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커피 한 잔에 장애우 사랑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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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에 있는 대한성공회 성당에 들어서니 복음성가는 아닌 듯한 가락이 은은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가 보니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가 오래 입어서인지 주름이 많이 간 엷은 갈색 생활한복을 입고 커피를 팔고 있다.
주인만 보면 전통찻집을 연상케 하는 풍경인데 가까이 가보니 판매대 앞에는 ‘정신장애우를 위한 커피마당’이라는 작은 종이팻말이 있다. 커피를 파는 노신사는 다름아닌 대한성공회 김성수 주교였다.
“아예 다른 사람들한테 김 마담이라고 불러 달라고 해요. 다들 주교님 보러 왔다고 해서 제가 자리를 비울 수 없어요”라며 김성수 주교는 새로 찍은 것이라며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명함에도 커피마당 김 마담이라 적혀있나 하고 봤더니 앞면에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회복지법인 우리마을 원장 김성수’라고 적혀있고 뒷면에는 우리마을 설계도가 그려져 있다. 김성수 주교가 커피를 파는 것과 명함에 적힌 우리마을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먼저 우리마을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어보았다.
간략하게 말하면 우리마을은 정신지체 장애우 직업훈련원쯤 될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기존의 장애우 직업훈련원과는 다르다. 통학이 가능한 학생은 통학을 하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도록 할 방침인데 한 방에 두 명씩, 방 두 개에 사는 네 명의 학생이 한 가족처럼 담임 선생님과 함께 밥도 직접 지어 먹으며 사는 일종의 그룹홈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배우는 기술도 기존의 직업훈련원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좀 다르다. 단조로우면서도 반복이 가능한 일에 적응을 잘하는 정신지체장애우의 특성을 살려 애완동물 키우기, 농사짓기, 세차하기 등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김성수 주교가 정신지체장애우의 특성과 그들에 맞는 직업 훈련을 구상해 낼 수 있었던 것은 1974년 설립한 정신지체 장애우학교인 성베드로학교의 설립자이며 현재 명예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만큼 그들과 늘 가까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성베드로 학교는 초등부부터 고등부까지 있다. 그런데 고등과정을 마쳤지만 일자리를 갖지 못해 더 이상 갈 데가 없어 그냥 집에만 있는 것이 안타까워 김 주교는 몇 년 전부터 졸업생들을 다시 학교에 나오게 해 후배들이 공부하는 것을 돕게 하고 심부름도 시키고 학교청소도 시켜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졸업생들이 이 일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잘 해내는 것을 보고 ‘우리 학생들을 집안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 일을 하게 한다면 살아가는데 더 많은 긍지를 갖겠다’ 싶어 김 주교는 우리마을을 건립할 계획을 세우게 됐다는 것이다.
김 주교는 97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손학규 씨에게 우리마을 설립계획을 설립하며 지원요청을 해 20억원 지원약속을 받아냈다. 여기에 김 주교가 강화도에 있는 집안 선산의 땅 중 2천 평을 우리마을 복지법인에 희사함으로써 올 8월말 시공에 들어가 내년 3월에는 직원 및 학생을 모집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마을의 기숙 학생 모집인원은 30명이고 서울에서 강화도까지 통학하는 데는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면 정신장애우를 위한 커피마당은 어떻게 구상하게 된 것일까? 김 주교의 계획을 아는 한 전도사가 성당마당을 놀리느니 커피라도 팔아서 우리마을 운영기금에 보태자는 제안을 해 올 봄부터 커피판매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루종일 하는 건 아니고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낮 12시부터 1시까지 1시간 동안 한다.
대한성공회 김성수 주교가 커피를 판다는 소문이 퍼지자 오비맥주와 코카콜라회사에서 무료로 파라솔과 탁자 및 의자를 제공해줬고 동서식품에서 커피 끓이는 기계와 커피, 녹차, 프림, 설탕, 컵 등 재료일체를 제공해줘서 큰 자본없이 이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사연으로 문을 열게 된 커피마당의 커피 한 잔 값은 5백원이다.
김 주교는 이 기금으로 우리마을 학생들 부식비나 헬스기구를 사는 데 보태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려면 하루에 손님이 2백 명은 와야 하는데 막 문을 연 봄에는 손님이 1백20명쯤 되더니 최근에는 장마로 장시를 하지 못한데다 하루 손님도 30명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어느새 장사꾼이 다 된 듯한 말투로.
그러나 곧 김성수 주교는 “요 아래 남대문 시장에서 커피를 파는 할머니 한 분이 이번 수재로 하루에 3천원도 벌기 힘들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미안한지, ‘오늘 하루 공쳤구나’하는 말을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게다가 김 주교는 이 일에 어떤 사명감마저 부여하고 있다. “기금을 마련해 장애우를 돕는 것도 좋지만 시민들이 5백원짜리 커피를 사 마시면서 나도 장애우를 위한 일에 일조하고 있구나 하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도 큰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즉 물질적인 것보다 장애우를 생각하는 작은 마음이 오히려 장애우와 그 가정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김 주교의 말처럼 우리 함께걸음 독자들도 혹시 시청근처를 지날 일이 있거든 잠시 시간을 내어 대한성공회 성당에 들러 커피마당 김 마담도 만나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가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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