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할 곳 없어 멈춰서는 전동휠체어
본문
1. 건강보험 전동휠체어 지원정책, 허점 많다
2. 도로로 나설 수밖에 없는 전동휠체어, 보장구인가 전동차인가?
3. 전동휠체어, A/S체계 허술, ‘소비자 주권 찾기’가 필요하다
4. 충전할 곳이 없어 멈춰서는 전동휠체어
5. 정리/ 좌담회
전동휠체어 이용자들이 외출할 때마다 꼭 체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배터리다. 일단 집 밖으로 나가고 나면 충전을 할 곳이 마땅치 않은 데다, 이로 인해 길을 가다 전동휠체어가 멈춰 서게 되면 오도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이에 <함께걸음>에서는 기획연재 네 번째 이야기로 전동휠체어 배터리 충전과 관련된 문제를 취재했다.
핸드폰 vs 전동휠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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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핸드폰과 전동휠체어 충전기 크기 비교 (사진: 조은영기자) | ||
핸드폰 충전기의 무게라고 해봐야 겨우 100g 안팎인데 핸드폰 충전기를 일상적으로 휴대하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다. 핸드폰은 배터리가 다 돼 사용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답답하고 불편한 것 외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데도 사회는 휴대폰 이용자의 불편을 사소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동휠체어는 어떤가. 충전기 무게만 1kg 안팎. 핸드폰 충전기 무게의 10배다. 게다가 전동휠체어는 배터리가 다 되면 길에서 멈춰 선다. 전동휠체어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길 중간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동휠체어 이용자의 불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동휠체어의 배터리 문제는 이용자가 알아서 할 일로 여겨질 뿐이다. 이 때문에 현재 전동휠체어 이용자는 충전기를 들고 다니더라도 마음 놓고 충전할 곳조차 거의 없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동휠체어 이용자가 외출할 때마다 꼭 체크하는 것이 배터리다. 일단 집 밖으로 나가고 나면 충전을 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전동휠체어 이용자들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충전을 시작한다. 보통 전동휠체어 배터리를 가득 충전하는 데 8시간가량이 걸리기 때문. 집에 돌아오자마자 충전을 시작해야 다음날 집을 나설 때 배터리 충전량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다.
배터리 다 돼 멈춰 설까, 불안한 전동휠체어 이용자들
그러나 이렇게 충전에 신경을 써도 전동휠체어 이용자들이 배터리 충전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가장 흔하게 곤란을 겪는 경우는 전동휠체어 구입 후 배터리 성능이 떨어질 무렵이다. 전동휠체어 배터리는 보통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정도 사용이 가능한데, 교체 시기가 되면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면서 충전 시간에 비해 배터리 지속 시간이 짧아진다.
일반적으로 전동휠체어 구입 초기에는 8시간 충전하면 하루 동안 활동하는데 큰 무리가 없지만, 배터리 성능이 점점 떨어지는 시점이 되면 가득 충전을 하더라도 하루 활동을 다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물론 성능이 떨어진 배터리를 교환하면 될 일이지만 이것이 만만치 않다.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의 김동수 활동가는 “대부분의 장애우들이 소득이 없거나 적은데 비해 배터리 가격은 보통 2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상당히 높고 이에 대해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이 때문에 대부분의 전동휠체어 이용자들은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쉽게 교체하지 못하고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배터리를 교체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최대한 충전해도 배터리가 채 3시간을 버티지 못할 때까지 배터리를 사용해봤다는 한 장애우는 당시 어느 곳에 가든 항상 충전을 해야 했던 상황에서 겪은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는 특히 전동휠체어를 안정적으로 충전을 할만한 장소가 거의 없다고 했다. 가는 곳마다 충전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고, 설명을 하더라도 전동휠체어에 대해 잘 모르거나 전기세를 걱정하며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이 때문에 눈치를 보면서 전동휠체어를 충전해야 했단다.
저상버스 등 편의시설 없어 배터리 소모 증가
전동휠체어 이용자들이 배터리를 가득 충전하고도 밖에서 충전을 하게 되는 경우는 앞서 소개한 개인적인 이유만이 아니다. 사회구조적으로도 전동휠체어 배터리 소모량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배터리 충전 문제를 겪는다는 게 전동휠체어 이용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도대체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우리나라 대중교통 환경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상버스 보급률이 낮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철에서 내려 버스로 이동하는 거리를 전동휠체어 이용자들은 버스로 이동하지 못하고 그냥 전동휠체어로 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이동에 걸리는 시간만 늘리는 게 아니라 전동휠체어 배터리 소모량 역시 급격히 증가시킨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도로사정도 열악하고 지형 역시 언덕이 많아 배터리 소모도 큰 편이다.
이 때문에 이렇게 한번 이동을 하고 나면 다시 지하철역으로 출발하기 전에 충전을 해야 안심이 된다고. 게다가 전동휠체어 이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중교통인 지하철 역시 장애우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배터리 소모량을 늘리고 있다. 대부분의 전동휠체어 이용자들은 휠체어 리프트가 수동휠체어 무게에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고 이를 이용하다 크고 작은 사고들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휠체어 리프트 이용을 꺼린다.
이런 이유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정류장을 지나쳐 멀리 돌아가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엘리베이터가 있는 역을 찾아서 한두 정류장 정도를 더가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문제는 이 때문에 증가하는 배터리 소비량 역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안정적으로 전동휠체어 충전할 공간 필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배터리 성능에 문제가 없어도 집 밖 활동 중에도 충전이 필요한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출장이나 여행, 피치 못할 외박을 하게 되는 경우 등을 더하면 외부에서 전동휠체어를 충전해야 할 일이 더 증가한다. 그러나 전동휠체어 이용자가 늘어나 이용자들이 배터리 충전 문제로 곤란을 겪는 일이 많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전동휠체어 이용자들은 개별적으로 배터리 충전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서울 지역에서 활동하는 전동휠체어 이용자의 경우에는 전동휠체어 배터리 충전 장소로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하철의 경우엔 콘센트의 높이가 낮아 전동휠체어에 탄 채로 충전기를 코드를 꽂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게다가 충전에 소요되는 시간도 아무리 적어도 30분에서 2시간 정도는 충전을 해야 움직일 수 있는데 충전하는 동안 할 일도 마땅치 않고,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낯설게 쳐다보는 일이 많아 불편하다고.
이렇게 충전하는 이들을 마땅찮은 눈으로 바라보는 역무원도 문제다. 오영춘(46, 지체1급)씨는 전동휠체어를 충전하는 도중에 지하철 역무원이 “당신이 전기료를 내는 것도 아닌데 왜 여기서 충전하느냐? 이게 다 세금으로 나가는 것”이라며 충전을 막은 적이 있다고 했다. 이는 비단 오씨만 겪은 일이 아니다. 전기 사고 위험 등을 이유로 역무원들이 전동휠체어 배터리 충전을 막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공공건물인 지하철이 이 정도이니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다. 한 전동휠체어 이용자는 전동휠체어가 길을 가는 중간에 멈춰 설 것 같은 위급한 순간이라 근처 건물로 들어가 충전을 하다 건물 관리인의 제지를 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관리인과 싸우면서도 충전을 포기할 수 없었다”며 “전동휠체어가 멈춰 119구급차에 실려 가는 일을 막으려면 전동휠체어 이용자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안전하게 배터리 충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기도청 충전소 설치, 반응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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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포보건소에 설치된 전동휠체어 급속충전기 모습 (사진제공: 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 ||
경기도 안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전윤선 사무국장은 충전소 설치에 대해 '40분만에 급속 충전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충전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경기도청의 의뢰를 받아 사업을 진행한 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남세현 팀장 역시 “사업 진행 초기에 혹시 이용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으나 막상 설치하고 나니 반응이 좋다”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문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에 사는 장애우들은 현재 복지관이나 보건소 등을 중심으로 설치한 충전소가 앞으로는 일반 관공서 등 보다 보편적인 장소에도 확대되기를 원하고 있다. 경기도에 사는 한 장애우는 “특히 아직도 주로 배터리가 떨어지는 밤시간에는 충전할 장소가 적당하지 않다”며 “24시간 운영하는 파출소 등에 충전소를 설치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동이 불편한 장애우들에게 전동휠체어는 이제 자립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핸드폰 이용자에 비하면 소수지만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 이용자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됐다. 게다가 요즘 전동스쿠터를 이용하는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전동휠체어의 배터리 충전이 핸드폰만큼 손쉽게 이뤄질 수 있게 돼야 할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미리 대응한 경기도의 예처럼 소수자의 요구를 한발 앞서 알아차리고 그 불편을 사소하게 취급하지 않는 정책가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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