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당 요구, 무리한 게 아니라 정당한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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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7일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차량에 지급하던 엘피지(LPG) 보조금 지원을 단계적으로 축소 후 폐지'하며 '저소득 중증 장애인과 장애아동에 대한 현금지원을 대폭 강화'하는 안이 담긴 장애인 복지대책을 내놨다.
이 안에 따르면 장애인 엘피지 차량 소유자에게 최대 월 250리터씩 지원하던 것을 오는 11월부터 신규지원을 중단하며 내년 1월부터는 4~6급의 경증장애인에게 지원혜택이 중단되고 1~3급의 중증장애인에게는 2009년까지 한시적으로 지급된다.
대신 저소득, 중증장애인을 위해 장애수당을 대폭 인상했다.
그 동안 기초생활수급권자에 한해 중증 7만원, 경증 2만원씩 지급하던 장애수당을 대폭 인상해 수급권자에게는 중증 13만원, 경증 3만원씩을, 그 동안 지원혜택이 없던 차상위 계층에게는 중증 12만원, 경증 3만원씩을 지급할 예정이다.
또 장애아동부양 수당도 대폭 늘려 수급권자에게만 월 7만원씩 지급하던 것을 수급권자인 장애인에게는 중증 월 20만원, 경증 10만원을, 차상위 계층에게는 중증 15만원, 경증 10만원씩을 지급한다.
가히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조치에 대해 "제도 도입 당시부터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던 엘피지 지원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하지만, 수혜대상에서 제외되는 장애인을 위한 대책을 마련한 후 개선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는 것이 장애인 단체와 정당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하지만 이 같은 목소리는 뒤로한 채 서둘러 폐지결정을 내린 보건복지부의 숨은 속사정은 무엇일까. 또 반대의 목소리는 높이고 있지만, 정부의 안을 뒤바꿀만한 '획기적인' 카드가 없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장애인 단체의 분위기를 <함께걸음>이 취재했다.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특히 중요한 문제다.
이제는 대중화 단계로 접어든 전동 휠체어와 마찬가지로 장애인이 차량을 운행할 수 있게 된 것은 시설이나 집에서만 갇혀 지내던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하게 된 획기적인 전기라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조사대로 장애인 차량에 엘피지(LPG) 지원제도라는 '날개'를 달아준 결과 차량을 운행하는 장애인 수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추세를 부정적으로 해석하지만, 일정부분 유류비를 지원해주는 '엘피지 지원제도' 덕분에 사회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 장애인의 수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렇듯 세상과의 소통을 한층 가깝게 만들어 주며 '성공적인 장애인 복지정책'으로 평가되던 엘피지 지원제도가 아쉽게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형편에 처했다.
장애인들에게 엘피지를 지급한 것은 지난 1990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장애인복지증진'이라는 명목으로 장애인 차량에 한해 저가의 엘피지 사용을 허용했다. 그러나 아이엠에프(IMF)이후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하자, 지난 2001년 7월부터 장애인 승용차용 엘피지 구입비용 중 세금인상액을 지원해오다가, 2004년 12월부터는 '엘피지 구입비 지원 상한제도'를 도입해 엘피지 지원범위를 차량 한대 당 월 250리터로 제한하게 이르렀다.
장애인 관련 예산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뜨거운 감자' 엘피지 지원제도가 결국 폐지라는 결론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 '엘피지 제도 폐지, 장애수당 대폭확대'
정부는 엘피지 지원제도를 폐지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로 '형평성'과 '한정된 예산의 효율적 재배분'을 들고 있다.
소득과 장애정도와 상관없이 지급하는 현 지원체계는 차량을 소유할 경제여력이 안 되는 저소득 장애인과 차가 있어도 장애로 인해 운전 할 수 없거나, 운전해줄 가족이 없는 장애인들은 지원정책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있으며, 이동의 어려움 때문에 지원이 필요한 보행 장애인 5명중 1명만이 엘피지 지원을 받고 있는 등 지원방식의 형평성 측면에 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급속한 엘피지 차량 증가로 인해 재정부담이 늘어 2006년의 경우 정부 전체 장애인 예산의 30%, 보건복지부 장애인 복지예산의 52%가 엘피지 지원에 편중돼 신규사업추진이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한국보건사회연구소에서 보건복지부의 용역을 받아 조사한 데이터를 제시했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수급자 중 7.9%, 차상위 중 17.1%가 엘피지 차량을 운행하고 있는 반면, 소득수준이 높은(수급액의 200%) 계층에서는 74.4%가 엘피지 차량을 운전하고 있으며 장애인 차량 47만6천대 중 수급액의 200%이상의 계층에서 21만6천대를 운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보행장애 여부를 놓고 봤을 때 보행상 장애가 있는 112만5천644명 중 엘피지 차량을 사용하고 있는 비율은 18.8%(212,322명)인데 비해 보행에 불편이 없는 장애인 82만9천497명중 31.8%(263.984명)가 엘피지 차량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엘피지 차량을 운행하고 있는 비보행 장애인 중 보호자가 운전을 하는 경우가 62%를 차지했다.
장애인의 엘피지 차량 보유율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2년~2005년까지 등록장애인 증가치가 37.3%, 등록차량 증가폭이 10.4%인데 비해 장애인 엘피지 차량의 증가치는 75.4%로 급격하게 높아졌다. 이 결과 엘피지 연료 지원사업 예산이 2006년의 경우 2715억 원으로 보건복지부 장애인복지 예산의 51.5%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증가폭이 보건복지부 및 장애인복지 예산의 증가폭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등 구조적으로 큰 문제점을 띄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엘피지 지원제도를 운영하기 힘들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입장이다.
형평성 문제가 있고, 밑 빠진 독처럼 계속 퍼부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엘피지를 계속 지원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이동에 큰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저소득․중증장애인의 장애수당을 대폭 늘려 지원수준을 현실화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여기에는 현물지원정책에서 탈피,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에게 현금을 지원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내부적인 생각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이 결과 보건복지부는 2006년도 장애수당으로 책정된 1천660억 원을, 2007년에는 4천638억 원으로 대폭 늘리는 안을 발표했다.
이 안에 따르면 현재 수급권자 중 중증 7만원, 경증 2만원이던 장애수당은 중증 13만원, 경증 3만원으로 늘어날 예정이며, 그동안 혜택 받지 못했던 차상위계층에게도 중증 12만원, 경증 3만원의 장애수당을 지급해 22만 여명의 저소득 장애인이 추가로 현금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김강립 장애인정책팀장은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 소득보장(48.9%)과 의료보장(19%) 등 생계와 직결되는 지원책을 바라는 목소리가 절반을 넘게 차지했다"며 "장애인 중 수급권자를 비롯한 빈곤계층이 비장애인에 비해 두 배 이상이나 많음에도 실질적인 현금보장책이 거의 없었다. 엘피지 지원정책 개선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장애인 가정의 실질적 소득보장을 하고,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정책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가 있는 엘피지 지원제도폐지를 시발로 장애수당 확대, 장애등급 재조정 등 장애인 복지정책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복안이다.
열린우리당, 정부안 찬성이나 장애수당 지급방식 동의할 수 없어
보건복지부의 폐지론을 바라보는 각 정당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우선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엘피지 지원제도 폐지에는 동의하지만, 장애수당 등의 지급방식에 대해서는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의 김명신 비서관은 "큰 틀에서 보면 장향숙 의원이 내놓은 '소득보장법안'과 정부의 안이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 없이 예산만 증액시킨 것에 그친 정부안에는 동의할 수 없다. 원만한 합의를 위해 당정간 의견 조정 중에 있다"고 밝혔다.
소득보장제도 역시 전체 장애인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연금의 개념이 아닌 수급권자, 차상위 계층에 한정해 지급하자는 것이다. 다만 이를 '이동', '정보접근', '요보호', '건강'등 유형별로 세분화하고, 장애정도를 구분해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안과 다르다.
김 비서관은 "대상이 명확한 수급권자는 문제될 게 없지만, 확대지급 예정인 차상위 계층의 경우 소득에 따라 상황이 변하기 때문에 '어떻게',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지급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안이 나와야 지급가능하다. 때문에 각 유형별 체계를 나누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문제이고 가장 급한 문제다. 그런데 정부의 모습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예산만 먼저 확보해놓은 상황이다. 만약이지만 예산액수에 맞춰 선착순으로 신청한 차상위 계층에만 수당을 지급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장기적인 안목 없이 급하게 정책을 수립하는 정부가 답답할 뿐이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면세만이 유일한 대안
정부안에 대해 가장 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은 "장애인 엘피지 지원제도가 도입될 당시부터 이미 수혜대상에서 벗어난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에 대해 지적된 바 있다. 여태껏 뾰족한 대책한번 내놓지 못하고 이제와 형평성 운운하며 주던 것을 뺏는 것은 옳지 않다"고 꼬집었다.
한나라당은 정화원 의원의 주도로 C조세특례 제한법 D (제 102조)을 고쳐 '장애인이 사용하는 엘피지 면세화'를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해 당론으로 채택했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엘피지 지원제도를 이 기회에 '면세'라는 법으로 명시해 근본적으로 손을 댈 수 없도록 제한하겠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실의 김용환 비서관은 "정부에서는 세수가 면세 때문에 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엘피지를 부정 수급하는 이들만 제대로 단속해도 충분히 손실액은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면세를 통해 장애인 복지예산은 그대로 두되, 남은 예산을 다른 쪽으로 사용한다면 보다 효과적이고 많은 액수가 장애인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이어 김 비서관은 "엘피지 지원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공감하지만 장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경증장애인이 사용하는 엘피지를 부분 제한한 것은 수긍할 수 있지만, 이동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이 사용하는 엘피지도 제한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유일한 제도를 저소득장애인의 소득보장 운운하며 폐지하기에 앞서 엘피지 차량을 운행하는 장애인들이 창출하는 경제적 부가가치에 대해 고려해야한다. 중증장애인의 소득보장에만 초점을 맞추다가는 정작 경제활동을 해야 할 엘피지 차량 소유 장애인들의 활동이 위축돼 수급자로 전락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엘피지 지원정책을 폐지해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장애인 복지예산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증액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면세화 방안을 당론으로 정해 지난 8월 21~29일까지 열린 임시국회에 상정했다. 그러나 여․야간의 입장차이가 워낙 커 재경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안 된 채 계류 중에 있어 정기국회와 국정감사에서 다시 한 번 쟁점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나라당의 면세 안에 대해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등 몇몇 장애인 단체들은 적극 찬성이다. 하지만 '면세'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는데 가능하겠느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한나라당의 안대로 면세안이 통과될 경우 엘피지 가격을 놓고 '1물(物)1가(價)의 원칙' 즉 같은 상품에는 하나의 가격을 적용하는 시장경제의 법칙이 무너지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가'라는 제품에 대해 어떤 이는 만원을 줘야만 구입할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천원만 내도 살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똑같이 만원을 내기는 하나 9천원을 환급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여파는 없다. 하지만 면세로 전환하면 비장애인은 만원을 내야 살 수 있는 엘피지를 장애인은 천원으로 살 수 있는 구입하는 게 시장에서 상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면세안이 채택될 경우 과다사용과 부정수급이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또 “택시, 화물차 등 다른 업계에서 쏟아질 면세주장을 막을 논리를 상실하게 된다.”라며, 이렇게 될 경우 정부에서 떠안아야 할 세 손실액은 약 2조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동권 보장 전제 엘피지 지원 폐지찬성
민주노동당 역시 한나라당 등에서 제시한 엘피지 면세제도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노동당 좌혜경 정책연구원은 "면세를 제도화하면 가뜩이나 왜곡된 세금구조가 더욱 악화될 것이며, 다른 예산보다 확보하기 어려운 사회복지 예산이 부족한 세수로 인해 밀려서 결과적으로 장애인 복지예산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며 "이는 감세를 주장하는 한나라당 논리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얘기다"고 주장했다.
장애계 내부에서도 형평성 문제가 논란되고 있기 때문에 엘피지 지원제도를 개선하자는 정부의 의견에는 찬성하지만, 이는'장애인 소득보장'과 '이동권 확보'를 한 다음에 논의하자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입장.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수급권자에게만 지원되는 장애수당을 일반 장애인들에게까지 확대 지급되는 '보편적 장애수당제도'로 확대해 장애로 인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들의 생활을 안정시켜주고, ▲저상버스 등을 최대한 빨리 도입해 굳이 엘피지 차량을 운행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마련한 후 엘피지 지원제도에 대해 논의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의 김강립 팀장은 "지적한 점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산이라는 게 한정되어 있고 이걸 운영하는 데도 보편적 합의가 중요하다. 현재의 엘피지 지원제도를 개선하지 않고는 '장애연금'등은 꿈도 꿀 수 없다. 저상버스 역시 한국형 저상버스 표준모델이 개발되는 내년부터 지속적으로 늘려 2013년까지는 전국 시내버스의 50%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대체수단없이 제도 폐지하면 장애인은 집에만 있으라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엘피지 지원제도 폐지 및 장애수당 확대안'을 놓고 각 당과 정부 등의 입장이 크게 대립되고 있지만, 정부의 안이 그대로 채택될 것으로 전망된다.
면세를 주장하고 있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를 제외한 보건복지부 산하 대부분의 장애인 단체들 역시 정부의 안에 암묵적 동의를 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내 다른 부처의 시선이 엘피지 지원제도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고, 눈덩이처럼 부풀어지기만 할 뿐 장애계 전체를 바라봤을 때 큰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언제 지원이 중단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엘피지 지원을 주장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 서로간의 명분싸움을 하는 사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장애인에게 떠넘겨지게 된 상황이다.
'모 아니면 도'의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 이르도록 별다른 개선의 의지가 없었던 보건복지부의 모습이나, 엘피지 지원제도에 대한 문제인식은 갖고 있었지만 '설마 줬던 것 뺏으려고'라는 생각에 안일하게 대처한 장애인 단체들의 모습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잘못된 정책수립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구제책은 전혀 없이 정책의 틀을 바꿔버려 모든 피해를 고스란히 장애계 내부에서 떠안게 만든 보건복지부의 처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서울 월계동에서 당산동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 오영철(뇌병변1급, 36)씨는 "운전면허를 땄을 때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보다 더욱 기뻤다. 도로사정상 집에서 지하철까지 가는 것조차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스스로 돈도 벌 수 있고 마음대로 세상을 누빌 수 있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라며 장애인에게 차량이 주는 특별한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오씨는 "사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250리터로는 출퇴근하기도 힘들다. 유류비의 얼마를 지원해주고는 사실 두 번째 문제"라며 "이동권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엘피지 지원을 통해 최소한의 장애인 통행권을 보장해줬다는 상징적인 조치가 이번결정으로 인해 후퇴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근거미약한 정부의 폐지주장
지난달 22일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국회 재경위에 출석한 자리에서 "엘피지 지원제도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사례가 많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히는 등 부정수급자 증가로 인한 세수손실의 증가치가 지원제도 폐지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해 장애인 단체의 한 관계자는 "부정수급의 사례가 많아 폐지를 결정했다고 하는데, 부정수급 사례에 대한 통계치를 내놔봐라. 설사 그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강력한 규제나 제도적인 보완책 마련을 위해 단 한번이라도 노력은 해봤냐"고 꼬집었다.
관계자의 지적처럼 부정수급에 대한 논란은 이미 250리터로 축소할 때부터 제기됐다.
하지만 문제제기만 있었지 부정사용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식으로 단속을 했는지 등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노력한 흔적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결국 '누구는 그렇게 부정사용 했다더라'라는 말만 믿고 정책의 틀을 바꿔버린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엘피지 지원제도만 믿고 장애인들이 너도나도 차를 구입하는 통에 '에너지 및 자원산업특별회계기금'이 고갈 돼 적자분이 쌓이고 있으며, 폭발적인 증가세에 대한 예측도, 자원마련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엘피지지원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논리로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역시 큰 오류가 있다.
우선 정부에서 수요에 대한 정확한 예측조차 없이 제도를 만들다보니 모자라게 된 예산을 장애인들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 차가 없으면 세상 밖으로 나와 생활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빚을 져가면서 마련한 거지, 대체수단이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장애인들의 주장이다.
또 불가피하게 폐지를 하기로 결정 내렸다면 기존에 엘피지 차량을 운행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방식이 아닌, 최소한의 선택권을 보장해준 상황에서 중증장애인, 저소득장애인을 위한 지원제도가 추진됐어야 하는 것은 상식 아닐까.
'말 따로 실행 따로' 이상한 정부정책
엘피지 지원정책이 있었기에 차량운행이 가능했던 중증장애인들의 3년 후 모습은 어떻게 될까?
늘어나는 가계 빚을 감당하면서라도 운행을 계속하거나, 차량운행을 포기한 채 다른 이동수단을 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계획대로 잘 추진된다 하더라도 2008년에나 도입이 시작될 저상버스는 2013년에야 절반수준에 이를 테니 그 기간 동안 지하철 등 다른 이동수단을 이용할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은 추가비용이 감수하고서라도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거나 활동을 멈춘 채 이동수단이 생길 때까지 집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다.
이동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소득기반을 잃게 될 것이며 이런 상황에 처한 장애인들은 극복의 의지보다는 삶을 체념한 채 차상위나 수급권자로 편입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는 장애인들을 위한 취업교육 확대, 일자리 마련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공언한 정부의 정책논리와도 크게 모순되는 얘기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는 엘피지 차를 구입하라고 대출 해주고 있고, 보건복지부에서는 차 값을 갚을 의지마저 꺾어버리고 있는 지금의 현실, 뭐가 안 맞아도 크게 안 맞는다.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나 있으라는 게 숨은 뜻인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의 김동범 사무총장은 "장애인들에게 이동수당을 지급한다면 지금과 같은 큰 혼란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총장은 "어떤 이유로든지 차량을 구입한 장애인들의 것을 하루아침에 빼앗는 것은 취지가 아무리 좋다하더라도 지지받기 힘든 일이다. 이들에게 이동수당을 지급한다면 설사 엘피지 지원정책이 완전폐지 되더라도 이 돈으로 차량을 운행하든지 다른 이동수단을 강구하던 선택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을 제외한 중증장애인중 엘피지를 지원받지 않는 30만 명에게는 월 3만 원가량의 이동수당을 지급하는 것. 그렇게 되면 정부에서 주장하는 형평성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으며 장애인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3년 후 엘피지 지원제도가 완전히 폐지된다 하더라도 이동수당을 통해 그동안 지원받던 지원금을 대체하던지, 다른 이동수단을 강구할 수 있게 돼 어느 정도의 사회적 안전망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제도가 아닌 시행과정
보건복지부는 중증장애인/저소득장애인/장애아동을 우선하는 정책을, 현물지원을 지양하고 현금으로 지급해 실질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형태로 장애인복지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돈 먹는 하마'인 엘피지 지원정책을 폐지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중증․저소득장애인을 위해 장애수당을 대폭 확대한 것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업무를 추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점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법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전면개편을 하려한 점 ▲최소한의 사회적 안정망조차 갖춰놓지 않은 상황에서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식으로 장애인을 내던진 점 등은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시민의 한사람으로 대접받으며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기위해 장애인들이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험난하게만 보인다. 구호만 요란한 '장애인복지정책', 언제쯤이면 제 모습을 찾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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