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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보험, 차별이 아닌 합리적 원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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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장애를 가진 손00(당시 36세, 여)씨 지난 2003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평생을 사회의 차별과 무시 속에 살아왔을 그였기에 어려웠던 삶을 마감하고 가는 길만큼은 여느 누구와도 동등하게 가고 싶었을 것이고 가족들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은 죽어서도 차별을 당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사고로 사망할 경우, 이에 대한 보상금과 위자료는 비장애우의 그것에 비해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치를 낮게 판단하는 것은 장애를 가진 당사자는 물론이고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분명한 차별일 것이다.
지난 달 13일 이런 차별의 관행을 깨는 판결이 서울고등법원(민사18부, 김종백 부장판사)으로부터 나왔다. 손씨의 부모가 “장애를 이유로 위자료까지 비장애우의 절반만 지급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S화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피고는 원고 측에 비장애우와 동일한 위자료를 주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것이다.
이는 기존 판례를 벗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권리를 일정정도 확대했다고 평가할만한 일이다. 손씨의 1심(서울중앙지방법원)판결을 포함해 기존의 판례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경우, 일실수입뿐만 아니라 위자료를 산정 시에도 등급별 신체장애율을 따져 보통의 경우보다 50%를 감액해서 손해배상액을 지급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분명히 고무적인 것이고 환영할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얼마나 권리확대가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이에 필자는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와 기존의 차별개선노력과 현황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민간보험 차별개선활동이 가야 될 방향에 대해 제시하고자 한다.

2% 부족한 이번 서울고등법원 판결
일반적으로 사망, 상해사고시 보험사는 보험수급자에게 약관에 따른 보상금(치료비 또는 장례비+일실수입+위자료)을 지급하는데, 이번 판결은 이 중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판결문에서도 “교통사고로 사망한 경우 그 정신적 고통은 장애우나 비장애우나 동등하다”고 언급했듯이 손씨가 사망함으로써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슬픔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판례는 어떠한가? 1심 판결에서 손씨는 뇌병변장애 3급을 이유로 노동능력이 50%(상지 28%, 하지 30%) 상실된 것으로 추정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앞서 말한 일실수입(사망, 상해사고가 없었을 경우, 당사자가 당시 직업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평균적인 소득을 말한다)에 있어서 손씨는 보통의 경우보다 50% 낮게 산정되었다.
이를 근거로 1심 판결에서는 정신적 위자료도 50%가 적은 금액을 받도록 판결했던 것이다. 이에 항소심을 담당한 재판부는 “헌법 및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우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이에 상응한 처우를 받고,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중략) 모든 영역에서 장애우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며 “장애우가 사망한 경우 일실수입 산정시 노동능력상실율을 감안하는 것을 넘어 위자료를 산정함에 있어서까지 이를 감안하는 것은 장애우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한 것이다.
이는 기존의 판례보다는 진일보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은 위자료가 아닌 일실소득에 관한 부분이다. 물론 장애를 가진 사람의 노동능력이 일반적인 노동능력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평가할 때에는 그에 상응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를 가진 사람의 노동상실율은 AMA(미국의학협회)의 ‘장애등급기준’과 1930년대에 맥브라이드(McBride)가 발표한 ‘장애와 연령에 따른 노동상실율’을 근거로 산정하고 있는데, 필자는 바로 이 기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장애등급기준이다. AMA(미국의학협회)의 ‘장애등급기준’은 미국인의 신체와 사회환경을 고려해 만든 장애등급이다. 이를 신체조건과 사회환경이 전혀 다른 한국 사람에게 에누리 없이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과학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를 기준으로 70년도 더 지난 맥브라이드식 노동상실율을 적용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노동능력은 자신이 맡은 업무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맥브라이드식 노동상실율은 추후 보완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적 노동이 현저하게 증가한 현대사회의 업무특성을 1930년대 사회를 바탕으로 한 기준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보험사, 장애우에게는 일실수입 보상해 줄 수 없다
사망, 상해사고로 받게 되는 보상금 중 일실수입 산정과 관련한 장애 차별 사례는 허다하다. 그 중 장애를 이유로 턱없이 적은 보상금을 받은 이00씨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00(여, 지체장애 1급)씨는 00대학교에서 실시하는 문화공연을 보러갔다가 학교측 도우미의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해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이씨는 이후 3개월 동안이나 부상으로 평소 하던 그림 작업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학교 측은 병원비로 5만원만 주고 나머지는 보험사와 상의하라며 연락을 끊어버렸다. 또한 이씨의 사고를 담당하게 된 보험사도 이씨가 “직업이 없고 3주 진단이면 보상혜택이 없다”고 하면서 병원치료비만 주겠다고 했다. 보험사의 이야기인즉, ▲이씨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는 하지만 협회에 등록된 화가가 아니므로 수입이 있어도 실질수입을 구하기 어렵고 따라서 무직상태로 볼 수밖에 없으며, ▲이씨가 부상으로 3개월 동안 아무런 일도 못했다고는 하지만 병원진단은 3주로 나왔으므로 보험사 규정에 따라 별도의 위자료를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씨가 부상으로 장애정도가 더 심해졌다고는 하지만 원래 장애등급인 1급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위자료를 지급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무직이라도 일용직 평균임금을 계산하여 지급하고 의사진단보다 더 오랜 기간 병원치료를 요할 경우, 이에 대한 위자료도 지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하자면 장애를 가진 사람은 직장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일용직 평균임금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장애’라는 틀로 획일화하지 말라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민간보험의 차별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보상문제에 국한되어 나타나지도 않는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보상에 따른 차별 외에도 보험에 가입하는 것부터 막혀 있는 경우가 많고, 정신지체장애나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은 자기이름으로 된 보험금을 받을 수조차 없다.
이에 대해 지난 2004년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황문석 판사)이 내린 판결(월간 함께걸음 2004년 3월호 참고)은 “장애우에 대하여 합리적 이유가 없이 보험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등 차별행위를 한다면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관하여 공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를 근거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지난 2년간 보험차별개선활동을 꾸준히 벌여 왔으며, 이를 통해서 지난 2005년 6월 정신지체 및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생명보험가입을 금지하는 상법732조에 대한 폐지안을 국회를 통해 발의했다. 또한 같은 달 열린우리당 제안사항으로 신체장애우들의 보험가입상 장벽이 되고 있는 ‘장애인보험인수지침’에 대해 폐지해줄 것을 금융감독원에 전달했고 얼마 후 인수지침은 폐지되었다.
또한 지난 2005년 7월 금융감독원은 상법7321조와 관련해 장애우들의 사망, 상해사고에 대비한 별도의 보험상품을 만들어 줄 것을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에 각각 요청했다. 이에 양 보험협회는 협회 회원사들과 논의를 거쳐 지난 2005년 9월 장애인단체보험(생명보험)과 장애인단체시설보험(손해보험)을 개발하였다. 특히 장애인단체보험은 3개 보험회사에서 2005년부터 상품등록을 마치고 가입자를 받고 있다.
기존의 활동을 통해 이렇게 적어도 외형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민간보험 상의 차별은 일정부분 개선이 되었다.
하지만 일반보험을 가입하고자 하는 장애우들에게 보험가입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전용보험의 경우, 보험료가 월등하게 비싸고 보장혜택도 매우 적은데다가 이번에 신설한 장애단체보험도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본래 상법 732조로 인해 보험가입이 금지된 정신지체 및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제안된 것인데, 실제로 운영되는 상품들을 보면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보험사는 기존의 기업보장보험에 신체장애 조항만 약간 추가하기도 하고 또 다른 보험사는 기존의 전용보험의 내용 중 “가입자를 단체명의로 할 수 있다” 정도로 바꾸고 있는 실정이다.
세상에는 ‘장애’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200만이 넘는 ‘장애’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는 없다. 적어도 민간보험이 개개인의 특성과 경제적 여건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려워질 상황에 대비하는 공동의 안전장치라면 개인의 특성과 환경을 무시한 채 ‘장애’라는 이유만으로 몇 덩어리로 묶어 일괄 처리하는 것은 합리적인 차이를 두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차이는 아무개, 저무개 등 수많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 하나하나의 특성에 맞춰갈 때 이뤄질 수 있다. 개별 특성을 무시한 묶음은 결코 차이가 될 수 없다. 단지 차별일 뿐이다. 

글 조병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작성자조병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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