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장애우에게 베푸는 무상주택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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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지난 10월 26일, 올해 4천136억원이던 장애우 복지예산을 18.7% 늘려 내년에는 4천908억원으로 확충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2006년도 장애우 복지예산(안)을 발표했다. 이 예산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장애수당(1천119억원)이고, 그 다음이 ‘중증장애우에 대한 시설보호 확대’(385억원)이다.
그런데 〈함께걸음〉이 입수한 자료 ‘2006 보건복지부 소관 주요사업 예산요구 설명자료 Ⅱ-2’)에 의하면 복지부는 올해부터 2009년까지 총 158개 시설을 더 확충할 계획인 것으로 드러났다.
시설의 폐해를 경험한 선진국들은 이미 ‘탈시설화’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장애계도 2000년대 초반부터 불어닥친 당사자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자립생활(IL)쪽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가 이렇게 시설 위주로 정책을 세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함께걸음〉이 취재했다.
복지부, 2009년까지 총 158개 시설 더 짓겠다
〈함께걸음〉이 입수한 ‘2006 보건복지부 소관 주요사업 예산요구 설명자료 Ⅱ-2’에 포함된 ‘장애인생활시설 확충 추진 추계자료’(이하 추계자료)의하면 복지부는 2009년까지 총 158개의 시설을 더 늘리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추계자료에 따르면 2005년 18개 시설을 시작으로 06년과 07년에는 각각 30개소 씩, 08년과 09년에는 각각 40개소 씩 확충할 계획이다. 게다가 이는 시설 1개소 당 100명 입소 기준이다. 다시 말해 복지부는 2009년까지 158개 시설에 총 1만5천806명의 장애우들을 입소시키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추계자료의 내용을 좀 더 공개하면, 등록장애우 161만2천990명(2004년 12월말 기준) 중에서 복지부는 보호수발인이 없는 저소득층 중증 장애우를 6만621명으로 추산, 이들을 시설 입소 대상자로 내정(?)하고 있다.
기획예산처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장애우들 중에서 보호수발이 없는 장애우를 2만3천926명으로 추산해, 2009년까지 총 84개만 확충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중증장애우들이여, 시설에서 각종 재활프로그램도 받고 돈도 벌어 사회에 복귀하라?
앞서 밝힌 것처럼 복지부는 2006년 장애우 복지 예산 총 4천908억 원 중에서 385억 원을 시설에 쏟아 붓겠단다.
이에 대해 복지부 재활지원과 한봉근 담당사무관은 “385억원은 시설을 건축하는데 주로 쓰일 예산이다. 한 시설당 4억9천2백만 원을 지원할 계획이며 장비보강, 시설개보수 비용 등도 지원할 것이다. 운영형태는 법인 등에 위탁 계약을 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렇게 시설 위주로 정책을 펴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 사무관은 “민원의 주된 내용이 중증의 장애우들을 보낼 곳이 없다는 내용이다. 특히 부모들의 시설에 대한 요구가 많다. 부모들은 사후관리 측면에서도 시설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장애가 있는 자식이 어릴 때는 특수학교나 혹은 주단기보호센터 등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보호하지만, 성인이 되면 부모들도 많이 지치는 것 같다.”며 “시설은 중증 장애우가 있는 가족 구성원들이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 하고 있다. 또한 중증 장애우들도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시설에 입소해서 각종 재활프로그램도 받고 돈도 벌어서 사회 복귀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시설은 장애우에게 무상으로 주택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니 보호수발을 받을 수 없는 중증장애우들에게는 시설이 가장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복지 대안이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설 정책은 정부 내에서 이미 합의가 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사무관은 “장애인생활시설 확충 계획은 어느 정도 예산이 확보되어 있다. 정부는 5년마다 중기재정계획을 하는데, 적어도 기획예산처 수준까지는 시설을 확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시설 정책은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 26일에는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고위당정회의에서 결의한 ‘희망한국-21’를 발표 했는데, 이 계획에 들어 있는 ‘치매, 중풍노인, 중증장애우 특별보호대책’(이하 특별보호대책)도 위와 같은 맥락이다. 치매, 중풍노인, 중증장애우를 특별히(?) 보호하기 겠다는 내용은 이렇다 ▲중산층 이상-장기적 시설확대 ▲서민중산층과 차상위 계층-실비시설확대, 시설이용료보조, 돌보미바우처제도 ▲기초생활수급자-무료시설확대. 한마디로 말해서 현 정부는 ‘가족이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은 시설로’라는 입장인 것이다.
탈시설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복지부의 배짱은 어디서 나오나
이미 서구유럽에는 1960년대부터 정상화 이론이 도입되면서 탈시설화 정책이 자리 잡은 상황이다. 시설은 생활인의 욕구를 바탕으로 한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으며, 그 안에서 각종 인권문제가 은폐되기 쉽고, 결국에 오히려 사회와 더 통합되기 어렵다는 것이 선진국들의 경험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독립생활연대 윤두선 회장은 “시설이 많은 나라에서 복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경험한 것인데 우리나라는 뒤늦게 시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를 포함한 우리 사회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겠다는 생각이 없다. 다만 가엾고 힘든 사람들은 시설에 넣고 봉사나 좀 해주면 된다는 식이다.”라고 지적했다.
윤 회장은 또한 “우리 사회에서 무상으로 숙식을 제공하고, 교육도 받고, 옷도 주는 곳이 두 곳이 있다. 감옥과 군대가 그렇다. 하지만 여기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현재 시설이 이와 다를 것이 뭐가 있나. 군대나 감옥은 기한이라도 정해져 있지. 시설에서 잘 배워서 사회복귀 하면 된다고? 도대체 그런 예가 있기나 한지 되묻고 싶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는 탈시설화를 진행하고 싶어도 당장은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탈시설 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도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이에 대해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책의 분명한 목표로 탈시설화를 염두에 두고 어떤 정책을 집행하는 것과 그저 당장 현실적인 정책을 집행하고 나중에 여건이 되면 탈시설화를 고려해보겠다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내년 시설확충 예산은 385억인데, 중증장애우자립생활지원 예산은 겨우 6억원
그렇다면 복지부가 이렇게 시설정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정책실장은 “장애우 복지의 패러다임은 재활에서 자립생활로 옮겨지고 있다. 그런데 복지부만 이것을 현장에서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예산문제를 감안해준다고 해도, 복지부는 현재 불거져 나온 문제만 땜질하려고 한다.
미신고시설에서 인권침해 등에 관련된 문제가 계속 터지니까 기준을 완화해서 신고시설로 만들어줬다. 장애우 개인의 욕구 파악은 물론 이를 분석할 의지도 없고, 그러다보니 우선 급한대로 시설만 지어서 그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정책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럼 문제가 해결되냐는 태도로 팔짱만 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규모로 다수의 시설을 지어 놓으면, 특성상 그것을 유지하게끔 하는 지원사업이 계속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시설을 짓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시설을 유지시켜야 하니까 말이다. 초기 투자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였는데, 본전은 뽑으려고 할 것이 아닌가. 그러려면 정부도 시설 관계자들과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어쨌든 정부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 맡아준 사람들이니까.
장애우 복지정책은 원칙적으로 장애우들의 복지를 위해서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시설 위주로 복지정책이 기울면, 장애우들의 요구는 시설장들의 목소리에 묻힐 것이 뻔하다.
앞서 밝혔듯이 올해 ‘중증장애우에 대한 시설보호 확대’로 정부가 잡은 예산은 385억원이다. 이에 비해 ‘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은 6억원이다. 이를 두고 한 장애우 단체 대표는 “이렇게 예산이 엄청나게 차이 나는 것도 다 시설장과 관계된 것 아니겠냐”며 시설장들의 로비의혹을 제기했다.
입장 바꿔 물어보자, 당신은 ‘시설’에 들어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과연 현 정부는 무엇을 근거로 시설 중심의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일까.
장애우들이 원하는 것이 시설인지, 시설을 원한다면 어떤 시설을 원하는지, 정부는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서부장애인부모회 김혜미 회장은 “어떤 부모들이 수용만 원하겠는가. 자식이 시설에 들어가서 먹고 자고 싸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아무도 없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봐라. 복지부의 주장처럼 시설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부모라고 쳐도, 자식 키우는 부모 마음 정부가 그렇게 모르나. 시설이 몇 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장애가 있는 자식들이 시설에서 무엇을 배우고 발전하며 살아갈 것이며, 어떻게 인권을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인지, 시설을 원하는 부모들의 초점은 거기에 있다.”며 항의했다.
이렇게 정부는 장애우 가족들의 욕구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 같은데, 그럼 장애 당사자들에게 시설이 좋으냐고 물어보기나 했을까. 아니, 정부가 과연 장애 당사자들과 소통할 의사가 있기나 한 것일까.
보관할 소지품도 없는 집단생활에, 뭐가 유행인지 통 알 수도 없고, 나눠줄 때나 입을 수 있는 비슷한 옷가지들, 관리가 쉽다는 이유로 강요되는 머리 모양, 식사 때 지나면 밥을 먹을 수도 없고, 그나마 간식이라도 먹으려면 뼈빠지게 일도 해야 하고, 정해진 점등시간과 텔레비전 채널에, 필요할 때 원하는 진료를 받기도 힘들고, 뻑하면 욕이고 툭하면 발길질에, 나들이가 있기는 한데 일년에 한 번 자원봉사 단체랑 가는 관광이라서 웃는 사진은 필수로 찍어줘야 한다면…
입장을 바꿔, 당신이라면 그런 곳에 들어가고 싶은지를 물어보라. 답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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