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장애인 존속살해, 해결책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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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강동진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집행위원장) 김경애 (장애인참교육협의회, 장애아동 부모), 김정렬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사무총장), 이영문 (아주대학교 정신과 교수), 박진철 (가명, 뇌병변 1급, 장애운동 활동가)
최근 몇 년, 장애인 가정이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가족이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할아버지가 손자를,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거나 가족전체가 동반자살하는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자주 보도되고 있다. 문제는 범행대상이 장애인라는 점.
그렇다면 언론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문제의 원인은 경제적인 문제나 장애 때문일까. 어떤 연유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게 됐고, 이 같은 현상이 급증하고 있는지 <함께걸음>이 좌담을 통해 짚어봤다.
함께걸음 (이하 함께) : "너보다 내가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할 텐데..."라며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이 한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장애당사자로서 그런 상황을 직접 겪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요.
박진철 : 장애인 가정 중 이런 이야기가 오가지 않은 집은 아마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네가 없었더라면 지금보다 잘 살 수 있었고,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컸죠. 제 장애 때문에 부모님이 많이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내가 살 가치가 있는 인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들 때문에 사춘기 시절에는 많은 방황을 했죠. 하지만 지금처럼 하루 종일 TV나 바라보면서 살아간다면,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리라 생각했고, 그래서 공부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어차피 취직도 못할 텐데 뭐 하러 공부하려 하느냐는 입장이셨어요. 물론 보내주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갈 수도 없었지만...
이렇게 살면 뭐하나 싶어 자살시도도 했었는데, 다행히 부모님께 일찍 발견 돼 살 수 있었죠.
물론 지금은 전혀 아니에요. 저를 대하는 태도도 많이 바뀌셨고. 이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부모님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셨기 때문이라고 봐요.
장애인 인정 못하는 사회적 인식이 문제
김경애 :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치고 "너 죽고 나 죽자" 라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둘도 없이 소중한 내 아들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세상에서 차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살아가요. "내가 있어도 이 지경인데, 과연 혼자 살아가게 될 때 저 아이는 어떤 대접을 받을까" 라는 미래의 암울한 그림이 그려질 때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되는 것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존속살해와 같이 극단적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은 비단 아이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 11남매의 맏며느리에요. 때문에 집안 대소사부터 제사까지 모두가 제 몫으로 돌아오는데, 장애 있는 아이가 있다는 현실은 무시되기 일쑤죠. 그럴때면 "아 세상에는 너랑 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죠.
함께 : 사후 걱정도 많이 하실 것 같아요. 아이에게 닥칠 최악의 상황에 대해 상상해 본적은 있는지.
김경애 : 매맞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설에 들어가 사는 것? 본인이 의식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죽고 난 후, 지역사회서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면 형제들에게 맡겨지겠죠. 하지만 제가 받은 고통이 다른 제 자식에게로 전이될 수 있겠다는 생각하면 끔찍해요. 혹시나 그 때문에 다른 자식의 가정이 해체될 위험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시설로 가야할텐데... 지금까지 공들여 키운 게 매질로 꺾일 수 있고, 짐승처럼 길들여져 살 생각을 하면 끔찍하죠.
경제적 어려움, 국가가 일정부분 짊어져야
함께 : 이런 존속살해를 이야기 하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동진 : 신문기사를 봐서 알겠지만, 아이엠에프 이후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면서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있어요. 특히 장애인 가족에서 이런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고통이 이중적으로 가중되기 때문으로 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런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엠에프 이후, 예전에는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빈곤의 늪이 대물림 될 수밖에 없는 형태로 사회적 구조가 변화되면서 이런 비극들이 증가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함께 : 장애인 가족의 경우 다른 가정에 비해 추가적 비용이 발생하는데, 사회적으로 지원이 없기 때문에 가정 내에서 이중적으로 짐이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강동진 : 지금의 구조는 모든 것을 가정에게 떠맡기려고 하고 있어요. 장애가 있는 노인 등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다면 국가가 나눠 짊어져야 하는데 외면하고 있어요. 경제적 비용만이라도 경감된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하더라도 극단적 상황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장애나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어떤 구에 출마한 후보의 선거공약을 보니 "자기의 구에 요양원 시설이 절대 못 들어오게 막겠다"는 게 있더군요. 왜 요양원이 혐오시설로 표현되어야 하는지 답답합니다. 단순히 집값 떨어질까봐? 경제적 부담뿐만이 아니라 이런 사회적 환경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장애인 가족 위한 정서 지원 프로그램 마련 시급
김경애 : 제가 생각하기에는 경제력도 큰 문제 중 하나겠지만 장애인 가족의 정서가 피폐해지는 것도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게 되는 주된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살려고 발버둥치는 데 바뀌는 것은 없고 제자리걸음을 하는듯한 생각이 드니 지쳐버리는 거죠.
얼마 전 아는 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그분 자녀가 셋이에요. 그 중 큰 아이가 정신지체인데 엄마는 통합교육을 시키기 위해 학교에 붙박이처럼 있고, 나머지 둘은 하루 종일 유치원에 머물러 있어야 했죠.
그러다 보니 동생들은 늘 오빠 때문에 참고 견뎌야 한다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가고 있고, 엄마는 엄마대로 나머지 아이들에게 엄마로서의 역할을 못해주는 것에서 오는 미안함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고... 그러던 어느 날, 큰 아이가 교사에게 차별 당하는 일이 생겼대요. 그때 이 엄마 왈 "담임선생 앞에서 이 아이를 죽이고 싶었다. 평생 동안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기 위해서...". 이미 이 엄마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 거죠.
이런 황폐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장애인 가족들을 위한 정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입양할 때는 미리 교육을 받잖아요. 그것처럼 장애인 가족도 교육을 받는 거죠. 이 아이를 어떻게 인정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인데 "너희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애초부터 장애아를 위해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상황이나 돈이 많아 걱정 안 해도 되는 가정은 오히려 나아요. 제 가정처럼 장애아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가정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죠.
장애와 빈곤 때문에 자살률 높아진 것 아니다
이영문 : 존속살해가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 언론에서는 경제적인 측면과 연관시켜 이야기가 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훨씬 어려웠던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자살이나 살인이 벌어졌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상대적 박탈감이 예전보다 커진 것도 사실이지만, 단순히 빈곤에만 연관시키는 것은 잘못됐다고 봅니다.
지금 자살 통계를 보더라도 절대 빈곤층 보다 4~60대의 노년기 자살이 7~8년 사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에 대한 정확한 요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언론매체에서 경제적 빈곤이나 장애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기사를 쓰고 있다는 점이죠.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들의 자살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이걸 황색언론에서 "눈요기 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게 문제죠.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는 사망에 이르지만, 어느 정도일 때는 이전보다 더 성숙한 인격으로 거듭나게 되요.
장애인 가족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통해 다른 이들보다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더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렇게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이를 이겨낼 힘이 없다면 자살과 같은 비극적 결말을 생각하게 되는데, 여기까지 이르지 않도록 막아줄 수 있는 사회적 장치는 필요하다고 봐요.
집단에 익숙한 사회분위기가 자살 부추겨
이영문 : 정신장애아를 둔 외국 부모의 태도는 우리와 많이 달라요. 교육이 잘됐기 때문이라 말하기에는 우리와 프로그램 상 별반 차이가 없어요. 그럼 왜 차이가 날까? 그 쪽 부모들의 특징이라면 개인화가 잘 돼있다는 점이죠.
우리나라 역시 개인화 사회로 많이 전환돼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집단에 익숙해져 있어요. 그렇게 때문에 집단에서 떨쳐지게 될 경우,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있죠. 개인화가 잘 되어있는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가 닥치더라도 개인들이 충분히 이겨나가는데 말이죠.
지금 벌어지는 사회적 현상을 예방하려면 집단보다 개인을 돕는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되고, 이를 지향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개인들이 갖고 있는 취약성은 있지만, 건강한 사고를 가진 개개인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한다면 많은 문제점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내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사회여야 남도 소중하다라는 것을 알게 되거든요.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나"는 희박하고 "우리"가 중심 되는 구조다 보니, 장애인이나 그 부모를 존중 못하는 관점이 쉽게 생기는 거죠.
우리나라의 특징 중 하나가 가족간 집단자살률이 높다는 거예요. 이는 개인이 약하기 때문에 가족까지 소유의 개념을 확장시켜 집단화를 만들고, 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거죠. 나는 취약하고, 집단은 공고한 상태서 장애아를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하게 되면 "그냥 같이 죽어버리자" 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거라고 봅니다.
강동진 : 지금 우리사회는 가족이 먹고 사는 것부터 시작해 교육까지 다 떠안고 있어요. 어려움이 생기면 가장먼저 손 내미는 게 가족 아니겠어요? 이런 것을 떠안아 줄 수 있는 "가정"이 점차 해체 돼가고 있는 추세도 눈여겨봐야 할 사안입니다. 어디선가는 떠안아줘야 하는데 그게 없어진 거죠. 이영문 교수님 이야기대로 자살의 원인이 경제적인 문제에만 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전 아이엠에프때처럼 충격파가 한번만 오는 게 아니라 일상화가 돼가고 있다는 점이죠.
사회적 구조는 빈곤을 대물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고, 예전보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계속되고, 이러다 보니 자살에 대해 상상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이영문 : 저는 이런 상황이 꼭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 보지 않아요. 일종의 이행기인 셈이죠.
우리나라의 자살수치가 올라갔다고 하는데, 이게 20년 전의 스웨덴 수치랑 똑같아요. 많은 선진국들 역시 이런 이행기를 거쳤다고 봅니다.
경제적인 문제만으로 자살이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미국만 봐도 살인이나 자살률은 높은데, 이를 경제적 문제로 한정지어 바라볼 때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거든요. 하지만 개인의 성숙도와 삶의 만족감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는 해석될 수 있어요. 오히려 경제적으로는 우리나라보다 못하지만, 불교국가인 태국과 방글라데시와 같이 정신적으로 안정된 국가에서는 자살률이 낮아요.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적고요.
사회적 안정망 차원에서 복지정책은 꾸준히 향상시켜야겠지만, 이와 함께 개인의 이데올로기를 존중해주고, 개개인의 정신세계를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여건들이 갖춰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집단화는 반드시 깨져야 한다고 보고요.
함께 : 오랫동안 장애운동의 현장에서 활동하시면서 장애인 가족이 해체되는 상황을 많이 목격했을 텐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정렬 : 존속살해가 발생하는 원인을 보자면 현재도 고통 받고 있는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없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전제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미래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현재를 비춰봤을 때, 이 아이가 커서도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죽이는 게 부모로서 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다면 살인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일까요? 물론 해결책 중 하나가 될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죠. 조금 전 박진철 씨의 이야기 속에서도 나왔듯 본인 때문에 부모가 이혼을 못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이런 사례들을 많이 목격했어요. 알려진 것처럼 장애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족이 해체된 게 아니라, 더욱 단단해지고 힘있게 살아가는 모습도 많아요.
즉 장애가 있는 아이 때문에 가정이 해체되고, 자살이나 살인에까지 이르게 된 근본 원인은 아니라는 거죠.
최근 들어 공개입양이 46% 정도로 증가추세라고 하는데, 저는 여기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봅니다. 과거처럼 "너와 나는 피를 나눈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어요. 점차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에, 가족전체를 운명공동체라 생각해 동반자살하거나 존속 살해하는 어리석음 에서는 벗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인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데, 이를 위해 사회적, 제도적 장치가 구축되어야 하겠죠.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지 않게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함께 사회적 분위기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민층 위한 사회적 안전망, 하루빨리 제도화 되어야
함께 : 그 당시, 박진철씨께 어떤 지원이 있었다면 부모님이 그런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을까요?
박진철 : 지금의 통합교육이나 활동보조인 제도 등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제공되는 서비스가 저에게 제공됐더라면 지금 저는 다른 곳에 가있지 않을까요? (웃음)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조금이라도 갖춰져 있었다면 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하시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김경애 : 얼마 전 건강가족기본법이 나왔을 때 장애인 가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서 무척 아쉬웠어요. 개인적으로는 가족지원센터 등이 제도적으로 구축되기를 희망합니다. 제가 소속된 단체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주장하고 있고요.
얼마 전 어깨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가서 침을 맞으려 했는데, 이 아이를 두고 두 시간 가량 병원에 있을 수가 없어 결국 포기한 적이 있었어요. 내 몸이 아프니 짜증나고, 그러다 보면 "이건 쟤 때문이야"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이런 걸 조금이라도 사회적 체계에서 지원해준다면 좋을 텐데, 전무한 게 아쉬워요.
활동보조인이 됐든지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다른 가족들도 챙길 수 있을 텐데 그럴만한 여력이 없는 거죠. 그러는 동안 가족 전체가 지쳐가는 거고.
이영문 : 병원을 찾는 부모님들께 "낮 동안은 우리가 아이를 잘 봐줄 테니 그 사이 어디 가서 쉬면서 건강해지도록 노력해라. 아이들 약 먹이려 하지 말고 부모가 먼저 약 먹고 튼튼하고 건강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해줘요. 장애 있는 아이를 둔 부모님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강동진 : 좌담 전 신문을 읽었는데, 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 부모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가 실렸더군요. 돈이 있다면 교육을 받든지, 사람을 사던지 할 텐데... 그럴만한 여력이 안 되는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이 절실해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 가사나 육아, 노인부담은 가중돼서 쌓이는 상황이에요. 이런 스트레스들이 더욱 커지고 있는 추세고.
김경애 : 역할분담도 필요한데, 대다수 남편들이 전혀 안 하려 들어요. 아이와 시부모님께 시달리다보면, 남편이 거들어준다면 좋을 텐데, 집안일은 네가 할 몫이라는 일 때가 많아요. 개인적 인격 성숙도와 상관없이,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정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죠.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개선되어야
김정렬 : 제도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장애가 이런 사회적 현상을 대표한다는 인식은 조심했으면 좋겠어요. 온실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도 문제인 것처럼, 불편함은 불편한 것으로 인정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바랍니다.
장애운동을 하는 이들 조차 이야기 말미에 "이왕이면 장애가 없는 게 가장 좋다"라는 식으로 결론 내릴 정도로 우리들 인식 속에서는 장애에 대해 차별인식이 뿌리 깊어요. 어떤 이들은 이런 극단적인 사례를 이야기 하며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규정 내리죠. 이를 듣는 비장애인 역시 암묵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요.
"장애가 없는 게 가장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결론 내리는 사회적 분위기는 큰 문제라 봅니다.
장애가 있는 내 아이 때문에 생업에 위험이 따르고, 짐 지워지거나, 버림 받거나 하니, 모두를 죽게 만드는 원인이 장애인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걸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제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다 없애겠다"라는 생각도 불가능 한 것이라고 봅니다.
강동진 : 제도라는 게 누구에게는 "이 정도면 최소다"라고 생각하는 게 다른 누구에게는 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기준이라는 것은 사회적 성숙도와 인식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고 봐요. 얼마 전 모 후보가 "장애인이 만든 불량품이라도 사야 한다" 라는 발언이 문제가 됐는데, 그게 지금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고 있는 평균치라고 생각합니다.
좌담을 준비하면서 이것저것 자료를 찾는데 영국의 요크셔 지방이야기가 눈에 띄더군요. 20만 명 정도 사는 작은 요크셔에 장애인 주간보호소가 자그마치 1천 9백 개가 있다고 하네요. 이곳 영등포의 경우 장애인들이 50만 명이 넘게 사는 걸로 아는데 과연 몇 개나 될까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이런 수준으로 만들어달라고 하면 웃을 겁니다. 이게 평균인식의 반영이라고 봐요.
차이가 있는 게 차별이 되는 것, 이렇게 차이가 차별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도를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장애 계에서도 활동보조인 제도화, 장차법, 장애인교육지원법 등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는데, 이런 게 법으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갑자기 차별의식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한 기본이 갖춰진다면 의식도 바뀌어 지지 않을까 희망은 가져볼 수 있죠.
김경애 : 장애 범주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싶어요. 차라리 장애인 규정을 대폭 확대해 새로운 기준을 만든다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드네요.
함께 : 오랫동안 좋은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이것만은 꼭 고쳐졌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칠까 합니다.
이영문 : 언론에서 지나치게 장애인과 관련된 문제를 확대시켜서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문제인데 장애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긴 것처럼 편견에 사로잡혀 보도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김정렬 : 얼마 전 여성 청각장애인이 사교댄서로 활동하며 치 기공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감명 깊게 봤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여성을 바라보는 독특한 가족의 시선이었는데, 그녀가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원 때문이라는 거죠.
물론 장애 때문에 못하거나 어려운 것도 있어요. 하지만 같은 장애를 가지고도 어떻게 생각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처럼,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에 의해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들을 살해하는 이유가 "장애"에 있다고 포커스를 맞추고 생각하면 장애인이 없어지는 것 이외에는 해결방법이 없어요. 그런 인식들 때문에 장애가 있는 이는 백해무익한 인간으로 평가 받는 거라 생각해요.
김경애 : 언론보도의 행태는 정말 지적하고 싶어요. 우리아이에게도 TV속 장애인처럼 "체육 잘할 텐데 왜 안 시키느냐"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화나는 이야기죠. 오히려 MBC TV의 "사랑해 진호야"와 같은 프로그램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좋게 봤어요.
그 방송을 본 비 장애인이라면 최소한 "아 장애인에게는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으니 말이죠. 요즘 방송을 보면 장애극복 성공사례들만 모아놓은 것 같아요. 하지만 따져보면 다들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 집안이었거든요. 이런 여력이 안 되는 장애인들도 최소한의 능력을 발휘하고 개발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하루빨리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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