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왜 취업 박람회가 자주 열리지?
본문
죽을 권리 주장한 책 번역 소개돼
한 중증장애우가 있다. 장애의 고통 때문에 그는 삶의 포기를 꿈꾼다. 그렇지만 중증장애 때문에 혼자 힘으로는 자살할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이 타인에 의해 안락사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안락사는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는 절규한다. 죽는 것도 인간의 권리니까 제발 죽게 해달라고.....
한 책 이야기로부터 이 달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옥에서 30년간 입으로 쓴 편지라는 제목의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은 안락사를 주장하는 스페인의 라몬 삼페드로라는 장애우의 삶을 번역 출간한 책이란다.
스페인 코루냐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라몬 삼페드로는 22세에 노르웨이 상선의 정비사로 일하면서 세계 49개 항구를 여행했다. 그러다가 3년 뒤 바닷가에서 다이빙을 하다 모랫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목뼈가 부러진 그는 전신마비 상태로 30년 간 침대에 누워 죽음을 꿈꿨다. 그는 안락사를 보장받기 위한 소송을 벌인 끝에 그 소송이 유럽 인권재판소까지 올라갔지만 결과는 불허였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 죽음을 통해 자유를 갈망해온 그는 1998년 안락사를 실행에 옮겼다. 그가 죽고 난 후 7년 뒤 그의 여자 친구가 그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안락사에 대한 논쟁은 끝이 없다. 생명에 대한 존중감 상실이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다 라는 등 의견이 상반돼 누구도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다.
라몬은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낫지 않냐, 어떻게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두고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글로 대신 썼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입에 펜을 물고 글을 쓰는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라몬은 말한다. 자기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의 몫입니다. 아이에게 고통만 가득한 삶을 주지 않기 위해 낙태를 결심하는 여성의 법적 권리는 인정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저 같은 장애우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식사와 대소변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해결해야 했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세 시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꿔야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지옥으로 생각했다.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저는 절망 때문에 죽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도 아니고 애정과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니며 권위에 대항하기 위해 항의의 뜻으로 분노를 표출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사지마비 장애우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한 진실입니다.
그는 이어 말했다. 나는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당사자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 어리석은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아직 책을 읽지 못했다. 그렇지만 한 중증장애우가 살면서 겪어야 했던 고통은 책을 읽지 않아도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중증장애우가 겪는 고통은 복지서비스로 보완해 주면 되고, 그 복지서비스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장애우에게 안락사를 허용하면 장애우를 귀찮아하는 가족과 사회가 장애우를 모두 죽일 테니까 안락사는 절대 안 된다고, 결국 안락사는 사회적인 살인이다 라는 말에 사람들의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다른 것은 몰라도 인간은 죽을 권리도 있다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죽을 의사가 전혀 없는 장애우를 안락사 시켰다면 그건 명백한 살인이지만 중증장애 때문에 고통을 겪는 장애우가 타인이 아니라 개인의 결정으로 죽기를 원한다면 그건 개인의 선택으로 의사를 존중해 줘야 하는 것이다.
어쭙잖은 인간의 존엄성을 들이대본들 개인이 겪는 고통이 덜어질 리 없다. 개인이 겪는 고통은 결국 개인만이 느낄 수 있다. 이 점을 존중해 줘야 하는 것이다.
안락사 논쟁은 아직 우리 사회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만약 시간이 흘러 우리 사회에서도 안락사 논쟁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 어떤 반응들이 나타날까, 어차피 단순하고 획일화된 사회가 아니라면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게 이 문제를 바라보는 잣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래에서 시작하는 민간 교류 어떨까
핵 문제로 온 나라가 벌집 쑤셔놓듯이 들끓는 시기에 북한의 장애우 실태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장애우 재활 돕는 북 장애자보호연맹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 10월 23일자 기사를 인용한 기사다.
기사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남한의 등대복지회의 지원 아래 평양에 건설 중이라는 장애우직업훈련센터에 관한 소개 기사다.
조선신보는 평양시 보통강구역 붉은 거리에 장애자직업편의기지가 새로 꾸려지고 있다며 이 센터는 이발, 미용실과 목욕탕, 양복점, 컴퓨터사진관, 종합수리점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장애자들을 위한 종합봉사기지라고 밝혔다.
500㎡ 규모의 부지면적을 가진 이 시설은 현재 건물벽체에 대한 미장작업과 함께 이곳에서 활동할 봉사자들을 모집하는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데 이달 안으로 건물을 완공한다는 계획이며, 완공되면 이 시설은 등대복지회가 조선장애자보호연맹 중앙위원회와 시범사업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조선장애자보호연맹 관계자들은 평양에 새로 일떠서는(건설되는) 장애자직업편의기지의 운영은 장애자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더욱 높이는 계기로 될 것이라고 강조했단다. 북한에서는 이밖에도 장애우 예방사업으로 유전병을 비롯한 선천성 기형을 막기 위한 연구조사를 평양의학대학과 유전의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하며 북한에는 1999년 말 현재 약 76만3천여명의 장애우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게 기사 내용이다.
북핵 문제로 남북간 교류와 지원이 위기를 맞고 있는 이 시기에 남한 단체의 지원으로 평양에 장애우직업훈련센터가 건립되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 이런 소식이야말로 인도적이고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기사다. 사실 남북간에 진정한 화해와 교류를 이루려면 비료와 쌀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북한 사회의 가장 소외계층인 장애우 등을 지원하는 게 더 효과적인 지원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장애우를 지원하는 건 말 그대로 인도적인 차원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에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 사람들도 드러내놓고 반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문제될 게 전혀 없기 때문에 걸림돌이 없다. 이제부터 북한과 교류 화해 협력을 아래에서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말이 나온 김에 평양에 직업훈련센터가 생긴다니까 고용촉진공단이 가서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취업 장애우의 30% 월급 100만원도 못 받아
10월은 국회 국정감사 기간이다. 해마다 되풀이되지만 이 기간에는 어김없이 빠지지 않고 장애우 고용 실태가 중점적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국정감사를 통해 열악한 장애우 노동 실태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먼저 대기업 장애우 고용의 질 문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에 고용된 장애우 수는 해마다 증가했다. 2003년 2만2천여명이던 장애우 노동자들은 2004년 2만8,160명, 지난해 3만2천여명으로 해마다 꾸준히 증가해왔다. 하지만 양적으로는 장애우 고용이 증가했지만 이면에 장애우 고용의 질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 고용된 장애우 노동자 중 단순노무직 종사자 비율이 2003년 2천909명에서 2004년 4천081명, 2005년 5천231명으로 집계됐다.
이런 고용 양상이 뭘 의미하는 걸까, 물어볼 것도 없이 대기업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장애우 고용을 늘리고 있지만 대신 한직에 배치하는 방법으로 교묘하게 장애우을 차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이 무서워서 고용은 한다 그렇지만 양질의 직종은 주지 못한다. 이게 대기업의 장애우 고용 방식인 것이다.
고용촉진공단 등이 취업시킨 장애우 4명 중 1명은 한 달도 못 버티고 직장을 그만둔다는 분석도 나왔다. 국회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에 따르면, 2003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정부와 고용촉진공단이 취업시킨 장애우는 모두 3만1천326명이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57%에 해당하는 1만7천936명이 직장을 포기하고 퇴사했다. 특히 장애우 취업장 4명 중 1명은 직장에서 한 달도 못 버티고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장 의원 주장이다.
장향숙 의원은 장애우들이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와 공단이 취업대상 장애우들의 특성과 유형에 맞는 직장을 소개하기보다는 단순히 취업률을 올리는 것에 집착해 왔던 것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일단 장애우를 아무데나 취업시키고 보자. 그래야 고용촉진공단이 밥값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테니까, 욕을 먹지 않을 테니까, 직종 불문 장애우가 적응 못하고 그만두건 말건 취업만 시키면 된다. 장애우를 쓰겠다는 업체가 없다고? 그러면 취업 박람회를 열면 되지. 취업 박람회 열면 일단 장애우는 많이 몰려오잖아, 박람회 열면 장애우가 취업되건 말건 언론을 통해 최소한 우리 공단이 장애우 취업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지잖아. 그러면 됐지. 뭘 더 바라겠어.
이래서 난데없이 장애우 취업박람회가 자주 열리나, 또 어디선가 장애우 취업박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노동 관련 소식으로 취업 장애우의 30%는 월 임금으로 100만원도 못 받는다는 소식도 있다. 장애우는 추가 비용도 드는데, 명색이 취업했는데 월급 100만원도 못 받고 어떻게 살지, 저절로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는데, 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장애우 근로자 8만3천540명 가운데 30.1%에 달하는 2만5천108명의 월평균 임금이 100만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최저임금(주 40시간 기준 59만3천560원) 기준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은 장애우 근로자도 4천234명(5.1%)이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는 것이다.
장애정도별로 보면 중중 장애우의 경우 절반 정도(49.7%)가 100만원 미만의 저임금을 받고 있었고 경증 장애우는 21.0%가 10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래서야 장애우에게 취업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냥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정부에서는 주는 생계비와 장애 수당을 받는 게 더 낫지. 장애우 취업이 사회참여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임금 액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서 적은 임금을 주는 건가, 그런가.
안 그래도 취업을 포기하는 장애우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비례해서 장애우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수는 증가하고 있고, 정부의 주름은 늘어만 간다. 심각한 것은 장애우를 점점 국가와 사회에 짐이 되는 존재로 인식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본대로 들은 대로 기업은 마지못해 고용을 하고, 고용촉진공단이라고 있는데 단순 취업률 올리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또 취업 장애우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고, 이게 위기가 아니면 도대체 뭐가 위기겠는가, 이 시점에서 더 늦기 전에 장애우 고용의 패러다임을 다시 짜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시설 건립 방해한 주민에 법원 100만원 벌금 판결
사회 관련 기사로 장애우 시설 공사를 방해한 아파트 주민 3명에게 법원이 벌금형을 선고했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법률신문 보도에 따르면 아파트 가격 하락을 우려해 장애우 시설 공사를 방해한 주부 등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형사1부는 9월 28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가격 하락을 우려해 인근에 들어설 장애우 시설의 공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50·주부)씨 등 3명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벌금 100만원씩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 주변에 정신지체 장애우를 위한 시설을 건설할 경우 아파트의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공사를 방해할 권한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그 행위가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원심 판단은 옳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벌금형을 받은 이씨 등은 지난해 9월 서울 강동구 자신들의 아파트 인근에 짓고 있는 정신지체장애우 생활시설을 완공할 경우 아파트 가격이 하락할 것을 우려해 주민 40여명과 함께 공사차량이 자재를 내리지 못하도록 건물 앞을 막는 등 공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각각 벌금 100만원씩을 선고 받았었다고 한다.
대법원 판결은 전적으로 옳다. 세상에 아직도 이런 몰염치한 인간들이 있나, 아파트 가격 떨어진다고 복지시설 건립을 방해하다니, 이런 인간들은 벌금이 아니라 무인도에 격리시키는 것이 합당한 판결일 것이다. 그런데 왜 처벌이 벌금 100만원에 그쳤지. 같이 살기를 거부하는 중죄를 저질렀는데, 강력한 처벌을 통해 예상되는 유사 사태에 경종을 울리고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법원의 역할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대법원의 판결을 무조건 환영할 수만은 없네. 법원도 아직 철들려면 멀었군. 아파트 가격에 목매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번 판결으로 앞으로 장애우 시설 건립을 님비 현상으로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너 벌금 100만원 선고 받는다고 얘기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처벌이 좀 약해 보인다. 결국 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을 텐데 좀 더 강력한 처벌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글 이태곤 기자
일러스트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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