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버린 부모님을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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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봉(20)씨는 머리가 멍한 것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을 부둥켜안고 한없이 오열하는 두 사람의 얼굴만이 눈앞에 들어왔다. 여태까지 20년을 살아오면서 자신을 붙잡고 그렇게 크게 오열하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친부모를 만났다는 기쁨 보다는 오히려 당황스러움이 앞서기까지 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 여동생, 그리고 규봉이는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았다. 그러나 그놈의 가난 때문에 규봉이 부모님은 뇌성마비 장애로 걷지도 못하는 일곱 살난 막내 규봉이를 더 이상 키울 수 없었다. 규봉이 같은 뇌성마비장애우가 학교도 다니고, 치료를 받으려면 도시로 이사를 가야 하지만, 가진 것 하나 없는 당시의 상황으로는 도시로 이사를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규봉이 부모님은 규봉이를 서울로 보내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서울에 버리기로 한 것이다. 서울에는 특수학교도 있고, 병원도 많으니까 규봉이가 운이 있으면 부잣집에라도 들어갈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 해도 집에서 굶어죽으나 서울에서 굶어죽으나 크게 다를 것도 없을 것이었다.
1984년 8월 16일 규봉이는 부모님의 등에 업혀 서울에 왔다. 그리고 서울 은평구 불광동 ‘소년의 집’앞에 버려졌다. 버려진 규봉이는 경찰에 인계돼 서초구 내곡동 서울시립아동병원에서 1년 동안 보호를 받다가 그 이듬해인 1985년 8월1일부터 주몽재활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규봉이는 그곳에서 자기와 같이 부모님이 없는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규봉이 또래의 아이들도 여럿 있어서 곧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규봉이는 재활원에서 고등과정까지의 학업을 마치고, 치료도 열심히 한 덕분에 걸을 수도 있게 됐다. 또 지난해에는 평소에 가고 싶었던 건국대 경영정보학과에 합격하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KBS-2TV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연락이 왔다. 부모님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규봉이의 사연을 방송을 통해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마침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고민하고 있었던 차라 규봉이는 기꺼이 방송에 출연했다. 그리고 그를 버린 부모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저를 버린 부모님을 이해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겠지요.”
그런데 기적이 벌어졌다. 규봉이가 출연한 그 방송을 규봉이의 친척이 보고 어려서 버린 규봉이 임을 알아본 것이다. 규봉이의 얼굴이 큰 형과 너무 닮아 한눈에 알아봤다고 하는데, 곧 이 사실이 규봉이 부모님께 알려져 규봉이네 집은 그 날 밤 눈물바다가 됐다.
그동안 규봉이네도 형편이 좋아져 어느 정도 살만해졌다. 그러나 어려서 버린 규봉이가 어디서 잘 살고 있는지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려 규봉이 부모님 역시 알게 모르게 속병을 앓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들이 살아 있다니. 그렇게 해서 규봉이는 13년 4개월 만에 부모님을 다시 만나 고향인 경남 거창에 내려갔다가 지난 1월10일 다시 서울에 올라 왔다.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왔다는 규봉이의 얼굴이 한결 환해 보인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절 버릴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을 이해해요. 그때 그대로 집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대학도 못가고, 걸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어려서는 절 찾으러 오지 않는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뭐든지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배우게 됐죠.”
대학교가 서울에 있기 때문에 졸업할 때까지는 또 다시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지만, 앞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규봉 씨는 거창에 내려가 가족을 만날 것이란다.
글/ 노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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