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 1종 면허 장벽 거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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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시대, 장애우들은 누구 보다 일자리가 절실하다. 힘든 업종으로 꼽히는 택시영업도 장애우에게는 매력적인 취업체이다. 그러나 양하지마비장애우는 1종면허 취득이 안된다는 비현실적인 규정이 오늘날까지도 가로막고 있다. 그 밖에 양팔장애우, 청각장애우의 사례를 통해 안전운행을 못할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선입견에 차별 받고 있는 장애우 운전면허 취득 제한의 전반적인 실태를 알아보았다.
충북 청주에 사는 장애우 정규성씨의 직업은 영업택시 운전기사. 94년 9월부터 장애우에게 1종 보통 운전면허증이 발급되기 시작한 직후 택시운전기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드물지 않게 나타나고 있으니 그의 직업은 그다지 주목할만한 것이 아닐수도 있다.
그가 다른 기사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영업을 하다가 끼니때가 되면 꼭꼭 집에 가서 밥을 먹는다던가 한 번 운전대에 앉으면 유난히 자리를 뜨지 않는다는 점 정도일까. 그가 그런 습관을 갖게 된 데에는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척수장애우라는 나름의 신체적 조건이 작용하기도 했다.
5명의 척수장애우 택시기사
현행 장애우 운전면허 제도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서 몹시 놀랄지도 모른다. 택시기사를 하고 있다면 1종 면허를 갖고 있다는 얘긴데, 척수장애우가 1종 면허를 따는 일은 ‘법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씨가 다니고 있는 청주 낙원택시라는 회사에는 그 말고도 휠체어 척수장애우가 4명 더 있다.
정규성 씨는 원래 1종 대형면허증을 갖고 운전을 직업으로 삼아 생활했던 사람이었다. 몇 해 전 차량안전사고로 척수장애를 갖게 돼 1종 면허증을 반납한 후 가족의 생계문제로 고심하던 그에게 장애우도 1종면허를 딸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장 대전에 있는 운전면허시험장으로 달려갔지만 양하지마비 장애우는 안된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두 번이나 시험장을 찾아가 13년 운전기사 경력을 밝히며 사정사정을 하는 그에게 명목 뿐인 법규정만 되풀이할 수 없었는지 담당자는 결국 신체검사 합격증을 내줬다. 그렇지만 아직 장애우용 1종 면허시험 차량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해서 또 몇 기월을 기다렸고, 결국 95년 2월 무렵 1종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그의 뒤를 이어 1종 면허시험에 합격한 다른 장애우 동료들은 다음 단계로 자신들을 뽑아줄 택시회사를 수소문 했다. 수십 군데에 공문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얻을 수 없어 낙심하고 있던 차에 지금의 낙원택시회사에서 별다른 차별조건 없이 당시 4명을 한꺼번에 채용해주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낙원택시회사 관계자는 이들 척수장애우를 고용해서 어려운 점은 없냐는 질문에 “회사로 와서 차량을 교대할 때 다른 동료들이 휠체어 내리고 싣는 것을 돕는 수준이지 전혀 별다르게 신경 쓸 일이 없다”며 “장애우 기사들이 다른 기사들보다 훨씬 성실하게 일을 열심히 한다”고 평가했다.
정 씨는 “이런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고 입소문으로 대전 지역은 1종 면허허용 폭이 넓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른 면허시험장에 장애우들이 항의하고 다시 그 담당자들이 대전 쪽에 항의하는 일이 몇 차례 되풀이되면서 대전에서도 결국 다시 까다롭게 법적용을 고집하는 쪽으로 돌아서 버렸다. 그래서 현재는 전국 어느 지역에서도 양하지마비장애우는 1종 면허를 따는 일이 불가능하게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소나타와 액센트의 차이
장애우운전면허 기능시험에서 1종과 2종 보통 면허의 차이는 우선 소나타와 액센트(혹은 라노스)의 차이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1종은 1톤 화물트럭으로 기능 시험을 보지만 장애우는 여러 사정을 감안해 특별히 중형차에 속하는 소나타로 대체해 시험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우 운전시험에 있어 1종과 2종 차이는 어찌 보면 기껏해야 배기량 몇 백 씨씨 차이의 차량을 다루는 기능 차이로만 나다날 뿐이다.
그러나 정 씨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 활용 면에서 1종과 2종 면허증의 차이는 엄청나다. 단순히 집에 있는 자가용을 굴리기 위해 따는 것이 아니라 생업에 필요해서 면허를 따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1종 보통면허증이 있으면 일단 택시영업 뿐만 아니라 16인승 이하 승합차나 12톤 미만의 대형 화물트럭 운전기사로 일하거나 트럭에 물건을 싣고 다니면서 파는 일도 할 수 있다.
똑같은 장애우이고 비슷한 ‘승용차급’으로 기능시험을 보는데 2종이 아닌 1종 시험을 볼 수 있는 응시 요건은 뭘까.
현행 규정상 다리 부분만 보자면 1종은 한쪽 다리 고관절로부터 혹은 양쪽다리 무릎관절 아래 부분이 없거나 이와 동등의 기능장애가 있는 사람으로만 허용돼 있다. 이 경우 장애 형태상 대부분의 소아마비장애우와 척수장애우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94년 9월 제도 시행 때부터 주로 절단 부위를 의수족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절단 장애우만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즉각적인 개정 요구가 계속돼 왔다.
오길승 교수(한신대 재활학과)는 “장애우들도 핸드 콘트롤 등 각종 보조수단장치를 사용하여 충분히 안전운전을 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주먹구구식의 제한 조건을 설정하는 것은 타당성이나 합리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며 “이것은 장애우면 당연히 안전운전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편의주의적 사고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조 수단을 사용할 경우 감각이 둔하여 긴급 상황에 대처능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반론에 대해서는 생리학적으로도 발보다 손이 훨씬 민첩하다는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도 제시되고 있다.
□ 장애우 1종면허 취득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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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장애의 상태 |
운전가능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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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위 |
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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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쪽 다 리 |
한쪽 다리의 무릎관절로부터 아래부분이 없거나 이와 동등의 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 |
승용자동차 16인 이하 승합자동차, 12인 이하 긴급자동차, 12톤 미만 화물자동차, 원동기장치 자전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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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 다 리 |
한쪽 다리의 고관절로부터 아래부분이 없거나 이와 동등의 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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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과 편의주의 발상에 찬 현행 규정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렇게 불합리한 규정 때문에 소아마비, 척수장애우들은 ‘운전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실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운전면허시험장에서 1종 면허 취득을 번번히 거부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다른 분야에 취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대다수의장애우들에게 택시영업과 같은 운수업에 대한 배력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요즘과 같은 경제난 속에 운수업도 어렵다고는 하지만 취업기회를 가져볼 기회조차 없었던 장애우들의 경우 ‘경기가 안 좋다’는 말도 호사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정규성 씨는 “장애를 입은 후 문방구 같은걸 해볼까 했었지만 휠체어에 오래 앉아 있는 건 체력적으로 무리여서 포기 했는데 택시 좌석은 푹신해서 육체적 피로도 그다지 심하지 않아 권하기만 하다”며 “더 많은 장애우들이 택시영업으로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이 하루 빨리 열렸으면 한다”고 말한다.
물론 취득 후에도 장애우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채용을 해줄 택시회사 고용주를 만나기도 어렵다. 그렇게 또 하나의 산을 넘어야 하는 일도 남아 있지만 택시회사가 장애우를 고용하는데 현실적인 부담으로 다가오는 핸드콘트롤과 오토매틱 차량 설치, 구입비는 장애인고용촉진기금에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면 그런 문제는 약간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예 장애우가 택시회사를 설립애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서 장애우들이 보다 여유롭게 자신의 신체여건에 맞게 근무시간을 조정해 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구체적인 움직임도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오래 전부터 진행돼 왔다.
더 나아가 1종 대형면허까지 면허취득 범위를 개방해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정규성 씨는 “요즈음은 버스도 오토매틱으로 나오고 있으니까 소아마비같은 경증 양 하지장애우들도 1종 대헝 면허증을 딸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건설현장에 필요한 각종 중장비도 운전할 수 있게 돼 무궁무진한 일자리 시장에 들어갈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장애우 직업재활의 길이 선입견과 편의주의적인 발상으로 인해 막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재활학 교수, 공단 관계자, 청각장애복지 담당자 등이 참여 하고 있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산하직업위원회가 현재 장애우 직업재활수단으로 운전직종에 대한 타당성을 놓고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앞으로의 연구 성과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글/ 한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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