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사망,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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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새벽 3시 10분경 영등포역 대합실 중앙통로에서 잠을 자던 노숙인 두 분(고 김용기 38세, 윤종규 42세)이 오작동 한 방화셔터에 짓눌러 압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그 주변 통로에서 잠을 자다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노숙인 지원기관의 실무자와 언론사에 최초 연락을 취했던 노숙동료에 의해 이 사건은 외부로 알려지게 되었고, 목격된 사고 당시의 상황은 너무나 참담하고 어처구니없었다.
방화셔터가 작동할 때 울려야 되는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고, 무려 300kg~500kg에 이른다는 방화셔터의 무게 압력은 나란히 잠을 자던 4명의 목과, 가슴, 어깨, 머리를 짓눌렀다. 다행히 두 분은 겨우 탈출했지만 목과 가슴 부위를 짓눌려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었던 고 김용기, 윤종규씨는 살려달라고 발버둥을 쳤으나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에서 역무원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고장난 기계 조작에만 매달리는 무기력증을 보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조대 역시 너무 늦게 현장에 도착해 귀중한 생명을 구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이번 방화셔터 압사 사건처럼 너무나 허망하고 어처구니없는 죽음은 한 두 번이 아니다. 지난 2005년 1월 서울역 충돌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한 노숙인의 사망은 호흡마저도 곤란한 응급상황이었음에도 몸이 꺽여진 채 앉을 수밖에 없는 짐 싣는 손수레 위에 실려 다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당시 서울의 관문이자 하루 7만~수십만 이상이 이용한다는 서울역은 '들 것'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 발생시 역무원, 철도공안, 공익요원들이 취한 조치는 이번 영등포역 방화셔터 압사 사망사건과 마찬가지로 고귀한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다. 이는 공공역사를 이용하는 다른 이용객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마도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다.
두 분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을 방문해 고인의 얼굴을 확인 할 수 있었고, 노숙인 지원시설에서 이용기록을 확인해 보니 단 며칠간의 일시적 이용기록만 있을 뿐 그 어디에도 공식적인 노숙인 지원체계를 이용한 기록은 없었다. 주변 노숙동료들은 단짝처럼 붙어 다니며 서로를 챙겨 주었던 두사람의 평소생활은 잠을 잘 때도 주로 사망한 그 자리에서만 나란히 잠을 자고 이러저러한 막일을 함께 다녔다고 전해주었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고인들은 경찰의 십지문 확인 과정을 거쳐 가족에게 연락됐고, 대개 노숙생활 도중 사망을 한 분들은 그 가족들의 생활도 궁핍해 시신 인수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고인들의 경우 가족들에 의해 화장되었다. 외부와의 만남을 피하는 가족들을 만나 어렵사리 듣게 된 고인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가족들의 아픔을 들추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하고 생산직 공장을 다니다 IMF때 잘렸어요. 그 후 집에서 2년간 일자리 다시 구한다고 있는데, 동네 어른들 손가락질이 심했죠. 시골이라 동네가 좁으니까. 결국 서울에 올라가더니 노숙을 하더라구요.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정신에 문제가 생겼더라구요. TV에서 뉴스는 봤지만 난 그게 동생일거라고는..."
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죽음, 거리에서의 객사가 일어날까?
2002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우리단체가 일년중 제일 밤이 길다는 동짓날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Homeless memorial Day)를 처음 기획하게 된 배경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재래시장 인근의 공중전화박스 옆에서 무려 보름 이상이나 방치된 노숙생활자의 사체가 쥐에 뜯겨진 상태로 발견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그 해 추모제를 통해 '노숙인 사망 통계조사'(아래 표 참조)를 적극 제기하면서 결과적으로 거리에서의 죽음을 막고 노숙생활자들에 대한 단순 의식주 이상의 지원체계를 갖출 것을 요구해 오고 있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어떨 때는 무섭게 매도한다. '쉼터가 있는데 들어가지 않는다', '역사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거리 노숙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코올중독·정신질환자다' 라고.
결국 이러한 여론은 노숙인과 같은 한계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때만 되면 눈에 보이지 않게 하려는 단속과 수용 위주의 대책으로 일관하고, 심각한 문제는 피해가거나 아예 방치해 버림으로써 사회적 편견을 더욱 확장시켜 사회구성원이 아닌 고립된 계층으로 남겨두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미 쉼터는 과밀이며, 기피되고 있다. 98년 IMF당시 설립된 수백개 이상의 노숙인 쉼터는 새로운 기준과 지원서비스, 전문화 · 유형화 · 특성화라는 흐름을 요구받고 있지만 진전되지 않고 있다. 소득에 비해 도저히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는 계층들이 공급받아야 되는 저렴주택은 없다시피 하니 쪽방과 같은 열악한 비정상주거는 도시 최후의 주거지가 된다.
거리에서의 노숙생활이 장기화되면 호흡기계질환, 근골격계질환, 잦은 외상과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문제의 깊이를 더해가는 중증 만성질환 · 알코올중독 · 정신질환, 전염성질환 등의 의료문제와 더불어 갑작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죽음, 범죄 브로커들에 의한 악용 등 다양한 문제와 결부되어 최소한의 인간존엄성을 훼손하는 더 깊고 심각한 인권의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한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설교를 듣고 예배를 보고 거리에서의 급식은 점점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버리게 한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이름이 있었다. IMF 경제위기 이후 대도시를 중심으로 급증한 노숙인 문제는 단순히 거리에 내몰려 자게된 사람들이 증가했다는 것 이상으로 그 이면에 훨씬 더 심각한 문제들을 담고 있다. 숫자 자체로 본다면 여타 사회복지 수요자보다 많다고 볼 수 없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노숙인 현황은 오히려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곧 불안정한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구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태하고 거대한 빙산을 내재하고 있어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그 일면을 드러내었을 뿐이다.
이를 입증하듯 2005년 1월, 서울역에서 발생한 노숙인과 경찰과의 충돌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정부기관의 내부 보고서에는 최극단인 거리에서부터 노숙인 쉼터, 부랑인시설, 병원 등 치료시설과 무허가 기도원, 일세 및 무보증 월세 형식의 쪽방, 여인숙 · 고시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계선상에서 극도로 불안정하고 열악한 주거를 반복하며 한계상황에 처해 있는 사회위기계층, 노숙인구의 규모가 10만을 상회할 것이라 추정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 중에는 최근 또 다시 터져 나온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가 용이하지 않은 폐쇄정신병동과 종교를 방패막이로 자신을 돈벌이의 도구로 악용하는 시설,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해 대도시 공공역사를 거처로 생활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일자리를 따라, 아픈 몸을 제 때 치료 받지 못해,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수의 사람들이 회전문 현상처럼 불안정한 생활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는 그만큼 빈곤이 구조화된 우리사회는 노숙인을 비롯한 한계계층이 폭넓게 존재할 수밖에 없고, 거리노숙과 같은 극단적인 모습으로도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 9월 30일에 발생한 영등포역 방화셔터 압사사건의 사례는 상당수 노숙인들이 쪽방과 같은 일세 · 월세형태의 숙소와 인력시장, 편의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공공역사를 생활의 거처로 살아가고 있으나 이들에 대해 현장서비스를 제공하고 연계하는 위기개입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해 거리에서의 객사라는 어처구니없는 죽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안전사고 혹은 철도 이용객과의 마찰과 불편만이 부각 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간절히 요구한다. 단순 의식주 이상의 적절한 복지지원정책과 다양한 현장서비스를 제공하고 연계하는 개입체계를 갖추어 인간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기초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노숙인 복지정책을 제대로 갖출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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