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 편의증진법의 시행, 그 설렘과 불안
본문
4월 11일부터 편의증진법이 시행된다. 시행규칙까지 최근 입법예고 되면서 본격적인 시행을 눈앞에 맞고 있지만 이 법이 장애우와 비장애우들의 기본적인 생활에 어느 정도의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인지 현재로서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이 법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법제정의 정신은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적 그리고 현재 사회경제적인 현실적 제약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은 전망을 갖게 하기도 한다.
과연 어떻게 차근차근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지 장애인 편의시설촉진시민모임 전정옥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장애우게 있어서 인간다운 삶의 보장, 그 출발점
장애우에게 있어서 집밖을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생명을 얻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수많은 장애우들이 아직도 1평도 안되는 공간에서 4월의 목련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라디오에서 듣던 봄소식과 텔레비전을 통해 본 경복궁의 찬란한 봄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장애우는 나이 서른이 되어 바다를 처음 보았다면서 그 감동을 글로 적어 보내기도 했다. 또 어느 장애우는 비닐하우스에서 온기도 없이 지내면서 독립을 자축하기도 했다. 이렇게 집밖에 나가기만 하면 직장도 얻고 친구도 생긴다는 환상 속에서라도 남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집밖의 세상은 그만 두고라도 그 1평도 안되는 공간에서조차 장애우는 자유롭지 못하다. 가장 기본적인 삶은 생리적인 활동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부터 출발 한다. 혼자서 화장실을 가고, 스스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등 생리적인 문제를 혼자의 힘으로 처리할 수 없을 경우 최소한으로 남의 도움을 받거나, 편의용품이나 편의시설 등으로 생리적인 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가정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장애우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데 가장 기본이 된다. 물론 완벽한 편의시설은 장애우를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던 장애우가정이 정부 보조로 양변기를 설치하고 난 뒤 장애우 스스로 생리현상을 처리할 수 있다면 그에 따라 가족들의 부담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화장실과 부엌 등이 개조될 수 있다면 장애우들은 생리현상을 걱정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음식을 해먹고 물도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곧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의 시작이 아닐까?
즉 편의시설의 출발이 집밖도 아니고 공공건물도 아니고 바로 장애우가 사는 내 집부터 출발ㅇ르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 당연한 사실을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에서 조차 장애우 주택개조 사업비용 일부 보조를 2000년으로 연기(보건복지부, <장애인복지발전5개년계획>,(1997),p.27)함으로써 포기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집 안에만 있어서 드러나지 않는 재가장애우들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제쳐두고 우선 집밖에서 활동하는 장애우만이라도 좀 더 자유롭게 해주자는 의미에서 일단 뒤로 미루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애우의 인간다운 삼은 장애우가 사는 자신의 주택에서 시작되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장애우가 사는 주택의 개선과 사회환경의 이동권과 접근권이 동시에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속으로 첫걸음, 이동권과 접근권의 보장
정부의 장애우복지시책의 기본방향(보건복지부, <장애인복지발전5개년계획>(1997),p.8)은 장애우의 복지확대, 특수교육강화, 고용촉진 등을 통해 장애우가 가족, 이웃, 지역사회와 더불어 함께 하는 사회를 구현함으로써 장애우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을 보장하는데 있다고 한다.
아마도 올 4월11일에 시행되는 ‘장애우․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편의증진법)에서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그 기반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횡단보도의 턱이 낮아지고 시각장애우들을 위한 점자 안내책자 등이 비치가 되어 있다면 집밖을 나서는데 두려움이 조금은 감소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안에만 있던 장애우들이 4월의 봄햇살을 맞기 위해 용감하게 길거리로 나서게 되면 시민들도 학교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동네슈퍼에서 장애우를 자주 보게 될 것이고, 편견이나 선입관 등의 부정적인 생각들도 점차 줄어들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집밖을 나온 장애우들이 더욱 용기를 내서 학교도 가고 직장도 얻는다면 장애우가 소모적이라는 경제적 논리도 생산성의 창출이라는 논리로 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편의증진법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18년 동안 끊임없이 편의시설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와 수많은 장애우들의 죽음이 가져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장애우의 자유로운 이동권과 접근권을 법적으로 보장받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편의증진법이라는 모양은 얻어냈지만 내용은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이제부터 우리가 그 내용을 채워야 한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해야할 몫이다.
편의증진법, 그 시행의 걸림돌
장애우의 접근권이 처음으로 법적으로 보장된 것은 편의증진법이다. 그러나 편의증진법은 전반적인 접근권에 대하여 보장하기 보다는 이동권, 특히 시설과 설비라는 측면에 치중하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서 이동권을 포함한 정보에 대한 접근권, 서비스에 대한 접근권 등까지 포괄하여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서도 접근권이 완전하게 보장되지는 못했다. 어느 면에서는 시각장애우나 청각장애우에게는 정보의 접근권이라는 면이 편의시설보다 더 보장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우들을 위한 수화통역사 등의 배치 등이 배제된 것이 바로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편의증진법에서 편의시설의 내용을 규정함에 있어서 편의시설의 종류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고, 편의시설을 위한 서비스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음으로써 수화통역사등과 같은 서비스에 관한 부분의 배제는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이동권이라는 측면에서는 기존의 장애우편의시설 및 설비의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보다 편의시설의 대상과 종류 등을 세분화하고 편의시설에 대한 강제규정 등을 강화함으로써 장애우 등의 이동권 확보는 어느정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편의증진법이 시행되면서 여러 가지 우려되는 일들이 있다. 물론 우리 사회도 이제는 성숙되었고, 따라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여러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지만, 아직도 남아 잇는 숙제들이 있다.
첫째는 예산의 문제이다. 편의시설 설치를 위해서는 당장 예산이 필요하다. 편의증진법에서도 이를 위해 편의시설 설치를 위한 특별기금에 관한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특별기금을 조성할길은 당장은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편의증진법에 다르면 강제이행금의 50%를 특별기금으로 적립하도록 하고 있지만, 기존 대상시설의 경우 2년에서 7년까지의 유예기간을 두고 있어, 짧게는 2년 후부터 길게는 7년 후가 지나야 고발을 할 수 있고, 다시 시정명령 등르 받아 강제이행금을 납부하게 되려면 또 1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므로 결국 강제이행금의 징수는 짧으면 2001년부터 기다면 2006년 후에나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그나마 강제이행금도 시행령에서 편의시설 설치비의 20/100으로 규정됨으로써 그 액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강제이행금에 의한 편의시설촉진기금의 적립은 그다지 기대할만한 것이 못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등에서 편의시설촉진을 위한 기금을 따로 예산편성을 하거나 다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하나 그것도 뾰족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또한 건물주의 경우에도 예산의 문제는 마찬가지이다. 당장 편의시설을 설치하려면 어쨌든 예산이 더 들게 마련이고 이러한 부분들이 어떻게 해결되어 갈 것인가가 당면한 문제일 것이다.
둘째는 건축가와 건물주의 이해이다. 편의시설의 문제는 건축가의 입장이나 건물주의 입장에서는 예민한 문제이다. 단 1cm의 차이가 건축상으로, 시설상으로 커다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건물주의 입장에서도 비용의 문제, 공간의 문제 등 만만찮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예를 들어 40cm 높이의 계단에 외부 경사로를 설치할 경우 승용차 2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는 셈이 된다. 따라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장애우들과 장애우단체의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건축가들의 모임과 장애우등 시민들이 함께 협의체등을 구성하여 이러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로 편의시설 설치의 관리문제이다. 시행규칙안에 따르면 지방자치제의 경우 매년 1회씩 실태조사를 하게 되어 있고, 이를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일일수도 있지만 해마다 대상 시설은 늘어만 갈 것이고, 이러한 대상 시설들을 해마다 조사하고 관리한다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결국 이 문제는 시민들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민들은 고발자이며, 이용자인 동시에 건물주일 수도 있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넷째로 경제적 상황이다. 편의증진법이 시행되는 올해, 우리 나라는 한국전쟁 이후의 최대 국난이라는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적 위기는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서 우리 모두에게 절약과 예산의 감축을 요구하고 있으며, 편의시설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일례로 도시철도 공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올해 7개 역에 32대의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하려던 계획이 예산 전체가 삭감됨에 따라 모든 계획이 99년으로 연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단지 도시철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시미들에게 또 정부나 지방자치체에게 경제위기 속에서 편의시설의 확충의 당위성을 어떤 논리로 설명해 줄 것인가의 문제이다. 경제적 위기가 해소될 때까지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자는 것이 요즘의 중론이다.
그러나 국민에 대한 복지와 이동권은 양보될 수 없는 부분이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복지가 더욱 필요하다는 논리도 허리띠를 졸라매도 몇 년 동안 더 지속될지 모른다는 IMF체제의 논리에 밀리고 있지 않는가? 더욱이 편의시설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생존의 문제와 무관해 보이기 때문에 더욱 쉽게 뒤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다. 편의증진법이 시행되면서도 자칫하면 편의시설의 확충은 후퇴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올해의 상황이다.
인간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지역운동으로의 출발
장애우의 이동권과 접근권 보장을 위한 활동의 내용들은 우선시민들의 합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우만을 위한 시설이라는 의식보다는 장애우를 포함한 이동에 불편한 노인, 임산부, 어린이 등이 활동하는데 자유롭고 편한 도시만들기 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장애우만을 위한 편의시설 등은 자칫 잘못 이용되면 장애우와 비장애우를 분리하는 분리의식으로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애우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위한 시설이라는 시민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중심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서울시, 인천시 등이 아니라 필자가 살고 있는 노원구, 장애우단체가 있는 서대문구 등 지역중심으로 전개되어야한다. 즉 그 지역의 장애우들과 구청 장애우담당자와 구의원들, 그리고 그 지역의 사회단체들과 함께 연대를 해서 살기좋고 편한 그리고 아름다운 도시만들기에 참여를 해야 한다. 주말이면 온 가족이 유모차에 어린 아이를 태우고 나와서 쉴 수 있는 공원이 있는 살기 좋은 도시, 버스 한 두 정류장은 걸어다녀도 피곤하지 않은 깨끗한 도시, 어린이들이 안심하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안전한 도시, 장애우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편리한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장애우 등의 이동권과 접근권 확보를 위한 운동의 방향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 적어도 2천년도에는 최소한 구청, 구의회, 경찰서 등 공공건물에는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를 해야 한다. 따라서 장애우등의 이동권․접근권 확보를 위한 운동의 방향은 즉 장애우들이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한 구청이나 경찰서와 같은 공공건물 보다는 누구나 자주 이용하는 슈퍼, 약국, 미장원 등과 같은 공중이용시설, 즉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편의시설의 설치와 확충이다. 바로 이것이 지역운동과 더불어 함께 가야 할 방향이다.
또한 장애두 등의 이동권과 접근권을 보장 받기 위한 미래의 전망으로 보편적 디자인에 관한 철학을 제시하고자 한다. 장애우만을 위하여 디자인된 건축물이나 시설이 아니라 장애우를 포함하여 누구나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게 디자인된 건축물과 시설들이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이다.
마지막으로 장애우들의 힘있는 목소리를 기대해본다. 앞으로 편의증진법의 내용을 그릇에 담는 것은 바로 장애우의 몫이다. 편의시설의 부재로 가장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바로 장애우 자신임을 알리고 장애우들이 편하면 누구에게나 편하다는 인식을 전달할 때이다. 그래서 장애우만을 위해 또 다른 특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우리 후손들을 위한 살기좋은 도시만들기의 일환으로 이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편의시설의 부재로 인한 장애우의 죽음을 담보로 하지 말자. 그러기에는 생명이 너무 귀하다. 이 운동은 우리들의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더 이상 이대로 참고 살 수는 없다. 최소한 내 자식이나 내 후배들만이라도 기본적인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싶은 우리의 작은 몸짓일 뿐이다.
편의시설을 최소한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조건이기 때문이다.
글/ 전정옥 (장애인 편의시설 촉진시민모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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