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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흔들리고 휘청거려도 뿌리 채 뽑히지 않는 갈대처럼

본문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건강했고
내 척추는 다른 아기들의 모습과 같았다.

내가 막 내 몸을 뒤집고 기어다닐 무렵 내 몸에 침투한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내 온 몸의 신경을 마비시켰고 나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내 나이 열셋이 되어 재활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
나의 척추는 100도쯤 휘어졌고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의사는
“척추 수술을 견뎌내기엔 당신의 체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퇴원하세요.”라고 말했다.

내 나이 스물일곱이 되기까지
늦게 시작한 공부를 짧게 마치고
직장을 다니며 사회인이 되는 동안
내 척추는 120도로 휘어졌고
“의사로서 평균수명의 유지를 위해 수술을 권해야하는 입장이지만
선택은 본인에게 맡기겠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수술 대신 ‘독립’을 선택했다.

내 나이 서른둘이 될 때까지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며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꿈을 발견하는 동안
내 척추는 완벽한 S라인이 되었고
세대가 바뀐 우리나라 최고의 권위자는 진지하고, 무표정하게
“너의 척추와 골반 뼈 마디마디를 잘라서 로보캅처럼 재조립을 해야 해.
너는 그렇게 어린 아기처럼 다시 태어나게 될 거야, 물론 선택은 네가 해”라고 말했다.
나는 또 다시 ‘꿈’을 선택했다.

내 나이 서른여섯.
나의 척추가 몇 도쯤 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의 어깨뼈와 골반이 맞닿을 정도라는 걸 안다.
의사의 말처럼 앞으로 난 진통제를 얻기 위해 병원을 찾아가게 될지도 모르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질 수도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살아온 삶의 모습은
내 주위의 지인들을 볼 때마다, 내 방을 볼 때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객관적으로 나를 비춘다.

이 세상을 즐기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동안
또 다른 내 삶의 흔적은 온몸에 고스란히 기록되고 있다.
휘어지고 굽어지며 나와 함께 해 온 내 척추와 팔과
다리에...

흔들리고 휘청거려도 뿌리 채 뽑히지 않는 갈대처럼
앙상한 내 몸은 지금껏 나를 지켜주었다.
결코 아름답지는 않지만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내 몸에
아름다운 꽃과 나비를 선물해 주신 분들께 감사한다.
작성자김지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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