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강제노동, 임금은 한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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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 인권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울렸다. 제보를 한 사람은 피해자의 형으로, 정신지체가 있는 남동생 (전 모씨 47. 정신지체 2급)를 전북 김제 임피면의 한 지역주민이 이십 년 넘게 월급 한 푼 안주고 일을 시켰다는 내용이었다.
확인결과, 사건에는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전 씨와 아내 조 모씨(43. 정신지체 2급), 그리고 전 씨의 형과 조 씨의 오빠, 전 씨 부부를 거두어줬다는 최 모씨와 동네주민들, 김제 임피면사무소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건을 밝히기 전에 이렇게 관련자부터 거명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들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사건을 파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전 씨 부부를 둘러싼 이들이 과연 무엇 때문에 얽히게 됐는지, 〈함께걸음〉이 추적했다.
전 씨 부부의 9년동안 생계비 5천만 원으로 적금 들어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 것은 2005년 9월 말. 전 씨가 전북 김제 임피면사무소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면서부터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 면사무소의 사회복지전문요원은 “전 씨 아저씨가 면사무소에 와서는 최 씨가 돈을 뺏어갔다고 했어요. 그래서 아저씨와 함께 농협에 가서 거래내역을 확인했더니, 최 씨가 전 씨의 생계비로 적금을 들어 9년 동안 세 번이나 탔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숨겨졌을 전 씨 부부의 삼십년 가까운 삶이 드러난 것이다.
전 씨 부부가 기초생활 수급자가 된 것은 92년, 그러나 면사무소 측은 당시는 주로 현물급여라서, 이들이 본격적으로 생계비를 받은 것은 98년도라고 전했다. 그 때부터 9년 동안 최 씨가 횡령한 전 씨 부부의 생계비는 약 4천 6백만 원.
임피면사무소 측이 전 씨의 형과 조 씨의 오빠에게 상황을 알리면서 사건은 급물살을 탔다. 전 씨 부부의 형제들이 최 씨에게 두 사람의 생계비와 그동안의 임금을 지급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선 것. 이러한 형제들의 요구에 최 씨는 남은 것은 이것 뿐이라며 최근에 탄 적금 1천640만원을, 전 씨 부부가 아닌, 조 씨의 오빠에게 주었단다. 양 쪽 집안 형제들은 더 이상 최 씨를 믿을 수 없다며 전 씨 부부를 다른 지역 시설로 보냈고, 나머지 돈에 대해서도 계속 요구하고 있다.
형제들과 최 씨가 대충 합의하면 사건이 마무리될 줄 알았던 면사무소는 형제들의 강한 압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형제들의 왕래가 별로 없던 터라 이들이 이렇게 세게 나올지는 미처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게다가 최 씨가 이 형제들을 못 믿겠으니 면장 명의로 나머지 돈을 주겠다는 입장이어서 더욱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임피면사무소 계장은 “우리가 받기는 곤란하다. 전 씨 부부가 이 곳에 다시 올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다른 지역에 가 있으니, 따지고 보면 이제 우리 관할 지역 주민도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관리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라고 말했다.
또한 “어쨌든 현재 최 씨가 나머지 생계비도 주겠다는 입장이고, 전 씨 부부가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닌만큼 횡령혐의로 최 씨를 고소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동네와 외떨어져 있는 창고 안에 임시로 방을 만든 전 씨 부부의 집(좌)과 너무나 대조적인 최 씨의 집(우)
“촌에서 이제까지 장애자 데려다 키웠는데, 날 업고 다녀야지!”
그렇다면 전 씨 부부는 어떻게 최 씨와 함께 살게 된 것일까. 사연은 이렇다.
27년 전, 전 씨의 어머니는 아들을 평생 책임지겠다는 최 씨의 약속을 믿고 전 씨를 보냈다고 한다. 3-4년 뒤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오갈 곳이 없게 된 전 씨는 최 씨와 거의 삼십년 세월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러다 지난 93년 최 씨는 근처에 살던 조 씨를 평생 책임지겠다는 조건으로 데려와 전 씨와 결혼을 시킨 것이다.
그 긴 세월동안 전 씨 부부는 어떻게 살아 왔을까.
조 씨의 오빠는 3년 전까지 최 씨가 농장을 운영해왔으며 전 씨 부부는 농장에 딸린 방에서 일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말이 농장 일이지, 농사짓는 거보다 훨씬 고역이에요. 농사야 해 떨어지면 쉬지만, 농장 일은 안 그래요. 똥 치우고, 사료 주고, 풀 베고, 새끼 받고...일이 얼마나 고되냐면 농장에서 한 달 이상 버틴 멀쩡한 일꾼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한마디로 사람대접은 못 받고 살았죠. 최 씨가 머슴 부리듯 동생 부부를 부린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당사자인 전 씨는 “그래도 첨에는 잘해 줬는데. 보일러 못 때게 해서 전기장판으로 지냈어요. 비도 새고, 따순 물로 맘대로 못 쓰게 했어요. 아침 먹고 일하고, 점심 먹고 일하고, 풀 베고 사료주고. 그러다 자요. 일 못한다고 쥐어박고, 때리고, 욕 하고.”
전 씨는 최 씨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해왔다고 주장했다. 최 씨가 전 씨를 집 안으로 불러들여 막대기로 때렸다는 것이다. 전 씨는 “복지사에게 가서 돈도 빼앗기고 맞았다고 했더니 기다려라, 형 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라고 했어요. 그리고 처갓집에 가 있으라고 해서 며칠 가 있었죠.”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 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최 씨는 “없이 살 때에는 입 하나 덜어주는 것만 해도 어디였는데 그래요. 전 씨가 숫자를 알아, 돈을 알아, 천지에 쓸모가 없는 애를 스무 살 적부터 데려다가 키운 사람 나예요. 영세민도 내가 만들어줬고. 결혼도 시켜줬고. 잠깐 중국 갔다 왔더니, 전 씨가 면사무소에 가서 내가 자기 돈 빼서 놀러갔다고, 배 아플 때 약도 안 줬다고 했다면서요? 그걸 안 혼내요? 혼내야지. 쥐어박았어. 살짝. 그랬더니 집을 나갔네. 처갓집으로. 나원참.”라고 말했다.
그리고 “임금요? 무슨 임금? 농촌에서 이제까지 장애자 데려다 키웠는데, 날 업고 다녀도 시원치 않을 판국이죠. 다른 사람은 데려다 쓰라고 해도 안 써요. 나니까 거뒀지. 아무 쓸모도 없는 거 촌에서 밥만 주면 됐죠. 그러니 당연히 밥값은 해야죠.”라고 잘라 말했다.
최 씨는 “조 씨 오빠는 근처 살아도 명절에도 안 오고 결혼 때도 안 왔어요. 요 몇 년 사이에 오질 않았다고요. 형제들도 동생 부부가 돈 안받고 일하는 거 알고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서울에서 산다는 전 씨 형도 그동안 소식 한 장 없다가 요즘 나타났다니까요. 형제들이 갑자기 왜 그러겠어요? 뻔하지.”라며 형제들이 오히려 의심스럽다는 입장이었다.
학대를 용인하는 사회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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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전 씨 부부는 김제를 떠나 다른지역에 있는 시설에 거주하고 있다. 부부는 학대상황을 모면하기는 했지만, 다 른 선택의 여지도 없이 시설로 보내졌다. 형제들은 이들의 자립은 전혀 고려치도 않는다. 앞으로 정신지체 장애가 있 는 전 씨 부부의 삶에 또 어떤 위협이 노혀 있을지.. |
최 씨는 전 씨를 데려다가 머슴처럼 부렸고, 같은 장애가 있는 여성과 결혼시켜 두 배로 활용했다. 생계비까지 빼앗아 재산을 불렸다. 하지만 그렇게 삼십년이 다 되도록 전 씨와 조 씨가 어떻게 사는지 관심을 둔 형제들은 없었다.
임피면이 고향이라는 전 씨의 형도, 사람대접은 못 받고 살았다고 말하는 조 씨의 오빠도 오랜 세월 전 씨 부부의 삶에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연구소에 도움을 요청했던 전씨의 형은 최근 혼자 소송을 진행할테니, 사건에서 손을 때라고 요구해왔다.
기자가 만난 전 씨 부부는 의사소통도 가능했고 충분히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5천만 원이면 방 한 칸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니 관련자들이 같이 살 맘만 있다면, 부부가 평생을 보내 익숙한 임피면에서 다시 살 수도 있다. 하지만 형제들은 물론, 아무도 두 부부가 지역에서 사는 것을 돕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기자는 취재하는 내내 왜 전 씨 부부가 삼십년 동안 왜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까, 의문점이 들었다. 장애 특성, 정신지체 관련 정책과 제도의 부재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기자는 정신지체장애우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좀 모자라는 사람이니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 어쩔 수 없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책임져 주겠다고 최 씨가 호언하던 삼십년 전의 상황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국민소득 2만불을 말하고, 인간의 장기까지 복제할 수 있다는 핑크빛 꿈이 우리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러나 여기에 정신지체 장애우는 열외다.
만일 이 부부가 정신지체 장애우가 아니었다면, 삼십년 가까이 월급 한 푼 안주고, 머슴처럼 부린다는 것이 가능했을까. 아니다.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전 씨 부부가 정신지체 장애우였기 때문에 지역주민들도 이 부부가 그렇게 사는 것이 학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주민들은 오히려 최 씨가 아니면 전 씨 부부는 죽었을 것이라며 최 씨를 칭송하고 있는 상황이다. 임피면사무소 사회복지전문요원도 전 씨 부부의 생활을 알고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왜 이들이 몇 십년 동안 돈도 못 받고 남들도 두 손 들고 갔다는 힘든 노동을 하는지, 왜 동네에서 따로 떨어진 농장에서 창고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이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글 첫 머리에서 기자가 제안한,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이들이 이렇게 얽힌 이유는 한마디로 전 씨 부부의 이용가치 때문이다. 최 씨는 본인의 재산을 불릴 도구로 전 씨 부부를 이용했고, 형제들은 이제야 전 씨 부부의 생계비와 밀린 임금 때문에 나서고 있다. 임피면사무소는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은커녕, 관할지역에서 문제가 커질까봐 속앓이만 하고 있다.
이렇게 형편이 어려운 정신지체장애우의 생계비는 아는 사람이 임자고, 이들의 노동력은 돈 한 푼 안주고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은 물론 최일선에서 소외계층을 보호해야 하는 읍면동사무소조차 이것이 얼마나 큰 폭력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단언컨데, 바로 이것이 지역사회에서 학대 받고 살아가는 정신지체 장애우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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