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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의 마지막 비상구, 죽음

전주 영구임대아파트 화재로 사망한 최 씨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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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마지막 날 새벽 4시 30분, 전북 전주시 평화동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불이 났다. 화재는 아파트 주차장에 있던 봉고차에서 발생했고, 차 안에 있던 최 모 씨(47.지체장애 6급)가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했다.
경찰은 “봉고차 안에 있던 휴대용 가스렌지에서 발화한 것 같다. 최 씨 사인은 화염질식사로 추정한다. 차에 어묵과 소주, 이불 등이 있던 것으로 보아, 최소한 하루 이상은차 안에서 기거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최 씨는 도대체 왜 한겨울에 본인이 살던 아파트 주차장에서 죽어간 걸까.
기자는 최씨 사연을 쫓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봤다.


갈 곳이 없었다 ...
‘사람들이 또 비웃겠지. 뜨신 밥도 주고 약도 주는 병원에서 왜 나왔냐고 수근대겠지. 쳇, 부러우면 지들이나 가라지. 병원 밥 며칠만 먹어봐라. 어디 병원이 사람 살 곳인가.’
맵싸한 겨울바람이 옷섶을 파고들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정신없이 병원을 빠져나오느라 옷가지 하나 챙기질 못했다. 최 씨는 양말도 신지 못해 푸르스름해진 맨 발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405호.
아파트 문에 걸린 숫자판을 보면서 최 씨는 ‘사백오’라고 낮게 중얼거렸다. 마치 암호라도 읽듯이.
손잡이를 돌려봤지만, 예상대로 문은 잠겨 있었다.
다시 한 번 돌려보았다. 그러나 차갑게 언 손잡이는 완강하게 저항했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간담?’
최 씨는 기진맥진한 듯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아직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며칠 있을 요량이었다. 올 수 밖에 없었다. 여기 말고는 갈 곳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최 씨는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낸 곳은 다름 아닌 봉고차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밥줄을 이어준 애지중지하던 놈이다.
그러나 지금은 동네 깡패놈들 몰래 자고 가는 폐차다. 말이 ‘차’지, 애들 장난감보다도 못한 신세다. 유리창은 작살난지 오래고, 문짝이라도 닫기면 다행이다.

최 씨는 주머니를 털어 산 소주와 오뎅이 든 검은 비닐봉지를 쥐고, 그렇게 봉고차 안으로 들어갔다.
허위허위 걸어가는 최 씨는 병원복 때문에 아파트 어디서든 눈에 띄었다.
때문에 이웃들은 본의 아니게 최 씨를 보고 말았다.

최 씨가 405호 앞에서 철컥철컥 손잡이를 돌려볼 때도, 비척거리며 구멍가게로 들어갈 때도,
복지관에서 나눠주는 한 끼를 먹기 위해 줄을 섰을 때도,
몸 덥힐 오뎅 국물을 끊일 부탄가스를 찾느라 쓰레기더미를 뒤질 때도.
그러나 최 씨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죽은 최씨가 살던 아파트
   
 
위는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최 씨가 사망하기 며칠 전 상황을 재구성해본 것이다.
최 씨는 사망 한 달여 전, 그러니까 2006년 11월 23일에 강제집행을 당해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났다. 관리비를 28개월(약 250만원)동안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 씨는 오갈 곳이 없었고, 평소 술에 절어 살던 그이는 급한 대로 병원에 보내졌다.

최 씨는 병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전주, 김제 등에 있는 병원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숨지기 3일 전인 12월 29일, 전주 ㅇ병원에서 병원복만 입고 허둥지둥 탈출한 것.
갈 곳이 없던 최 씨는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고, 몇몇 주민들이 그를 봤던 것이다.

“죽은 최 씨? 봤지, 12월 30일 저녁인가 그랬어. 병원복 입고 상가 근처로 가더라고. 벌써 대취했는지 흔들흔들 다니더만. 죽으려고 귀신이 씌었나봐. 밥 주고 치료해 주는 병원서 왜 나와가지고...”
“29일이예요. 병원복 차림으로 아파트 주차장을 어슬렁거리던데요. 병원 갔다는 사람이 어떻게 왔나 해서 계속 내려다봤죠. 그런데 쓰레기통을 뒤지더니, 부탄가스 몇 통을 들고 봉고차 안으로 들어가더라고요. 저러다 사고치지 싶었는데...”

“그 사람? 12월 30일에 복지관서 떡국 나눠줄 때 봤죠. 병원복 입고 그거 먹으려고 줄 서 있던데요. 아파트는 이미 넘어갔는데, 여긴 왜 왔나 싶어서 통장님에게 전화했죠. 단지 안에서는 최 씨 모르는 이가 없어요.”
주민들 증언대로라면 그이는 적어도 29일부터 폐차에서 숙식을 했고, 31일 새벽에 변을 당한 것이다. 2006년 세 밑, 차가운 길바닥에서 그 이는 평생 짊어졌던 모진 삶을 그렇게 마감했다.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

기자가 만난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최 씨 얘기를 꺼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웃들은 그이를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 용변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한 사람 등으로 기억했다.

“최 씨랑 누가 말을 섞어요. 냄새도 심하고, 왜소한 이가 술 때문에 비쩍 말랐죠. 숨만 붙어 있는 거지, 걸어 다니는 송장 같았다니까요.”
“어휴, 말도 마세요. 그 집 현관문 열어놓으면 복도에 냄새가 쫙 퍼져서 사람들이 아주 질색을 했어요.”
“맨날 술에 절어 살았지. 생계비 타는 날만 최 씨 집에 사람들이 꼬이더라고. 아마도 그 패거리들이랑 술 퍼마시느라 관리비도 못 냈을 걸?”

이웃들 말에 따르면, 최 씨는 아마도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살았던 것 같다. 삶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 따위는 이미 폐기한 상태라서, 필요한 것은 단지 죽지 않을 정도의 먹을 것과 누울 수만 있는 이부자리 정도만 있으면 되는 그런 삶 말이다.

그러나 최 씨의 삶이 막다른 골목까지 간 것은 불과 3~4년 사이라고 한다.
최 씨가 6년 전 이 아파트로 전입할 당시부터 그이를 알고 지냈다는 정명희 씨(통장)는 “이사 와서 처음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목수 일을 하던 소박하고 조용한 이였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 

 
최씨가 화재로 사망한 장소  
최 씨가 이렇게까지 삶을 놓아버린 이유가 뭘까.
한 개인이 살아낸 시간이나 감당했어야 할 고통을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른 짓이다. 더구나 고인에 대해서라면 더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그러나 정 씨 말을 들어보면, 어렴풋이나마 짐작은 할 수 있을 듯 하다.

“최 씨는 부인이 집을 나가면서 술을 마셔댄 것 같아요. 몸 도 극도로 나빠졌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주변에 아무도 없지, 장애는 점점 심해지지, 최 씨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사람이 무너지는데 3~4년이면 길죠. 최 씨는 아마 죽고 싶은 단계를 넘어선 상태였을 거예요.”

평화동사무소 사회복지전문요원에 따르면 최 씨는 버거씨(손이나 발, 주로 무릎 아래의 동맥이나 정맥이 염증 등 때문에 막히는 질환. 조직이 손상, 감염, 괴사가 생김) 병을 앓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청결이나 위생 따위는 지나가던 개에게나 던져 줄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웃들이 좋아할 리 없고, 그이는 점점 고립됐을 것이다.

이웃들은 최 씨가 생계비 받는 날에는 유독 사람들이 그 집에 모여 술을 마셨다고 전했다.
거꾸로 말하면, 그 날은 최 씨가 유일하게 사람들과 어울려 보는 날이기도 한 것이다.
외로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파먹는지를. 혹시 최 씨는 한 달 치 목숨 값과 술을 맞바꿨던 건 아닐까.

아파트 관리소에 따르면 단지에서 대략 8백 세대가 기초생활수급자고, 이 중 70%가 장애우 가구란다. 그리고 아파트 주민 40%가 매 달 관리비를 내지 못한다고.
최 씨처럼 임대료를 못내 쫓겨나면 밀린 임대료가 보증금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보증금까지 다 털리고, 그야말로 빈손으로 길바닥에 나앉는다

대한주택공사 전주지사 판매팀은 “밀린 임대료 때문에 손실을 크다. 주공도 회산데, 손실만 볼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평화동사무소 사회복지전문요원은 “본인이 원한다면 갈 곳이 왜 없겠나. 노숙자 쉼터도 있고, 시설도 있다.” 고 말했다.

돈이 없어 임대료도 못 내고,
병원도, 시설도 마다해 갈 곳 없던 최 씨는,
한겨울, 자기가 살던 아파트 단지 안에서,

불. 에. 타. 죽. 었. 다.
작성자최희정 기자  prota10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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