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의약품 임상시험계획 승인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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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김성룡 기자 |
장면 하나.
기자들이 질문을 한다. “이제는 정상인이 된 것입니까?”
그가 대답한다. “정상인이라는 것이 아이큐 100이상을 의미한다면 그렇다.”
장면 둘.
의사가 말한다. “내가 너를 사람으로 만들었다.”
다시 그가 대답한다. “잊으셨나 본 데, 나는 치료를 받기 전에도 사람이었다.”
지난 주말 방영된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위 장면에서 답변을 한 사람은 뇌수술을 통해 자폐를 치료한 장애우로 설정되었다. 처음 본 드라마이고 그 회를 다 보지도 않아 전후 이야기를 알 수는 없지만, 장애우를 둘러 싼 세상의 시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드라마 속의 이런 장면은 현실에서 이미 나타난 바 있다. 드라마 속에서는 ‘완치’라는 기쁨이 현실에서는 ‘부작용’이라는 비극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다를 뿐.
올 1월 중순 중앙일보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도하였다. 중증 척수마비 환자로 조선대학교와 (주)히스토스템의 줄기세포 시술을 받은 환자가 심각한 부작용으로 거동조차 못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환자는 2004년 11월 조선대학교와 (주)히스토스템이 마련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보조기에 의지해 몇 걸음을 옮겨 보였다. “20년간 앉아만 지내다 탯줄에서 뽑아낸 성체 줄기세포를 주입받고 조금이나마 걷게 됐다”는 발표가 이어졌고, 각 종 언론은 ‘세포치료의 대약진’ ‘줄기세포로 다시 걷게 된 최초의 사람’, ‘기적의 증인’으로 대서특필하였다.
그러나 2005년 4월 2차 줄기세포 시술을 받은 후 그 부작용으로 그는 휠체어에 앉기도 어려워 대부분을 누워 지낸다고 한다. “시술로 인한 감염으로 염증이 생겨 뼈 일부가 녹아내렸고, 주변 근육은 조직검사용 바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조직이 딱딱해졌다. 이 조직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추적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부작용을 치료 중인 의사의 소견이다. 조선대학교와 (주)히스토스템은 적절한 치료 조처를 외면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소송을 하라는 무책임한 답변만을 하고 있다. 이 환자 이외에 다른 73명의 성체 줄기세포 응급임상을 추적한 결과 또한 참담하였는데, 보도에 따르면 사망이 무려 12명에 부작용에 따른 치료 포기 등이 무려 80%에 이른다.
비장애우 되려면 이정도 위험쯤은 감수해라?
이렇게 위험한 시험들이 어떻게 사람을 대상으로 시행될 수 있었을까? 본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은 동물시험을 비롯한 각종 사전 시험을 통해 충분한 안전성을 검증받은 후에야 실시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2004년 3월에는 유효성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불법적인 임상시험을 한 바이오벤처 4곳이 검찰에 고발을 당했었다. 그런데 4개월이 지난 2004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의약품 임상시험계획 승인지침’을 개정하여, 이런 위험한 임상시험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황우석의 1차 조작논문이 발표된 후 형성된 줄기세포 열기가 이런 위험한 결정을 가능하게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심각하거나, 긴박하게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상황’에서만 가능했던 「응급임상」기준에 ‘치료시기를 놓치면 치료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과 ‘대체 치료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마지막 치료선택이 될 수 있는 상황’을 추가하였다. ‘각종 안전성·유효성 관련 자료에 대한 식약청 검토 후에 승인’이 가능했던 절차도 ‘기관 IRB 승인서 및 관련전문가 5인의 임상실시 적합 동의자료 제출 시 승인’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조처는 희귀난치성질환자와 장애우를 염두에 둔 것이었고, 당연히 그들을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임상시험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여기에는 ‘희귀난치성질환자와 장애우의 치료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이 붙어있었다. 그러나 실제 이런 조치 뒤에는 “장애는 비정상이다.”, “비장애우가 되기 위해 이런 위험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정부의 위험한 결정으로 2003년에는 단 한 건도 없던 응급임상 승인이 2004년 31건에서 2005년에는 118건으로 늘었고, 그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장애우는 실험용 생쥐가 아니다
치료에 앞서 필요한 것은 함께 사는 것이다. 정부는 희귀난치성 질환자와 장애우를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위험한 임상시험에 내 몰기 전에 제대로 된 희귀난치성질환자와 장애우 지원 대책을 만드는 것을 먼저 해야 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약간의 보조 장비만 있으면 충분히 사회생활을 영위하며 우리와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희귀난치성질환자와 장애우의 수는 적지 않다.
또한 정부는 희귀난치성질환자와 장애우를 위한 ‘신의료 기술개발’을 위해 공공적 활용을 전제로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희귀난치성 질환자와 장애우에 대한 연구는 높은 개발 비용에 비해 성공이 불확실성하고 오랜 연구개발 기간 등으로 민간 투자가 어렵다. 민간 주도로 개발에 성공하여도, 사적 특허는 비싼 대가를 요구할 뿐이다. 다국적 제약사의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 높은 가격 때문에 백혈병 환자의 절망이었던 때를 잊어서는 안 된다.
장애우와 아픈 사람이 치료를 받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일이다. 치료를 위한 방법이 없을 때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라는 요구도 당연한 것이다. 정부와 사회도 이러한 요구에 충분히 대답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것은 그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애우와 아픈 사람의 치료받고자 하는 소망을 연구자의 명예나 업체의 이익을 위해 제멋대로 이용하는 현실과 이를 조장하는 정부는 또 다른 비극을 불러 올 수밖에 없다.
장애우와 희귀난치성 질환자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지 실험실의 생쥐가 아니다.
글 홍춘택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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