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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3라디오 주미영 프로듀서가, 지난 10월 말 10일 일정으로 장애우 관련 특집 프로그램 취재 차 독일에 다녀왔다. 주 프로듀서는 이번 취재에서 독일 통합교육의 메카 마브룩 시를 방문하고, 독일 보장구 업체를 방문했으며 장벽 없는 도시라고 평가받는 베를린 시를 둘러봤다. 주 프로듀서의 독일 방문기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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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마브룩시 전경 |
전체 학생 1만8천명중 약 15%가 장애학생인 마브룩 대학
지난 11월 22일 국회 앞에서는 한국의 480만 장애우들의 염원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거리행진이 있었다. 장애우들은 장애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누리는데 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장애우들은 자신들이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지난 9월 국회 본회의에 입법 발의 됐지만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미국이나 영국 홍콩 호주 등에서는 이미 90년대부터 시행 중이고 특히 독일은 차별금지법보다 한 단계 앞선 장애우 평등법이 지난 2002년 5월 1일부터 시행 중에 있다. 그러면 독일은 교육, 문화, 시설 등에서의 장애우들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정부와 민간단체가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고, 실제로 독일의 장애우들은 어떻게 인간의 기본권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독일에 갔다.
독일 인구는 현재 8천250만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2003년 통계에 따르면 등록 장애우는 660만명으로 인구의 약 9%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독일 장애우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먼저 독일 통합교육의 메카라고 불리는 마브룩 시를 방문했다. 마브룩 시는 도시 인구가 7만 7천명인데 그 중에서 대학생이 1만 8천명이고 교직원만도 2천5백명이나 돼서 교육의 도시라고 불리고 있다.
마브룩 시는 독일 서남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도시 전체가 대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도시 곳곳에 마브룩 대학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마브룩에는 칼스트렐 시각장애 고등학교가 있는데 이 곳 학생들이 졸업해서 대부분 마브룩 대학으로 진학해서 특히 마브룩 대학에는 시각장애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독일 전체 시각장애학생의 30%가 이곳에서 공부할 정도로 시각장애 학생들이 많은 대학이 마브룩 대학이었다. 전체 학생 1만8천명중에 약 15%가 장애학생들인데 그중에서 약 2-3%는 중증장애학생이라는 게 대학 측 설명이었다. 학교에 시각장애학생들을 위한 학습서비스가 잘 돼 있다고 소문이 나서 독일 내에서도 많이 유학을 오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소문이 나 있는 대학이었다.
설명을 덧붙이면 마브룩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도시로 2차 대전 중에 나치에 협력한 유명한 제약회사가 있고, 보수 학생단체들이 위치했던 곳으로 유대인과 장애우를 추방하고 학살한 대표적인 도시로 유명하다. 또 2차 세계대전 당시 정신병 판정을 받은 사람들을 죽여서 해부학 실험을 한 곳으로 유명한 카젤 정신병원이 근처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그랬던 마브룩이 2차 대전이 끝난 후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 장애우정책이나 사회적인 모습이 진보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되는데, 그래서 대학에서도 특수교육이나, 사회학, 정치학 학문에서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진보성을 띄게 된다. 이러한 영향으로 마브룩시에 시각장애우를 위한 독일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학교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우통합 촉진을 위한 협회나 자유시간 협회 등 장애우의 삶을 직접적으로 돕는 운동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선봉에 선 학자가 바로 우리나라에 탈시설 운동을 알려준 로흐만 에카르트 교수 같은 사람들이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도시가 바로 마브룩이다.
마브룩은 시 전체가 휠체어 장애우들이 움직이기 편리하게 차길과 인도사이의 턱이 아주 낮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리고 특히 시각장애우들을 위해 모든 도로의 신호등은 음향신호기가 설치돼 있어서 불편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마브룩대학에서 장애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등 시설이 차별화 되어 있었는데, 필자가 방문한 마브룩성 밑에 자리잡고 있는 장애학생들을 위한 ‘콘라드 비잘스키 하우스’ 기숙사에는 81개의 기숙사 방을 장애학생들을 위해 시설을 개조해 놓고 있었다. 필자가 처음 기숙사 건물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은 미끄럼틀이었는데 이 미끄럼틀은 화재나 비상사태 시 건물 맨 윗 층에서부터 아래층까지 내려올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비상 설치물이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도 각 층마다 두 대씩 있었는데 하나는 보통 우리가 사용하는 크기의 엘리베이터이고 그것의 두 배정도 크기의 엘리베이터가 또 하나 바로 옆에 있었다. 전동 휠체어 장애우들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도록 크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편의시설 외에 대학 내에 학습상담센터인 ZAS 가 있었는데, ZAS에는 모든 학생들을 위해 상담을 해 주지만 특히 장애학생들을 위해 상담을 해 주는 별도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장애정도를 세 가지로 분류를 해서 <시각장애>,<지체장애>, 그리고 시청각과 지체장애 모두 갖고 있는 <복합장애>학생들을 상담해 주는 3곳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중에 필자는 시각장애학생들을 상담해 주는 곳을 취재했다.
상담소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시각장애학생들이 공부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개인 도우미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예를 들면 도우미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필요한 책을 찾아 주는 일, 스케닝된 책을 읽은 다음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수정을 해 주거나 음성녹음작업, 그 외 인터넷상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주는 일 등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학습도우미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비용을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또 필자는 시간을 내 ZAS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여럿 만났는데,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각장애학생들의 대학 졸업 후 장래 희망이었다.
어느 남학생은 졸업 후 방송국 기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했고, 어느 여학생은 목사, 호스피스, 심리상담사 등 다양한 직업을 얘기했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우들의 직업하면 대표적으로 안마사를 얘기하는데 독일 시각장애우는 우리와 달랐다.
▲운전연습재활보조기구
장애우 개인에 맞게 주문 생산되고 있는 휠체어
마브룩 취재를 마치고 다음날 칼스 도르프에 있는, 휠체어를 생산하는 마이라 라는 상호를 가진 회사를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대표적인 재활보조기구인 휠체어를 비롯해 지체장애우들을 위한 이동용 변기, 목욕용 보조기구 등 다양한 보조기구를 생산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6월부터 정부에서 휠체어를 살 때 장애우들에게 보조를 해 주고 있어서 최근 휠체어 사용이 급증하고 있는데, 독일의 경우는 장애우의 필요에 따라 휠체어 등 보장구 구입에 드는 모든 비용을 전적으로 국가가 지원해 주고 있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독일은 세계 대전을 두 차례나 겪으면서 장애를 갖게 된 군인들이 많았다. 또한 히틀러 시대에는 우생학이 적용돼 수많은 장애우들이 그들의 삶을 다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등져야 하는 아픈 역사가 있는 나라다. 그러다 보니 장애우 복지가 발전했는데 특히 재활보조기구,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휠체어 생산의 역사가 오래됐고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의 경우 등록 장애우가 660만명인데, 이중에 65세 이상 노인 장애우는 340만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80%이상의 중증장애우도 280만 명으로 높은 비율이라 장애우들이 휠체어를 사용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은 나라다. 필자가 방문한 마이라에서는 1년에 약 10만대의 휠체어를 생산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독일에서 해마다 필요한 40만대의 약 25%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필자가 이 회사를 방문해서 놀란 것은 생산하는 휠체어 종류가 무척 많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휠체어의 역사라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1950년대에 만들어진 경운기 크기의 휠체어, 뚱뚱한 사람을 위해 만들었다는, 두 사람이 앉아도 남을 만큼의 의자가 큰 휠체어, 그런가 하면 큰 바퀴 두개에 가운데 보조바퀴를 만들어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테니스용 휠체어도 있었다.
이 회사에서 "휠체어 종류가 몇 가지나 됩니까?" 라는 물음은 의미가 없는 것이 장애우 개개인에 맞게 모두 주문 생산되고 있어서 종류를 언급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회사측 관계자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장애우 개인이 몸무게가 늘거나 몸의 변형이 생겨서 사용하던 휠체어가 몸에 맞지 않을 때는 사용하던 휠체어를 정부에 반납하고 자신의 필요와 용도에 맞는 휠체어를 새로 지급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때 보험회사와 휠체어 회사가 장애우 각자에게 정부에서 지급되는 지원비 내에서 상의를 통해 가장 알맞은 적절한 휠체어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 회사에서는 새로운 휠체어가 개발돼 생산되면 반드시 외부요원의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하는데, 실제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우가 타보고 불편한 점은 없는 지 세심하게 테스트를 한 후 안전성을 검토한 후에 생산에 들어간다고 하며, 또한 휠체어관련 사고가 발생하면 반드시 외부 감사요원이 감사를 하게 되는데, 그 사고가 휠체어 불량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사용자의 부주의로 인한 것인지 등을 철저하게 조사한다고 한다.
▲독일 마이라회사 휠체어(운동용)
무장애 운동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베를린
필자가 베를린에 가서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모비다틉 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다. 모비다트는 라틴어로 "움직인다" 라는 뜻인데, 장애우들이 움직이는 데 도움을 주는 즉 안내를 해 주는 곳이었다. 휠체어가 갈 수 있는 호텔이라든가 아니면 장애우화장실이 설치돼 있는 건물, 관광지들을 전화나 팩스, 이메일로 안내를 해 주는 곳인데 이 운동을 제일 먼저 시작한 사람은 독일 사람이 아니라 프랑스 사람이라는 게 단체 관계자 설명이었다.
프랑스 출신 휠체어 장애우인 가이비쏭이 베를린으로 이사와서 보니까 베를린이 휠체어 장애우들에게 너무 불편한 점이 많아서 지난 1991년 이 단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모비다트는 데이타베이스로 구성되어 있는 안내시스템으로 즉 장애우가 주소와 연락처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면 그 주소를 마우스로 누르면 자세하게 시각, 청각장애우가 그곳에 갈 수 있는지, 훨체어를 타고 움직일 수 있는 지, 장애우 화장실 시설이 되어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베를린뿐만 아니라 독일과 전 유럽에서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어느 장애분야든 제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의 장애우가 인터넷을 통해서나 아니면 직접 전화나 편지로 문의 할 수 있다고 한다.
또 베를린에서 독일 장애우들의 이동수단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독일 장애우들은 우리나라의 장애우 콜택시같은 모바일 켑을 주로 이용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텔레부스로 우리나라에 알려졌는데, 올해 7월 1일부터 텔레부스에서 Mobil cab 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지원 제도는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우나 80세 이상의 노약자는 T 등급을 주는데, 지난 7월 1일부터 이 T등급을 받은 장애우들은 하루 24시간 언제든지 모바일 켑을 택시처럼 이용할 수가 있다고 한다. 사용료는 베를린시에서 지원하는 비용 이외에 어느 정도는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데, 이용료가 무척 저렴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베를린 시는 지난 96년도에 건축건설 규정이 바뀌어서 앞으로 새로 짓는 모든 건물은 장애우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고 기존의 건물을 개보수 할 때에도 장애우 편의시설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관계 법령을 만들었다고 한다.
베를린 시에서 편의시설을 개 보수 할 때 반드시 이 사람과 상의해야 하는데 바로 무장애 운동의 마쿠아르트 씨이다. 그는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우로 베를린 시와 장애우단체 중간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베를린의 무장애 운동은 1993년 상인협회의 운동을 통해 발전해 왔는데, 상징은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장벽 없는 베를린’ 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고 글씨 밑에는 흰색바탕에 검은색 선으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이 표시를 통해 베를린 시가 장벽이 없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독일을 방문하면서 자연스럽게 한 장애우가 어느 나라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그에게는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헤어포트시에서 만난 입만 움직일 수 있는 중증 전신마비 장애우가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면서 대학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고, 베를린에서 만난 골형성 부전증이라는 중증장애를 가진 장애우가 실험이 많은 생물화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하는가 하면 마브룩대학의 시각장애학생이 “졸업 후 방송국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독일의 장애우들은 교육, 이동, 문화생활, 자유 활동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장벽을 느끼지 않고 정말 사람답게 사는구나 라는 점을 느꼈다.
우리 대한민국 장애우들은 지금 최소한 인간답게 살게 해 달라고 추운 겨울 차가운 보도블럭 위에서 기본권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 이것이 독일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글 주미영
(KBS 3라디오 ‘내일은 푸른하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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