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에서 날아온 도깨비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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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에 나오는 호랑이와 함께 도깨비도 그 무서움의 외양을 뛰어넘는 정겨움을 가지고 우리네 정서의 밑자락에 흐리고 있다.
한밤중 오솔길을 막고서 씨름 한 판을 제의하는, 그래서 끙끙대며 밤을 세운 뒤 달랑 부지깽이나 나무토막을 두고 사라지는 익살꾸러기 도깨비, 사악함을 물리치는 벽사의 역할도 수행하며 늘상 우리 곁에서 맴도는 도깨비, 그의 순진함을 은근슬쩍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재물과 행운을 한아름 던져 주기도 하면서.
그 때문일까. 도깨비는 두려움의 대상이기 보다는 친구처럼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권선징악의 대리인이 되어 사람들의 잘못과 선행을 도맡아 처리하는 데도 한몫을 한다. 언제, 어떻게 도깨비가 비롯되었는지를 굳이 알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건 마치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만 시선을 두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도깨비 이야기의 백미는 누가 뭐라해도 신기한 방망이를 손꼽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싶어하는 요술 방망이.
살아가면서 삶이 부룩 내던져주는 막막함과 힘겨운 생활의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우리는 상상이지만 도깨비 방망이의 출현을 갈구한다. 지친 영혼과 병든 육신을 쉬게 해주는 샘물 같은 작용을 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오늘 내게 하나님의 은총으로 도깨비 방망이를 단 하루 동안만이라도 주어진다면 이렇게 사용하고 싶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여기 소록도의 환우들을 위해서 최대한 시간을 아끼며 골고루 방망이의 안마를(?) 해드리고 싶은 것이다. 문드러지고 오그라든 손에 살짝 두드리며 이렇게 하늘에다 외칠 것이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여, 곧고 길게 온전하게 나와라, 뚝딱!”몽당발이 된 발가락에도 대지를 힘차게 밟고 걸을 수 있도록 제 모양과 기능을 달라고 방망이를 뚝딱 칠 것이다. 앞이 안 보이는 분들에게는 두 눈에 가만히 방망이를 댄 후 또 이렇게 말할 것읻. “노란 나비의 나풀거림을 보게 하시고, 파란 하늘의 흰 구름을 보게끔 환한 세상을 내려주소서, 뚝딱!” 하반신이 마비된 분의 허리에다 도깨비 방망이를 통통통 두드리며 말하리라. 피돌기가 이루어지고 근육이 되살아나서 휠체어도 목발마저도 던져버리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걷기를 뚝딱!
손발이 잘리운 분들에게는 새로운 생명같은 육신의 회복을 선물할 것이다.
가진 것 없는 이분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자존심의 보루인 절반의 육신에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는 도깨비 방망이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많은 돈을 벌어서 높은 지위에 오른 후에는 이웃들을 돌보고 베풀 수 있다고 착각한다. 지금 가진 것이 없으니까 주로 물질적인 토대와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쯤에 주위를 돌아보겠다고 자위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도깨비 방망이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 자신의 몫으로 충분히(?) 곳간에 쌓아두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멈추지 않는 소금이 나오는 맷돌과 함께 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어리석음을 초래할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소록도에는 현재 천여 명의 늙고 병들은 이들이 하루하루를 하늘의 뜻에 순종하고 현실을 묵묵히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다. 이분들의 삶은 더 없이 안타까운 조건임을 소록도에 한 번이라도 찾아와서 보신 분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상상만으로 도깨비방망이가 이 세상으로 온다면 옛날이야기처럼 동네에서 조용히 소문난 효자가 효녀들과 거짓없이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날아올 것이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오늘날에 가장 낮은 이곳 소록도에서 살아가는 이 분들에게 하루만이라도 주어져 병을 고치게 해주길 바랄 뿐이다.
글/ 김재준 (소록도 자원봉사자 지체장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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