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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정신지체장애우, "할 것도 갈 곳도 없다.”

[특집]정신지체장애우, 품을 희망이 없다(1)
지역에서 사는 성인 정신지체장애우의 현주소

본문

2006년을 정리하면서 또 다시 정신지체장애우 이야기를 준비했다.
〈함께걸음〉을 유심히 본 독자들은 이미 눈치 챘겠지만, 올 한 해 〈함께걸음〉은 특히 정신지체장애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20년 간 월급도 못 받고 생계비도 떼인 채 일하다 시설로 보내진 전북 김제에 살던 정신지체장애우 부부(1월), 병을 고쳐준다고 광고해 장애우들을 받아 교회에 미신고 시설을 차린 목사가 장애우들을 미끼로 후원 사업에 몰두하는 동안 전도사가 여성 정신지체장애우를 계속 성폭행해온 것이 드러났던 전남 전주 ‘행복한 집’ 사건(2월),  정신지체장애우에게 “저는 불쌍한 장애인입니다. 하나만 팔아주세요”라는 문장을 암기시켜 일간지와 생활용품을 팔게 하고 적당한 댓가를 주지 않았던 서울 목동 신문배급소 사건(5월)보도를 기억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남 목포(6월), 경기도 용인과 경북 상주(8월)에서도 정신지체장애우에게 오랜 시간 무임금과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했던 사건들이 이어졌다.
이 밖에도 ‘사람사는 이야기’에서는 고물상에서 일하는 정신지체장애우들과 가족의 삶을 조명해 (7,9월) 고단한 그들의 현실을 알리고자 했다.

한 해 동안 취재를 하면서 〈함께걸음〉은 다른 장애유형보다 정신지체장애우들이 사회에서나 장애계에서나 더 취약한 상태에 있음을 절실히 보고 느꼈다. 특히 성인 정신지체장애우들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더욱 없다. 그리고 가족이 짊어져야 할 책임도 너무 무거워 더 이상은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급기야는 가족의 무관심 속에 수원역을 배회하던 한 정신지체장애우 노숙인이 다른 노숙인에게 맞아죽었고(11월), 9년 전 가족에게 버려져 가엾게 죽은 정신지체장애우 남매 사건이 최근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성인 정신지체장애우들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은 가족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고 있으며, 그 고통은 고스란히 장애우들에게 넘어와 그들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

2006년 한 해를 정리하면서 〈함께걸음〉은 다시 한번 지역사회에 사는 정신지체장애우들이 처한 현실을 보도해 심각성을 알리고자 한다. 그리고 성인 정신지체장애우들을 위한 대책을 하루 속히 세울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

 

   
 
   
 
성인 정신지체장애우, 가족에게만 책임 강요

“이번엔 꼭 될 줄 알고 기대했는데, 그것마저 와장창 깨졌으니 이제 또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지 캄캄해요.”
올해 스무 살(정신지체장애 2급) 아들을 둔 어머니 김 모씨는 한숨부터 뱉는다. 김 씨는 1년 전, 정신지체장애가 있는 성인 자녀를 둔 다른 십여 가족들과 같이 4천만 원씩을 내서 생활시설을 짓기로 하고, 천주교의 한 수녀원에 일을 위임해 진행해왔다. 그런데 최근 수녀원 상부조직이 사업을 인정해주질 않아 그 프로젝트가 깨져버렸다.

김 씨는 “나 사는 동안은 어떻게든 돌보겠지만, 죽은 다음에는 어찌될지 생각만 해도 잠을 못자요.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긁어서 시설이라도 지어놓고 싶었죠. 내가 죽으면 최소한 거기라도 갈 수 있겠지 했는데, 이것도 어그러졌으니 이젠 어쩐답니까?”라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 씨 아들은 졸업 후에 갈 곳을 찾아 이 곳 저 곳을 전전했다. 일명 ‘복지관 쇼핑(?)’을 나선 것이다. 그러나 오해를 하면 곤란하다. 비장애우 부모들처럼 언제라도 이용이 가능한 많은 교육기관 중에서 더 좋은 곳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런 상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지체장애우 부모들은 전국 다 합해봤자 1천 개소도 안 되는 복지관, 직업재활시설, 그룹홈 등 중에서 자녀를 받아줄 곳을 찾아 헤맨다고 한다.
김 씨도 자리가 났다는 기관들을 찾아 인근 지역을 헤맸다. 그렇게 찾아다닌 곳이 너무 많아서 어디 어디를 갔었는지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김 씨는 “다 큰 자식을 어떻게 하루 종일 집에 데리고 있겠어요. 서로 힘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젠 내가 가르칠 것도 없고, 친구도 없이 그냥 시간을 죽이는 걸 보자니 안타까워요. 성인 비장애우들처럼 어디라도 가서 배우고 일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있다고 해도 이미 대기자들이 넘쳐서 그림의 떡이죠. 정신지체장애우들을 위한 곳이라는 장애인복지관 보호작업장도 평가를 해서 장애가 경한 사람들만 뽑습디다. 우리 애는 시간개념도 없고 자폐성향이 강하다고 안된대요. 복지관조차 사람을 고르니, 우리 애 같은 사람들은 갈 곳이 전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정보를 수소문하던 중에 김 씨는 몇몇 부모들이 돈을 모아 보호작업장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그 모임에 후발주자로 끼어서 돈을 냈다고 한다. 김 씨 아들은 현재 낮 시간을 그 작업장에서 보낸다.

그런데 이는 김 씨만 겪는 특이한 상황이 아니란다.
우리 사회에서 성인 정신지체장애우가 있는 가족 대부분이 겪는 현실이라고 한다. 가족들은 대책을 찾아 각자 동서분주해보지만, 지역사회에서 저렴한 비용을 들여 안정적으로 이용할 곳을 찾기는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다.

대한성공회 나눔의 집 유찬호 신부는 “우리가 운영하는 보호작업장에 문의를 하는 부모 대부분은 다른 보호작업장에서 기간이 끝나 나와야 할 처진데,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부모들이 아무리 발을 동동 굴러 찾아봐도 별 뾰죽한 대책이 없는 게 지금 상황이다. 그래서 뜻이 맞는 부모 몇몇이 돈을 모아 보호작업장을 만드는 것을 종종 봤다. 그러나 사업 경험도 없고, 정부 지원도 거의 없는 형편이라 대부분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 성인 재가 정신지체장애우 8만 명

지난 2005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재가(在家) 정신지체장애우는 11만9백여 명이며, 이 중에서 20세 이상인 재가 정신지체장애우는 약 8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에 비해 현재 성인 정신지체장애우들이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재활시설 종류는 별로 없다.
대표적인 것이 그룹홈과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고, 나머지는 주단기보호센터와 장애인복지관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지부 재활지원과에 따르면 2005년 말 전국에 있는 그룹홈은 331개소며, 주단기보호센터와 장애인복지관이 각각 320개소와 130개소라고 한다.(‘2005년도 장애인 지역사회재활시설 운영현황’, 복지부 자료)

그렇다면 이를 이용하는 성인 정신지체장애우들은 얼마나 될까.

복지부는 위 시설들이 이용시설이라 이용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기자는 할 수 없이 그룹홈 이용자가 통상 4인이라는 담당 사무관 기준으로 계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1천324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는 추정치가 나온다.

그리고 노동부 장애인정책과에 따르면 전국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303개소며, 이 곳을 이용하는 정신지체장애우들은 6천333명이라고 한다.(작업활동시설 2천381명/보호작업장 3천98명/근로작업시설 640명/직업훈련시설 214명/ 생산품판매시설 0명, 06년 6월 기준)

그리고 정부 지원을 받아 일반 기업에 취업한 정신지체장애우들은 1천843명이라고 한다.(지원고용된 전체 장애우 수 6만1천862명, 05년 말)

현재 재가 성인 정신지체장애우들에 대한 통계가 없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 계산을 바탕으로 짐작해도, 8만이나 되는 성인 재가 정신지체장애우들 중에서, 짧은 기간만 이용이 가능한 주단기보호센터나 장애인복지관보다는 안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룹홈이나 직업재활시설에 들어갔거나 취업한 장애우들은 1만 명도 채 안된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드러난다.

그러면 나머지 성인 정신지체장애우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며 하루를, 평생을 보낸단 말인가.

2000-2005년 장애우 시설 입소자 중 지체장애는 1천 1백 11명 감소, 정신지체만 3천7백6명 증가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05년 말 전국 장애우 생활시설은 모두 265개소라고 한다. 2000년에 195개소였으니 70개소가 늘었다.
그리고 2005년 말 시설 장애우는 1만9천668명으로 5년 동안 2천453명이 늘었다. 이 중에서 정신지체장애우 수가 1만1천550명으로, 전체 시설 장애우 중에서 무려 약 54%를 차지한다.

위 자료에 따르면 지난 4,5년간 시설에 입소한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과 언어장애우들은 점점 줄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시설 입소 장애우 수는 늘고 있다.
여기엔 다 이유가 있다. 유일하게 시설 입소가 늘고 있는 장애 유형이 있기 때문인데, 바로 정신지체장애우들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는 점이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정신지체장애우 수는 2000년 7천844명으로, 당시에도 지체장애우들 보다 거의 두 배나 많았고, 다른 장애 유형과 비교하면 많게는 열 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지난 5년 동안 다른 장애유형 입소자는 감소했는데, 유독 정신지체장애우만 계속 증가해 1만1천550명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이 중에서 성인이 차지하는 비율을 알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주무부서인 복지부 재활지원과는 이런 전국 통계를 뽑아본 적이 없다니 확인할 길이 없었다.

어쨌든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들은 더 있다.
장애우 생활 시설 수가 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바로 정신지체인 시설이라는 점이다. 2001년 75개소이던 정신지체인 시설은 2005년 말 무려 110개로 대폭 증가했다. 전체 70개소 증가분에서 절반 이상을 정신지체인 시설이 차지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재활지원과 홍기성 사무관은 “그동안 정신지체장애우를 입소시키고자 하는 잠재적인 욕구가 많았는데, 최근 시설 확충 예산이 늘면서 정신지체인 시설을 많이 지었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장애란 원장(동천의 집, 정신지체인 시설)은 “이는 과거에 정신지체장애우들을 대거 수용하고 있던 미신고 시설들이 복지부가 했던 미신고시설 양성화 정책에 따라 신고시설로 등록하면서 대폭 증가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원장은 “사실 성인 장애우들은 열악한 미신고 시설에 가려고 하질 않는다. 그러나 성인 정신지체장애우 상황은 좀 다르다. 이미 지친 가족들은 이들을 미신고 시설이라도 보내려고 하는 경우가 많고, 한 번 입소한 정신지체장애우들은 부모들이 데려가거나 실종, 사망하기 전에는 거의 퇴소하질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는 가족이 더 이상 책임지지 못해 포기하는 정신지체장애우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사회와 가족에게 버림받는 정신지체장애우가 많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인 정신지체장애우에게 주거, 의료, 경제적 지원이 절실하다

기자는 취재를 하면서 성인 정신지체장애우들이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여러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그들은 하나 같이 “갑갑하기만 할 뿐이다.”,“ꡒ아무 대책이 없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우리나라는 이 문제에 대해 별 대책이 없어서, 사실 대안을 말하라고 하면 갑갑 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바람직한 것은 성인 정신지체장애우들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하는 주거, 의료, 경제 지원이 필요하다. 아마 빠른 시일 내에 정부가 이런 지원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우선은 그룹홈이라도 많이 늘려서 성인 정신지체장애우들을 지역사회로 자꾸 나오게 해야 한다. 그러나 운영자가 주인인 현재 그룹홈 형태보다는 정신지체장애우 당사자가 주인인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찬호 신부는 “현재 지역에서 사는 성인 정신 지체장애우가 이용할 서비스는 거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유 신부는 “성인 정신지체장애우가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경제력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력을 가지려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정신지체장애우들이 일반 직장에서 오래 견디질 못한다. 이들이 취업하는 곳이 보통 극히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영세한 일터고 이러한 곳에 장애 특성을 고려해달라고 하면 십중팔구 내보낸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서 정신지체장애우들을 위한 보호작업장 규모와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비장애우들도 같이 고용해 노동력을 제공받고, 정신지체장애우들에게는 직장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장애 때문에 발생하는 부족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지역사회에 사는 성인 정신지체장애우 8만여 명이 별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점점 가족의 짐이 되어가고 있다. 이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정확한 실태조사조차 없고, 학대받고 버려지고 죽임을 당하는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해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제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자녀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가족들도 점점 지쳐간다. 이들의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처한 가족들도 어떻게 보면 정부가 만들어 낸 또 다른 피해자다.

선진국처럼 성인 정신지체장애우들에게 지금 당장 연금을 주고, 법적으로 무조건 일자리를 주고, 주거를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장애우와 가족들이 헤매지 않게 전국에 흩어져 있는 관련 정보라도 모아 쉽고 효율적으로 전달할 체계라도 만들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인 정신지체장애우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 정부가 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찾아 하나씩이라도 좋으니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정신지체장애우들과 그 가족들이 갖는 바램은 그저 소박하다. 동네에서 이웃과 어울려 안전한 삶을 사는 것. 인간이면 누구나 품을 이 기본적인 소망에 대해 정부는 도대체 언제까지 외면할 건가 .
작성자최희정 기자  prota10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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