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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초점] 여성차별 없는 동아시아를 위하여

제 3차 몽고 동아시아 여성포럼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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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차 동아시아 여성포럼이 지난 8월 23일부터 26일까지 몽고의 수도 울란바타에서 열렸다. 워크숍은 경제, 인권, 정치 분야에 각각 서브그룹 세 개씩을 두어 아홉 개의 주제로 열렸다. 비가입 단체임에도 지난 2차 포럼에 이어 이번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참가하게 된 것은 일반 여성운동과 여성장애우 운동이 국내외적으로 연대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제 3차 동아시아 여성포럼에서 필자는 인권 부문, 그 중 차별이라는 주제에 들어가 한국의 소외계층 여성 문제와 여성장애우 차별에 대하여 발표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 “향후 2년 간 소외계층 여성의 인권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다음 제4차 동아시아 여성 포럼에는 소외계층 여성문제에 대한 별도의 워크숍을 연다”는 결의사항과 활동계획이 채택되기까지 나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초조한 시간들이었다.


 엄지 손가락을 들어준 동료 장애우들

  “한 마디로 한국의 여성장애우는 그들이 죽기를 바라는 문화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는 집단입니다.... 여성장애우를 비롯한 소외계층 여성문제는 여성운동과 한국사회, 나아가서 세계 모든 국가들이 의식을 공유하고 풀어나가야 할 시급한 과제입니다. 그러므로 성차별이 극심한 동아시아 지역 여성 운동에서부터 소외계층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다음 제4차 포럼부터는 소외계층 여성 문제를 독립된 워크숍 주제로 선정할 것을 강력히 제안하는 바입니다. 바야흐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성운동이 진정한 여성차별, 특히 소외계층 여성차별을 해결하려는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

  발표를 마치고 박수소리에 얼굴을 들었을 때 맨 앞자리에 앉은 셀린지(Selenge)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청각 장애우다. 필자의 영어 발표를 몽고어 동시통역으로 듣고 그것을 재빠르게 글로 적어주는 딸의 도움으로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말고도 또 한 명의 몽고 지체장애 여성 투그스바야(Tugsbayar)가 참가해서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환한 얼굴로 엄지손가락을 세워 흔들었다.

  ‘맞아! 잘했어.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녀들이 몸짓으로 나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의미는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그것은 국적과 언어를 뛰어넘은 장애와 차별에 대한 공감의 표시였던 것이다.

  몽고여성장애우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는 50대의 셀린지는 개회식을 겸한 환영 만찬에서 나와 얼굴을 익혔다. 그날 개회식에서 한국측 대표로 인사말을 한 신혜수 교수가 “한국에서 온 발표자 중 여성장애우가 한 명 있는데 이번 기회에 몽고의 장애우 관련자나 여성장애우를 만나보고 싶어한다”고 특별히 소개하면서 나는 주목을 받게 되었다. 캐린을 만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국의 한 언론(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에서 일하는 도쿄주재 기자였다. 그녀는 식사가 끝나갈 무렵 나를 찾아와 우리가 도착하기 얼마 전 발생한 몽고 장애우 분신 자살기도 사건을 들려주고, 한국의 여성장애우 근황에 대해 몇 가지 취재를 했다.

  발표를 하기 위해 필자가 들어가야 했던 방은 3층이었다. 그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관계자에게 어려움을 호소하자 나를 의자에 앉힌 뒤 남자 두 명이 들어서 삼층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 날 워크숍은 각국 발표자들의 발표만으로 지정된 시간이 다 지나버렸다. 노인여성문제, 대중매체를 통해 나타나는 여성성의 상품화와 교육계를 비롯한 대부분 직종 고위직을 남성이 차지하고 있는 데서 오는 문제와 차별, 전쟁시 여성과 어린이에게 행해지는 차별과 폭력에 대하여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 2000년대까지 여성정치인 비율을 최소한 20%까지 끌어올리도록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 소외계층 여성과 장애 여성에 관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 날 발표가 끝난 뒤 통역자의 도움으로 워크숍에 참가했던 사람 중에 두 명의 몽고 여성장애우 셀린지와 투그스바야를 취재할 수 있었다. 셀린지의 말에 의하면 몽고에는 전국에 시각, 청각, 지체장애우 등 각 부분의 장애우 단체가 10여개 있는데 그 모든 단체들을 다스리는 연합회가 있다고 했다. ‘장애우 민족연합’이라고 하는 이 연합회는 현재 보건부 장관이 최고 의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단체 유지에 필요한 재정에 관하여 묻자 그들은 대부분의 자금을 정부의 지원으로 충당한다고 대답했다.

  투그스바야는 셀린지와는 다른 단체의 멤버였다. 나중에 나는 그녀를 민간기구(NGO)방문 프로그램에 들어있는 ‘Mongolian Union for the Business Women from Vulnerable Groups'이라는 단체에 가서 다시 만났다. 그곳은 장애여성, 취약여성, 남편 없는 여성으로 된 세 그룹의 여성을 대상으로 취업과 직업훈련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주로 몽고에서 생산되는 캐시미어와 울, 가죽 등을 가공하고 제품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주고 있는 정부의 특혜는 원자재를 구입할 때와 완제품을 수출할 때 관세를 면제해주는 것은 물론, 근무 중 육아대책과 교육 지원 등이 있다고 했다. 그녀들 외에도 나중에 남성장애우를 한 명 더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의 이야기 내용도 비슷했다. 이처럼 포럼 기간에 내가 만난 몽고 장애우들은 대부분 자신들에 대해 정부가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경제는 우리보다 뒤져 있었지만 몽고의 복지 정책은 대단히 이상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대단히 혼란스러웠다. 첫날 캐린이 준 신문기사 내용과 내가 만난 몽고 장애우들의 말은 심각하게 상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짧은 일정의 국제적인 행사에서 정부기관과 관계가 있는 장애우 단체 멤버들과만 접촉했던 건 아닐까. 좀 더 다양하고 사실적인 몽고 장애우들의 목소리를 듣고 오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4차 포럼부터 소외계층 별도 포럼 갖기로

  다음 날인 25일 오전에 진행된 워크숍에서는 전날 발표한 내용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그 중 일본의 여성 노인문제에 관한 질문과 답변으로 대부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소외계층 여성문제와 여성장애우 차별에 관해서 논의조차 못하고 돌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다 도중에 이십분 간 차 마실 시간이 주어졌다. 그 때 내 발표를 들었던 참가자 한 명이 다가와 “당신의 명확한 자기주장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당신과 당신의 단체가 원하는 일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말로 격려를 해주었다.

  차 마시는 시간 이후부터 점심식사 전까지 진행된 토론에서는 소외계층 여성 문제가 활기를 띠었다. 동아시아 지역에 여성장애우를 위한 기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고, 소외계층 여성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소외계층 여성의 범주에 여성장애우, 미혼모, 탈북여성, 노인여성 등이 들어가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레즈비언이 포함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몽고 참가자들 중에서 반대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중에 안 일이지만 몽고는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어 우리와는 달리 인구 증가정책을 쓰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 동성애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여성운동에 있어서도 문화적인 차이는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주제별 워크숍에서 한국 소외계층 여성문제와 여성장애우 차별에 대하여 진지한 토의가 이루어졌던 것과는 달리 다음 날(26일) 오전 폐회식에 인쇄되어 나온 전체 결정사항과 활동계획의 내용은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특별히 어려운 경제 상황과 세계화 가운데 효과적인 고용정책, 여성의 사회적 보호를 개선시키는 프로그램, 생활수준 향상을 정부에 촉구한다. 위의 프로그램들은 미혼모, 노인여성, 장애여성, 레즈비언 등 취약한 계층 또 불이익 받는 여성들의 특수한 욕구에도 부응해야 한다.”

  이렇듯 소외계층 여성문제에 관해서는 결의사항에만 미미하게 언급되어 있을 뿐, 그 외에 활동계획 어디에도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심각한 갈등에 휩싸였다. 토론 결과에 대한 각 국가 발표자들의 보충 의견과 질문들이 이어지고 회의는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 때 셀린지가 내게 다가와 빠르게 손짓으로 무언가를 말하여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수화내용을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 그러자 잠시 후 그녀가 뭔가를 적은 메모를 내게 보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온통 알 수 없는 몽고어가 적혀 있었다. 내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셀린지는 곧 메모지를 들고 내 곁을 떠났다.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내게 셀린지의 그런 행동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잠시 후 그녀가 다급한 표정으로 다시 내 쪽으로 와 메모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좀 전에 보여주었던 몽고어 밑에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적어 왔을 것이 틀림없는, 필체가 다른 영어가 적혀 있었다.

  “우리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빨리 나가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랬었구나. 그녀와 나 사이에 의사소통이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망설이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은 뒤 중앙에 있는 마이크를 향해 목발을 짚고 걸어 나갔다.

  결국, 향후 2년간 소회계층 여성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다음 4차 포럼부터는 별도의 워크숍을 열어 논의한다는 구체적인 활동계획이 새로 추가되었다. 나 또한 소외계층 여성, 그 중에 가장 차별을 많이 받고 있는 여성장애우 중 한 사람으로서 이번에 얻은 성과가 참으로 기뻤다.

  그러나 2년 후 대만에서 열릴 4차 포럼에서 소외계층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이번과 같은 노력들은 아무런 결실을 맺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성장애우계를 비롯하여 많은 소외계층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연대를 당부하고 싶다.

  폐회식을 끝내고 포럼 참가자 3백여 명은 폭력을 반대하는 평화적 행진을 했다. 오래 걷기가 힘들어 나는 휠체어를 타고 참여했다.

  ‘폭력 반대(No Violence!)' 포럼장에서 울란바타 시청 앞까지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가는 조용한 행진, 그들은 눈이 마주치면 그저 웃기만 했다. 얼굴만 보아서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국적이 짐작되지 않는 동아시아 사람들은 이번에 토의하는 고통의 부분에서도 어쩌면 그리도 서로 닮아 있었던지.

  몽고에 도착한 후, 고비 사막에서 비를 만났다. 사막은 메마르고 막막한 곳일 거라고 상상해온 탓일까? 사막에서 만난 비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느낌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래서 더욱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가 지금 이 지역이 우기에 들어 있다고 일러 주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떠한가, 사막에서 비를 만난 듯이 언제고 진정 차별없는 세상이 와주기만 한다면.


글/ 심성은 (빗장을 여는 사람들 회원)

작성자심성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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