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인 제도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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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중증장애우 50여명이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를 촉구하며 한강대교 북단에서 오페라하우스 시공지인 노들섬까지 기어서 행진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서울시가 장애우 활동보조인에 대한 예산으로는 겨우 3억원만 책정한 반면, 노들섬에 7천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오페라하우스를 건설하려는데 반발해 일어난 시위였다.
이번 시위의 가장 큰 특징은 "기어서" 행진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방법이다. 짧은 거리도 아니고 한강다리를, 사람이, 기어서, 행진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행동이고 게다가 수치심까지 동반할 수 있는 행위다. 그런데도 왜 중증장애우들은 감행할 수밖에 없었을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학교나 직장으로 향한다.
이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지만 사람들은 큰 불편 없이 매일 반복하기 때문에 이런 활동의 중요성을 못 느끼고 살아간다.
하지만 혼자서는 거동이 어려운 중증의 장애우는 항상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늘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했고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또 중증장애우들이 외출을 하려면 불과 5년 전만해도 버스나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 수단에 장애우 편의시설이 거의 없어서 중증장애우들의 대부분은 학교나 직장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해왔던 것이다.
이런 참담한 현실을 타파하고 중증장애우들도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2001년부터 관련투쟁이 시작됐다.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모든 지하철역에 장애우 편의시설을 설치하라는 이동권투쟁, 활동보조인 제도화 요구 투쟁,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요구 등이 주요 요구사항이었다.
이 중에서 정부는 제일 먼저 이동권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저상버스도입이나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는 장애우들 뿐만 아니라 정책 입안자 가족들이나 주변의 많은 노인 ,어린이 ,임산부등 여러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활동보조인 제도화는 중증장애우들에게만 해당되므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게다가 공무원들은 중증장애우들이 생활하는 것을 본적이 없으므로 활동보조인이 왜 필요한 지조차도 몰랐다.
그래서 중증장애우들은 노들섬까지 기어가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활동보조인 제도가 없기 때문에 중증장애우들은 모든 일상생활을 전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그도 아니면 힘들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기어 다니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번에 중증장애우들이 보여준 투쟁방식은 비장애우들의 투쟁방식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차이가 있다. 비장애우들이 주로 쓰는 단식이나 삼보일배, 무력투쟁 등의 투쟁방식은 당사자의 요구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방법이긴 하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일상에서 잠시 일탈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중증장애우들의 투쟁은 목표와 방법이 일치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가장 기본가치인 사회 활동을 할 수 있게 활동보조인을 제도화 해달라는 요구이기 때문에, 본인들의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일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 것이다.
중증장애우들이 기어 다니며 생활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모습 자체가 충격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젖먹이 시절을 제외하곤 기어 다니며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다 큰 어른이 기어 다니며 생활을 한다면 부끄러운 모습이라 생각하며 남에게 보이기 싫어할 것이다.
그러나 중증장애우들은 오랜 세월을 이같이 힘들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 왔다. 그러니 이제는 더이상 이런 모습으로 갇혀 지낼 수만은 없다고 항변하는 방법으로 기어서 한강대교를 건너는 투쟁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부에 활동보조인을 제도화하여 중증장애우들도 사회활동을 하며 인간답게 살아 갈 수 있게 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투쟁을 통해서 사람들은 중증장애우들의 힘들고 비참한 생활 모습을 새롭게 인식했을 것이다. 그리고 중증장애우들이 더이상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으며 여느 사람들처럼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용기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고, 서울시의 활동보조인 제도화 약속까지 받아내는 성과를 올린 게 아닐까.
이날 투쟁에 참여했던 중증장애우들의 용기와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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