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진 곳의 대형시설, 이용자 중심에서 다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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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함께걸음’ 8월호 사람사는 이야기 코너에 소개된 강동택씨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10명 이상의 장애우가 함께 사는 것은 복지시설이 아니라 수용소에 지나지 않고, 인지능력이 조금이라고 있는 장애우들은 주택가에서 살게 해 주어야 하는데 현 정부의 장애우복지시설 정책은 이와는 반대로 외진 곳에 대형 장애우복지시설을 늘려 가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속히 기존 시설을 쪼개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설을 중심으로 한 악순환의 고리
모든 장애우복지시설을 10명 미만으로 쪼개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장애우가 주민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 속뜻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왜 시설이 주민의 생활터전 내에 있어야 하는지 간단하게 설명하고 한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우는 우리와 똑같은 인격을 지닌 존재이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이들이 생활하는 시설은 가정과 같은 곳이고 최소한 그러한 기능을 해야 한다. 이것과 더불어 시설의 성격에 따라 보다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지역에 있는 시설은 지역에서 고립된 섬과 같은 곳이 아니라 일정하게 상호 교류하면서 지역 내의 인프라로 시설이 위치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론적인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나타나는 현실은 원론과는 매우 거리가 먼 것들이다. 장애우를 좀 모자라는 인간(sub-human)으로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설과는 상호교류는 고사하고 시설 건립자체를 반대하는 것, 이러한 반대 때문에 인적이 드문 곳에 시설을 세우게 되는 것, 시설에서 나타나는 인권침해 사건과 각종 비리 사건의 발생까지 부정적인 것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원론적으로는 지역사회와 시설은 밀접한 상호교류를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까이 하는데 너무나 부담스럽고, 멀게만 느껴지는 사이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주민이 시설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설건립 반대가 발생하고, 이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반대가 심하지 않은 외진 곳에 시설을 건립하게 되고, 다른 곳에 동일한 기능을 하는 시설이나 유사한 기능의 시설을 세우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 시설의 정원을 늘려서 수용하고, 한 부지 내에 유사시설을 건립하게 되어 대형화되며, 교통의 불편과 대형화로 인한 관리의 어려움 등으로 인하여 지역과의 교류가 어렵게 되고, 시설의 교류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나 형식적인 교류(물품 기증이나 후원은 선호하지만 다른 교류 활동은 부정적인 것)는 가끔 매스컴에 보도되는 시설 비리와 연계되어 주민의 시설에 대한 의식을 더운 부정적으로 만들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누가 어떻게 끊어야 하는가? 여기에서 ‘누가’에 관련되 주체들을 4가지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시설운영자와 직원이고, 둘째는 시설장애우와 그 가족, 셋째는 복지행정, 넷째는 지역 주민이다. 또한 ‘어떻게’에 해당되는 것들은 나타난 문제점과 개선 방안이 될 것이다.
시설 부정적 현상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의 고리는 밀접한 상호 관련성을 갖고 있으므로 ‘누가’ ‘어떻게’로 나누어서 살펴보는 것보다는 하나의 사안을 상정하여 다루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된다.
‘왜 시설이 외진 곳에 건립되고 대형화되고 있는가’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시설을 건립하고자 하는 지역 주민과의 관계 즉, 시설 외적 측면에서는 주민의 건립반대가 가장 주된 원인이다. 이는 시설에 대한 주민의 인식 수준과 연결되어 있고, 시설보호의 저급성이나 시설비리 발생으로 인한 불신감, 모금을 유도하기 위한 부정적 측면으로 보도하는 매스컴의 영향, 자원봉사활동시에 발견하게 되는 시설의 부정적인 측면 등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형성된 시설에 대한 주민의 의식을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시설 건립시 재원 확보의 용이성과 넓은 공간에서 보다 다양한 서비스 제공이라는 명분으로 지가가 싼 외진 곳을 시설입지로 선택하는 시설 내적인 요인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발상을 하게 되는 이유는 시설 건립시 정부가 지원하는 건축비의 부족, 현 위치에서 건축하게 될 경우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 및 공사기간 동안의 불편함, 좁은 부지, 시설 장애우에게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열졍 등을 들 수 있다.
시설의 종별에 따라 혹은 위치한 환경에 따라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시설도 인근 주민이 영향력을 행사하여 다른 곳으로 이전하도록 요구하는 사례도 있지만, 대체로 오랫동안 그 지역에 있어온 시설들이 그 곳에서 증․개축하는 것은 타 지역에서 신축하는 것 보다는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설 내적인 요인과 이유들로 인하여 외진 곳에 시설을 건립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시설 건립시 적정한 정부 지원금이 배정되어야 하고, 시설에서 자부담으로 시설보호의 질적 향상을 위한 시설․설비를 구비하고자 할 경우에는 시설에 장기저리 혹은 무이자 대부와 같은 융자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보완과 더불어 시설 운영자의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 넓은 부지, 쾌적한 환경 못지 않게 시설은 이웃과 더불어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시설장애우의 가정과 같은 곳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물 좋고 공기 좋으며 넓은 부지가 있는 곳은 휴가철에 한 두 번 이용하기에는 적합할 지 모르나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의 거처로는 적합하지 않다.
시설 대형화, 이용자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야
일단 외진 곳에 세워진 시설들은 대부분 젋은 부지를 확보하고 있다. 건립한 시설에 정원이 차면 이 넓은 부지 위에 시설을 증축하여 정원을 늘리거나 연계된 기능을 수행하는 시설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부지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유사기능의 시설을 건립하거나 기존의 시설을 키우게 된다. 이러한 현상의 반복으로 시설은 대형화되어 가는 것이다.
시설의 대형화라는 의미 속에는 한 시설의 규모가 크다는 의미도 있지만 연계된 다양한 시설잉 한 울타리 내에 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간혹 다양한 시설이 집락(colony)의 형태로 운영되는 것의 장점을 열거하면서 긍정론을 펴는 이도 있지만, 이는 경영자적 입장의 논리는 될 지 모르지만 정상화 이념이나 소비자(이용자)입장에서 보면 해체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과 더불어 규모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보호 단위가 소규모화 되어야 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대형시설은 지역 주민들에게 이질감을 줄 수밖에 없다. 그 지역에 함께 살아 온 요보호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시설을 짓는다면 그렇게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타 지역의 사회적 약자를 지역 주민의 생활권 안으로 끌어들여서 이웃이 되라고 강요하고 있으니 전통유지의식이 강한 지역에서는 시설 건립 반대가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외진 곳에 위치한 시설은 인근 주민과의 교류를 하는데 한계를 가지게 된다. 시설의 지역사회에 대한 요구와 주민의 시설에 대한 요구들 가운데 일치되는 정도가 극히 적다. 그렇다면 대도시와 연계를 가져야 하는데 원거리와 교통의 불편으로 접근이 용이하지 못하다. 이는 시설과 지역과의 교류를 소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외진 곳에 있는 모든 시설이 지역과의 교류가 소원한 것은 아니다. 필자가 알고 있는 몇몇 시설들은 도심에 위치한 시설보다 더 활발하게 혹은 그 시설의 입지를 충분히 활용한 지역과의 교류 프로그램들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시설들이 도심에 있었다면 훨씬 다양한 교류프로그램이 이뤄질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역사회와 교류하기 힘든 입지에 건립된 시설이라 하더라고 시설과 지역사회 교류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하려는 시설운영자와 직원이 있으면 상당부분은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교류와 관련하여 정부는 지역 교류 전담인력의 배치와 교류 프로그램 운영비 지원, 교류에 필요한 설비․기재의 지원, 지역과의 교류 정도를 시설평가에 반영 등을 하여야 한다.
시설장애우가 진정한 이웃이 되는 세상
시설복지정책과 관련하여 정부는 생활보호대상자 중심의 시설 보호 기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활보호대상자는 물론이고 누구나 이용할 상황에 처하면 언제라도 입소할 수 있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다른 시설로 혹은 가정으로 돌아가서 생활하는 체계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제까지는 공급자 중심의 시설체계에서 소비자 중심의 시설체계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 위에서 시설보호의 수준을 재구성하여야 한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최소한 인근지역 주민의 생활수준과 유사한 정도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시설의 설비, 규모, 기재, 인력, 프로그램, 일상생활 여가, 문화활동, 종교활동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유사한 수준 혹은 그 이상 되어야 한다.
정부는 이어 필요한 기준을 과학적으로 산출하여 설정하고, 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한 단계를 설정하여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 노력없이 단편적인 보완책으로는 주민과의 융화 내지는 진정한 이웃되기는 매우 어렵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듯이 주민 자신의 삶과 유사하고, 이웃에 살던 사람이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소규모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면 시설과 지역 주민과의 교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바탕위에 교류를 위한 시설운영자의 적절한 개입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시설과 주민 쌍방간의 교류가 증진될 것이고, 이는 시설에 대한 주민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시설이 필요하지만 내가 갈 곳은 못된다”라는 주민의 뿌리깊은 부정적인 시설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정부 시설보호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와 함께 시설 운영자와 직원의 적극적인 참여, 매스컴의 대안 있는 시설 비판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점차 긍정적인 시설관으로 바뀌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민의 긍정적인 시설관은 지역 주민의 생활 공간 안에 시설이 건립될 수 있는 기반이 되며, 정부의 시설보호 수준 향상에 원동력이 되며, 시설장애우는 진정한 이웃이 되며, 시설은 지역의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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