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도저히 생계를 이어갈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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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비관과 생계곤란 등으로 극한 상황에 몰린 장애우들이 마지막 방법으로 자살을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3월 한 달 언론에 보도된 장애우의 자살건수만 해도 총 4건으로 나타나 사상유례가 없는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미 지난 해 말부터 IMF 한파로 인해 부도 및 실직 등으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도가 끊이질 않았으나 올 3월 들어 장애우의 자살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해 그 정확한 원인분석과 대책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3월 한달새 장애우 무려 4명 자살
지난 3월 10일 오후 11시께 대구시 북구 산격1동 산격주공아파트 101동 앞 화단에서 이 아파트에 사는 1급 지체장애우 이영일(57)씨가 15층 복도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숨진 이씨는 지난해 12월 북구 산격2동 소재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일용직 노무자로 일하다가 일거리가 없어 실직했다고 가족들이 밝혔다.
또한 지난 달 12일 오후 5시쯤 서울 마포대교 남단 4번째 교각 위에서 지체장애우 이동규(53)씨가 10여m 아래 둔치로 뛰어내려 숨진 일이 발생했다. 사고지점에는 “평생 건설현장에서 노동일을 해오다 사고로 장애를 입게된 뒤 도저히 생계를 이어갈 힘이 없다”는 유서가 놓여 있었다. 경찰은 건설현장 작업반장이던 이씨가 3년 전 지게차에 치어 다리를 다치고 5급 장애우 판정을 받았으나 소속 회사가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보험료도 받지 못한 채 그 동안 생활고로 고민해 왔다는 가족의 말에 따라 처지를 비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사글세 기한을 앞둔 소아마비 장애우가 방세를 구하지 못하자 이를 비관, 부인이 돈을 구하러 간 사이 음독자살한 일도 있었다. 지난 16일 오후 10시40분께 대구 시 북구 산격4동 이재천(37 공장근로자) 씨집 안방에서 이씨가 농약을 먹고 신음중인 것을 부인 최모(36) 씨가 발견, 병원으로 옮겼으나 17일 정오께 숨졌다. 부인 최씨는 “사글세 기한을 앞두고 밤늦게까지 돈을 구하러 다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남편이 안방에 쓰러졌 있었고 옆에 농약병이 놓여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씨가 북구 노원동 소재 사출공장에서 잡일을 하면서 2백70만원짜리 사글세방 2개를 얻어 부인과 딸(7) 등 세 가족이 함께 살아왔으나 사글세 만기인 지난 달 8일 방세가 모자라 비관해 왔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
같은 날인 16일 오전 4시 20분께 부산시 동구 초량2동 성분도병원 3층 여자화장실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던 신용대(53) 씨가 노끈으로 화장실 천장 파이프에 목을 매 숨진 일이 있었다. 경찰은 숨진 신씨가 25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절단한 후 최근 신우염등 지병까지 악화돼 지난 14일 성분동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자신의 신병을 비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 위기감과 분노, 두려움이 폭발해 자살
지난 3월 한 달 동안 발생한 장애우의 자살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자살한 장애우의 연령분포가 대부분 50대이고 네 명 모두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고, 자살 배경으로는 실직과 재취업의 어려움, 방세도 마련하지 못할만큼의 저소득, 중도장애와 신병을 이겨내지 못한 심리적인 불안 등을 꼽을수 있다.
즉 네 건의 자살사건 중 IMF에 의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자살한 사례는 이영일 씨 뿐이고 나머지 세 건은 IMF가 직접적인 원인이라기 보다 국가에서 저소득층 장애우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생활고를 비관해 장애우가 자살하는 경우는 전부터 끊임없이 있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네 건의 자살사건이 모두 한 달 동안 발생했다는 것을 단순히 우연으로만 넘길 수는 없다. 이렇게 한 달새 네 명이나 되는 장애우가 연이어 자살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신과전문의 김병후 박사는 “자살이란 자기 안에 분노가 있는데 타인에게 그것을 터뜨리면 범법행위가 되기 때문에 자신에게 터뜨리는 것”이라고 먼저 자살에 대한 정의를 내린 후 “일반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사회로부터 상처를 받는데, 특히 복지수준이 낮은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장애우가 사회로부터 받는 상처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현재 우리 나라 많은 장애우들이 취업을 못하고 가족의 부양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한 가정의 가장들은 자신이 가족의 짐이 된다는 두려움으로 극히 불안해 할 수 있다. 여기에 IMF로 인한 사회적 위기는 장애우로 하여금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증폭해 자살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네 건의 장애우의 자살사건과 IMF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것은 앞서도 말했지만 IMF로 인한 사회적 위기가 장애우 뿐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불안감을 형성해 지난 한 달 동안 병원을 다녀간 환자 대부분이 IMF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 얘기는 아니지만 자살률이 높아 따로 자살방지의 날까지 제정한 프랑스의 국립인구문제연구소(INED)가 지난 2월5일 발표한 자살관련 연구 결과들을 살펴봐도 경제위기 곡선과 실업률 곡선이 자살 증가율 곡선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함을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프랑스 사회학자들은 “자살은 개인적 문제, 인간 관계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요즘 들어서는 사회적 지탄의 표현이 됐다”고 진단하고, 이제 프랑스에서 자살은 공중 보건 차원의 핵심 문제로 등장했다고 밝혔다. 결국 최근 발생한 네 건의 장애우의 자살 역시 IMF와 무관하지 않으면 IMF의 여파가 우리 사회 가장 취약 계층인 장애우에게 벌써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장애우 자살 방지할 IMF 묘안없나
지난 2월5일 국회복지포럼이 주최한 ‘IMF시대의 복지정책 방향'을 주제로 한 공청회에서 김용득 교수(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는 “IMF시기에 복지 전반이 소강 국면을 맞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산감축과 구조조정 등으로 대표되는 IMF 프로글매이 사회보장 전반적인 면에서 취약한 우리 나라의 사회복자의 여건을 감안할 때 가혹한 결과들이 예상된다. 특히 장애우복지분야의 경우에도 정부의 생계지원, 정부의 예산지원에 의한 사회복지 서비스, 일반 시민들의 후원금, 기업 복지재단들의 사회복지지원금 등에 의존해서 어려운 생활을 해온 사회복지 급여를 받는 장애우들의 겨웅에는 다른 어떤 사람들 보다 더욱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게 될 것”임을 미리 예견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장애우복지를 포함하는 사회복지 전반에 관련된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있어서는 이러한 극심한 어려움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새정부의 튼튼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 나라가 IMF 구제금융체제에서 벗어나기까지 앞으로 2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 김익수 국장은 “지난 3개월 동안 장애우 취업률이 지난 해에 비해 15% 정도 떨어졌다. 그렇지만 비장애우에 비해 장애우는 사무직, 간부직이 별로 없어 감원이 덜 된 편이다. 앞으로 지금처럼 중소기업이 계속 문을 닫게 될 경우 생산직 근로자까지도 고용조정범위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장애우의 취업률이 전년에 비해 약 30~40%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장애우의 취업률이 30~40% 대폭 낮아질 시기를 오는 4월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그나마 취업률이 낮은 장애우계도 오는 4월부터 본격적인 실업대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공단에서는 당장 이번 달부터 발생할 실업대란을 막을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경제가 안정되기를 기대하면서 그 때를 대비해 직업교육을 더 확대할 방침만 세우고 있다. 또 한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업장에서 장애우가 실직을 했을 경우 비장애우 보다 평균 한 달 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제도과 안효환 과장은 “IMF체제하에서 장애우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하여 서민생계안정대책본부 내 장애인 대책반을 신설, 지난다 3월31일부터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첫사업으로 정부 또는 공공기관의 매점․장동판매기 등을 장애우에게 우선 허가하는 제도가 제대로 실시되고 이쓴지를 조사한 결과 89년 이후 장애우에게 우선 허가된 자동판매기나 매점의 경우 691개소(시행율 4.2%), 담배소매점 1천1413개소(시행율 0.9%), 우표류 판매소는 318개소(시행율 0.8%)에 불과하다. 장애우 등 취약계층의 우선 보호라는 법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에대한 단속 및 활성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으로 벌써부터 이루어져야 했던 일들을 IMF한파가 닥치고나서야 실시하겠다는 노동부와 복지부의 그동안의 안일한 사업태도로 인해 지난 3월 네명의 장애우가 소중한 목숨을 끊었다. 노동부와 복지부를 포함한 새벙부는 이것을 계기로 지금이라도 저소득 장애우를 위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마련 추진해 줄 것을 기대한다.
누군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 장애인의 날이 있기도 한 올 4월이 정말 잔인한 달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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