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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뽀] “내년에는 어떻게 살아갈 지 더 두려워요”

IMF 이후 6개월을 힘겹게 넘기고 있는 영구임대아파트의 장애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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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들이 이 IMF시대를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는 쉽게 짐작이 되는 사실이다. 직장에서 가장 먼저 내몰리며 노점이나 그나마의 일용직에서 한 뼘의 자리도 얻지 못한 채 점점 삶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말이다. 그 중에서 영구임대아파트는 이들 장애우들의 삶의 근황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곳일 것이다. 가족들의 수입에 기대어 살 수 밖에 없었던 장애우들은 다른 가족들이 일용직등의 일자리에서 내몰리자 함께 허물어지고 있다. 그 현장을 다녀왔다.


 “다른 식구들도 다 놀아요”

  지난 6월 14일. 중계 3단지 내에 위치한 평화종합사회복지관 앞에는 12시부터 장애우들이 한 명씩 모여들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들이 일요일에도 이 복지관을 찾은 이유는 이 날이 매월 한 번씩 복지관에 마련되는 중계장애우진료소가 문을 여는 날이기 때문이다. 원래 진료소의 문을 여는 시간은 2시인데 미리 와서 기다릴만큼 이들이 진료팀을 반기는 데에는 그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다.

  “한 달에 취로 나가서 버는 돈 20만 5천원이 유일한 수입인데 그 돈으로 전기세나 수도세 같은 공과금 내고 나면 남는 돈이 5만원, 6만원이에요. 예전에는 영세민한테 직접 쌀을 줬는데 이제는 돈으로 준다고 하면서 안줘서 그 돈으로 쌀 사야죠. 나 같은 사람은 약 없어도 사 먹어야죠. 그러면 끝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무료로 약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나마 약값을 아낄 수 있죠.”

  이렇게 말하는 이순희 (58)씨는 몸을 움직이기가 굉장히 힘들어 보이는 장애우였는데, 혼자 산다고 했다. 생활보호대상자인 이 씨는 남들만큼 빨이 움직이지는 못해도 그나마 취로를 나가서 그렇게 매달의 임대료와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이 씨에 비하면 남편과 아들이 있는 정숙자 (54)씨는 상황이 더 나은 지도 모른다. 청각장애우인 남편이 막노동을 해서 잘 나갈 때는 월 백만원까지 가져다주기도 했던 시절도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도대체 남편도 일을 구할 수가 없고 아들도 성인은 됐지만 얼마 전 일하다 허리를 다쳐 다른 일은 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자신들이 오히려 아들을 벌어 먹어야 할 형편이 됐다는 것이다. “애 아빠가 마지막으로 5월에 일을 며칠 한 게 있는데 그것도 말 못하는 청각장애우라고 괄시해서인지 보수를 못받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마흔이 된 여성 뇌성마비장애우 이자영 (42)씨는 그나마 진료소를 찾은 다른 장애우들보다 나이도 젊고 장애도 가벼워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짬짬이 차례가 된 사람들을 불러내는 등 다른 사람들을 많이 챙기는 모습이었다. 그는 일반 분양 아파트에 사는 사람으로 기본적인 살림살이도 나은 형편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제대로 먹지 못해 빈혈이 날 지경”이라며 털어놓았다.

  이 씨 자신이 예전에 화장지 장사를 해서 번 돈도 있고 아버지가 조금씩 저금해 놓은 돈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아버지가 연로하신 데다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고 자신도 장사를 그만둬 다른 수입 없이 그렇게 저금해 놓은 돈을 까먹으며 살고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다른 곳에 따로 나가 살고 있는데 그 수입은 그대로 사업에 실패한 오빠 빚을 갚는데 들어간다. “그냥 저금해놓은 돈만 까먹고 있으니까 앞으로 살 길이 걱정돼서 먹는 것 하나 살 때도 벌벌 떨게 돼요. 워낙 뇌성마지 장애 때문에 혈액순환이 안됐는데 그래서 빈혈도 더 심해졌어요.”

  생활보호대상자든 아니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요즘 근황을 묻는 질문에 오늘 내일을 힘겹게 보내는 살림살이를 한숨과 함께 털어놓았다. 다른 이웃들의 상황을 묻자 그들은 먹고 살기 급급해 이웃 사람들이 사실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전혀 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우리들은 옆 집 사는 사람들이 사실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요. 몸이 불편해서 움직이기도 힘들지만 이웃집에 가봤자 기분 좋게 얘기할 거리도 없고 피차 대접하기도 곤란하니까 서로 방문하는 것도 꺼리죠. 여기 진료 받으러 와서나 그냥 차례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수준이에요.”

  이런 상황에서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딱하다고 첫손 꼽은 사람이 바로 정상용(48) 씨였다. 75년 사고로 척수마비장애를 갖게된 그는 어느 선교단체에서 대여받은 전동휠체어를 간신히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중증장애우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 소유의 분양 아파트에 살고 있어 어찌보면 다른 생보자보다 객관적인 형편은 나은 사정이기에 조금은 의외였다. 그런데 중증 장애를 가진 정 씨나 올해 여든여덟인 어머니도 취로를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이 가구의 수입은 이웃돕기 결연을 통해 들어오는 후원금만으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경제불황으로 모든 가정에서 소비지출을 줄이는 형편이라 당연히 각 시설에서도 후원금이 줄어들고 있어 극심한 내핍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 씨도 가계수입이 되는 후원금 수치를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지난 해 여름부터 각지에서 보내주는 후원금이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그냥 저냥 어머니한테 밥 얻어먹기도 어려운 상황이에요. 올해 봄에는 쓰러지셔서 한참을 앓아 누우시기도 했었는데, 어머니 돌아가시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어요. 그냥 장애우공동체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죠.”


 영세민 보다 더 딱한 사람들

  생활보호대상자 가운데 중증장애우 단독 세대의 경우만 따져보면 수입의 측면에서는 지난 해나 올해나 별다른 차이점이 없을 지도 모른다. 워낙 이들 세대는 정부에서 나오는 수당이 수입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다른 가족이 있더라도 그들이 나이가 많고 병약해서 취로사업 외에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작 IMF는 이들의 주변을 쓰러뜨렸다. 노점, 막노동이나 파출부, 간병인 등의 일을 하면서 다른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이들과 그 가정의 수입을 뚝 그치게 한 것이다. 건설경기의 불황과 긴 축소비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쉽게 일자리에서 내몰리는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일용직 근로자들이라는 점은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평화종합사회복지관 고재욱 복지과장은 “가정 방문을 다녀보면 IMF이후 저소득층이 모여 살고 있는 인근 분양 아파트의 세대 중에 어쩌면 생활보호대상자보다 더 딱한 사정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가 가벼워 일용직에 종사하고 있던 장애우들 뿐만 아니라 별다른 생계수단없이 다른 가족의 수입에 의존해 살고 있던 장애우들은 전에 없이 극심한 생계 압박을 받고 있다.

  “말도 마세요.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잖아요. 내가 악착같이 취로를 다닌다고 해도 들어오는 돈은 빤한데 교통비, 수도세, 전기세도 다 올라서 하루 하루 버텨나가기가 정말 어려워요.”

  사고로 중도 장애를 입은 고경희 씨(42)의 경우 남편은 지난해 죽고 보호작업장에 다니는 정신지체인인 큰 아들과 고등학생인 둘째 아들과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둘째 아들마저 얼마 전부터 다니던 학교를 안나가겠다며 집에서 빈둥대고 있어 속상해 죽겠다며 “집에서 셋이 하루 세 끼를 같이 먹을 때가 많아져서 전보다 식비도 훨씬 많이 나간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 씨는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몸이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허리에 철심을 박은 상태라 한두 시간 일하면 반드시 누워서 안정을 취해야 하기 때문에 파출부같이 힘든 일은 전혀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 자식들의 수입에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고 씨 가정의 유일한 수입은 취로였다.


 “하루하루가 살얼음이에요”

  고씨와 같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지만 몸이 불편해 일반 취업을 하기가 곤란할 경우 현재로서의 대안은 취로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경제불황이 되면서 일당 1만7천도 아쉬워 취로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러나자 각 구청은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를 지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취로사업 대상자의 폭을 넓혔다.

  양재1동 동사무소 김지헌 씨는 “강남구의 경우 구비를 더 책정해서 원하면 누구나 취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오는 날 빼고 빨간날인 공휴일을 빼면 한 달에 꼬박 일할 수 있는 날은 많아야 이십일, 최고로 했을 때 34만원 정도다. 그러나 한 가구에 한 명 정도로 제한돼 있고 생활보호대장자가 아닌 경우는 예산 책정 수준에 따라 언제 명단에서 제외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수서동 임대아파트 입주 후에 생활보호대상자 지정에서 떨어졌다는 올해 예순 셋의 김복임 할머니(63)는 혼자 살면서 취로사업만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요즈음 경쟁이 더 치열해져서 불안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우면동의 은초록사회복지관과 같은 각 영구임대 아파트 인근에 있는 사회복지관에서는 컴퓨터나 이미용기술과 같이 부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저녁 시간대에도 개설했다. 주간에 바깥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서도 기술을 배워서 불의의 실직을 하게 되더라고 생활안정을 꾀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에서였다.

  그러나 우면동 영구임대아파트 주민 김희연 씨는 “몇 달 전에 일자리를 잃었지만 그런 기술은 적어도 일년 정도로 투자해서 배워야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애 학비 때문에 한달 한달을 친척들한테 돈을 꾸어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도저히 그것을 배우려 다닐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자금이 있어 가게를 차리지 않는 한 일반 미장원에 취업을 해야 하는데 자신과 같이 나이 사십이 다 된 사람을 누가 써주겠냐는 것이다.

  현재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노숙자들에 비하면 이들 영구임대 아파트 입주 장애우들은 어찌됐건 임대해서 사용하는 집이나마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그나마 훨씬 나은 상황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생활안정을 도모하여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 정부가 임대주택 보급 사업을 벌인 궁극적인 취지였다면 그 보다 실제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제도적인 대안을 마련해 주는 것이 지금 이들에게는 더욱 절실해 보였다.

  경제전문가들은 아직 우리 나라가 IMF의 가장 극한 지점을 통과하지 않았다고 하고 또 일각에서는 그 해소시기를 아무리 낙관적으로 봐도 2~3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앞으로 이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년의 상황도 올해와 그다지 달라지는 게 없다면, 이들은 점점 삶의 벼랑으로 내몰릴 것이다. 그리고 그 막바지에 섰을 때 택할 수 있는 것은 입밖에 내기 섬뜩하지만 죽음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을 수도 있다.

  우면동 영구임대아파트의 한 주민은 “그래서 사람들이 자살을 하기도 하지 않느냐”며 얼마전 한 입주자가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조적으로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우리끼리는 이런 농담도 합니다. 우린 다이어트 안해도 내년되면 다 바짝바짝 마르게 돼있다고요. 그런데 사실 내년이 문제가 아니라 하루하루가 죽겠어요.”


․기사 중 장애우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올해에도 어김없는 임대료 5%인상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은 더욱 벼랑으로 모는 주공의 임대료 인상

  올해 3월호 함께걸음의 ‘알면 도움이 되는 정보’에 서울 도시개발 공사와 인천 종합건설본부측이 영구임대아파트의 임대료를 동결시키기로 했다는 방침을 보도한 바 있다. 이후 지난 5월말 광명시에 사는 한 장애우는 격앙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영구임대아파트에서는 올해에도 예외없이 임대료가 5% 인상됐다는 것이다.

  “함께걸음에서 본 것도 있고 해서 서울과 경기도에도 절화를 걸어봤는데 모두 다 인상됐다고 한다. 다른 때도 아니고 올해 같이 어려운 시기에 영구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살림살이는 더 어려운데 그렇게 꼭 임대료를 올려야 하는지 너무나 원망스럽다”고 그는 성토했다.

  이 장애우는 대한주택공사가 짓고 관리하는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해 있는 경우다. 서울도시개발공사나 인천종합건설본부와 달리 대한주택공사는 매년 5% 한도내에서 인상할 수 있도록 한 임대료와 보증금에 대한 규정을 올해에도 그대로 적용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이러한 방침에 대한 입주자들의 반발움직임이 TV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이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올해 유례없이 높다. “취로 사업으로 근근이 이어가는 상황에서 돈 들어오는 구멍은 빤한데 버스비나 다른 물가가 오른 것을 따라 잡는 것도 힘들다. 그래도 다른 건 덜먹고 덜쓰면 되지만 고액의 임대료까지 오르면 정말 더 이상 해볼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도시개발공사측은 임대료를 동결해 입주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도시개발공사 임대과 관계자는 “물론 재정적인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임대료 동결에 따른 손실분은 경영혁신과 다름 수입분에서 충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택공사 서울본부 주택관리3과 관계자는 “도시개발공사는 서울에만 한정된 것이니까 쉽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지 몰라도 우리는 전국 단위의 관리체계이기 때문에 동결했을 경우 회사 차원의 재정부담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들어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영구임대아파트 입주자 중 자녀의 연령이 만기돼 당장 내년이나 내후년 생활보호대상자 지정을 받지 못함으로써 일반 입주자로 분류될 사람들은 갑자기 높아질 보증금 부담 때문에 생계 불안에 떨고 있다.

  “요즘같은 세상에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제깍 취직이 되는 것도 아닌데 저축한 돈 한 푼 없이 생활보호대상자 지정에서 제외돼서 일반 가구가 내는 80만원의 가량의 보증금 인상치를 앞으로 어떻게 마련할지 눈 앞이 캄캄하다.” 우면동 영구임대아파트의 한 주민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모자세대로 오로지 자신과 갓 고등하교를 졸업한 딸의 수입으로 살아가야 할 이 주민과 같은 이들의 한숨은 이렇게 오늘도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혼자 굶지 말고 밥 드시러 오세요”

장애우 무료식당 운영중인 하상복지관


  최근 푸드 뱅크(Food Bank) 사업과 같이 먹는 것부터 함께 나누자는 움직임이 사회복지계 일각에서 진행되고 있다. 또 하루하루를 이어갈 한 끼니의 밥을 얻기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일부 사회시설에서는 직접 무료식당을 운영하기도 한다.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하상장애인종합복지관은 그 중에서도 그런 식당을 찾아 돌아다니기도 어려운 장애우에게 주목해왔다. 주말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 20분 경에 문을 열어 장애우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장애우식당은 그런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복지관 인근의 일원1,2동과 수서동에는 장애우를 비롯한 생활보호대상자가 다수 입주해 살고 있는 영구임대아파트가 집중돼 있다. 물론 이 장애우식당이 문을 연 것은 96년 7월부터니까 복지관에서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이 꼭 최근의 상활 때문만은 아니다. 인근 3백40여 장애우 세대 가운데 장애우 혼자 점심을 차려 먹어야 하는 장애우들이 보다 안정된 영양을 섭취하면서 다른 장애우들과 더불어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강남구청의 사업지원을 받아 마련된 프로그램이었다.

  워낙 식당이 복지관 전체 직원이 한 번에 이용하고도 남을 널찍한 공간이어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한꺼번에 많게는 70인분까지 더 준비를 해야 해서 부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일손을 확보하는 것이 큰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일을 인근 성당의 자원활동주부들과 연계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복지관 사회복지사 김주희 씨는 “이 식당에 대한 홍보가 많이 되어서인지 요즈음 생활이 더 어려워져서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최근에 문의전화나 찾아오시는 분도 훨씬 많아졌다”고 말한다. 심지어 일산이나 관악구 쪽에서부터 오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단 이 식당은 강남구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우 당사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직접 이 곳에 와서 식사를 하지 못할 정도로 장애가 심함 10여 가구에게는 김이나 마른 반찬 등의 부식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초창기에는 간혹 가족들도 함께 와서 식사하기를 청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인정상 그럴 때 제일 거절하기 어렵긴 하죠. 그렇지만 그렇게 한두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일반 무료급식소와 차별성이 없어지는데 제한된 예산에서 운영을 하려니 장애우 당사자에게만 배식을 한다는 원칙은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난 해에 비해 올해는 구청의 지원비가 줄어들어 복지관은 자체적인 예산을 보태 사업을 진행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곳에서 거의 매일 식사를 한다는 김임중 씨(65)는 “혼자 사는 처지고 해서 워낙 대충 먹기 때문에 이 식당에서 먹은 후 생활비가 줄었다는 차원 보다는 맛있는 반찬으로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김 씨는 취로일이 일찍 끝나면 꼭 이곳에서 식사를 하곤 한다.

  김주희 씨는 “이 분들 가운데 이 곳에서 먹는 한 끼 외에 다른 식사는 어떻게 하고 있는 지는 사실 저희도 잘 알 수는 없죠. 그런데 젊은 저희같은 사람들이 먹는 절대양보다는 육십대 가까운 노인들이 대다수인 이 분들이 훨씬 많이 드시는 걸 보면서 다른 식사내용의 수준을 짐작한 나름이죠”라고 말한다.

  여하튼 장애우들이 하루 한기 유쾌하게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이곳을 이용하려면 사전에 전화로 장애우임을 알리고 등록을 해야만 한다.

  문의 (02)451-6000

작성자한혜영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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