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자 되기도, 수급자 되어도 힘든 기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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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최저생계비
▲지난 10월 26일 공대위가 여의도국회 앞에서 1차공동행동을 전개하는 모습
‘국민이면 누구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한 법이 있다. 바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이다. 기초법은 나이나 근로능력 유무와 관계없이 최저생계비 미만이면 수급권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최저생계비는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2006년 1인가구 최저생계비는 40만1천원, 4인가구 117만원이다.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은커녕 40만원으로 한 달을 사는 것은 죽지 않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그나마 최저생계비가 현금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어서 평균 수급금액은 30만원 수준이다. 우리사회 유일한 사회안전망 기초법이 제공하는 것은 30만원의 권리일 뿐인 것이다.
이렇듯 최저생계비가 낮게 책정되어 있는 것은 실제 최저생계와 관계없이 이미 주어진 예산을 기초로 책정되기 때문이다. 금액이 매년 인상되는 듯 하지만 물가인상률이나 사회적비용의 급증에 비하면 오히려 최저생계비 수준은 낮아지고 있다. 1988년 최저생계비는 월평균소득의 45.2%였으나 지금은 30%대에 머물고 있다. 이렇든 낮은 최저생계비에 의해 받는 더 낮은 급여는 실제 지출수준에 턱없이 부족하다. 2004년 빈곤층의 가계지출이 137만원으로 대부분의 빈곤층이 생계급여만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는 낮은 생계급여뿐 아니라 대다수의 빈곤계층이 유일한 사회안전망인 기초법의 수급자가 되는 데에도 높은 장벽으로 작용한다. 사실상 최저생계비 미만은 극빈층이며 실제 빈곤계층이라 할 수 있는 차상위계층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수급자가 되지 못하면 의료보호도, 장애수당도, 모자보호 수당도 받을 수 없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최저생계비(빈곤선) 계측기준을 상대적 빈곤선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최근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사회양극화를 해소하는 측면에서도 중위소득의 50%를 빈곤선으로 정하여 지나치게 낮은 최저생계비 기준으로 인해 기초법에서 배제되어온 빈곤층을 포괄하고 실질적인 기초생활보장을 기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참여복지계획을 통해 장애우 가구유형별 최저생계비를 계측하고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가구유형별 최저생계비는 계측되었으나 예산을 이유로 결과조차 발표하지 않고 폐기시켰다. 장애우의 경우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이 소요되며 이러한 비용을 보장하지 않을 경우 더욱더 빈곤한 상황에 이를 수밖에 없다. 현재 장애수당을 지급하고 있으나 이는 가구유형별 최저생계비와는 의미자체가 다르다. 장애수당은 일단 낮은 최저생계비 기준으로 수급자가 되었을 경우 지급하는 것이기에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이 포함되어 최저생계비가 책정되어야만 빈곤장애우가 수급권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빈곤을 대물림하는 부양의무자 기준
기초법이 국민의 최저생계에 대한 권리와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으나 현재 기초법은 부양의무자 기준이 있어 1차적 책임을 가족에게 돌리고 있다. 현재 저소득가구 중 25.7%가 부양의무자 기준만으로 수급자격에서 탈락하며, 소득인정액 기준과 합산하여 탈락하는 비율이 29.9%에 이른다. 그럼에도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탈락한 가구의 56.2%가 가족으로부터의 소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가혹한 부양의무자 기준은 부양의무자까지 빈곤의 위험에 처하게 하며 나아가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관계망인 가족관계를 해체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부양비를 받을 것이라고 간주하여 소득에서 제하는 간주부양비는 실제 부양여부와 관계없이 국가가 사적이전소득을 강제로 추정하는 것으로 매우 불합리한 기준이다.
2005년 국회에서 부양의무자 범위를 1촌이내 혈족과 배우자로 축소했으나 이는 2007년부터 시행된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개선을 위해서는 부양의무자 범위축소와 함께 부양능력을 판별하는 기준을 확대해야 한다. 즉, 부양의무자가 부양의무를 이행해도 사회 평균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때, ‘부양능력이 있다’고 규정해야 하며 그 기준은 중위소득 이상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불합리한 간주부양비는 폐지되어야 하며, 부양의무자가 부양의무를 이행하기 어려울 경우에 대한 특례조항 등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개선을 통해 가혹한 부양의무를 피하기 위한 가족관계 해체를 방지할 수 있으며 부양의무 때문에 빈곤에 처하게 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관계 단절 예방책 필요해
빈곤계층이 생활하는데 가장 많이 드는 비용으로 주거비나 의료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계적인 소득에서 식비를 줄여서 생활하기에 식료품비는 그다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의외로 많은 지출을 하는 것이 교통통신비이다.
현재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교통급여, 통신급여 신설을 통하여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하여 사회적 관계 단절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빈곤층에 대한 단전, 단수조치를 금지하고 수급자에 대해서는 일정수준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에너지 기본권의 보장이 필요하다.
이렇듯 광범위한 빈곤층의 사회적 배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초법 뿐 아니라 사회정책 전반에 걸쳐 탈배제를 위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기초보장제도의 부분적인 개정으로 사회적 배제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최초로 빈곤층의 사회적 배제에 대한 법률적 대응이라는 면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차상위계층으로 개별급여 확대해야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차상위계층을 포함한 빈곤층에 대한 지원제도는 기초법이 사실상 유일하다. 의료급여가 차상위계층 일부에게 지급되고, 장애수당, 경로연금 등 범주적 공공부조제도가 존재하지만, 대상자는 기초법 수급자를 중심으로 극히 일부의 차상위계층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사실상 빈곤층과 다를 바 없이 빈곤의 고통을 겪고 있는 206만명의 차상위계층은 정부의 빈곤정책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히 기초법 대상자 확대로 해결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기초법은 지금도 단일 제도로는 매우 비대한 상황이며, 하나의 제도로 빈곤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빈곤정책을 다층화해야 빈곤의 다양한 양상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특히 의료, 주거, 교육은 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지울 사적인 영역이 아닌, 기본적인 복지서비스라고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의료, 주거, 교육비에 대한 차상위계층의 지출 부담이 매우 크며, 이로 인해 빈곤의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빈곤예방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개별급여의 시행은 매우 중요하다.
의료급여법의 개정으로 의료급여 대상자를 차상위 계층 전체로 확대하고 의료급여 2종을 폐지하여 의료급여 대상자 전원에게 1종 의료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또한 주거급여법의 제정을 통해 공공임대 주택에 입주하는 수급자에게 보증금과 임대료를 면제하고 민간임대추택에 거주하는 차상위 계층에게 임대료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불합리한 ‘추정소득’ 페지해야
추정소득은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 중에서 소득을 조사할 수 없으나 소득이 없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부과된다. 생계급여보다 적게 급여를 받는 수급자의 경우 이러한 추정소득이 부과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근로능력이 없다는 판단 자체가 매우 엄격하다는 것이다. 18세 미만 65세 이상, 장애 1,2급, 진단서를 통해 6개월이상 만성질환으로 판정을 받거나 희귀난치성 질환자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분류된다. 또한 근로능력이 없다하더라도 이전에 근로를 한 경력이 있으면 추정소득을 부과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부당하게 최저생계비가 부과되더라도 그 불합리성의 증명을 수급자가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제도가 추정소득인 것이다. 법적 근거도 없는 추정소득을 시급히 폐지하고 보다 합리적인 소득조사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복지는 혜택이 아니라 권리를 찾는 것
정부는 기초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인 방안을 내놓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기초법이 제정된 지 5년째를 맞는 2005년, 복지부는 별도의 소득기준마련, 자활사업참여자의 노동자성 불인정 등을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에 2005년 10월, ‘기초법 전면개정과 자활지원법 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가 구성되었으며, 71일간의 여의도 천막농성을 전개했다. 그러나 2005년 11월 24일 기초법은 4개조항의 일부개정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차상위계층’의 명시, 별도의 소득기준과 개별가구 기준 마련, 부양의무자기준 1촌으로 축소하는 내용의 개정안은 시행조차 2007년으로 미루어졌다.
기초법은 ‘복지’의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는 지속적으로 노동을 연계로 한 복지를 강요하고 있다. 결국 ‘복지’도 현재의 빈곤을 양산하고 관리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며 이는 시혜나 혜택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요구하는 복지는 혜택이 아니라 우리의 권리를 찾는 것이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인간답게 살 권리)으로서의 복지는 삶의 보장을 책임지는데 있는 것이며, 이는 무조건적인 것이다. 이러한 권리는 다른 것의 조건으로 혹은 전제로 제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하거나 노동하지 않거나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시작은 기초법의 전면개정에 있으며, 기초법 개정투쟁은 ‘권리로서의 요구’를 표출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한 계획과 실천 속에 존재해야 할 것이다.
글 유의선(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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