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씨, 나 사과 배 바나나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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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러저러한 연유로 A 정신요양시설에 가게 되었다.
거기서 만난 최 씨는 얼마나 우리를 반가워했는지 모른다.
밝은 성격이 그렇기도 하거니와, 오랜 시설생활이 그녀의 외로움을 키웠으리라.
내 옆에서 정말 딱 붙어서 ‘반갑고 너무 좋다’는 말만 반복하는 그녀가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은 무연고라서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편지 쓸 사람도 없다’는 말에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사십년의 시설생활동안 나처럼 잠시 들러 떠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을 것임에도 잠시 찾아온 나에게 정을 주고 싶어 했다. 면회와 달라, 편지 써 달라, 전화해 달라, 꼭 다시 와야 한다...
어찌 보면 그렇게 부담스러운 부탁이 아님에도, 어느 방문자나 최 씨의 그런 말들에 부담을 느낄 터였다.
그녀의 정신장애와 아무것도 없이 사십 평생을 시설에 보낸 그녀의 존재 자체가 왠지 모를 ‘부담’으로 다가왔을 테니까 말이다.
그녀에게 전화나 편지를 보내는 것이 부질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끔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간단한 통화, 그리고 진짜 안부 편지 정도.
그러던 중 A 시설에 근무한다는 복지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냥 최 씨가 걱정 되서 했다면서 최 씨는 과대피해망상이 심해서 A시설을 지옥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건 정말 장애 때문이며 허위사실과 과장이 심하다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심히 불쾌함을 느끼며 통화를 끊으면서도 나는 그런 복지사에게 내색 할 수가 없었다. 왠지 내가 복지사의 심기를 건드리면 그 불똥이 최 씨에게 넘어갈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 최 씨가 시설에서 정신병원으로 옮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최 씨가 나한테 보낸 편지에 A시설에 대한 욕을 썼고, 편지는 두 번이나 찢겼고 이를 항의했기 때문이란다.
물론 그 친절한 복지사는 최 씨가 다른 사람들과 싸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이 어쨌거나 그녀는 정신장애요, 무연고이기 때문에 그녀가 시설에 그대로 있던,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가게 되던, 혹은 아파서 죽든지, 맞든지 누구에게도 알릴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법적으로야 시 군 구청장이 보호자로 되어 있지만, 시 군 구청장은 그녀를 단 한 번도 만나봤을 리 만무하다.
그녀가 A시설에서 살고 싶던, 다른 시설로 가고 싶던지 그녀는 스스로 원하는 것을 단 한 번도 선택한 적이 없을 것이며, 아마 지금의 정책 그대로라면 평생을 가도 선택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고아원에서 20년, 정신요양원에서 15년을 살고 있는 그녀는 A시설의 방침에 따라 여성숙소 건물 밖조차 나간 일이 없다.
물론 현재까지 미혼이며, 가족이 와야 외출할 수 있다는 시설 내 규칙 때문에 면회건 외출이건 그녀에겐 기회가 없었다. 그러니 그런 그녀가 잠시 들른 사람들마다 붙잡고 면회와 달라 조르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을지 모른다.
그녀의 정신장애가 언제 어떻게 발병했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평생 시설에서 살았다. 그리고 남은 인생도 시설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자명한 현실이 그녀 앞에 있다.
그녀는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혹은 시설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 자신에게 국가가 지원하는 내용이 있는지,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시설에서는 아무도 그 이야길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 자유, 사랑, 평등, 평화, 생명...
이런 단어들은 그녀에겐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이다.
그녀는 지난 설날, 외출을 나가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전화로 나에게 짧은 메시지를 전했다.
전하는 사람이 읽어준 쪽지내용은 간단했다.
“정하씨, 나 사과, 배, 바나나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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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문수님의 댓글
박문수 작성일^^
방망이님의 댓글
방망이 작성일
눈물이 나옵니다. 어서속히 시설장애인들이 자유로운 몸이 되기를....
김정하 운동가님! 파이팅~ 힘 내시라우요~~~
까망님의 댓글
까망 작성일
지난 여름 종로구청에서 까맣게 그을렸던 얼굴이 생각납니다.
힘내시고, 좋은 글 부탁드릴께요
최종규님의 댓글
최종규 작성일똑같은 사람인데, 그곳에서 온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 이야기는 들을 길도 알 길도 없었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