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안이 다 해먹으면서 성범죄 은폐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
본문
지난해 6월 교직원 2명이 수년간 청각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성폭행해 온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줬던 광주인화학교. 당시 해당 교직원들이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사건이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올해 3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례적으로 복지시설에 대한 직권조사에 나서면서 새로 드러난 피해자만 10여명에 이르고,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인권위원회가 검찰에 고발조치한 가해자도 6명이나 됐던 것.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학교에서 교직원이 저지른 이러한 성범죄가 최근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수년 전부터 지속돼 왔다는 점이다.
지난 8월 22일 국가인권위원회 발표로 또다시 세상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광주인화학교 성범죄 사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함께걸음>이 취재했다.
▲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 제공
남자교직원 절반이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돼 광주인화학교의 성범죄 사실이 처음 밖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해 6월. 아이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생활재활교사(35)와 행정실장(59, 전 이사장의 차남) 등 교직원 2명이 학교 안에서 한 여학생을 지속적으로 성폭행, 성추행해 온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서부터다.
이 사건은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피해 학생 A양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상습적인 성폭행과 성추행에 시달려왔다"며 같은 학교 친구의 부모와 광주여성장애인연대(이하 광주여장연) 성폭력상담소 등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외부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것은 학교에서 일어난 성범죄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이하 대책위)를 구성행 조사를 시작하자 처음에 한두 명으로 알았던 피해자가 고구마 줄기 캐듯 계속 드러났고, 이 피해자들에 의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교장, 교사에서 행정실 직원 등 10여명으로 전체 남자 교직원의 절반에 이를 만큼 광범위하게 벌어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피해는 교내 초,중,고등학생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 드러난 피해자 중에는 겨우 9살 밖에 되지 않은 초등학생까지 있었다.
피해학생과 이를 목격한 학생들의 진술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이들 피해자들을 할 말이 있다거나 과자를 준다는 식으로 꼬여내 자신의 집무실이나 화장실 등으로 데리고 가 성폭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폭행은 다른 학생들에게 쉽게 목격될 만큼 공공연히 이뤄졌다는 게 학생들 증언이다.
피해는 주로 본인이 저항할 능력이 없거나 문제가 생겨도 부모가 보호해 줄 수 없는 학생들에게 집중됐다. 인화학교 학부모회 조규남 회장은 “피해 학생 A양의 경우엔 부모가 모두 정신지체인"이라며 ”가해자들이 고아나 다름없는 애들이나 부모가 지켜줄 능력이 없는 애들만 골라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고 분개했다.
인화학교, 성범죄 은폐에만 급급
그러나 학교와 재단은 학내 성범죄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이를 은폐하고 축소하는 데만 급급했던 것으로 조사과정에서 드러났다. 대책위 한 관계자는 “이미 지난 92년에도 교사에 의한 성추행 사건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피해 학생이 선배들과 함께 이 사실을 교장에게 알리고 가해 교사를 파면할 것을 요구했으나 교장이 '한번만 용서해주자'고 하면서 덮어버렸다"며 ”이러한 학교측의 태도 때문에 피해가 더욱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 이후에도 학교측의 성범죄 은폐는 계속됐다. 지난 2000년 수련회에 갔다가 성폭행을 당한 B양 역시 이를 목격한 학생들이 가해자가 분명히 행정실 직원 Z라고 교직원들에게 전달했으나 학교측은 이를 묵살했다.
결국 이 사건 역시 경찰에 알리지도 않은 채 학교측에 의해 유야무야돼 버렸다. 심지어 이번에 사건을 외부로 알리는 단초가 됐던 A양의 경우엔 2003년 성폭력 피해로 산부인과까지 갔으나 학교측은 '이 상처가 성폭력에 의한 상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진단서만 끊은 채 사건을 축소했다는 사실도 조사과정에서 드러났다.
이번에 외부로 학내 성범죄 사건이 알려질 때만 해도 학교측은 A양이 성폭력상담소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피해 학생을 불러 성폭행을 당한 일이 없다는 내용의 진술을 하도록 하고 이를 비디오로 촬영했다고 한다.
그리고 광주여장연의 고소로 경찰이 가해자 조사에 들어가자 이를 증거자료로 제출했다고. 가해자가 자신의 집무실에서 피해 학생을 성폭행하는 장면을 창문을 통해 목격한 4명의 학생이 진술에 나서지 않았다면 또다시 학교측에 의해 은폐될 수 있었던 것이다.
광주여성장애인연대 성폭력상담소 오명란 소장은 “피해 학생들이 수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웠던 데다 대부분 같은 재단 내 생활시설에 거주하기 때문에 외부로 나와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교사, 교장, 생활시설 원장까지 이러한 피해사실을 말하더라도 모두 '한번만 봐주자'는 식으로 문제를 덮는데 급급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결국 피해를 당하고도 도움을 요청할 길이 없었다."며 참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게다가 그동안 학교는 보건교사가 생물학적 성에 대해 교육한 것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성교육조차 실시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혹시라도 학내의 이러한 상황이 외부로 알려질까 두려웠는지 광주여장연이 2003년,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무료로 성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학교에 제안했으나 이조차도 거절했다고.
결국 학교가 이렇게 성범죄를 은폐하는 데만 급급해 하는 동안 12살 때부터 가해자들로부터 집중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온 A양만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야했다. 현재 성범죄로 구속된 2명을 제외하면 성범죄 가해 혐의를 받고 있는 다른 교직원들은 여전히 학교에 남아 다른 피해 학생들과 함께 있는 심각한 상황.
이에 인화학교 학생들은 지난 6월 23일부터 '문제교사 전원 퇴출'을 주장하며 수업을 거부해왔고, 대책위는 이보다 앞선 5월16일부터 광주 광산구청 앞에서 재단의 임원 해임을 촉구하며 천막농성을 펼치고 있다.
▲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 제공
친인척이 재단을 장악해 성범죄 완벽히 은폐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반 학교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런 일이 어떻게 인화학교에서는 수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일까?
학교에서 일어난 성범죄가 밖으로 알려지지 않고 지속된 데는 재단의 문제가 숨어 있다.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는 물론 다른 시설들까지도 모두 친인척이 장악하고 있었던 것.
문제가 처음 드러난 지난해 6월을 기점으로 보면, 학교는 친인척이 완전히 장악해 이사장의 장남이 학교장을, 차남이 행정실장을, 이사장 누나의 손녀가 학생부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재단이 운영하던 생활시설도 이사장의 처남이, 근로시설도 이사장의 동서가 맡아 운영해오고 있다.
이렇게 돼 있었기 때문에 재단 내에서 발생한 성범죄가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축소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성폭력 가해자로 이사장의 차남이 연루된 상황이다 보니 학내 성폭행 사실이 시민단체에 의해 밖으로 알려지고 나서도 학교측은 문제를 덮고 쉬쉬하며 지나가려 했고, 다른 교사들에게도 함구할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실장이었던 이사장의 차남은 지난해 11월 성폭행 혐의로 구속이 됐고, 이 사건으로 교장이었던 장남 역시 사퇴하게 됐다. 그러나 이사장 일가가 재단을 장악하는 상황은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이사장의 장남과 차남이 모두 물러난 상황에서 이사장이 지난 2006년 3월 세상을 뜨자 이사장직은 사유재산을 인계하듯 사위에게 넘어갔다. 이 때문에 이사회가 여전히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게 대책위 주장이다.
이번 사건을 6개월에 걸쳐 조사한 인권위 역시 지난 8월 22일 이 문제를 지적하며 성범죄를 방치한 법인의 책임을 물어 임원진을 해임할 것을 광주광역시에 권고했다.
사건을 담당한 인권위원회 백선익 조사관은 “통상적인 법인 이사회라면 학내 성범죄 사건이 공론화 된 이후 이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고 성범죄 예방책 및 피해아동의 보호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그런데 성범죄 사건이 불거진 2005년 7월부터 2006년 6월까지 모두 9차례 이사회를 했지만, 단 한번도 이 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었다."며 ”인화학교에서 발생한 성범죄는 개인의 문제 아니라 구조적이고 파행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비록 법인 임원 개개인의 구체적인 범죄행위가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포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한해 국고만 38억, 그러나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인화학교를 운영하는 우석 재단이 사회복지법인이라는 점도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애초부터 사회복지법인을 관리감독할 책임이 보건복지부에서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넘어가면서 시청과 구청에 분산돼 제대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던 데다, 본래 학교 운영상의 문제는 교육청이 관리감독하게 돼 있지만 인화학교의 경우엔 학교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청의 지도감독이 상당부분 제한돼 있었던 것.
대책위 윤민자 집행위원장은 “처음엔 참교육학부모회 활동을 하면서 교육운동을 해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해보자고 나섰는데, 실제 해보니 사립학교법인보다 사회복지법인의 문제 해결이 더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사립학교법인이라면 이사회를 교육청에서 파견할 수도 있는 문제였는데, 광주인화학교는 복지법인이기 때문에 이 권한을 시청과 구청이 나눠 가진 상태에서 서로 떠넘기기만 할 뿐 아무도 책임지려하지 않아 문제해결을 어렵게 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한해 국고만 38억을 지원받는 재단에 대해 학교운영에 대한 것은 교육청, 인허가는 시청, 임원진에 관한 사항은 구청에 지도감독권이 모두 분산돼 지도감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복지법인의 경우엔 이러한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컸고 이를 견제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학교가 기간제 교사들에게 정교사채용을 미끼로 돈을 받았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데도 이러한 사실이 제대로 조사되거나 관리감독되지 않았다고. 현재 교감에게 돈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 기간제 교사들은 이 돈에 대해 함구하거나 빌려준 것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라 추가적인 조사가 벌어지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현재로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 밖의 운영상 비리 역시 마찬가지. 비리가 발생했더라도 알 길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제도상의 문제 때문에 관리감독권이 있는 관청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도 문제 해결이 어려운데 광주시청과 광산구청은 피해자 보호나 가해자 처벌에 나서기는커녕 “문제 교사 해임과 재발방지 대책은 우리 업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급기야 인권위 권고가 있던 날 광주광역시 사회복지과 장애인담당 계장은 취재를 갔던 광주방송 기자에게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에 대해 “하찮은 사건", "자기들끼리 좋아서 한 일"이라고 말했다가 이것이 그대로 보도돼 한바탕 소란까지 빚어졌다. 이는 담당 공무원의 인식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낸 소동이 아닐 수 없다.
시설비리 막으려면 지역사회에 시설을 분산시켜야
그리고 이러한 성범죄가 수년간 은폐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원인은 하나의 재단이 운영하는 시설들이 한 지역에 밀집해 있었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생활시설인 인화원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광주인화학교에서 다니고, 졸업 후 재단 내 근로시설에 들어가면 평생을 우석 재단이 운영하는 시설 내에서 생활하게 되는 구조다.
대책위 윤민자 집행위원장은 “학교가 지역사회와 다소 떨어져 있는데다가 한 재단 내에 생활시설과 학교가 함께 있었고 많은 학생이 기숙사에 머무르는 등 폐쇄적으로 운영돼 피해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활시설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학교가 분리돼 다른 재단에 의해 운영된다면 학교측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반대로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생활시설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청각장애우의 경우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기 때문에 적어도 생활시설과 학교는 분리해 이러한 문제들이 밖으로 드러날 수 있는 구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신용호 소장 역시 “한 재단 내에 모든 시설이 들어가 있는 구조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한국 사회복지시설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면서 ”별다른 비판 없이 관행처럼 지속돼 오던 이런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회복지시설이 하나의 왕국처럼 운영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복지시설이 한 재단에 의해 한 곳에 집중적으로 지어지면 그곳에서 생활하는 장애우들이 지역사회와 분리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역사회 곳곳에 시설을 분산시켜 장애우 역시 지역사회에 섞여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지난 8월 29일 드디어 광주 광산구청은 사회복지법인 우석 재단의 이사진 해임을 명령했다. 이로써 이사진 7명 가운데 이사 4명과 감사 2명이 해임됐다. 다만 현재 이사장(전 이사장의 사위)에 대해서는 성폭력 사건 당시 이사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이번 해임에서 제외됐다. 광주시 교육청도 같은 날 인권위의 권고 결정문을 통보받고 인권위로부터 성폭력 혐의가 있는 것으로 조사된 교직원 4명을 직위 해제하도록 법인 이사회에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아직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대책위는 “이제 겨우 절반을 이뤘다"고 말한다. 공익적이고 전문성 있는 이사진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석 재단은 시설 운영비를 전액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공익법인이다. 이러한 사회복지법인은 결코 사유재산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수년 동안 자행된 성범죄가 은폐될 수 있었던 것은 재단 이사진이 친인척에 의해 장악된 채 형식적으로 운영됐기 때문이다.
만약 이사회만 제대로 운영이 됐더라면, 그리고 한 재단 내에 이렇게 시설이 밀집돼 있지 않았더라면, 아니 최소한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관청에서 제대로 관리감독만 이루어졌더라도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성범죄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상처를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관련 법안도 손을 봐야겠지만, 그동안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사태를 방관해온 공무원에게도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성범죄에 노출돼 피해를 입은 아이들에 대한 치유는 물론 이러한 일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설의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도 시급히 필요한 시점이다.
작성자조은영 기자 blank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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