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운동, 미국 발달장애우운동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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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8월 미국 장애우 복지현장을 다녀온 이후 미국 발달장애우 복지현장과 정책을 두 번에 걸쳐 기고를 해왔다. 첫 번째 기고내용은 미국 발달장애우 복지현장과 정부조직, 그리고 두 번째는 국경을 초월한 장애우 부모들의 고민인 부모 사후과 발달장애우의 노령화에 대한 대책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의 기고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부분과 미국 발달장애우 복지현장에서 느낀 전반적인 인상을 중심으로 <함께걸음> 세 번의 기고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복지서비스 이용하는 발달장애우, 소비자 인권 보호 측면에서 정부가 철저하게 개입
미국 사회의 출발점이 개인의 자유권을 중심이어서 개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인권문제에 철저하다는 점이 있지만 미국 발달장애우 복지현장에서 이런 인권의 문제에 있어 미국 정부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리노이주에서 손에 꼽힐 만큼의 역사와 규모를 자랑한다는 ‘레이 그레함’ 시설(Ray Graham Association)을 방문했을 때 그들에게서 크게 두 가지를 인상 깊게 전달받았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직접서비스종사자(Direct Service Person)의 교육문제였다. 그들은 발달장애우에게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교사들에 있어 초기 80시간 정도의 교육을 하고 있다.
이 교육에서 생활재활교사들은 발달장애우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에서부터 의사소통, 위생, 건강관리, 안전, 위기상황대처, 비폭력위기중재(Nonviolent Crisis Intervention) 등의 수칙을 배우게 되어있다. 또한 발달장애우의 사적생활보호, 유기, 학대, 방임 등 소비자에게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 무엇이며, 이를 위반했을 때 어떤 징계를 받게 되는지도 분명하게 교육시키고 있었다. 주정부의 방침이자 규제사항이기에 이는 모든 서비스기관의 종사자가 필수적으로 이수해야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인상 깊은 것은 시설생활인의 문제행동이나 약물복용에 대한 기관의 태도에 대한 부분이었다. 발달장애우의 문제행동에 대해서는 문제의 원인, 배경 등에 대해 상세한 고찰을 시도하고, 약물을 복용하거나 행동수정이 들어갈 때면 항상 보호자와 행동규제에 대한 협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에 대한 동의여부는 보호자의 결정에 의해 따른다고 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것을 정부가 직접 관리하고 시설에 적극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DHS(Department of Human Services: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 해당) 산하 발달장애우 전담국(DDD: The Division of Developmental Disabilities)의 주요업무 중 하나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과 제공자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과 그 안의 교육커리큘럼을 직접 관리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발달장애우 복지를 소비자의 인권 측면에서 정부가 적극 개입하려고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미국 주정부의 이러한 의지는 예산지원과 사용에 관한 최소한의 운영지침만을 주고, 예산만 지원해주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정부의 태도와는 상당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발달장애우들 스스로 모임과 안건을 협의하고 있는 일리노이주 "피플 퍼스트"(People First)
미국복지시스템의 변화, 발달장애 당사자의 선택과 결정이 최우선
필자가 미국 발달장애우 복지현장의 서비스 기관이나 옹호단체들 찾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 중 하나는 ‘변화(change)’였다. 미국 장애우 복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지난 30년간 대형시설 중심의 복지서비스가 지역사회중심으로 재편되어가는 과정에서 장애우 당사자의 자기선택과 결정(self-determination)이 중시되는 복지시스템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이유에 대해 레이그레함의 대표인 캐시(Cathy)는 첫째, 발달장애우 당사자들이 자신의 생활을 관리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둘째, 서비스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으며 셋째, 그에 반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할 재정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시스템들이 변화하고 있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발달장애우들이 욕구를 스스로 표출하고, 자신들을 위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다.
실제로 캐시 대표 말대로 이와 같은 변화를 장애우복지정책에서나 서비스 현장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발달장애우관련 정책의 우선순위나 계획을 설정하는 ‘발달장애인평의회(CDD; Council on Developmental Disabilities)’에서 발달장애우 당사자와 가족들의 참여가 보장되고, 지역서비스나 학교교육서비스에 있어서 개개인별의 계획수립과정(IPP 또는 IEP)에도 반드시 당사자 의견과 참여가 중시되고 있다.
만약 부모와 기관 그리고 장애우 당사자가 이견을 보일 경우에 당사자의 욕구가 중시되며, 서비스를 조정하고 연계해주는 계약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고려사항은 ▲장애당사자들의 욕구나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중시하며 ▲그 후 장애우가 선택하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은지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다만 선택한 내용이 위험이 따른다면 그것이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인지를 중시한다고 하니, 현장에서 발달장애우의 자기선택과 결정이 얼마나 비중 있게 존중되는지 알 수 있었다.
또 한가지 미국 사회에서 자기선택과 자기결정만큼이나 중시되는 것이 ‘자기옹호(self advocacy)’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발달장애우와 관련된 권리옹호활동이 가족이나 그 외 전문가들에 이뤄져온 것에 반해 미국은 그것을 발달장애우 당사자에게 주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자기옹호훈련사업을 하고 있는 일리노이주 시카고 대학내 부설연구기관인 RRTCADD에서 자기옹호기술을 교육시키고 있는 티나(Tia Nelis)를 만날 수 있었는데, ‘피플퍼스트’(People First) 초대회장을 역임한 그녀는 지금 RRTCADD에서 연구보조원으로 활동하면서 발달장애우 당사자에게 자기옹호훈련을 직접 지도하고 있었다.
티나는 우리에게 ‘People First’ 의 초기설립과정을 설명해주었는데, 또박또박한 그녀의 설명은 그녀가 발달장애를 가진 당사자인지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자기옹호교육의 효과는 발달장애우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를 가르칠 때 가장 효과가 있다고 전했는데, 그 교육을 통해 교육을 하는 그녀 스스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닌가 싶었다.
발달장애우 운동에도 당사자 조직이 등장
▲일리노이주 People First 초대회장을 역임하고RRTCADD에서 자기옹호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티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도 자립생활패러다임으로 장애우 당사자의 역량이 강화되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자립생활운동에서 발달장애우의 참여는 전무하고, 그들의 자조모임도 희귀한 우리 현실과는 다르게 미국에서는 지역 곳곳에서 발달장애우들의 자조모임과 옹호단체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가 ‘People First’인데, 이 단체는 1973년 캐나다에서 열린 정신지체인협의회에 참석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이후 각각 모임의 이름은 다르지만 정신지체인이나 발달장애우 당사자가 참여하는 자조모임과 옹호단체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1991년에는 국가연맹인 ‘미국발달지체 자기권리주장연맹’(Self-Advocators Becoming Empowered)으로 성장했고, 지금은 미국 전역 800여개의 자기주장그룹들이 활동하고 있다.
아직은 People First와 같은 자조그룹들의 힘이 미약하다고 지역관계자들은 평가하고 있지만 자조그룹들의 회의에서 발달장애우들이 코디네이터의 협력을 얻어 직접 회의를 진행하고 발언하는 것을 참관하면서, 그리고 초대회장인 티나를 만나는 과정을 통해서, 필자는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우를 조력한다고 하는 부모나 사회복지사가 오히려 발달장애우의 능력과 한계를 설정해왔던 것은 아닐까 하며 반성하게 된다.
미국 발달장애우복지발전의 원동력은 부모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지적능력의 장애우들을 위한 복지나 인권문제는 장애우 당사자보다는 부모를 중심으로 한 가족이 먼저 의식을 갖게 된다. 미국도 역시 발달장애우 복지의 터전을 마련한 것은 다름 아닌 부모들이었다. 현재의 미국 정신지체인복지의 터전을 잡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 ‘ARC’를 보더라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미국 정신지체인부모들의 단체인 ARC의 뿌리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 안에서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들의 운동은 풀뿌리 조직에서부터 시작되어오다가 1950년 9월에서야 ARC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해 지금은 전국 1,000여개의 지부(Chapter)와 14만명이라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ARC는 초기에는 정신지체인의 교실, 유아교실, 오락 및 사교 활동, 부모자문, 부모교육교실, 사회보장제도의 설명, 그 외에도 지역 내의 정신지체인 상황조사, 지역사회의 법제정운동, 전문인들의 위한 특별훈련 보조, 연구사업 등의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부터 정신지체인과 관련된 입법인 정신지체인시설설립에 관한 법이나 직업재활, 특수교육프로그램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주정부의 서비스의 양과 질을 확장해오는데 힘을 쏟고 있다. 현재 미국 발달장애우 복지의 틀을 완성하는데 ARC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해온 단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부모들의 역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호에 기고했던 장애우롤 위한 특별한 신용기금제도(Trust) 역시 부모들의 아이디어에서부터 시작하여 제도화된 또 다른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서비스의 조정과 연계를 지원하는 대다수의 기관과 연구기관의 출발에도 부모들이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미국 장애우 복지현장을 통해 한국의 장애우 부모들도 힘을 얻길
우리나라 장애우 부모운동도 사실 미국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자녀에 대한 복지서비스와 미래를 고민해왔던 장애우 부모들은 정부를 향해 복지서비스 제도를 주창해왔고, 때로는 복지서비스를 직접 만들기 위해 적지 않는 재산을 출현하기도 해왔고, 또 지난해에는 부모들의 굳건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 삭발까지 감행하면서 장애인교육권을 사수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전히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녀보다 하루 더 늦게 눈을 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그러한 일이 전혀 대다수 부모들에게 희망이 되거나 해답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전생애주기에 맞는 서비스와 체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학령기 이후의 대책, 부모사후의 대책에 대한 본질적인 해답을 던져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기고가 한국 사회에 본질적인 해답을 던져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런 내용을 고민하는 부모운동에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관계자, 정부기관 관계자들에게도 하나의 방향점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이 땅의 무수한 발달장애우 부모들이 장애자녀를 낳는 것이 곧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녀 때문에 아파하고 절망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장애해방’의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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