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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국 장애운동, 그 진보의 역사를 말한다(3)

추상적 인권에서 구체적 차별금지로

본문

 
〈장애우 인권 운동의 성과〉
한국 사회의 장애 운동은 장애를 가진 사람 스스로가 그 운동의 주체임을 밝히면서 시작됐다. 장애 운동의 첫 시발을 ‘88년 장애인올림픽’을 거부한 장애 청년들의 힘찬 움직임으로 본다면 그러하다. 이렇게 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전부터 활동하던 여러 장애우 단체장과 종사자들이 혹여 이의를 제기한다면, 그것은 필경 가치관의 차이에 의한 고정관념일 뿐이다. 장애 운동의 진정한 목표와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갭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기에 이는 논외로 치자.
80년대 중 후반에 시작된 장애우 중심의 장애 운동은 ‘제도를 통한 기본권 확보’가 최우선 과제였다. 교육의 권리, 노동의 권리, 이동의 권리 등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권 확보를 향한 제도 개선 투쟁이었다. 투쟁의 산물은 장애인복지법, 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 특수교육진흥법, 편의증진법 등이다. 최소한의 권리 확보는 ‘제도’ 즉 정부 정책이라는 큰 틀 안에서 그 구성원으로서 더 이상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겠다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집약된 투쟁의 성과물이다. 그동안 장애 운동 진영은 정말 열심히 ‘인권’만을 얘기했다. 다양한 장애 정책은 장애우 인권보장을 목적으로 요구됐고, 그래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인권’ 또는 ‘권리’라는 용어가 너무 추상적이던가.
예컨대, 이 법률에 의해 모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교육받았는가? 또는 실업 상태를 면했는가? 아니면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동하는가? 여타의 법률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최소한의 기본 권리를 보장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 저을 뿐이다.

〈추상적 인권에서 구체적 차별 금지로〉
또한 ‘장애우 인권’을 기반으로 한 이런 정책이나 제도가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 ‘장애우 문제는 인권의 문제’라는 명제를 분명히 인식시켰는가에 대한 물음에도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 장애우는 교육의 기회를 줘야 하고, 고용을 시켜야 하고, 이동할 때 도움을 줘야하는 그런 시혜적 사고를 여전히 유지하게 한 것은 아닐까 한다. ‘장애우는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 정도의 비장애우의 의식 수준을 여러 형태의 인권 침해 또는 차별 현장에서 목격하고 있다. 이는 정부도 마찬가지로, 장애운동 진영은 매번 ‘인권’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예산 타령’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로 ‘인권’이 무시되는 나라이다.
그래서 장애계는 이제, 추상적인 ‘인권’이라는 말을 당분간 접는다. 대신 ‘차별 금지’를 사용한다. 아니, 구체적인 차별을 드러내고, 이를 금지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해 ‘인권’을 말하려 한다. 과거, 인권을 화두로 한 여러 제도들이 진정한 의미의 인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나아가 다양한 영역에서의 장애 차별을 아우르지 못하는 한계를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통해 풀어내는 것이다. 서비스 중심의 국가 정책을 좀 더 ‘인권’에 다가서는 정책으로, 그래서 ‘차별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어쩌면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그 이름 자체가 우리 사회에 ‘장애우 차별 금지’라는 명백한 선언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어쭙잖게 ‘인권’ 또는 ‘권리’라는 단어로 혼란을 야기하기보다는 ‘차별금지’로 분명한 인권의 지점을 각인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남다르다. 
최근에 장애 운동의 핵으로 떠오르는 중증 장애우 운동 진영의 일각에서 “중증장애우에게 장차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들이 솔솔 새어나온다. 그 이유에 대해 먼저 툭 튀어나온 말은‘중증장애우는 4개 법률에 의한 어떤 권리도 보장받지 못했다’는 것. 중증의 장애를 가졌기에 차별의 지점인 교육현장이나, 노동 현장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그러기에 차별을 받을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증장애우는 이제야 비로소 교육권과 노동권을 확보를 위해, 아니 최소한 이동할 권리만이라도 쟁취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다고 항변한다. 그런데 ‘차별’이라니, 언감생심이라는 말이다. 중증장애우의 입장에서 과연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장애우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이던가. 그래서 중증장애우가 스스로 나섰다. 더 이상 중증의 장애를 이유로 장애계의 차별을 묵과하지 않고, 내 권리를 내가 찾겠다는 것이다.

〈장애 인권 확보를 향해〉
그러나 ‘차별’은 고용 현장, 또는 교육 현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애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차단당하고, 여러 입사 조건을 내걸어 노동 현장엔 아예 얼씬도 못하게 한다. 그러기에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차별 현장(?)에 진입도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가족 차별, 이동 차별, 문화 차별, 형사상의 차별 등, 차별은 주변에서 쉽사리 발생한다. 그 차별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다. 또한 장애를 정점에 둔 서비스와 특별조치, 합리적 배려가 없는 것도 명백한 장애우 차별이다. 이런 맥락에서 중증 장애우의 권리 보장 운동은 이런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과 같이 해야 한다.  
그러기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장애계의 움직임은 부산하다. 작년부터 논의되어 올해 4월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가 출범했다.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논의하고, 그 의견들을 모아 11월 현재는 법조문을 구성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58개의 크고 작은 장애 단체들이 함께 하고 있다. 그곳에는 경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단체,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구성된 단체, 재활 영역에서 활동하던 단체들도 한 자리에 모여 있다. 과거의 시비를 가리지 않고, ‘장애 인권 확보’라는 추상적 목표를 향해, 장애 차별을 금지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기 위해, 일렁이는 분노의 불꽃을 고스란히 간직한 뜨거운 가슴으로, 오늘도 만나고 있다.

글 박옥순(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부장)
사진제공 위드뉴스

작성자박옥순  webmaster@cowal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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