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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제정 앞둔 성년후견제도, 무엇이 쟁점인가

학대․착취방지 VS 자기결정권 침해 ,논란 뜨거운 성년후견제

본문

정신지체 2급 장애우인 김모(42)씨는 교통사고로 인해 남편과 사별 후 험한 일을 겪었다.
이유는 돈 때문. 남편 사망 시 지급한 보상금 1억 원이 발단이 됐다. 김 씨의 시누이는 김 씨 앞으로 나온 1억 원을 갈취해 아파트를 구입한 것은 물론 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비와 장애수당까지 가로챘다. 이뿐만 아니라 김 씨에게 끊임없이 폭력을 행사했으며 김 씨 자녀를 고아원에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보상금도 되찾고, 자식들을 다시 데려올 수 있을 여건도 마련했지만, 김 씨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이다. 일할 능력도 있고, 의사소통하는데 큰 지장이 없기에 자립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돈에 대한 개념이 약해서 금전관리를 혼자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 씨의 미래에 도움이 될만한 실질적인 방법은 없을까?

성년후견제 시행,
정신지체인 자립생활 기여 주장
정신지체장애우들이 지역사회에서 학대받으며 생활하는 사례가 한 방송사를 통해 방영되자 "성년후견제"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허나 현재의 법체계에도 성년을 위한 후견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민법상 ▲한정치산제(심신(心神)이 박약하거나, 재산의 낭비로 자기나 가족의 생활을 궁박하게 할 염려가 있을 때)와 ▲금치산제도(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에 대한 변별력이 없고, 의사를 전혀 결정하지 못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선고결과가 호적에 남고 신청절차가 복잡해 실질적인 후견인 역할을 해야 할 가족들은 이를 꺼리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선고를 받으면 당사자의 장애 정도와 상관없이 모든 법률 행위를 금지하는 등 자신의 의지로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권리까지 박탈한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시된 게 바로 "성년후견제도"다. 즉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박탈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애우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일들만 후견인에게 도움 받는 제도이다.
성년후견제를 시행하면 부모사후 시 독립적으로 자립생활을 하기 힘든 정신지체, 정신질환 등이 있는 장애우와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늘어나는 치매노인 등이 후견인을 통해 재산관리, 사회복지 서비스 수혜, 기타 사회생활에 필요한 긴요한 사무를 처리할 수 있어 자립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제도 시행에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곳은 정신지체장애우를 둔 부모들이다.
한국장애인부모회 권유상 사무처장은 "아이보다 하루 늦게 죽는 게 소원이라는 장애아를 둔 부모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는 내가 죽고 나면 내 자식이 이전과 같은 삶을 영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현실인식 때문이다. 그나마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장애가 있는 자식 몫으로 재산을 남겨놔도 형제에게조차 빼앗기고 시설로 보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상황에서 이런 처지에 있는 장애우를 위한 국가적인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 논란,
그러나 현실에서는?
하지만 이 제도에는 장애우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요소가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국장애인연맹(DPI) 김대성 사무처장은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영역의 장애인들은 자기 스스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성년후견제도가 필요하다"가 아니라 "자신의 의사표시를 정확히 하지 못하는 장애인에게 어떻게 하면 적절한 지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작은 범위로 한정해 시행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장애인의 삶 전반에 걸쳐 관여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이 한 인간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년후견제를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처장은 "국제 분위기도 "대리"보다 "지원"의 분위기로 쏠리고 있다. 지난 8월에 열린 제8차 유엔 장애인권리조약 특별위원회에서도 대리인과 후견인 제도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장애인의 의사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서 삭제하기로 하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쪽으로 결정했다"며 "국내에서도 이 조약의 비준동의가 거의 확실한 상황인데 내용과 상충되는 안을 담은 성년후견제를 추진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희선 인권․정책 팀장은 "성년후견제도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현장에서 정신지체장애우와 관련한 각종 인권침해사례를 겪으면서다. 이들이 학대와 착취의 현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지원은 했지만 현행 법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거기 까지다. 임금이나 수급비․장애수당 등을 본인 스스로 관리하기 어려워 또 다른 학대나 착취를 받을 확률이 큰데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을 겪을 때 마다 성년후견제도와 같은 법률적 지원 서비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라며 "성년후견제는 조금만 지원해주면 시설 등에 입소하지 않고도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장애우를 위한 제도다. 자기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애우는 성년후견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이 수많은 정신지체장애우가 학대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는 게 현실인데, "대리"냐 "지원"이냐는 단어에만 얽매여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성년후견제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유주헌 행정사무관은 "이 제도를 시행할 경우 최근 드러나는 장애우 인권침해 사례가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하지만 시행을 위한 준비가 많이 부족하다. 유명무실한 법안이 되지 않도록 전문가들과 시스템 마련을 위해 논의 중이다"고 밝혔다.

외국 문제점 보완, 한국실정 맞는 제도마련
급선무
일본, 독일, 미국, 프랑스 등에서는 이미 성년후견제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일본, 독일의 경우 지난 2000년 이후 금치산․한정치산제도를 전면 개정한 후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했으나 서비스 운영방식은 큰 차이가 있다.
일본과 프랑스는 장애정도에 따라 "후견", "보좌", "보조"등으로 구분해 지원하는 다원론을 채택하고 있으며 독일은 피후견인의 개별사정을 고려해 법원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일원론을 채택하고 있다.
일본식의 경우 법원의 판단부담과 성년후견제를 전담할 인프라 구축에 대한 부담이 적기 때문에 시행이 쉬운 반면 장애우의 개별적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칫 장애 당사자의 결정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독일식의 경우 각각 자신의 상황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를 담당해야 할 법원의 부담이 커진다. 따라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현 상황에서는 시행하기 어렵고 국가 재정지원도 확보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8월 28일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의 주도로 "성년후견에 대한 법률안"에 대한 특별법 발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이은영 의원의 김형준 비서관은 "민법이냐 특별법이냐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법 제정이 시급한 상황에서 부수적으로 개정해야 할 법률이 많고, 법적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민법보다 특별법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또 후견을 전담할 사회복지사의 수도 부족하고, 국가의 재정지원도 어려운 현 시점에서 독일식보다는 일본식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이를 기반으로 한 법안을 마련했다"고 법안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성년후견제추진연대(이하 추진연대) 측은 독일 안을 핵심으로 한 "성년후견법안"을 민법으로 마련해 법안발의를 앞두고 있다.
추진연대 이영규 정책위원장은 "이은영 의원이 발의한 제도는 문제가 드러난 한정치산․금치산제를 그대로 둔 채 성년후견제도를 입법 추진했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형제 등이 장애우에게 상속받은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금치산 선고를 받게 할 경우 성년후견의 법률관계는 종료돼 성년후견제도가 유명무실하게 될 여지가 있다는 것. 그러나 이은영 의원이 제시한 특별법이 ▲한정치산․금치산제 폐지 후 성년후견제 제정 ▲장애우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일본식 안을 보완하는 등 수정한다면 굳이 민법 발의만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법안 통과돼도 시행까지 갈길멀어
법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실제 장애우들이 성년후견제 서비스를 받는데 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시급한 것은 제도를 시행할 경우 수혜를 누릴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다. 정확한 실태조사가 뒷받침 되어야만 시스템 정비, 예산편성 등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정치만 존재할 뿐 정확한 데이터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또 제도를 시행중인 외국 사례를 면밀히 분석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도록 보완해야 한다.
한국장애인연맹 김대성 사무처장은 "성년후견제를 시행하는 다른 나라의 경우 제도를 악용한 새로운 범죄형태가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처음 후견인이었을 때는 좋았지만, 변심하는 후견인들을 막을 방법이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으며, 후견인끼리 짜고 장애인의 재산을 갈취하는 사례도 많다고 들었다"면서 제도 도입 시 발생하게 될 문제점을 지적했다.
법안 통과 후 어떻게 시행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도 시급하다. 추진연대나 보건복지부는 자기결정권 침해 요소가 있는 일본식보다는 독일식을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식을 적용할 경우 ▲성년후견제를 담당할 가정법원의 업무량이 가중되고 ▲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프로그램 등도 필요하며 ▲정부의 재정도 지원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도를 뒷받침할만한 그 어떤 시스템도 준비돼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년후견제를 전담할 공단설립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성년후견제를 설명할 때 "법률행위 등의 큰 결정을 위한 필요치가 100이라고 한다면 70밖에 없는 이에게 후견인을 지원, 모자란 30을 채워주는 제도"라고 말한다.
"30을 어떻게 채울 것이냐"에 대한 고민수준에 따라 착취와 학대에 노출돼 있는 장애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가 될 수도, 또 하나의 굴레로 다가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한다.


글 사진 전진호 기자

작성자전진호 기자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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