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유학생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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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생에 동등한 혜택주는 미국의 대학
만5년이라는 그리 짧지 않은 유학기간 동안 사실 낯선 곳에서 생활과 공부에 익숙해지기까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고 알게 모르게 많은 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유학기간 동안 소속대학에 등록한 학생으로서 다양한 지원서비스를 제공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우선 내가 공부했던 미네소타대학의 경우 장애학생지원서비스를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 학교에 입학한 장애학생이 이 사무실에 등록하면 예를 들어 노트필기 뿐만 아니라 장애의 특성상 시험이나 과제물 제출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 그 학생이 직접 교수에게 말하지 않아도 담당 상담원이 대신 해준다. 담당 상담원은 해당 학생과 동일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 배정된다는 점도 특이할 만했다.
또 필기가 어려웠던 나는 대부분 컴퓨터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일정한 양식안에서 작성해야할 서식은 사무실의 담당자와 미리 약속을 하고 가면 그때 그때 아르바이트생을 구해 작성을 도와주기도 했다, 만약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기술자가 기숙사나 아파트로 직접 출장을 나와서 고쳐주었다. 물론 그 경비는 전체 프로그램 운영비에서 지출되었다.
한편 이동의 측면에서 메트로 모빌리티라는 이동서비스가 제공됐는데, 처음 등록을 하면 다음주부터는 전화로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하면 다른 주에 가더라도 그 지역의 서비스와 연결될 수 있었다.
의료보험의 경우는 대학 등록 필수요건 중의 하나였는데, 기본적인 진료는 교내 보건소에서 받고 좀 더 복잡한 진료는 대학병원에서 다른 일반 환자들과 동일하게 적용받되 장애로 인한 특별한 진료항목에 대해서는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필자는 치과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뇌성마비 장애로 인한 특수촬영과 마취를 해야 했지만 나중에 받은 청구성에는 일반 진료비만 기재되어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볼 때 미국 사회의 논리체계로는 나와 같은 장애우가 어디에 속해있느냐, 그리고 장애로 인해 어떤 서비스가 더 필요한가를 결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국적의 요건은 그보다 한참 나중의 문제였다.
글/ 안상희 (한국소아마비협회 정립회관 사회복지사)
아무런 지원 없었던 한국의 대학
한국의 단국대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느라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타향살이의 고달픔 뿐만 아니라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사실 때문에 여러 불편함을 겪기는 했다. 이동편의를 위해 자동차를 구입했으나 세제감면과 같은 혜택은 차치하고라고 장애우스티커를 발급받지 못해 장애우 전용주차장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도 일반 차량의 주차공간에 차를 세워 먼 거리를 걸어 들어가야 했다. 또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아파도 비싼 치료비 때문에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특수교육을 전공하기 전 잠시 한국내 화교학교의 교편을 잡으면서 알게 된 몇몇 화교인 장애학생들의 심각한 상황에 비하면 말이다.
준이라는 다운증 아이는 간신히 초등학교 과정은 졸업했으나 그 과정에서 특수교육적 지원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했다. 또 경증 정신지체아인 영이라는 아이도 준이과 똑같이 초등학교 과정만 마치고 동네에서 그저 아이들의 놀림을 받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었다. 시작장애우인 선진이는 가정형편상 학업을 계속하기가 어려워 집안에서만 매일매일 보낸다고 했다. 그 아이들의 부모는 직장일로 바쁘고 외국인으로 한국에 살면서 체득할 수밖에 없었던 체념과 포기의 심정 때문에 자녀를 위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주위의 자문을 구하는 일조차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장애우이고 특수교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주위 화교인들 가운데 그런 사연을 전하며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국적이 다른 장애아들이 한국 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여러 치료 혹은 교육기관을 소개하는 센터가 세워져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화교인의 경우 대만으로 돌아가면 받을 수 있는 여러 복지혜택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주고 싶었다.
한국 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바로 화교일테지만 다른 나라 국적의 장애우들이 혹 한국에 살고 있다면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몹시 궁금하다.
결국 나는 졸업 직후 대만으로 돌아갔지만 장애우기관에서 일하면서 또 이 글을 쓰기 위해 대만의 경우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대만도 결국 외국 국적의 장애우들에게는 한국 사회와 비슷한 수준의 여러 제한규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망설여지는 점이 있긴 하다. 그러나 장애우라면 국적에 관계없이 어느 나라에 있더라도 진정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보다 나은 삶의 질의 구현을 위해 끊임없는 지원을 제공하도록 모든 나라가 노력해나갔으면 하고 간절히 바랄 뿐이다.
글/ 왕아이리 (대만 타이페이시 만반발전중심 성인훈련조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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