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가슴에 불을 피우는 잡지가 되길
본문
‘함께걸음’ 창간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참 좋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만든다지요.
이 말 속에 담긴 소박하고 꾸밈없는 마음이 어려움 속에서도 10년씩이나 끊이지 않고 잡지를 펴낸 힘이 되었다는 걸 압니다.
작년 연말에 산업재해로 장애우가 된 분들의 송년모임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창 경제가 어렵다 위기다 해서 잔뜩 움추려 있을 때 마련된 모임이어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요. 골목골목을 더듬어 지하에 있는 작은 공간을 찾아 들어갔을 때는 이미 많은 분들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지요. 웃고 떠들면 장판을 깔아 놓은 바닥에 둘러앉아 상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먹고 있는 모습이 화려한 식당에서 모임을 하는 것보다는 모양새가 덜 났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의 함께 띄우고 있는 웃음은 참 소박하고 따뜻했습니다.
거기 모인 분들은 산재노동자들과 그 분들을 지원하는 후원회원들과 여러 단체에서 오신 분들과 산재노동자들의 부업거리를 겨들어주는 자원봉사자들이었지요. 기계에 한 손이 몽땅 뭉그려져서 한 손밖에 쓸 수 없는 분, 팔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분, 작고 큰 장애로 온전히 예전에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없는 분들이 비장애우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웃으며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서 장애우면서 후원회원이신 분이 한 분 참석하셨어요. 이 분은 밴드 반주일을 하시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젓가락 집는 것도 어렵고 신발을 신는 것도 어렵고 걸음걸이조차 반듯하지 못하십니다. 노래를 부르던 목소리도 제 목소리가 아니구요. 이 분은 이 모임의 사무실 가까이 살고 있는 탓에 날마다 여기에 출근하다시피 한답니다.
그런데 스스로 다른 산재노동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세요. 자신은 노동현장에서 산재를 당한 것도 아니고 그나마 다른 노동자들처럼 몸을 놀려서 벌어먹고 살지도 못하고 있으니까 다른 산재노동자들도 자기를 더 업수이 여기는 것 같다고 하면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찌르르 했습니다.
같은 장애우들끼리도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장애우를 바라보는 비장애우들의 눈길은 또 얼마나 가라져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이렇게 늘 서로 갈라놓는 생각들 때문에 서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좀 많을까요
그 분은 늘 이야기합니다. “나도 일하고 싶다” “나도 장가가고 싶다.” “나도 내 손으로 벌어서 어머니를 먹여살리고 싶다.”고요. 사람으로 태어나 이 사회에서 한 몫을 하면서 자기 삶의 가치를 인정받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 분의 작은 바람을 누가 이루어줄 수 있을는지요.
하지만 이 분도 어두운 골방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작은 방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 다치고 나서 한참 뒤라고 합니다. 같은 장애우라는 사실ㄹ이 이분을 그나마 편안하게 해줬고 다른 분들도 이 분을 거리낌없이 받아들릴 수 있었겠지요. 누군가 마음을 먼저 여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함께걸음이 해온 일이 그런 일이었을 겁니다. 그건 일하는 사람들의 글모음을 펴내는 <작은책>이 조금씩 해온 일이기도 합니다. 산재를 당하거나 부당한 일을 겪은 이야기들을 동료들과 함께 나누고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을 당당하게 여기지 못하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을 찾아다니고 설득해서 바깥으로 나오게 하는 일은 참 쉽지 않았지요. 함께걸음 역시 장애우 문제를 한사코 덮어두려는 바깥사회와 스스로 움츠리고 드는 장애우들 사이에서 참 히겨운 싸움들을 해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함께걸음이 해온 가장 큰 일은 장애우들이나 사회에 대해 분명하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요구하고 바꿔낸 일들일 것입니다. 언제나 뒷전에서 보살핌만 기달는 수줍고 주눅든 장애우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가치있는 한사람 한사람으로 온전히 자리잡고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거리낌없이 누리는 장애우가 바로 우리들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일들 말입니다.
부당한 일들은 어디서나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데서 싹트기 시작하더군요. 노동자가 우리와 다르고 장애우가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 속에서 참 좋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꿈을 이루기 어려울 것입니다. 함께걸음이 앞으로도 꾸준히 나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일을 했으면 합니다.
글/ 강순옥 (월간 <작은책> 편집장)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