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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와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숨결이 살아있는 지면 만들기 10년

[함께걸음이 창간 10주념 특집] 함께걸음 10년 돌아보기

본문

  지금으로부터 꼭 11년 전인 1987년 12월. “장애우들에게도 문명의 동반자로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내외에 선언하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설립됐다.
  장애계와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설립된 연구소는 처음 사업으로 1988년 3월 장애우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월간지 ‘함께걸음’을 창간했다.
  그로부터 10년, 함께걸음은 대여섯 차례 합본호를 내긴 했지만, 폐간하지 않고 명맥을 이어오면서 우리 나라 유일의 장애우복지 월간지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일한 장애우 월간지 함께걸음

  흔히 사회의 소외계층으로 분류되는 장애우 대상 월간지가 창간 10년을 맞는 것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가 드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선진국에서는 장애우 월간지도 상품성을 인정받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나라에서 발행되고 있는 거의 모든 잡지들이 기업광고에 의존해 발행되고 있는 실정에서 “장애우는 소비계층이 아니다”라는 기업 홍보 담당자들의 편견으로 광고를 포기한 채, 그로 인해 심각한 재정난을 겪으면서도 창간 10년의 명맥을 이어온 잡지는 함께걸음이 거의 유일한 잡지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간 함께걸음은 가중되는 심각한 재정난으로 수 차례 폐간 위기를 겪어야 했다. 농담반 진담반이지만 연구소 직원들은 함께걸음 10년 속에는 중형 아파트 서너 채가 고스란히 묻혀 있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재정난이 심각했다는 뜻이다.

  이런 재정난을 이기고 함께걸음이 발행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함께걸음의 발행 목적인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더불어 사는 세상, 장애우가 차별받지 않는 참 좋은 세상을 이우기 위해 함께걸음 발행이 꼭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진 발행인을 비롯한 연구소 관게인사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사자인 장애우들의 성원이 큰 힘이 됐는데, 함께걸음 창간 원년인 88년 장애우들은 매달 수백통의 편지를 보내오는 놀라운 성원을 보여줬다. 이런 희생과 성원이 밑받침이 돼 함께걸음 10년이 가능할 수 있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이것이 문제다’로 비리 파헤쳐

  1988년 3월호가 창간호인 함께걸음은 당시 국판 54페이지 분량으로 비매품으로 발간됐다. 함께걸음 창간 당시 함께걸음이 주목받은 것은 창간호부터 장애우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개선의 일환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친근한 벗이라는 뜻을 가진 ‘장애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함께걸음이 창간될 당시 장애우라는 말은 사회적으로 무척 생소한 단어였다. 그 전에는 ‘불구자’라는 단어가 장애우를 부르는 단어로 널리 쓰였었고, 88장애자올림픽을 앞두고 비로소 ‘장애자’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러한 때에 함께걸음이 ‘벗 우(友)’ 자를 끌어들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장애우라고 부르기 시작하자 장애계 일부에서는 함께걸음이 너무 튀는게 아니냐며 우려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대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장애우’라는 말은 ‘장애인’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부르는 단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진보적인 잡지인 월간 ‘말’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에서 내는 간행물애 점차 장애우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장애계 내부에서도 장애인 대신 장애우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 점 함께걸음이 10년을 버텨오면서 장애우 인식 개선에 공헌한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장애우에 대한 인식개선 외에 함께걸음이 천착한 문제는 장애계 내부 비리에 대한 고발이었다. 장애우 복지가 막 싹틀 무렵인 88년 장애계 내부에는 장애우 복지를 빙장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시설과 사이비 자선 사업가들이 유난히 많았다.

  88년 10월호부터 함께걸음은 ‘이것이 문제다’ 라는 코너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사이비 복지사업가들의 비리와 산적한 장애계 문제를 추적 보도하기 시작했다.

  ‘본드작업, 감금방, 사망, 드러난 복마전’, ‘장애우 추행, 그리고 도처에 널려 있는 인권유린의 덫’ ‘정점에 도달한 장애우 복지시설 비리, 그 끝이 안 보인다’와 같은 기사를 통해 그동안 사회적 무관심 속에 자행되어 왔던 수많은 비리와 인권유린상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함께걸음이 이런 시설 비리를 추적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일부 장애우 시설에서는 뒤가 구린 시설장들이 함께걸음이 배달돼 오면 불온한 잡지(?)라며 몰래 폐기한다는 제보가 들어오기도 했다.

  시설 애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함께걸음은 창간 때부터 지금가지 규모가 큰 수용시설은 소개하지 않는 다는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이는 비리 여부를 떠나 큰 장애우 수용시설로 대표되는 사회의 장애우 격리에 대한 거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설 뿐만 아니라 한 달 평균 세 건이나 실린 ‘이것이 문제다’는 장애계 단체들의 문제점도 추적 보도했다. 그러면서 함께걸음의 취재망에 걸려든  신체장애인복지회, 지체장애인협회, 재활협회, 정립회관 등 단체 관계자들의 원망을 듣기도 했다. ‘이것이 문제다’는 그 후 시설 비리 뿐만 아니라 장애우 교육문제, 노동문제, 차별문제 등으로 폭을 넓히면서 장애우 문제의 감시자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장애우 운동지, ‘함게걸음’

  함께걸음이 창간될 당시인 88년은 우리나라에서 장애우운동이 막 시작된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해 4월 18일에는 서울 명동에서 장애생존권 보장을 위한 대규모 시위가 처음 벌어졌다. 이렇게 장애우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함께걸음도 운동지 성격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함께걸음은 수시로 모든 장애우들의 단합을 촉구하는 내용의 글을 실었으며, 89년에는 최초로 장애우 운동의 이론 정립을 모색하는 논문을 5회에 걸쳐 싣기로 했다. 그뿐 아니라 장애인고용촉진법제정 및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위한 전 장애인공동대책위원회 발족 소식을 발빠르게 전하면서 장애관련 양 법안 제개정을 위한 장애우들의 투쟁에 함게 했다.

  함께걸음 90년 3월호에는 ‘반민주 3당 야합과 장애우 운동의 새로운 국면’이라는 글을 실어 보수대연합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당시 삼당 합당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 후에도 특집으로 ‘4월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광주 민중항쟁과 장애우’ 등을 다루면서 사회운동과 장애우 운동의 접목을 시도하며 장애우 운동지로서의 성격을 자리매김했다.

  장애우 운동지로서 함께걸음의 성격은 90년 10월부터 연재되기 시작한 일본장애우운동가 구스노끼 도시오의 ‘장애 해방이란 무엇인가?’의 번역 연재로 이어졌다.

  그리고 96년 11월호부터는 미국 장애우 운동을 본격적으로 다룬 ‘동정은 싫다(No Pity)'를 연재해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함께걸음의 번역 연재는 운동 뿐만 아니라 각국의 장애우 일반 고용과 중증장애우 보호고용 실태를 자료로 연재하기도 했고, 외국의 장애우 관련법 실태를 연재하기도 했으며 번역 연재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는 직접 해외에 나가 해외의 장애우 복지와 해외 장애우들의 사는 모습을 취재 보도해 독자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1993년 6월호부터 연재한 ‘세계의 장애우 그 현장을 가다’ 코너에서 일본, 미국, 독일, 노르웨이의 장애우 복지실태를 다뤘으며, 94년 2월호부터는 호주장애우복지현장에 대한 생생한 기사를 싣기도 했다.

 
다양한 기획물로 독자 호응 얻어

  장애우들의 권리 찾기도 함께걸음이 주목한 중요한 기사거리였다. 함께걸음은 장애우에 대한 차별이 생길 경우 외면하지 않고 차별철폐를 주장하며 함께 했다. 장애우 1종 면허 허용 문제, 몇 차례 이어진 장애우 공무원 탈락 사건 등 장애우에 대한 차별이 있는 곳에 늘 함께걸음이 있었다.

  그리고 장애우 접근권 확보와 관련해서는 직접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함께걸음은 95년 4월부터 ‘장애우 편의시설을 확보하자’는 캠페인을 벌여 서울 교보문고 편의시설과 관련해서는 네 차례에 걸쳐 끈질기게 보도했고, 그 후에도 법원, 세종문화회관, 종로구청의 편의시설 미설치 사실을 보도해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밖에도 95년 11월부터는 ‘중증장애우의 세상보기’라는 제목으로 역사 기행을 직접 주관해 중증장애우들과 함께 여주 신륵사, 철원 비무장지대, 독립기념관 등을 둘러보기도 했다.

  또한 함께걸음은 많은 기획기사를 실어 장애우복지에 기여하기도 했다. 오래 전 ‘지방자치와 장애우 복지 문제’를 두 차례에 걸쳐 다뤄, 지방자치가 장애우 복지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을 예견했다. 97년 1월호부터는 ‘21세기 장애우 복지의 과제, 탈시설화’ 문제를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해 장애우가 지역사회내에서 주민들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89년 5월호에는 독자 2백여명을 대상으로 ‘장애우복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또 92년 3월에는 ‘장애우의 정치의식, 그 오늘과 내일’이라는 제목으로 서울 경기지역 장애우 1백42명을 대상으로 최초로 장애우 정치의식을 조사 보도하기도 했다. 이어 창간 100호인 97년 5월호에는 장애문제를 다루는 일반 언론의 관점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실시해 언론의 장애우 보도에 문제가 많다는 설문 답변자 87%의 지적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함께걸음은 꾸준히 통합교육 환경을 점검하는 한편으로 통합교육을 확산시키기 위해 96년부터는 ‘통합교육 부모 수기’를 장기 연재하기도 했다.

  이런 기획물 외에 함께 걸음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땅에서 장애우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애우들의 생생한 삶의 얘기였다.

  91년 2월호에 장애우 부부 예상덕 할아버지와 이순영 할머니의 훈훈한 삶의 이야기를 처음 ‘사람사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기 시작한 함께걸음은 그 후 성민이 엄마 모순애 씨, 말단비대증이라는 희귀한 장애를 가진 박정복 씨, 빈민장애우 심의섭 씨, “하나님, 아파유. 아파유.”라고 절규하며 사는 절단 빈민장애우 오임순 씨, 청각장애인 이인섭, 하와수 씨의 사는 얘기로 이어지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함께걸음의 사람사는 이야기가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것은 성공한 장애우가 아닌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고 있는 장애우들의 생생한 실체를 보여줬다는데 있다. 막연히 장애우는 어렵게 살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빈민 장애우들의 생생한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장애우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는 사실을 거부감 없이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람사는 이야기 외에도 함께걸음은 92년 10월호에 ‘장애우 노동자 최준호 열아홉살의 비망록’, 이후 백원욱, 박승학, 최정환 시 등 장애우로 태어나 가난과 장애의 고통에 시달리다 끝내 스러져가야 했던 장애우들의 얘기를 가감없이 전달해 장애우 문제의 사회문제화에 공헌해 왔다.


참 좋은 세상이 이루어질 그 날까지

  한편 함께걸음은 장애문제 분만 아니라 사회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보도했다. 함께걸음이 르포 기사로‘코리안 드림을 찾아나선 외국인들의 실태’와 ‘서대문 결핵 환자촌’ ‘서초동 비닐하우스촌’ ‘무너진 농촌의 꿈과 현실’ 등 어려운 삶의 현장을 찾아가 그들의 사문 모습을 보도한 것은 장애 문제와 사회문제가 별개의 것이 아닌 연결된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이렇게 장애문제의 사회화에 열중하면서 함께걸음은 또한 감시와 정보 제공이라는 언론의 역할 중 후자쪽인 정보제공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89년 9월호부터 금은세공사 정용학 씨를 소개하면서 그 후 장애우에게 적합하고 전망 밝은 자영업 소개를 거쳐 장애 관련 모든 정보를 망라한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정보’를 현재 연재하고 있다.

  그리고 ‘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코너에서는 96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을 장애우 언론 사상 최초로 직접 인터뷰한 것을 비롯, 그간 이수성 전 국무총리, 복지, 노동, 교육부 장관, 문화인인 공옥진, 문성근에 이르기까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만나 대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밖에도 함께걸음은 그간 ‘그림으로 읽는 장애우 이야기’ 연재, 신문 모니터로 시작된 ‘이현준의 장애우의 세상 형편’ 연재, ‘장애우 교육 그 힘겨운 대안 찾기’ ‘장애우 고용 이제 돌파구를 찾자’ ‘긴급제안 복지예산을 증액하자’ 는 등의 특집기사를 마련해 장애우 복지와 인권 전문지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제 함께걸음은 97년 5월호 창간 1백호를 거쳐 이번 98년 3월호로 창간 10주년을 맞는다. 창간 10주년을 맞는 함께걸음의 현재 모습은 국배판형 68페이지 칼라지면이다. 예전과는 달리 제작비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운 실정에서 칼라 지면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장애우 언론의 자존심 때문이다.

  이번 호로 창간 10주년을 맞는 함께걸음은 지금가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장애우 인권과 복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며 묵묵히 주어진 길을 갈 것이다.

  함께걸음이 가야 할 길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산적해 있겠지만, 함께걸음만이 걷는 외로운 길이 아니라 함께걸음의 발행 목적인 ‘모두가 더불어 사는 참 좋은 세상’을 염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동반자로서 함께 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성자함께걸음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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