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대책 없는 단속이 부른 또 하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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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노점상 김재훈 씨가 지난 달 17일 노점단속을 받던 중 사망했다.
그러나 관련구청에서는 김 씨가 사망한 지 열흘이 지나도록 관련자 처벌과 용역회사 직원을 동원한 노점단속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김 씨 외에도 그동안 많은 장애우노점상이 단속 도중 사망했음에도 뚜렷한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 이유와 그 대안을 알아보았다.
장애우 노점상 단속도중 또 사망
지난 2월 17일 오후 3시 40분 서울 강남역 1번 출구 농협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던 청각장애우 김재훈(61) 씨가 강남구청 가로정비계 주임을 비롯한 용역회사 직원 11명에게 단속을 당하던 중 쓰러져 사망하는 사건이 또 다시 발생했다.
김 씨 유가족측이 설명하는 사건 경위는 이렇다. 당시 김재훈 씨가 다마스트럭을 운전하고, 김 씨 부인 유영숙(가명) 씨가 트럭 위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던 중 갑자기 용역 단속반이 들이닥쳤고, 이중 한 명이 먼저 가스통의 호스를 잘랐다. 이를 본 김 씨가 차에서 내리자 또 다른 단속반 한 명이 김 씨의 몸을 붙잡고 다른 한 명은 김 씨의 차의 꽂혀 있던 차 열쇠를 빼앗았다. 이를 본 김 씨가 그것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단속반은 이를 무시하고 5m쯤 걸어가다 김 씨와 김 씨의 부인이 차 열쇠를 달라고 계속 요구하자 김 씨의 몸을 향해 열쇠를 던졌다. 그 과정에서 열쇠를 받으려던 김 씨는 열쇠를 받지 못하고, 날아오는 열쇠의 좌측머리를 정통으로 맞아 잠시 휘청하다가 맨 땅에 쓰러진 채 즉사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불과 10여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가로정비계 주임과 용역직원은 쓰러진 김 씨를 병원으로 먼저 옮기지 않고, 현장에서 이를 목격한 다른 노점상들에게 이 사실을 발설하지 말라고 입단속부터 했다고 한다. 대신 다음번에 노점단속을 할 때 눈감아 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흘 뒤인 20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김 씨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김 씨의 좌측머리 3cm가 함몰됐고 심장마비, 뇌진탕이 김 씨의 사인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사건 다음 날인 18일 오전 강남구청 건설관리 국장이 돈봉투를 가지고 유가족을 찾아와 이 일을 조용하게 처리하자는 뜻을 비쳤다. 그러나 김 씨의 유가족은 이를 거절하고 강남구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해 같은 날 오후 전국노점상연합회(이하 연합회) 회원과 함께 권순영 강남구청장을 만나 유가족들에게 공식사과할 것과 관련자 전원을 처벌할 것, 유가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것,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반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유가족들의 요구에 대해 권 구청장은 그 자리에서 이 요구안을 모두 들어주겠다고 구두로 약속을 했다.
그러나 19일 권 강남구청장은 김 씨의 시신을 안치한 상계동 을지병원 영안실로 찾아가 유가족에게 무릎을 꿇고 공식사과한 후, 장례비 1천만원과 유가족생계지원금 1천8백만원을 지급하고 사건현장에 가판대를 세워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해 유가족과 단독으로 합의를 마쳤다.
그러나 뒤늦게 이 사실은 들은 연합회측은 “강남구청이 유가족과 합의를 했다 해도 관련자 처벌과 용역회사 직원을 다시는 고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아직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강남구청측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구청장의 해임까지도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 씨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5일이 지난 2월 27일까지도 강남구청측에서는 관련자 처벌과 용역회사해체 부분에 대한 해결을 미루고만 있다.
노점은 생계유지위한 마지막 수단
그 동안 노점단속 중 과잉단속으로 노점상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례는 김재훈 씨 외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리고 이들 사건 중 유난히 장애우 노점상이 많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만 봐도 95년 테이프를 팔다 구청 노점단속에게 리어카를 빼앗겨 항의하던 중 몸에 신나를 뿌리고 분신한 최정환 씨, 같은 해 12월 인천 아암도에서 노점철거에 맞서 시위하던 중 사망한 이덕인 씨 등의 사례가 있다. 또 뇌성마비장애우 이동원 씨는 96년 1월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다 의경에게 붙잡혀 구타당하고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장애우 노점상의 죽음이 빈번히 일어나는 이유는 장애로 인한 불가피한 신체여건이 초래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른 일반 노점상들은 단속반이 나오면 모두 자리를 옮기거나 신속하게 잠시 장사를 철거한다. 단속반이 그 지점을 지나간 후에는 다시 장사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체장애우의 경우 급히 이동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단속반과 직접 부딪치거나 구청 혹은 경찰서까지 붙들려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도 있다. 3백인이상 기업의 장애우 고용률이 0.46%에 불과한 현실에서 가장으로서 가정을 돌봐야 할 다른 장애우들은 기업체 취업이 아닌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영업을 하기에는 자금이 부족하고, 쉽게 융자를 받을 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장애우들이 가장 쉽게 나설 수 있는 일이 노점상이다.
연합회측은 1백만 명에 달하는 전국의 노점상 가운데 장애우 노점상은 이중 약 10%를 차지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즉 약 10만 명 가량의 장애우 노점상이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김재훈 씨 역시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번에 사망한 김재훈 씨의 부인 유 씨는 이렇게 말한다.
“매일같이 단속반에 쫓기고, 물건 뺏기고, 운 나쁘면 구치소에 갇혀 하루 번 돈 보다 더 많은 벌금까지 내야 하는데 우리라고 노점상을 하고 싶겠어요? 6년 동안 붕어빵 장사하는 사실을 친척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는 데도 노점을 하는 것은 순전히 먹고 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장애우 노점상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 보다 이들을 더 강력히 단속하기 위해 용역회사에 노점단속을 맡기는 일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
일선 노점상들은 “차라리 공무원들이 직접 단속을 하면 그렇게까지 무지막지하게는 단속하지 않는데 대부분 전과자 출신인 젊은 용역 단속반은 인정 사정이 없다. 공무원들이 그런 사람들을 선호하는 이유도 혹 단속하다가 노점상들과 불미스러운 마찰이 생겨도 이미 전과가 있는 용역 단속반들에게는 그 일이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하기도 했다.
연합회 이영남 부회장에 따르면 이들 용역 단속반의 한 달 월급은 80~1백만원 가량이라고 한다. 지금은 비용문제로 용역회사에 맡기는 구청이 많이 줄긴 했지만, 비교적 재정 사정이 좋은 강남구나 서초구의 경우는 여전히 용역회사와 계약을 하고 단속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93년 서울시 각 구청이 용역회사에 지출한 예산만도 약 1백억 원 가량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근본적인 생계대책을 마련해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렇게 많은 인력과 예산을 들여가면서 노점을 단속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980년대 들어 83년부터 88년까지 잇따른 국제 행사에 따라 도시 미관과 국제적 이미지 손상이라는 이유로 노점 단속이 시작됐다. 그리고 노점을 하다 걸리면 음반거래법과 식품위생법, 도로교통법위반이라는 명분이 붙어 이를 위반할 경우 최하 5만원에서 몇백만 원의 벌금이 부과되고 있다.
이렇게 대책 없는 노점단속에 대한 도시빈민들의 반대가 심해지자 정부는 89년 90년 전국에 150여 개의 풍물시장과 서울시내 가판점 1천여 개를 설치해 장애우와 생활보호대상자 등에게는 가판을 인정해줬다. 그러나 이 정책 역시 해를 거듭함에 따라 관리가 부진해져 현재는 풍물시장도 철거기로에 놓여 있고, 서울시의 가판점 역시 일부 매매가 되는 등 사유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정부는 지하철 1,2,3호선 신문 가판운영권을 각각 어린이육영단체, 장애인재활협회 등에 맡겼으나 실질적으로 그 수익이 많지 않아 장애우 개인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관계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 동안 각 구청에서 노점단속구역을 세 가지로 분류해 노점을 일부 인정해 주기도 하는 등 해결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한다. 즉, 서울역, 광화문, 신라호텔, 천호대교 등 외국인과 고위층이 자주 다니는 귀빈로는 노점절대금지구역, 해가 진 이후 혹은 노점가능시간을 정해서 그 동안만 노점을 허용하는 잠정허용구역, 하루 종일 노점을 해도 되는 기타구역으로 나누어 노점상들의 편의를 봐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노점허용지역에서 노점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적지 않은 수가 지리적 위치가 좋은 노른자위 위치에서 노점을 통해 상당한 돈을 모은 소액 재벌노점들이라는 것이 일부 노점상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영세노점상들은 여전히 불법적인 노점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국노점상연합은 선진국처럼 노점상 완전 합법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국가에서 노점상들이 노점을 할 수 있도록 관광유원지 등에 풍물의 거리를 조성해 노점을 하고, 세금을 내는 신고제를 도입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89년 결성된 전국노점상연합회는 지난 93년 야당 국회의원 8인의 추천과 전국에서 5만 명의 서명을 받아 노점상 완전 합법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안은 결국 여당 의원들의 거부로 부결되고 말았다. 연합회는 계속해서 노점특별위원회를 구성, 노점상 특별 보호법 제정, 전국노점상연합회 합법화, 노점상 직능 단체 구성, 신규 노점상에 대한 대책 마련 등의 요구안을 가지고 활동해 오고 있다.
연합회 이필두 의장은 지난 2월20일 열린 98 빈민대회에서 “지난 92년 대통령선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노점연합회를 만나 노점자율공단을 설치 운영하는 방안에 대한 공약을 발표했다. 또 지난 대선 때도 이와 같은 공약을 제시했으므로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을 3월 내로 만나 그 공약을 지킬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IMF로 인해 실업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3월 면담이 있기 전이라도 장애우와 도시빈민층의 생계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장애우노점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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