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리운 장애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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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에서는 1996년 5월에도 성람재단의 문혜 및 은혜장애인요양원을 방문했었다.
‘사람이 그리운 장애우들’이라는 기사로 실렸던 문혜 및 은혜장애인요양원.
이 기사에는 그 때 은혜장애인요양원에서 생활했던 장애우들을 직접 만났던 기자의 생생한 체험이 실려 있다.
당시 기사를 요약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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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당시 문혜장애인요양원 전경 |
장애우 복지시설 중에 아직은 낯선 시설로 중증장애우 요양원이라는 시설이 있다. 그런데 이 시설과 기존의 재활원과는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 기본적으로 장애우들을 수용 보호하는 시설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이런 실정에서 굳이 정부는 구분을 지어 또 하나의 시설을 만들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정부의 장애우 정책 담당자와 시설 운영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재활원은 재활이 가능한 장애우들을 수용하는 시설이고, 중증장애우 요양원은 재활이 불가능해 요양만을 필요로 하는 장애우들을 수용하는 시설이다.
그렇지만 현재 이 땅의 장애우 수용시설은 사회에서 혼자 살기에 벅찬 장애우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졌다. 이게 재활원의 설립 배경이다. 그래서 재활원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우들은 거의 다 중증장애우들이다. 중증장애우가 아니라면 굳이 재활원에 수용되어있을 이유가 없다.
이렇듯 재활원 자체가 중증장애우 시설인데 그 중에서 다시 중증장애우들을 추려내서 이들만을 위한 시설을 따로 만든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때문에 중증장애우 요양원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럽게 싹튼다. 중증장애우요양원의 진짜 설립 배경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곳에 들어가 있는 장애우들은 어떤 중증장애우들인가.
정부의 설립 취지대로라면 중증장애우 요양원은 장애우 중에서도 "가망이 없는" 즉,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장애우들이 수용되어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규정에 걸맞게 대부분의 중증장애우 요양원은 외진 산골짜기에 숨어 웅크리고 자리 잡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비정함을 느끼게 하는 중증장애우 요양원, 그 중에서 두 곳 은혜와 문혜 장애우 요양원을 찾아 잊혀진 장애우들을 만나 보았다.
잊혀진 장애우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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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당시 문혜장애인요양원생들 모습 |
새로 도로가 난 신철원 사거리에서 자동차로 판문점 방향으로 10킬로미터를 더 가 오른쪽 길로 접어들자 외진 산등성이에 건물 두 채가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황량함을 느끼게 하는 이런 풍경 속에 서 있는 두 채의 건물, 아래쪽에 있는 건물이 문혜원이고 위쪽에 있는 건물이 은혜원이다.
성람재단 이사장 조태현 씨가 이 곳에 문혜 요양원을 설립한 것은 지난 1992년 1월이다. 설립 초기부터 재직한 문혜 요양원 원장 전보석 씨에 따르면 재단이 정신병원과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어서 그 경험을 높이 산 정부가 장애우 요양원 설립을 권해서 문혜 요양원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문혜 요양원은 설립 초기 충현복지원서 19명의 장애우를 전원조치 받아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렇게 문혜원 설립에 정부 권유가 있었다면 은혜원 설립은 서울시의 요청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은혜원 유시은 원장에 따르면 서울시 관계자가 문혜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문혜원 정원이 꽉 찬 것을 보고 "서울시에는 아직 보낼 원생들이 많다."며 또 다른 요양원 설립을 재단 측에 권유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은혜원은 작년 4월에 문을 열었다.
4층 건물 3개동으로 서있는 은혜원은 480명 수용규모의 대규모 시설로 지어졌다. 이 정도 규모의 장애우 시설은 우리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다. 가히 매머드급 시설인 셈이다.
은혜원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우들은 역시 모두 서울시내 장애우 시설에서 전원조치 되어 온 장애우들이다. 은혜원은 서울시 법인이기 때문에 예산 지원을 전액 서울시에서 받는다.
은혜원 유시은 원장에 따르면 원생들 대부분이 정신지체 장애우들이다보니 따로 운영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은 없다. 일요일에 자원활동자가 찾아오면 마당에 나가 햇빛 쐬는 게 고작이라는 것이다. 원생들은 아무 하는 일이 없다. 누워서, 혹은 앉아서 원에서 주는 밥을 먹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다.
중증장애우 요양원의 설립 취지가 요양 보호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필요 없다고 강변할지 모르나 외부 사람의 눈에 이건 대단히 큰 문제점으로 비쳐진다. 장애우들이 뭔지 모르지만 거세당한 채 살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요양원이 삶의 종착점
정신지체 장애우들과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들의 사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체장애우들과는 대화가 가능했다. 3층에서 뜻밖에도 지체장애우들을 만났다.
그 중의 한 사람 김 아무개 씨, 그와의 인터뷰는 못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누워서만 지새는 그는 “삼육재활원에서 26년 동안 지내다가 은혜원으로 전원 조치되어 왔다.”며 말을 꺼냈다.
그가 은혜원에 온 것은 1995년 4월 26일. 삼육재활원 측에서 야유회를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는데 도착한 곳이 은혜원이었다고. 그는 동행한 사회사업가와 보육사에게 “삼육재활원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울면서 매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사업가는 “네가 나이 먹고 갈 데가 없는데 여기 있어야지 어떡하냐.”며 그를 놔두고 매정하게 돌아섰다고 한다.
또 한명의 지체장애우 최 아무개 씨, 여성장애우인 그도 마찬가지로 삼육원에 있다가 작년에 이곳으로 전원 조치되어 왔다. 올해 42세인 그녀는 “이 곳은 감옥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단정했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가고 싶다. 하지만 가족들은 내가 여기 있는 줄 모른다. 내가 삼육재활원에 있을 때 원 측에서 나이 먹었으니까 데려가라고 하자 부모가 발을 끊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가족을 찾고 싶다. 가족을 찾아서 이 곳을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은혜원에는 현재 10여명 가량의 이들 지체장애우들 외에도 정신지체 장애우 중에서 신변처리가 가능하고, 일정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어 활동이 가능한 30여 명의 장애우들이 수용되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 30여명의 장애우들은 재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곳에 오지 말아야 할 장애우들이다. 그런데 이들도 이 곳에 수용되어 있다. 때문에 분류 기준에 의문을 품게 한다. 은혜원 관계자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요양원에 걸맞지 않는 장애우들이 수용되어 있다.”는 것이다.
원생 숙소를 둘러보고 나서 사무실에서 만난 은혜원 총무 조동태 씨는 은혜원에 있어서는 안되는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수용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 이들이 “채소밭에서 일도 하고, 원 일도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찾아오는 사람이 드문 외딴 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은혜원과 문혜원 합쳐 509명의 장애우들, 특별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이들에게는 이 곳이 삶의 종착점일 것이다.
이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세계적으로 탈시설화의 바람이 불고 있고 우리나라도 이젠 시설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그 바람은 아직 이곳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잊혀진 장애우들, 그래서 사람이 그리운 장애우들, 이들도 우리 이웃이 분명한 이상 사람들 곁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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