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상황 벗어나려고 해도 갈 곳이 없다
본문
욕설과 구타가 일상이다.
일을 잘 못한다고,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기분이 나쁘다고.
퍽 하면 맞는 소리, 뚝 하면 막대기 부러지는 소리다.
30년간 일 했다.
밥 먹고 일하고, 밥 먹고 또 일하고, 그래야지 잘 곳이 주어진다.
그야말로 잠만 잘 수 있는 곳, 찬이슬은 피한다.
보일러가 돌아가진 않지만, 전기장판이라도 있으면 겨울은 난다.
하지만 월급은커녕 용돈 한 푼 받아본 적 없다.
가족같이 산단다.
그러나 같은 지붕 아래서 자 본적 없다. 도란도란 앉아 같이 식사한 적도 없다.
개밥인지 뭔지, 삭아빠진 김치라도 얻으면 다행이다.
이런 것도 가족이라면, 가족 같이 산다
위의 이야기는 실화다. 특이한 어떤 한 사람만의 얘기도 아니다. 몇 십 년 전의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학대받는 정신지체장애우들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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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살고 있는 정신지체장애우들의 삶은
작년 3월, KBS가 보도한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방송을 기억 하시는가. 당시 경북 청송군에 살던 정 씨(정신지체2급. 41세)의 삶을 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호를 자처한 부부가 정 씨를 데려온 것은 32년 전.
그 오랜 시간 정 씨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나 과수원과 가축을 돌봤지만,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받았다. 게다가 생계비마저 보호자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었다.
올 1월, 기자가 찾아간 전북 김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최 씨는 전 씨(정신지체2급.41세)와 그의 아내 조 씨(정신지체2급.43세)를 20여년 넘게 돈 한 푼 안주고 농장에서 일을 시켰다. 전 씨 부부는 농장 옆이나 창고에 딸린 방에서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지냈다. 이들의 생계비도 꼬박꼬박 최 씨의 적금통장으로 이체되고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에는 해마다 지역에서 학대받고 있는 정신지체장애우들의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작년 5월에 인권센터가 발표한 ‘정신지체장애인의 인권침해사례와 대응과정-2004년 상담분석 결과를 바탕으로’에 따르면 “지체장애, 뇌병변 등 전통적으로 다수를 차지했던 장애유형의 상담은 줄고 정신지체 및 발달장애 등 정신적, 지적 장애유형의 상담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작년 12월 한국정신지체애호협회가 발표한 ‘정신지체인 인식개선 설문조사’에 따르면, 정신지체장애우의 인권을 가장 많이 침해하는 곳으로 가정이나 시설, 학교, 직장 등 지역사회라고 답한 비율이 75%에 달했다.
사전적 의미로 ‘학대’는 심하게 괴롭히거나 혹독하게 대우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학대를 가하거나 당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을 ‘학대’로 볼 것이냐에 대한 인식은 국가나 문화마다 다르고 개인차도 심하다.
여기에 기자는 우리 사회에는 학대를 인식하는 기준이 또 하나 있다고 덧붙이고 싶다. 바로 ‘누구’에게 가해지는 상황이냐에 따라 그것을 학대로 볼 것인지, 아닌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신지체장애우의 경우가 그렇다. 왜냐하면 정신지체장애라는 특성을 악용해 생계비 횡령, 노동력 및 성적 착취, 비인간적인 의식주 제공, 폭언 및 폭행, 감금 등의 인권침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상대가 비장애우였다면 불가능했을 “학대”다.
그들이 정신지체장애우와 함께 살았던 이유, 생계비와 대가 없는 노동 때문
학대 받는 정신지체장애우의 사례에 빠짐없이 들어가 있는 것이 바로 생계비 횡령이다. 앞의 경북 청송과 전북 김제의 경우도 그러했다. 청송의 정 씨는 본인이 생계비를 받고 있는지도 몰랐으며, 김제의 전 씨는 가해자가 생계비로 모은 적금을 타러갈 때마다 동행하기는 했지만 어떤 상황인지 몰랐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연구소 인권센터에 접수된 정신지체장애우 학대 사례 중 대부분이 생계비 횡령과 연관되어 있다.
생계비를 받고 있는 정신지체 장애우들은 다른 사람이 대신 관리해주는 경우가 많아서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문제는 장애를 악용해 부정수급을 하는 경우인데, 사실 별 대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내친 김에 한 가지 더 얘기하자. 가해자들이 정신지체장애우들에게 노렸던 것이 또 있다. 바로 정신지체장애우들의 노동이다. 가해자들은 이들의 노동을 월급 한 푼 주지 않고도 쓸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례에서도 드러나듯이, 가해자들은 대부분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 십 년 씩 정신지체장애우들의 노동을 착취해왔다.
정신지체 장애 남성의 경우에는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키우는 일, 단순 가공을 하는 소규모 영체업체에서 이용당했으며, 여성의 경우에는 가사일이나 식당 심지어 성매매 도구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 생계비를 어떻게 써야하는지 말해준 사람은 없었고, 일하면 월급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설명해 준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까놓고 말하면 가해자들이 정신지체장애우들과 함께 살았던 이유는 이들의 생계비와 노동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끊어지지 않는 학대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리를 일차적으로 끊어줄 수 있는 사람이 전국에 있는 사회복지전문요원이다. 이들은 관할지역에 거주하는 정신지체장애우들의 수급현황을 가장 잘 알고 있다. 만약 사회복지전문요원들이 최소한 정신지체장애우들의 생계비를 현실적으로 누가 쓰고 있는지, 이들이 부당하게 노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만이라도 의심하고 확인만 해줘도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회복지전문요원들의 노력이 여기까지 미치지 는 못하고 있다.
복지부 기초생활보장팀의 김동일 사무관은 “사회복지전문요원에게는 생계비가 본인에게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할 책임이 있다. 1년마다 정기적으로 수급자의 재산과 소득변동사항을 확인해야 하고, 법적으로 본인 수급여부를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하지 않았을 경우 책임을 묻는 법적인 절차는 없다. 다만 소속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징계하도록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지자체가 소속 공무원을 징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관련된 징계규정도 없으니, 정신지체 장애우의 돈까지 신경을 써줄리 만무하다.
관리해야할 어려운 이웃들이 많아서 할 일도 많겠지만, 사회복지전문요원은 소외된 이웃들이 기댈 수 있는 1차적인 안전망이다. 더구나 정신지체 장애우들은 장애 때문에 학대 상황에 한 번 노출되면, 최악의 경우 살아가는 내내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 열악하니 읍면동사무소에 배치되어 있는 사회복지전문요원들의 1차적인 역할에 따라 소외된 정신지체장애우들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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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성남의 한 가방공장에서 10년을 일했던 이씨.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남성의 경우, 학대상황을 피할 수 있는 대책이 전무한 상황이다. |
위급한 상황 모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경기도 성남의 가방공장에서 10년을 일했던 이 씨(정신지체3급.37)의 경우, 가해자와의 긴급한 분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관련기사-함께걸음/2005/03) 그러나 이 씨가 단 며칠이라도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함께걸음 조은영 기자는 “대부분 아동, 청소년, 혹은 여성을 위한 기관이기 때문에 성인 남성인 이 씨를 받아주지 않았다. 노숙자 쉼터도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이 씨를 받아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국엔 급한대로 연구소 활동가의 집으로 가야했다.”고 밝혔다. 그 후 이 씨는 나눔의 집, 안나의 집, 행복한 집, 연구소 서산농장 등을 전전했다.
이 씨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 씨가 학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갑자기 삶의 터전을 바꿔야만 했을 때 보금자리는 고사하고 일시적으로 머물 쉼터조차 없었다. 그이는 7,8개월 동안이나 살 곳을 찾아 헤매야만 했다.
짧은 기간동안 계속 바뀌는 환경을 견디다 못해서 이 씨는 다시 성남을 찾아가기까지 했다. 이는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이 씨에게 변화무쌍한 환경과 낯선 사람들이 얼만큼 심한 스트레스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경험해야 했을 낯섦과 두려움, 불편함 등을 짐작해본다면, 이 또한 학대다. 위급한 상황을 잠시라도 모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 자체가 2차 학대인 것이다. 정부가 상처받은 이들에게 또 한번 상처를 주고 있는 상황이다.
정신지체장애우 그룹홈을 운영하고 있는 대한성공회 나눔의 집 ‘함께 사는 세상’대표 유찬호 신부는 “이 씨의 경우는 조금만 기반을 갖춰주면 충분히 자립이 가능했다. 이 씨처럼 가족이나 지역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경우,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장애 여성의 경우 그나마도 관련 쉼터가 몇 곳 있기는 하지만,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성인 남성들은 인권침해 상황에서 분리된다고 해도 현재로써는 갈 곳이 없다. 시설이나 들어가면 모를까. 허나 그것은 자립과는 거리가 멀고 또 다른 격리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2005년 9월 현재 등록된 정신지체장애우는 13만 4천여 명(발달장애 포함). 그러나 정신지체장애우라고 해서 더 특별히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나마 운영되고 있는 그룹홈이나 보호작업장 등을 이용하고 있는 정신지체장애우들은 가족의 적극적인 보호가 있는 경우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소외된 정신지체장애우들을 위한 정책적인 배려는 없다. 그래도 굳이 꼽아야 한다면 장애수당 정도. 현재 장애수당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에서도 1~2급 중증장애우들에게만 지급하고 있는데, 정신지체 혹은 발달장애우들은 3급이어도 다른 장애와 중복일 때는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전달이나 잘 되면 다행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왕진호 장애인정책팀장은 “현재는 정신지체장애우들에만 해당되는 정책은 없다. 장애유형별로 복지정책을 만들어야 하지만, 현재는 인력 등의 문제 때문에 여건이 되질 않는다. 아직 정신지체장애우들을 위한 복지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대책도 없지만, 처벌도 미약하기 그지없다. 청송의 경우 정 씨를 30년이나 학대해 온 부부는 상해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생계비 횡령에 대해서만 벌금 1백 만 원을 받았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30년동안 비인간적인 의식주를 제공받고 노동을 강요당한 것 자체가 상해이지 않을까.
성남 이 씨의 경우도 10년 동안 일한 댓가로 벌금을 포함해 2천만 원을 받았을 뿐이다. 계산해보면 월 16만원씩 받고 10년간 일했다는 건데, 이게 말이 되나.
김제의 경우 관련 면사무소는 가해자의 생계비 횡령 사실을 알고 있지만, 가해자가 그동안 꿀꺽한 생계비를 내놓겠다고 하니까 고발하지도 않겠단다. 아니 도둑질 한 물건 다시 내놓으면 도둑놈이 아니란 말인가. 더구나 가난한 부부의 전 재산인데 말이다.
이용할 복지서비스도 없고, 학대의 상황에서 벗어나도 치료받을 곳은 둘째 치고 갈 곳도 없다. 더구나 가해자들에게 내려지는 처벌까지도 솜방망이다.
그러면 학대받은 정신지체장애우들은 어디 가서 억울함을 호소해야 하나. 그들이 받은 정신적 육체적인 상처는 어디서 위로받고 치료받아야 할까.
대상이 정신지체장애우면 학대가 ‘선행’?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김희선 활동가는 “인권센터에 접수된 사건으로 판단해보면 정신지체장애우의 인권침해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성이 드러나는데, ▲장기적인 경우가 많고 ▲지역 안에서 발생하며 ▲제보자가 있어야 드러나며 ▲선행으로 포장된다. 그리고 ▲장애특성상 학대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신지체장애우의 인권침해 사례들이 위와 같은 현상을 보이는 된 이유가 월까. 그 원인으로 기자는 특히 ▲정신지체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장애유형별, 특히 정신지체와 관련된 복지 정책 및 제도의 부재를 지적하고 싶다.
피해자들은 시설처럼 폐쇄된 공간에서 학대를 받은 것이 아니다. 동네주민들도 그들의 삶을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을까. 왜 피해자들은 몇 십 년 동안이나 비인간적인 생활을 해야 했던 것일까.
여기에는 ‘모자라는 사람들은 대충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뿌리 깊은 편견이 있다. 다시 말해 피해자들이 정신지체장애우기 때문에, 보호를 자처하는 사람이 ‘보호’가 아닌 ‘학대’를 해도 주변에서 그것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림받은 정신지체장애우를 거두기만 해도, 그들이 안에서 어떻게 사는지는 상관없이, 착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는 곳이 한국 사회다.
함께사는세상 대표 유찬호 신부는 “사람들은 정신지체장애우에 대해 사람구실 못할 사람,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온갖 허드렛일 시키고, 비인간적인 의식주를 제공해도 별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서울시립정신지체인복지관 유병주 소장은 “정신지체장애우들은 장애특성상 문제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알고 있다고 해도 개입했을 때 따르는 책임이나, 이웃관계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모른 척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관련 공무원들의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청송군 사회복지전문요원은 “보호자가 딸 같이 데리고 있다는 말만 믿었다. 이렇게 사는 줄 몰랐다”며 정신지체장애가 있는 정 씨에게 “왜 말을 하지, 안했냐”라고 다그쳤다.
좀 다른 예일 수는 있지만, 언어치료원 원장이 정신지체 등 장애가 중증인 아동을 형편없는 옥탑방에 가둔 것이 발각돼 지탄을 받았던 솔잎원 사건도 그랬다. 사회복지전문요원도 옥탑방 현황을 알고 있었지만, 중증의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아동들이니 그렇게 험악한 곳에서 살아도 별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가족에게 폭력을 당한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할머니를 진술하는 자리에 가해자와 동석시켜버린 경찰, 인권유린하는 시설에서 도망쳐 도움을 호소하는 장애우를 그 시설로 고이 모셔다(?) 준 경찰...
이러한 사례들이 바로 장애가 있는 사람, 특히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을 공무원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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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김씨 할머니 턱부위와 어깨, 다리에 심한 멍이 들어있었따. 가족들에게 맞는다는 할머니의 증언 을 토대로 사회복지사는 경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경찰은 가 족들과 할머니를 진술자리에 동석시키는 바람에 겁에 질린 할머니는 넘어져서 생긴 상처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
정신지체장애우에게 가해지는 학대, ‘죄’라는 사회적 인식 만들어야
정신지체 장애우 학대 사례를 보면, 가해자들은 입이라도 맞춘 듯 말한다. “학대는 무슨, 가당치도 않다. 가족처럼 살았다.”, ‘억울하다. 내가 데려다 이 때까지 키워준 이 어딘데!’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가족에게 굶주림만 피할 정도의 음식과 난방도 되지 않는 잠자리를 제공하고, 강제로 허드렛일을 시키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조금만 들추어봐도 가해자들이 말하는 ‘가족 같이’, ‘자식처럼’이라는 말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 명백히 드러난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가려진 학대를 ‘처벌 받을 죄’로 이끌어낸 대표적인 것으로 2000년 전문 개정된 「아동복지법」과 1997년 제정된「가정폭력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 관한법률」(이하 가정폭력방지법)을 들 수 있다.
아동복지법은 1981년에 법명이 개정된 후, 20년 만에 전문 개정되면서 아동학대에 관한 내용을 대폭 확대했다. 여기에는 아동학대 신고의무와 절차(26조), 금지행위(29조) 등 규정되어 있다. 또한 이 법에 근거해 복지부는 전국에 아동예방학대센터를 만들어 위탁조직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아동학대 상황일 경우, 이 센터가 적극 개입하고 각 도마다 지정되어 있는 쉼터 등에서 일시적인 보호와 상담 등을 한다. 또한 여기에 연결되어 있는 병원만도 전국에 44개나 된다. 아동복지법 안에 아동학대에 관한 조항이 대폭 포함되면서 약자인 아동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학대이며, 처벌받는 죄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식하게 됐다.
내년이면 법 제정 10년을 맞는 가정폭력방지법은 특히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을 따로 제정해 가정 내 폭력이 얼마나 큰 사회적 범죄인가를 인식하게 했다. 가정폭력도 관련 법의 제정 이후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다. 과거 생존을 위협하는 학대와 폭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 일’로만 치부됐던 가정폭력에 대해, 적어도 이것이 법적으로 처벌되는 ‘죄’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또한 피해자들이 위급한 상황을 탈출해서 받을 수 있는 여러 사회적 안전망들도 이 법에 의거해 마련됐다.
그러나 특히 가족폭력방지법은 관련 시민단체들이 폭력에 노출된 여성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고 이를 사회적인 범죄로 규정해 운동적인 성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장애계에 던져주는 의미가 크다.
사실 정신지체나 발달장애 쪽은 장애계에서도 잘 접근하고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신지체나 발달장애가 있는 아동의 경우, 최근 2~3년 사이 부모들이 당사자로 나서서 장애아동들의 교육권 확보를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 쪽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정신지체 장애우 인권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 정신지체장애와 관련된 대표적인 단체로는 ‘한국정신지체인애호협회’(이하 애호협회)가 있다. 1968년에 세워진 이 단체는 전국 시도협회가 15개, 지부가 77개나 되는 전국조직이다. 그리고 3년 전부터는 ‘정신지체인자립지원센터’를 전국에 15개 설치해 운영 중이다.
애호협회가 오래된 역사와 전국 조직망을 갖춘 정신지체 장애 관련 대표적인 단체지만, 정신지체 장애우의 인권확보 운동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관계자에 따르면 애호협회의 중심 사업이 정신지체 장애우들의 교육이나 훈련, 상담 쪽에 치중해 있고, 시설운영자부터 시작해 부모, 전문가 등 구성인원도 다양해 입장조율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소외된 정신지체 장애우들은 한마디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더욱이 학대받고 있는 정신지체 장애우의 경우, 이들이 학대의 상황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제보자 등의 도움으로 벗어난다고 해도 이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은 없다.
일차적인 책임은, 상황이 이렇게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인식개선은 의지도 없고 아무런 대책이 없는 국가에 있다. 그리고 관련된 복지정책을 만들도록 독려하고 압박하는 장애관련단체들도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렇게 정부와 관련단체들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정신지체장애우들은 정신지체라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사회에서 아무 대책도 없는 곳으로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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