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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나 지하도가 아닌 횡단보도를!

[편의시설 현장을 찾아서] 6개 시민단체, 서울 21개 지점 횡단보도 설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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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우리는 ‘길’을 사람이 걸어 다니는 곳이라기 보다 차가 다니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실제로 널찍한 차도 옆에 좁다랗게 붙은 인도라는 길로 밀려난 사람들은 인도가 끊긴 길에서조차 땅 밑으로 그리고 도로 위(육교라는 형태의)로 나 있는 공간도 불편을 감수하며 차에서 자리를 내주어 왔다. 그렇게 어느 새 길에는 사람 보다 차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대부분 사람들의 머리 속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를 지하도나 육교 도는 멀리 떨어진 횡당보도까지 돌아다니면서 불쑥 짜증이 솟으면서도 길이 막힐까봐 불편을 묵묵히 참아내왔다.

  그런데 횡단보도가 생기면 참 좋을 몇몇 도로 중에는 횡단보도가 생겨도 전체적인 도로흐름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곳들도 적지 않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녹색교통운동 등 6개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9월 15일부터 17일까지, 그리고 22일에 횡당보도 설치를 요구하며 서명을 받는 등의 캠페인을 벌였던 신촌 홍익문고 앞과 종각 종로서적 앞 지점도 그런 곳 한 중 하나다. 녹색교통운동에서 사전 조사한 바에 다르며 그런 지점이 모두 서울 10개 지역, 21개 지점에 달한다.


13초면 건널 수 있는 길을 1백13개의 계단으로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 동안 캠페인을 진행한 홍익문고 앞 11.9m의 도로의 경우 특히나 횡단보도가 있을 경우 13초면 건널 수 있지만 지하도를 이용해 1백13개의 계단으로 오르내리려면 1분40초나 걸리다.

  이곳에 횡단보도를 설치해야 할 필요성은 무단 횡단 사례가 많은 것으로도 쉽게 발견된다. 녹색교통운동이 사진조사차 낮시간에 5분동안 지켜본 결과 12명이 무단횡단을 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그런 광경은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거기서 연세대 방향으로 1백50m 거리에 횡단보도가 있고 지하철 신촌역이 곧바로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위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려면 5분, 지하도로 걸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려면 1분40초 정도가 걸리는 상황에서 12m 정도의 좁을 길을 눈 앞에 뒀을 때 무단횡단에의 유혹은 강렬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역주민들 뿐만 아니라 약속장소로 신촌을 자주 택하곤 한다는 행인들의 서명 참여는 비교적 적극적이었다. “경찰이 무단횡단하는 몰래 지켜보기만 하면서 일방적인 단속만 계속해 상습적으로 딱지를 떼는 곳이었다”며 새삼 분통을 터뜨리며 자발적으로 서명대로 와서 서명을 하기도 하고 인근 상인들도 “길 건너 음식점에 주문을 해도 지나기가 너무 번거롭다며 거절하는 판이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 동안 주민들도 계속해서 여기 횡단보도를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현행 법상 횡단보도는 최소 2백m정도의 간격을 두고 설치되도록 되어 있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부되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연세대는 특례입학을 실시하고 있어 그 지점은 장애우들의 통행도 다른 곳에 비해 빈번하다. 그래서 누구보다 많은 곤란을 겪어 왔다고 말한다. 연세대 국문과 김형수 군은 “이제는 지리를 알기 때문에 미리 알아서 돌아가지만 입학 초에 길을 건너야할 때 목발을 짚고 지하도로 가거나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위로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할 경우 무척 난감했다”고 말한다.

  워낙 이 지역이 현대 백화점과 그랜드마트 등 대형상가가 들어서 있고 서강대와 동교동으로 갈리는 교통요지여서 기존 도로의 신호체계도 복잡하게 돼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이 횡단보도 설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교통체증이 더 심해질 것을 더욱 염려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그러나 신호주기당 신호체계 및 시간에 대해 사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현동 방향과 동교동 방향간 진행신호가 63초, 청전동 방향과 아현동 방향간 진행신호가 27초로 주기당 90초 동안 통과차량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특히나 차도의 폭이 12m인 도로에서 횡단 시간을 초당 0.7m로 적용할 경우 17초이기 때문에, 나머지 70여초 동안 우회전 차량의 진입시간은 충분하고 교통의 흐름에서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보행자 중심의 교통환경체계로 전화하겠다 약속

  한편 종각 종로서적 앞에서 종로를 횡단하는 폭 25.5m의 거리의 경우 횡단보도를 설치하면 28초면 건너편으로 건너갈 수 있지만 기존 횡단보도는 3백~3백50m 떨어져 있어 6,7분이 소요되어 12~13배가 더 걸리게 되는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성인이 보통 걸음으로 지하도를 건너는 경우 66개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고 1분30초가 소요되어 3.2배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곳도 워낙 인구이동이 많은 편이라 횡당보도를 설치했을 경우 교통체증도 증가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민들의 반응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도 차량 진행신호는 48초이므로 보행자들이 차량대기시간에 건너면 되기 때문에 횡단보도를 설치해도 교통 소통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밖에도 시청 근처 한화빌딩 앞과 을지로 프레지던트호텔 앞에 각각 1개, 안국역 사거리의 율곡로 신한은행 앞과 나래이동통신 앞에 각 1개, 홍대 입구 청기와주유소사거리에 1개 등 모두 8개 지역에 19개의 횡단보도가 새롭게 설치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에 송파대로가 가락고 교차 사거리 2개 지점의 경우 송파대로의 도로 폭은 36미터로 횡단보도를 설치했을 경우 40초면 건널 수 있다. 그러나 아파트등 주거지역인 이곳 송파대로에 횡단모도가 없어 송파대로 횡단을 위해서는 5백여미터 떨어진 석천역사거리 횡단보를 이용해야 한다. 여기에는 11~12분이나 걸리는 상황이다. 또 여기서 송파역 방향에는 무려 2km 이내에 횡단보도가 전혀 없다. 지하도를 이용하여 횡단할 경우 비장애인 기준으로 소요시간 2분이다 이때 78개의 계단을 오르내려야한다.

  한편 캠페인 주최 단체들은 서울지방경찰청과 서울시 교통관리실에는 횡단보도 설치 요구서를 접수했다. 경찰청은 이에 대한 회답으로 이번 횡단보도 요구지점에 따라서는 지하상가등과의 의견 충돌이 생길 수가 있고 도로 여건상 설치가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가능한한 노력하겠다고 답변해왔다.

  또한 서울시도 “보행환경 개선5개년 사업계획의 10대 사업 중 첫 번째 사업으로 ‘교차로 횡단보도의 복원 및 확충 사업’을 선정. 장애우․노약자를 포함한 모든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차도를 건널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회답했다.

  한편 몇몇 시민들이 “고대 앞 도로에도 횡단보도가 필요해요. 지하도밖에 없거든요”라며 조사된 지점 외의 또 다른 지역에도 횡단보도 설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녹색교통운동 임은희 연구원은 “시민들의 호응이 높고 횡단보도 설치가 필요한 지점이 추가로 발견됨에 따라 또 다른 10개 지점을 선정하교 2차 캠페인을 펼쳐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들 가운데는 간혹 “나는 그냥 계단으로 건너도 괜찮아요” “나는 운전을 해서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장애우나 노인, 아이를 업거나 보행기에 태우고 길을 건너야 하는 사람들도 함께 길을 건너고 있다.

  그들이 안전하고 편하게 길을 건널 때 나의 보행권도 보호되는 것일 것이다. 이번 캠페인은 그렇게 빼앗긴 보행권을 되찾기 위해 첫 번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글/ 한혜영 기자

작성자한혜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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