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생활을 유지할 권리, 사회보장책 구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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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가명)씨는 작년 말 직장을 잃은 후 잡을 나왔다. 이유는 부인이 집을 나갈 것 같아 자신이 먼저 선수(?)를 친 것이란다. 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그 아이들을 두고 아내가 집을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또 건설일용직에 종사하는 강정문(가명)씨는 작년 12월부터 일자리가 없어 전세를 3천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옮기고 남은 1천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일용직이기 때문에 고용보험 대상자에서 제외되어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 채.
2백만 실업자 시대의 복지
현재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실직자 수는 5월말 현재 1백50만명을 넘어섰고, 고용보험 대상에서 제외되는 실직자는 69.7%인 1백5만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이 통계는 일주일에 단 1시간만 일을 해도 경제활동인구로 간주하게 때문에 노동단체에서는 이들까지 포함해 대략 2백만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를 1천만 명이라고 했을 때 5명 가운데 1명은 실직자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라는 울타리 바깥에 있는 노동자 수를 대략 추산하면 약 1백20만명이나 된다. 실직 이후 가족의 도움이나 퇴직금, 전세자금 등의 재원으로 약 6~7개월 정도는 근근이 버틸 수 있겠지만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어떠한 보장도 없다.
장애우의 경우는 요즘 같은 시기라고 해서 특별히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껏 받아온 교육적, 사회적 기회의 차별이 지금의 경제위기과 맞물려 삶을 더욱 버겁게 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실직 장애우들은 재취업 준비에 엄두도 내지 못할뿐더러 가족과의 생활조차 어려워져 수용시설을 찾는 장애우가 급속히 증가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동안 한국 사회의 ‘고성장 저실업’구조는 생계보장과 관련해서 개인과 가정에 많은 부분 책임을 부여해 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대량실업 구조는 빈곤과 실업이 곧장 저소득 실직자와 취약계층에게는 사회적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근본적인 대처를 하지 않으면 가족해체는 물론 범죄의 증가 등 온갖 사회문제를 불러 일으켜 사회분열까지도 가져올 수 있는 ‘위기상황’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지혜와 용기가 뒷받침되면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에 25개 시민, 사회, 노동, 종교, 복지단체가 현재의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실질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만들기 위해 지혜와 용기, 힘을 한데 모았다. 지난 7월 23일 참여연대와 한국장애인복지공동대책협의회를 비롯한 25개 시민, 사회단체가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실직노동자를 비롯한 한계계층의 실질적 최저생계를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을 공동청원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연대’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기본선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고용보험을 비롯한 4대 사회보험과 최소한의 기초생활보장을 위한 공공부조, 두 형태로 볼 수 있다. 사회보험제도는 형식상 모양새를 갖추긴 했지만 아직도 적용 제외 계층이 많고 재원의 활용 등에 있어 문제점들이 도출되고 있으며, 성격상 일하는 사람 위주의 사회보장제도이기 때문에 적용확대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장애우, 노인, 아동과 같은 취약 계층을 보호하기에는 미흡하다.
‘공짜는 없다’는 논리의 허구
더구나 지금의 실업구조가 한동안 지속되다 끝날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고용보험만으로 생계를 보장하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또한 공공부조로 대표되는 생활보호법 역시 18세 미만, 65세 이상 즉 인구학적 특성을 기준으로 아동, 노인, 장애우 등만 적용대상자로 하고 있어 실직으로 인해 소득이 없는 저소득층의 생계를 보장할 만한 제도는 어디에도 없다.
이렇듯 얼추 보면 사회보험과 공공부조가 서로 상충관계에 있는 듯 보이지만 대량실업구조 속에서 저소득 실직자와 취약계층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데 허점을 드러내고 있어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전면적 검토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현행 생활보호법의 특징을 살펴보면,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은 절대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될 수 없고, 현금 급여보다는 의료보호, 교육보호, 자활보호 등 서비스 제공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즉,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생계를 마련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으며, 복자정책에 대한 관점과 방향이 다분히 시혜적이고 구호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처럼 고용이 재창출되지 않고 평생직장의 개념이 희박해지는 때에 실직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현재의 실업자가 대부분 비자발적 실업자인 이상 실업문제는 우리 사회 모두의 부담이고 책임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공동체 건설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직업의 유무가 곧 가정의 생계파탄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구조를 극복하기위해 고용창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행동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부 대책을 보면 공공근로사업, 실직자대부사업 등 단기적 대처에 그치고 있어 저소득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을 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비용을 축소하고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대량실업이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될 것임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체계적인 사회보장정책 수립이란 그 동안 경제성장 우선주의를 지향해왔던 기존 관료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낭비처럼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관료들은 ‘사회복지병’ 운운을 그 답변의 말머리에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관료들의 경제성장 논리가 바뀌지 않는 한, 즉 정책형성자의 확고한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법안 통과는 물론 사회복지개념도 제대로 정립되기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까지 일을 시켜(취로사업) 생활보조를 하는 방식이나, 어려움이 생겼을 때 임시책으로써 가장 적절한 ‘대출’이라는 제도를 선호하는 것은 ‘공짜로는 아무 것도 줄 수 없다’는 정책결정권자들의 권위주의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보호’가 아니라 ‘보장’이다
지금의 대량실업 구조는 고용창출을 통해, 재벌개혁을 통한 구조조정 등 경제개혁을 통해, 이와 더불어 사회보장책 구축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개혁을 시도하고 있지만 고금리정책으로 돈 있는 사람은 앉아서도 돈을 벌 수 있고, 일하지 않으면 생계조차 이어가기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제도적으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고용보험에서 탈락한 다수의 실업자들이 최저생활을 유지하게끔 보장하고 노동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생계보조를 하지 않는 공공부조에 대한 법, 즉 생활보호법을 재개정하는 것이 시급히 요청되는 것이다.
7월 23일 청원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주요골자를 살펴보면,
▲ 인구학적 특성의 대상자 선정 방식에서 벗어나 실직으로 인해 생활이 곤란한 저소득 실직자와 한계계층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일반적 방식인 자산소득에 의해 대상자를 선정
▲ 생계, 주거, 의료, 교육 4대 기초생활에 대한 국가책임주의를 명시. 즉, 국가는 최저생계비에 입각해 소득의 차액만큼 생계보조비를 지급하고, 주거권을 위해 임대료 보조 및 융자 실시, 의료보호제도 확대, 자녀교육을 위해 고등학생까지 학비면제와 학용품 구입에 따른 보조금 지급 등이다.
또한 ‘생활보호법’이 그 동안 ‘보호’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사회복지 자체를 시혜적이고 구호적인 개념으로 인식해 왔는데, 이를 ‘보장’으로 명시함으로써 국가 책임주의와 국민에게는 최저생활을 유지할 ‘권리’가 있음을 명확히 밝혀 우리나라 복지법 자체에 대한 개념 정립을 시도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우리나라 사회복지 개념 정립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빈곤의 세계화’란 말이 있듯 ‘빈곤’이 보편화되고, 구조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가난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차별과 소외를 받아서는 안된다. 때문에 그들의 최저생계를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의 구축은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글/ 여준민 (한국장애인복지공동대책협의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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