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Ⅱ|인공와우를 둘러싼 청각장애우들의 찬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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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5일, ‘제1회 인공와우의 날’ 선포식이 무산된 사건이 있었다.
인터넷 방송인 사랑의 소리가 주최하고 대한이비인후과학회가 주관했던 이 행사는 한국농아인협회의 강력한 저지로 인공와우의 날을 제정하지 못하고 단순한 축하연으로 치러졌다.
최근 인공와우 시술을 둘러싸고 청각장애우들의 찬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시술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인공와우가 현재 청각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반면에 농아인협회를 중심으로 한 축에서는 수화를 언어로 인정하고, 청각장애우들이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정책 시행이 먼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공와우를 둘러싼 청각장애우들의 서로 다른 입장 차이, 쟁점이 무엇인지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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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와우 시술, 건강보험 적용으로 4백~7백만 원인공와우는 선천적 또는 후천적 사고 때문에 양쪽이 다 고도의 감각신경성 난청이거나 전혀 들을 수가 없는 사람에게 청각을 제공해주기 위한 전자장치이다. 감각신경성 난청은 대부분 달팽이관 내 소리를 감지하는 청각세포가 파괴되어 나타나는데, 인공와우는 이 청각세포 대신해 소리를 전기신호로 변환시켜 뇌가 인식하게끔 하는 기계인 것이다.
인공와우 수술은 보청기로도 효과를 볼 수 없는 장애우들이 대상이며 2세 이후부터는 수술이 가능하단다. 수술은 우선 외부 소리를 전기자극으로 바꿔 청신경을 자극할 수 있는 전극을 달팽이관 내부에 영구적으로 삽입하고, 보통 한 달 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내장된 부착형 외부장치인 어음처리기를 달게 된다. 인공와우를 이식한 사람들은 외부적으로는 마이크로폰을 귀에 걸고 안테나는 머리에 붙이며, 어음처리기로 장치를 켜거나 끄면서 조정하여 사용하게 된다.
인공와우는 1970년대 초 미국에서 상품화되어 시술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88년 도입돼 시술되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공와우는 기종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2천만 원이 넘는다. 고가인 탓에 대중화되지 못했지만, 작년 1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돼 기계 값의 20%만 부담하면 살 수 있게 됐다.
복지부는 2002년부터 인공와우 시술을 지원해왔고 2005년부터는 지자체로 사업이 이양된 상태. 서울시의 경우 올해 저소득 청각장애우를 대상으로 인공와우의 수술비와 재활치료보조비로 7억 5천만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한다. 이는 서울시가 청각장애우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사업 중에서 두 번째로 많은 예산이다.
서울시 장애인정책팀은 “2003년부터 3년간 서울시가 지원한 인공와우 시술자는 45명인데, 작년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수술을 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기존에는 인공와우 구입비와 수술비를 합하면 2천 5백만 원은 부담해야 했는데, 건강보험 적용으로 본인부담이 4백만 원에서 7백만 원으로 확 줄었다. 그래서 우리도 예산을 늘려 올해 60명을 신규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수술 후 재활치료비도 1인당 350만원으로 책정해 3년간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청각장애우를 대상으로 한 인공와우 무료시술사업도 확대되고 있어 청각장애우들의 인공와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한국농아인협회, 수화부터 언어로 인정하라
그런데 청각장애우들 사이에서도 인공와우 시술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인공와우부터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쪽과 수화의 제도적 인정과 정보접근에 대한 정책이 먼저라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한국농아인협회 김철환 사무국장은 “교육현장에서조차 청각장애를 배려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들은 들을 수 있어야지만 경쟁하고 교육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편견 때문에 듣지 않고도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룹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듣는 것이 상당히 유리한 정보 통로이긴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수화는 물론 자막이나 문자 등의 방법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듣지 못하는 상황을 대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지원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청각장애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인공와우가 제시되고 있는 것은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농아인협회 측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와우 수술에 대해 ▲수술에 따르는 위험부담과 장기간 부담해야하는 고비용의 재활치료 ▲당사자의 선택권이 존중되지 않는 점을 들어 최근 갑자기 대중화되고 있는 인공와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인공와우 시술은 청각장애우라도 해도 남아 있는 청력 자체를 완전히 손실시킨 다음에 전기장치를 영구적으로 삽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는 한 쪽에만 시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인공와우를 장착해도 자연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기계에서 전환시킨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농아인협회 김동준 활동가는 “인공와우가 뇌에 가까운 곳에 삽입되기 때문에 안면근육 떨림, 두통 등에서부터 심하면 사망하는 등 부작용이 있다. 비를 맞거나 수영을 하면 안되고, 격한 운동을 해서는 안된다. 아파도 CT나 MRA 촬영도 할 수 없는 등 제약이 심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나사렛대학교 국제수화통역과 안영희 교수는 “인공와우 장치를 생산하는 회사조차 이러한 시술의 위험이나 효과의 한계에 대한 언급은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인공와우 시술의 효과는 수술 후에 청능 훈련이나 언어재활훈련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난다고 한다. 그런데 보험은 인공와우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최소 3,40만원에서 많게는 기백만 원이나 하는 여러 훈련과정을 몇 년씩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되도록 언어발달기에 시술하는 것이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어린 아동들이 수술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농아인협회 측은 “인공와우 시술이 기계를 몸 안에 영구적으로 삽입하는 것인 만큼 당사자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판단능력이 채 성숙하지 못한 아동들이 부모의 선택에만 맡겨져 수술대에 오르고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에게 소리를 듣게 한다는 일념 하나로 수술시키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인공와우 제조 회사나 의사로부터 충분한 정보제공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난청인협회, 인공와우는 청각장애를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대안
▲인공와우 시술의 효과는 수술 후에 청능 훈련이나 언어재활훈련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난
다고 한다. 게다가 되도록 언어발달기에 시술하는 것
이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어린 아동들이 수술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에 반해 최근 한국난청인협회(이하 난청인협회)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한 김주훈 회장은 “무엇보다 청각장애 상태를 벗어나 비장애우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주류사회에 통합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김 회장은 “80년대 초 보청기의 대중화는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훈련을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만든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제는 보청기로도 듣지 못하는 고도의 청각장애우들이 인공와우만 하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평생을 청각장애우로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인공와우는 전자공학과 현대 의학의 발달로 만들어진 것이다. 도입할 수 있는 과학기술은 적극 사용해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난청인협회는 시술에 따른 위험부담에 대해서는 “어떤 수술에도 소수의 부작용은 나타난다. 암세포를 죽이는 방사선은 정상세포도 죽인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서 방사선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농아 상태보다는 의사소통의 가치가 더 크기 때문에 수술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리고 김 박사는 “장애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모든 시술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고, 인공와우의 경우 아동의 경우에 시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아이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서 시술을 하면 청각장애를 극복하는데 더 오랜 고통과 시간이 들게 되며, 장애를 벗어나기도 더 힘들다. 그렇다면 부모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고도의 난청을 해결해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난청인협회는 정부가 인공와우 시술과 이에 따른 재활훈련까지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설득하고 있다. 협회 측은 인공와우를 지원하는 것은 청각장애우들의 행복을 추구할 최소한의 장치를 지원하는 것이며, 청각장애로 발생되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의사소통 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 보급되어야
정리해보면, 한국농아인협회는 “청각장애우의 언어는 수화이며 수화는 청각장애우의 권리”라며 “정부에서 수화를 법적, 제도적으로 지원하면 인공와우를 할 필요 없이 수화를 구사하는 소수민족으로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난청인협회는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청각장애를 극복해 주류인 비장애우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러기 위해 인공와우 시술은 적극 지원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공와우에 대한 청각장애우들의 입장차이는 결국 청각장애우로 정체성을 가지고 살 것이냐아니면 비장애우 의사소통 방식으로 살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로 압축시킬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청각장애우들은 듣지 못하거나 이로 인한 언어장애 때문에 정보접근에 있어 심각한 차별을 받아 왔다. 특히 함께걸음이 취재한 바로는 청각장애우들은 일반 교과과정은 물론 특수학교의 교육여건마저도 열악해 학습시기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많은 청각장애우들이 실업과 빈곤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청각장애우 학교에서도 수화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형편이며, 정부 기관, 지자체, 경찰서 등 공공장소에도 수화통역사가 거의 없다. 그리고 현재 공중파 수화통역 방송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하물며 지난 대선방송의 수화통역율은 30%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청각장애우들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고립되어 있기는 매한가지다.
따지고 보자면 수화나 인공와우는 어떻게 의사소통할 것이냐에 대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청각장애우들이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비교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과 그에 대한 정보들이 충실히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도 있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장애유형별 복지정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청각장애우들을 위한 현실적인 정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청각장애라는 문제는 다시 개인의 문제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청각장애우들에게 수술을 해 음성언어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할 할 것이냐, 청각장애를 받아들이고 수화로 의사소통을 할 것이냐하는 양자택일만 강요당해서는 안된다. 그 사이의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이 개발, 보급되고 권리로써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라도 청각장애우들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대안들이 얼마나 있는지 점검하고, 요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글 최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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