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법 제정 반대하는 경총에게
[기고] 미국 국제발달장애인협회 대표가 경총에게 보내는 편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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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멀리 미국에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이메일을 통해 연일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에 관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장애우들이 목숨을 걸면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데 반해, 한국의 기업들은 '과도한 부담'을 내세우며 장애계와의 대화조차 거부하는 상황을 안타깝 지켜보다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알려드릴 미국 사례가 지금의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차별문제는 평등의 실현이자 사회참여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미국에는 ADA(미국장애인법,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라는 법이 있습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모델이 미국의 ADA법이기에 이 법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됩니다. 물론 미국에서는 ADA법 이전에 이미 장애인재활법이 있어 ADA법의 모태가 되었고, 이외에도 장애우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률은 많습니다. 그럼에도 ADA법이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ADA법만큼 반차별(anti-discrimination)에 대한 내용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으로 담고 있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차별 문제가 최근에야 대두되기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섞여 있는 곳이다 보니 오래 전부터 차별의 문제는 주요한 이슈였습니다. 미국 사회에서는 인종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가해진 냉대와 차별의 뿌리 깊은 역사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 역사가 종지부를 찍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는 이런 사회적 배제가 너무도 공공연하고 극명했습니다.
이러한 차별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사회적 냉대와 차별이 차별받는 이들을 가난으로 몰아넣고, 가난이 또 교육으로부터의 배제를 낳고, 또 교육으로서의 배제가 다시 빈곤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집니다. 차별이 존재하는 한, 일 할 의욕이 있고 능력이 있다 해도 능력을 발휘할 경쟁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며, 자립을 하고자 해도 자립의 기반조차 제공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차별받는 이들은 주류사회(mainstream)에 끼어들 틈조차 없습니다.
그 고리를 끊는 것이 바로 반차별 정신이고, 미국에서는 이 반차별의 정신이 1964년 시민권법(Civil Rights Act)으로 녹아들어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국가, 성별을 포함한 5가지 사유로 고용영역의 차별을 금지하는 규정으로 결실을 맺었던 것입니다. 최근 한국에 미국 슈퍼볼 MVP인 하인즈 워드 열풍이 불었다고 하는데, “만약 하인즈 워드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과연 지금의 하인즈 워드가 있었을까?”를 한국 사회에 묻고 싶습니다.
반차별이란 이렇게 평등 정신의 문제이며, 사회참여의 문제이고, 때로는 존재자체의 문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장애우 차별 문제 역시 이렇게 평등 정신의 문제이며, 참여의 문제이고, 존재의 문제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장애우에게 ‘평등’이란 단순한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장애우가 가진 신체적 정신적 결함을 보완해줄 적극적인 장치나 조치가 갖춰져야 하는 ‘조건의 평등’이 이뤄져야만 실질적인 평등이 실현된다는 것이 다를 것입니다. 그것을 ‘정당한 편의제공(Reasonable Accommodation)’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장애우 입장에서는 이러한 편의제공은 사회에 참여하기 위한 ‘정당한 요구’일 것입니다.
차별금지, 반드시 과도한 부담이 수반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한국의 기업들이 지금처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장애우들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부담 문제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1990년 ADA가 제정될 당시 미국에서도 이런 우려 때문에 경제 단체들의 반대가 상당했습니다. ADA뿐만 아니라 당시는 동일한 이유로 1980년대 후반부터 제기돼 온 통신 분야와 공공서비스 및 편의시설 모두에서 장애우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들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당시 부시 행정부에서는 이러한 제안에 대해 그 취지면에서는 전반적으로 지지하지만 그 법으로 인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 그로 인해 사회에 비치는 부정적 이미지를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법안 통과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당한 편의제공’이 반드시 금전적인 비용을 초래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미국 굴지의 백화점인 시어즈(Sears)의 기록에 의하면 장애우 고용 시 요구되는 ꡐ정당한 편의제공(Reasonable Accommodation)ꡑ과 관련해 과거 25년 동안 436건의 요구가 있었는데, 여기에 들어간 비용을 보면 69%는 비용이 전혀 들지 않았고, 28%는 1천불 미만, 단지 3%만이 1천불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의 경제계에서 염려하듯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법률 소송이나 손해배상의 문제에 역시 미국에서도 있었습니다. 특히 고용주가 차별금지조항을 지키지 못했을 때 가혹한 손해배상과 벌금 그리고 재판에 회부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에 대해 경제 단체들이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ADA 시행 이후 10여년 동안 법적 소송은 700건 미만으로 보고 되고 있습니다. 이 숫자는 미국에 600만개 이상의 기업체가 있다는 사실과, 70만개 이상의 사립, 공공단체, 정부기관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소송을 선호하는 미국인들의 기질과 수많은 소송변호사들을 생각할 때 극히 소수였다고 봐야겠습니다. 대다수의 문제들은 소송보다는 조정이나 합의에 의해 해결되었습니다.
고용할당제와 차별금지는 반드시 이중적 부담만은 아닙니다
한국의 경제계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의무고용제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차별금지에 찬성하지만, 의무고용제가 있는데 장애인차별금지법까지 제정하면 기업에게 이중적인 부담이 된다는 것이겠지요. 물론 미국은 고용할당제도 없이 차별만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만으로 풀기 어려운 장애우 고용문제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바로 중증장애우나 발달장애우의 고용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 미국은 다양한 고용프로그램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장애우들이 지역사회와 연결돼 자신의 역량에 맞춰 일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은 지역사회의 연결고리가 충분치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단지 선진국의 사례만을 놓고 보기보다 한국 사회에 맞는 완충 내지 보완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용에 있어서 장애차별요소들을 어느 정도 제거한다면 기업이 부담하는 고용부담금에 대해서도 정부 정책의 변화를 유도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장애우들과 대화로 풀어나가는 성숙한 자세가 가장 필요한 시기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운동 소식을 접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는 ‘왜 저렇게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우 문제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직도 한국 사회는 대화나 협의를 통해 정책이 결정될 수 있는 성숙함이 부족한 것을 아닐까 해서 답답합니다.
특히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놓고 볼 때,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는 경제계를 지켜보면서 경제계가 장애우를 대화나 협의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장애우의 자립문제는 길게 보면, 결국 복지비용의 증대를 의미하고, 복지비용의 증대는 종국에는 기업과 사회의 부담이 됩니다. 비판의 여지는 있지만 미국 ADA법이 의회를 통과하게 된 배경은 바로 이 지점에 대해 기업과 사회가 합의를 했기 때문이었고, 제가 사는 시카고 지역도 기업, 정부 기관, 장애우단체들이 협의해서 ADA를 비교적 잘 수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땅덩어리에서 전세계의 몇 째가는 선진국의 위상을 이룩하게 된 원동력은 경제계의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제력이 선진국 대열에 들면 사회복지체제도 그에 걸맞게 발전하는 것은 어느 나라의 예를 보아도 자연적인 추세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 또한 기업문화의 성숙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안의 징벌적 손해배상의 문제가 한국 법체계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측면도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법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관계법들의 정비를 통해 충분히 조율해나갈 수 있는 부분들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장애인권리조약이 논의되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고 선진국 대한민국의 위상에 도움을 주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성숙된 대화가 아닐까 생각하며, 한국에서도 ADA법과 같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조속히 제정되어 장애우가 그 사회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조성되기를 기원해봅니다.
2006년 11월 24일
시카고에서 IFDD 대표 전현일 드림
작성자전현일 미국 국제발달장애인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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