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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철거 되면 갈 곳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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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한 장애우가 철거 위기에 처해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불어닥친 IMF 한파로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고 장애우들은 주장하지만 토사공사측은 여전히 강제 철거를 감행할 방침이며, 수원시는 소관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애우들의 주장을 외면하고 있다. 밑바닥 장애우들의 절박함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수원 신아자립회 철거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 보았다.


 택지 개발로 철거 위기 처해

  수원시내 시장 등지에서 리어카를 밀며 수세미와 고무장갑과 같은 생필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행상 장애우들이 지금의 수원시장안구 정자 1동 677번지에 신아자립회 공동체를 세운 것은 지난 89년이었다.

  선경인더스트리 공장 건물을 지을 때 인부들 숙소가 있던 땅을 임대해 장애우들은 가건물을 짓고 신아자립회라는 간판을 내건 다음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그 때는 장안지구 택지개발이 있기 전이어서 수원시에서도 외곽인 정자동은 허허벌판이었다. 장애우 공동체가 들어섰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어서 장애우들은 마음 편히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초기에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을 한 장애우는 20여명이었다. 장애우들 모두 1,2급의 중증장애우들이자 생활보호대상자였다. 이들 20명은 한동안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다가 겨울 추위가 닥치면서 견디지 못해,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한두 명씩 영구임대아파트 입주를 신청해 빠져 나갔다. 그러면서 공동체에 주소를 두고 사는 장애우는 세 명밖에 남지 않았다.

  장애우들은 주소를 옮겼지만 그렇다고 공동체가 해체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행상 때 필요한 상품들은 모두 공동체 창고에 보관해 두고 있었기 때문에 장애우들은 수시로 공동체를 들락날락거렸다. 말하자면 신아자립회는 그 동안 수원시내 행상 장애우들의 지원센터 역할을 수행한 셈이었다.

  그런 신아자립회에 정자지구 택지개발을 이유를 토지공사로부터 철거 계고장이 날아오기 시작한 것은 올 초부터였다. 6월 중순 현재 세 번이나 날아온 계고장은 정자지구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며 정자지구 입구 도로 부지에 편입돼 있는 공동체를 자진 철거할 것을 요구해 왔다.

  알고보니 땅 주인은 이미 토지수용법에 의한 법에 따라 보상을 받은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자진철거를 요구하며 토지공사가 내건 보상책이 장애우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토지공사에서는 사업기간인 93년 10월 15일부터 96년 11월 22일 기간 중에 공동체에 주민등록이 돼 있었던 세 사람에게만 보상이 가능하다며 세 사람에게 주거대책비와 이사비를 합쳐서 1천94만원을 지급하겠다가 밝혔다. 나머지 장애우들에게는 아무런 대책을 세워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동체 식구들이 철거에 반발하자 토시공사측은 현재 법원에 4백75만원의 공탁금을 걸어둔 상태다.


 수원시가 대책 마련해야

  수원시내 행상 장애우들이 공동체 철거에 반발하는 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토지공사의 보상금 만으로는 다른 곳에 장소를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장애우들은 실제 신아자립회 식구가 정회원만 26명, 준회원 합쳐서 50여명인데도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토지공사측 입장에 분개하고 있다.

  어쨌든 철거가 기정사실화 되자 장애우들은 관계기관에 ‘여태까지는 우리 스스로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쫓겨나면 다른데서 세를 얻기는 사실상 힘듭니다. 그러니 시유지가 됐든 국유지가 됐든 우리가 맘 편히 장사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만들 장소를 싸게 임대해 주심시오’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런 장애우들의 호소에 토지공사는 답변에서 ‘우리 회사 방침은 땅을 임대해 줄 수는 없으며, 대신 분양한 60평 짜리 땅이 있는데 가격은 1억 3천만원이다. 이 금액을 2년 안에 갚으면 된다’며 사실상 장애우들의 호소를 외면했다. 당장 생계를 이어가기도 빠듯한 공동체 식구들 입장에서는 1억원이 넘는 돈을 마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장애우 복지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수원시에서는 ‘보상문제는 수원시에서 관여할 사항이 아니며 토지공사와 해결해야할 문제’라는 냉정한 공문을 보내왔다.

  즉 토지공사는 장애우들의 요구에 전례가 없다며 외면하고, 수원시에서는 토지공사와 협의하라며 서로 미루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토지공사가 내놓은 마지막 타협안은 ‘장애우들이 공동체 자진 철거시 기존 보상금액에 조금 더 생각해서 금액을 얹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장애우들이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7월 초에 용역업체에 맡겨 강제 철거에 나서겠다고 토지공사는 장애우들을 윽박지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신아자립회 식구들이 다른 땅을 임대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재 공동체가 들어서 있는 땅이 식구들 땅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요구로 미쳐질 수도 있겠다. 이 점 때문에 신아자립회 소속 장애우들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그렇지만 장애우들 입장에서는 쫓겨나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절대 자진 철거할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자진 철거할 수 없는 이유를 신아자립회 회장 이재근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살면서 구걸같은 거는 절대 하지 않았어요. 힘들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살려고 했죠. 잘 살아보겠다고 식구들끼리 기금을 모아서 공장 직거래로 장사할 상품을 사놨어요. 그동안 식구들에게 이런 상품을 싸게 공급했는데 여기서 쫓겨나면 상품을 쌓아 놓을 장소가 없어요. 그 뿐만 아니라 리어카를 둘 곳도 없으니 사실상 행상일을 할 수 없는 거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행상일 밖에 없는데 그 일을 못하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거죠.”

  이어진 신아자립회 공동체 식구들의 말에 따르면 IMF 한파로 행상 수입도 급격하게 줄었다고 한다. 하루 3~4만원 어치를 팔아서 기사 월급 주고, 집세 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구임대 아파트에 사는 회원들이 다시 공동체로 들어오려고 하는데 공동체 철거가 이뤄지면 이젠 갈 곳이 없어 거리를 해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아자립회 공동체가 들어서 있는 부지는 도로 부지이기 때문에 철거는 불가피해 보인다. 7월 중에 철거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면 이들 장애우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하루 속히 행정당국인 수원시가 나서서 어떤 식으로든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할 것이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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