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활동보조인이 있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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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중증 장애우들이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고 이웃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가장 적절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함께걸음〉에서는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중증 장애우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뇌성마비 장애우인 배덕민 씨의 삶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저는 28년 동안 일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다행히도 가족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기는 했지만, 어른이 되도록 집 안에서만 생활했을 뿐 그 외의 삶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유년시절에는 간간히 동네친구들하고 놀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는 친구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하도 답답하면 1년에 한 두 번 정도 어머니를 졸라 택시를 타고 가까운 곳에 드라이브를 하는 것, 그게 제가 외출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수동휠체어는 상상도 못했고, 그것을 살 엄두조차 못냈습니다. 그렇게 저는 바깥세상과 동떨어져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집안이 기울면서 어머니의 권유로 시설에 갔습니다. 제 나이 스물 여덟 살 때의 일입니다. 시설입소는 가족이 바라던 바였고,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설에서 2년 반, 사이비 기도원에서 1년 반 동안 살았습니다.
거기서 생활하면서 저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겠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고생만 했죠. 사이비 기도원의 악행은 1998년 7월 "KBS 9시뉴스 현장고발"에 방영될 정도였으니까요. 방송이 나간 다음 날, 기도원는 폐쇄되었습니다. 그
래서 저는 임시로 충주에 있는, 정원 100명이나 되는 장애우 시설로 옮겨졌습니다. 거기서 결핵이 발병했죠. 그래서 음성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중에 제일 큰 시설로 갔습니다.
그렇게 시설을 전전하면서 저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됐고, 죽기 전에 작은 아파트에서 제 의지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시설에서는 매일 반복된 생활만을 강요하고, 어떤 주장도 권리도 내세우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2003년 5월에 저는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이하 한뇌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단체를 통해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자립생활’, ‘활동보조인’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시설에서는 자원봉사자나 시설 보육사가 밥만 먹여 주고, 목욕 시켜줄 뿐, 그들에게 저는 한명의 환자인,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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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에 2003년 10월 한뇌연 충북지부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지부에 참여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자립생활의 꿈을 안고 활동을 하면서 저는 도저히, 더 이상은 시설에서 못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강한 자들의 횡포를 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8개월여의 우여곡절 끝에 한뇌연에서 운영하는 체험홈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울고 싶어도 울 수없는 심정이었습니다. 제 서른 여덟의 마지막 선택이었습니다. 10여 년 동안의 시설생활에서 벗어나, 이제는 저도 사람답게 살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저는 2004년 11월 16일 오후, 체험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은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활동가로 일하면서 체험홈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달라진 제 일상을 소개해볼까요. 우선 아침 9시 50분쯤 제 활동보조인이 옵니다. 활동보조인은 제가 장애 때문에 할 수 없는 식사보조, 세면, 옷을 갈아입고 휠체어에 타는 것까지 보조를 해줍니다. 그리고 함께 사무실에 가서 업무보조도 해줍니다. 밤에는 다른 활동보조인이 저를 위해 대기합니다. 제가 야학 수업을 마치고 오면 저를 휠체어에서 내려주고 옷을 벗겨주고 누울 수 있게 보조해줍니다.
저는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너무 불편합니다.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배가 고파도 밥을 먹을 수가 없고, 화장실에 갈 수도 없습니다. 몸이 아파도 약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 두 분의 활동보조인이 없는 주말에는 저는 아무런 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활동가로 일하는 시간외에도 활동보조인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주말에는 일에서 벗어나 재미난 활동을 해보고 싶어하니까요. 활동보조인이 늘 제 곁에 있다면 밥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신변처리도 남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되고, 여러 가지 활동도 더 할 수 있을 텐데...,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제 삶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만약 활동보조인이 없었다면 중증 장애우인 저는 아직도 시설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5개월만 있으면 저의 소망이 이루어집니다. 11평짜리 영구임대아파트가 생긴답니다. 저는 지금 너무나 행복하지만, 한편으로 활동보조인 없이 혼자 살수 없어서 또한 걱정입니다. 중증 장애우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 활동보조인은 반드시 제도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답게 살기 위한 정당한 권리를 찾고 싶습니다. 반드시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제도화되어서 전국에 있는 중증 장애우가 언제라도, 24시간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다음 세대의 중증 장애우들을 위해서라도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보장될 수 있도록 가열차게 투쟁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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