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이 아닌 당당한 출가
[기획연재] 장애우의 당당한 독립 ②
갇혀서 살 수만은 없다! 독립, 그 방법을 알려주마
갇혀서 살 수만은 없다! 독립, 그 방법을 알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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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 가출이 아닌 당당한 출가를 꿈꾼다 3_ 정신지체인들의 독립 선언 4_ 정리 |
왼쪽부터 김주영, 양영희, 김성희
“맘 먹었을 때 질러야죠. 적당한 때는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김주영(29)씨는 작년 12월 3일, 마침내 ‘독립’했다. 서울 천호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주영 씨는 지금 친구와 같이 산다. 주영 씨는 독립 전에 자립생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체험홈에서 6개월 정도 살면서 차근차근 준비를 한 계획파다
주영 씨가 독립 결심을 굳힌 계기는 경기도 광명에 있는 집에서 사무실이 있는 서울 군자까지 전동휠체어를 타고 왕복 4시간이 넘게 출퇴근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다.
“집에서 광명역까지 가는 데만 30분이 걸렸는데, 눈이나 비 오는 날은 그야말로 ‘쥐약’이었죠.” 주영 씨는 고개마저 절레절레 흔들었다
2006년 초 ‘다큐인’이라는 곳에서 미디어 운동을 시작한 주영 씨는 6개월 정도 광명에서 군자를 오가다가, 6월에 사무실 근처에 있는 체험홈에 입소했다. 독립생활 연습도 하고, 출퇴근 거리도 좁히고,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체험홈 입소가 1차 작전이라면, 주영 씨는 어머니를 서서히 세뇌(?)하기 위한 2차 작전에 돌입했다.
“체험홈 생활하면서도 엄마에게 독립하겠다는 말을 계속 했어요. 엄마는 투정 받아 주듯이 ‘그래, 그래.’ 하셨죠. 제가 전셋집을 구한다고 할 때도 ‘그래라’ 하셨어요. 그때까지도 엄마는 ‘네가 어떻게 혼자 살겠냐, 그냥 하는 말일 테지.’ 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주영 씨는 그 사이 어머니에게 체험홈 자립생활이라든가 다큐인에서 찍은 장애관련 영상물 등을 보여드렸고, 함께 일하는 활동가들을 집으로 자주 불러들이는 등 물밑 작업을 했다. 그 과정을 통해 어머니가 자립생활이나 활동보조를 이해하는 수위를 높이고 싶었던 것. 주영 씨는 이 작전 효과가 매우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전셋집을 구했을 즈음에 어머니는 주영 씨 독립을 인정하게 됐을 정도였다고.
주영 씨가 독립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전세 비용을 마련하는 것과 전동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구조를 갖춘 집을 찾는 일이었다고 한다.
전세값은 부모님이 대출을 받아 마련은 했는데, 방에서도 전동휠체어를 타야 하는 주영 씨 장애에 맞는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 2주 동안은 친구나 동료들과 같이 집만 구하러 다녔어요. 부동산이 소개하는 집 중에서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집을 개조해도 좋다는 집주인들도 없었고.”
그러다가 다행히도 개조에 동의를 하는 집주인을 만났는데, 2~3년 뒤 재개발을 앞둔 동네여서 개조를 허락했던 것이다.
주영 씨는 대문 턱을 깎아 입구를 경사지게 만들고, 방문과 화장실 입구도 넓히고 턱을 깎아 경사로를 만들었다.
“공사비는 부모님이 대주셨어요. 다행히 아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공사는 실비로 했는데, 만약 시장 가격대로 하는 공사였으면 부담이 컸을 거예요. 장애가 제 잘못도 아닌데, 왜 자부담으로 공사를 해야 하는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세 계약은 작년 11월 중순에 했는데, 저는 공사를 마친 3주 후에 들어가 볼 수 있었죠.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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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영씨의 개조작품들 |
“이젠 내 살림, 살아가는 소소한 재미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김주영 씨가 계획파라면 양영희(42) 씨는 독립이 가능한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고 결단을 내린 경우다.
지난 2~3년 동안 영희 씨 가족은 아버지 병환 때문에 맘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아버지 때문에 가족들이 공기 좋은 외곽으로 이사를 결정했던 것.
“활동을 접고 가족을 따라 갈 건지, 아니면 독립해 나갈 것인지 선택해야 할 상황이었죠. 제 나이도 있고 어차피 독립할 거면 지금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적극 추진했어요.”
양영희 씨는 부모님보다 형제들을 설득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한다.
“혼자 살겠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가족들에게 해왔어요. 당시 아버지 병 수발 때문에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하셨죠. 설득하기 힘들었던 것은 의외로 형제들이었어요.”
영희 씨는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활동보조인부터 구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형제들을 설득했다고. 영희 씨도 전동휠체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셋집 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영희 씨도 활동보조인과 같이 전세를 구하러 다녔지만, 전동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일반 주택은 별로 없었다고. 가족들이 힘을 모아 마련한 돈으로는 반지하 집을 구할 상황인데, 반지하인 집들은 계단을 내려가야 하거나 화장실 안에 계단이 있기 일쑤였단다.
“월세가 없는 2천만 원 정도 전셋집을 찾으니, 대부분 반지하였어요. 정화조 높이 때문에 좌변기가 계단 위에 있는 집이 많더라고요. 방턱이 30㎝이상인 집도 많고. 저는 방에서는 전동휠체어를 타지는 않지만, 집 안에 있는 계단이나 턱은 저 같은 1급 장애우들에게는 ‘죽음’을 초래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해요. 특히 화장실은 타일 때문에 미끄러워서 더욱 그렇죠.”
영희 씨 상황을 지켜보던 활동보조인이 상계동에 있는 본인 집으로 전세를 들어올 것을 제안했고, 영희 씨는 현재 그 집에서 살고 있다.
“사실 지금 사는 집도 출퇴근 교통편이 그다지 좋은 건 아니에요. 1시간 정도는 걸리니까요. 그렇지만 활동보조인 아주머니가 근처에 산다는 것에 의지하고 싶었어요. 사무실 근처로 가도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위급할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잖아요. 활동보조인 근처에서 살면 급할 때 도와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리로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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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영희씨 집 입구 휠체어가 들어가기 쉽도록 개조했다 |
“저는 그동안 혼자만을 위한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늘 할머니나 다른 형제들과 같이 방을 써왔죠. 아무리 가족이어도 어른끼리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특히 저는 장애 때문에 계속 어린애 취급을 받았거든요. 그게 더 힘들더라고요.
그러다 공간적으로 독립을 해보니, 정말 좋네요. 밖에서 사람들과 많이 부대끼는 저로써는 혼자 있는 시간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엄마가 가끔 오시는데, 제 집에는 쉬러 온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다른 형제들 집에 가면 애기 봐줘야지, 살림 챙겨줘야지 하는데, 제 살림은 활동보조인이 상당 부분 해놓으니까, 엄마 손을 빌릴 부분이 별로 없거든요. 엄마랑 수다 떠는 거 예전에 느끼지 못한 쏠쏠한 재미예요. 엄마가 잘 쉬었다 간다고 하실 때 정말 좋아요. 이제야 어른 노릇, 자식 노릇하는 것 같아서요.”
“물심양면으로 밀어 준 언니들, 고마워”
김상희(27)씨는 독립하는데 있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가족을 설득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상희 씨는 앞에 소개한 주영 씨나 영희 씨보다 장애가 훨씬 심하다. 그래서인지 가족의 반대도 심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고 한다. 김상희 씨도 체험홈 입소나, 친구와 자취를 해볼 궁리도 해봤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단다.
“제가 일곱 자매 중에 막내라서 부모님이 연세가 많아요. 저를 업어서 이동시키는 것이 무리였죠. 서울 신림동이 집인데, 신림동이 경사가 많잖아요. 더구나 연립 3층이라서 외출할 때마다 식구들 중 누군가는 저를 업고 오르내려가야 했죠.”
상희 씨도 독립 결심을 굳힌 계기가 출퇴근 문제 때문이었다. 서울 천호동에 있는 장애여성단체 ‘공감’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출퇴근 시간이 6시간 이상이 소요됐다고.
그러나 가족들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신변처리도 혼자 못하는 네가 어떻게 독립을 하겠냐, 결정적인 이유는 그거죠. 엄마는 ‘네가 화장실만 혼자가도 이렇게 반대는 안한다’고 하셨거든요. 그렇지만 엄마도 이젠 더 이상 제 활동보조를 할 수 없는 나이셨어요. 언니들에게도 섭섭하더라고요. 자기들은 다 생활이 있는데, 나는 왜 시도조차 못하게 하나 싶어 원망스러웠죠. 방법은 찾아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안된다고 하니까, 속상하죠. 어차피 제 인생 끝까지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상희 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아직도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퇴근했을 때 저를 업고 올라갈 가족이 아무도 없을 때도 있었어요. 그러면 누군가 올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밖에서 기다려야 했어요. 저를 업고 갈 식구가 오길 기다리면서. 그러니 한번 외출할 때마다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어요. 눈치보고, 부탁해야 하고. 그런 거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그 때마다 얼마나 비참해지는지. 얼마나 초라해지는지를요.”
그래서 상희 씨는 부모님을 사무실로 모셔 출퇴근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실감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상희 씨가 하는 이런 노력에 힘을 보태 준 건, 바로 같이 일하는 활동가들이었다고.
상희 씨 표현을 빌리자면 ‘공감 언니들’이 사무실에 온 부모님을 잡고 바로 설득에 들어갔고, 상희 씨의 절절한 마음이 담김 편지를 대신 써 주기도 했단다. 집을 얻어서 나온 첫 일주일은 돌아가면서 같이 지내주었다고.
상희 씨는 독립하던 첫 날밤을 이렇게 기억했다.
“독립하고 일주일은 같이 일하는 언니들이 돌아가면서 활동보조를 해줬어요. 그래서 불편함이나 무서움 같은 건 없었어요. 언니들이 가고 나서, 25년 만에 처음 혼자 자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솔직히 어리둥절하더군요. 낯선 공간에 혼자만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서. 조금만 있다가 얼른 집에 들어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저는 한번도 방을 혼자 써본 적이 없거든요.”
상희 씨는 독립하면서 본인 취향을 알게 됐다고 한다.
“예전에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몰랐어요. 엄마나 언니들은 샴푸하기 편한 머리 모양을 원했기 때문에 늘 짧은 머리였어요, 그리고 입히고 벗기기 쉬운 옷들을 제게 주었죠. 저는 그런 게 맘에 들지 않았지만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처지라서 싫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몰랐죠.
독립을 하고 활동보조인서비스를 받으면서 상황이 달랐어요. 우선 활동보조인은 엄마나 언니가 아니니까 제가 원하는 것을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서 좋아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선택해요.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저는 25년 만에 맛볼 수 있었죠.
독립하면서 머리도 기르고 퍼머도 했어요. 좋아하는 옷도 직접 골라서 사고. 내 취향대로 일상을 선택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이런 게 사는 재미잖아요.”
중증 장애우 독립, 정부 지원 절실해
주영, 영희, 상희 씨가 한 독립 이야기에는 비슷한 점도 있고 서로 다른 점도 있다. 그 중에서 이 세 여성들은 활동보조인 확보, 전세비용 마련, 생활비 확보 방법, 주택 개조가 독립할 때 중요한 사항이라고 입을 모았다.
활동보조인은 본인은 물론,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지론이다.
활동보조인서비스는 서울시가 현재 시범사업으로 진행하고 있고, 오는 4월부터 전국에서 본격 시행할 예정이긴 하다. 그러나 활동보조인을 지속적으로 고용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 차상위 200%까지만 받을 수 있으며, 최대 상한시간도 월 60시간이며, 자부담도 있다.
주영 씨는 친구에게 활동보조인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친구가 관련 기관으로부터 받는 월급은 20만원 남짓. 같이 사는 친구이라서 그나마 시간에 제한받지는 않지만, 늘 미안하단다. 만약 친구가 다른 직장 구해서 간다면 말릴 수도 없는 처지라 불안하다고.
상희 씨는 주영 씨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다.
주영 씨는 활동보조인서비스 대상자에 포함되어 경제적인 부담을 덜었지만, 상희 씨는 대상자가 아니라서 전액 자부담으로 활동보조인을 써야 한다. 형편이 좋지 않은 상희 씨를 고려해 지금은 직장에서 활동보조인 비용을 대고 있다. 그러나 직장 상황도 어려워지는 터라 언제 중단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활동보조인 확보는 주영 씨나 상희 씨에게는 독립 여부를 좌우하는 중요한 사항이다.
현실적이고 어려운 문제 중 또 하나가 바로 돈 문제다. 전셋집을 얻으려면 목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증장애우들은 교육이나 취업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당사자들 수중에는 돈이 별로 없다.
전세값 외에 생활비 문제도 있다. 이 세 여성들은 장애 관련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활동비로 생활을 꾸릴 수는 있다. 그러나 만약 전셋값 외에 생활비 문제도 있다면, 이 여성들도 독립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장애 때문에 집을 개조할 수 밖에 없는데, 임대할 경우 개조를 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세 여성들이 ‘독립’을 위해 지나온 과정에는 우리 사회에서 사는 중증장애우들이 처한 현실이 녹아있다.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정부 지원이 전무하다는 것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현실에서 주영, 영희, 상희 씨 이야기는 장애우들이 집에서 독립할 때 어떤 과정을 겪는지 현실적인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만약 집에서 독립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장애우들이 있다면, 무엇을 준비할지 작전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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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희정 기자 prota10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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