의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계속입원심사제도'와 정액수가제'가 장기입원을 조장
정신병원 입원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기간은 최장 6개월로 되어 있다. 다만 6월이 경과한 후에도 계속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이 있고 보호의무자가 계속입원동의서를 제출한 때에는 6개월마다 시․도에 있는 정신보건심판위원회에서 계속입원치료에 대한 심사를 청구하여 계속입원 판정을 받아야 한다.
강제입원환자가 정신의료기관에서 불필요하게 장기 입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계속입원심사제도'가 있으나 현실적으로 거의 장기입원 방지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신보건시설에 입원중인 환자 중 50% 정도가 적절하지 않은 입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이영문, 신경정신의학' 기고문, 1999, 재인용)되고 있음에도, 계속입원심사가 청구된 건 중에 퇴원명령은 불과 4.4% (2001년 기준) 수준에 머물고 있고 95.6%가 계속입원 판정을 받는 실정이다. 이 점만 보더라도, 이 제도가 장기입원을 줄이는 데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정신보건심판위원회는 시․도마다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시․도 단위로 5~7명의 위원들이 월 1회, 1~2시간 만에 1천여명에 달하는 입원환자의 계속입원 여부를 결정해야 하고, 위원들이 환자 대면 없이 서류 위주로 심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므로 제대로 된 심사를 기대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한편 대부분의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들이 의료급여 환자인 상황에서 의료급여 환자에 대한 의료수가는 서비스 내용에 관계없이 매달 일정한 액수(환자 1인당 정신의료기관의 경우 매달 80~90만원)를 국고에서 지급해 주는 제도인 정액수가제'가 적용되고 있다.
의료서비스 내용과 무관하게 일정액이 지급되기 때문에 병원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의료서비스 내용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로 인하여 환자의 인권이 심각하게 방치될 우려가 있다. 또한 정액수가제를 유지하는 한 입원환자가 많을수록 병원운영에 보탬이 되므로 가능한 한 많은 입원환자를 수용하려 하게 되고, 따라서 입원환자를 가능하면 퇴원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불필요한 강제입원․장기입원 방지가
해결의 열쇠
그 외에도 정신보건법에서는 한 병실에 10인 이내로 수용하도록 정하고 있으나 이를 지키는 경우가 거의 없고, 병동 목욕탕에까지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감시하고 있어 입원환자들의 사생활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
또한 관리 및 통제 목적으로 격리․강박이 빈번하게 행해지고 있으며, 작업치료를 빙자한 강제노역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의료급여의 환자 경우에는 대부분 약물요법에 의존하고 있어 심리사회적 치료를 위한 각종 사회기술훈련 및 사회재활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정신보건시설의 인권침해의 근저에는 불필요한 강제입원과 장기입원이 광범위하게 허용되고 있는 점에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필요한 강제입원 및 장기입원을 대폭 줄이게 되면 자연스레 정신보건시설에서의 인권침해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선 강제입원의 요건을 강화하여야 한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의 경우에 있어서 정신과 전문의 1인의 진단 결과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정신과 전문의 2인 이상의 진단에 의하거나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과 더불어 임상심리사의 임상심리평가서를 반드시 첨부하도록 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당한 보호의무자가 아닌 자에 의한 입원,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지 아니한 입원 등 법에서 정한 요건에 위반한 강제입원의 경우에 그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더불어 시장․군수․구청장이 보호의무자가 될 수 있다는 규정을 폐지하고 이를 시․도지사에 의한 입원으로 통합하여 행려자의 부당한 강제입원을 최소화하여야 할 것이다.
계속입원심사제도' 또한 대폭 개선해야 한다. 계속입원심사를 하는 정신보건심판위원회를 시․군․구 단위로 확대하거나 복수의 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조사기능을 강화하고 원칙적으로 환자 대면심사에 의하도록 하여 실질적인 심사가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한편 의료수가와 관련하여 의료급여 환자에 대해 적용되는 정액수가제는 폐지해야 한다. 그 대안으로 필요한 치료에 따른 적절한 치료비가 지급되는 제도 모두 행위별 수가제'로 전환하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굳이 불필요한 입원치료를 할 필요가 없어 외래치료가 활성화될 것이고, 입원환자에 대한 인권침해 사례도 대폭 줄어들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의료보호환자에 대한 의료수가수준은 의료보험환자에 비해 50-60% 수준으로 의료보호 환자에 대하여 부당하게 낮은 수가를 적용함으로 인해 의료보호환자에 대한 식사의 질, 치료인력의 양과 질, 치료공간의 크기, 치료약물의 종류에서 차별이 심각한 상황에 있다. 따라서 의료급여환자에 대한 의료수가 수준을 최대한 의료보험환자의 수준에 맞출 수 있도록 예산의 추가배정이 시급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신과 시설에의 입원환자 수가 감소추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입원환자 수는 1980년 1만2천명에서 2003년 5만7천명으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들은 위험하므로 이웃으로 지내기를 꺼려하고, 사회에서 격리수용하여야 한다는 지독한 편견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태리에서는 원칙적으로 환자의 정신병원 입원을 금지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들도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글 염형국(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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