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여성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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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체 장애여성, 그저 바보짓거리나 하는 사람?
지난 7월 한 방송사가 27세 정신지체인 여성이 이웃주민들로부터 일상적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주민의 제보를 받고 취재를 하던 중, 본 상담소에 도움을 요청해와 상담과 함께 가족지원을 지속해오고 있다.
피해자는 충북의 어느 농촌 마을에 사는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여성이다. 그리고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와 오빠도 모두 정신지체인이다. 그런데 사건을 파헤쳐보니 동네 낚시터에 오는 사람들은 물론 같은 동네 사람, 이웃동네 남자 등 수 십 명의 남자들이 수년간 지속적으로 이 여성을 성폭행해 온 것이 드러났다.
이 여성은 함부로 해도 되는 동네북쯤으로 여긴 것이다. 가해자들은 담배와 소주를 살돈을 미끼로 피해자 유인해왔고 피해자도 오빠의 담배를 사기 위해 낚시터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이러한 피해자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가해자들은 전화로 담배사준다고 하며 불러내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동네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 신고하거나 상담해서 도움을 주어야하는 존재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바보짓하고 다니는 사람쯤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그리고 방송사도 흥미로운 기사거리로 취재를 하고 있었다.
상담소는 본 사건을 경찰서에 고소고발을 조취를 했다. 현재까지 혐의가 밝혀진 가해자만 일곱 명 정도, 수사선상에 오른 가해자만 해도 십 수 명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미쳐 다 진술하지 않은 수많은 가해자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하며 피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상담소는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지원을 다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원래 피해자의 가족은 지체장애우인 아버지와 정신지체인 어머니 언니 두 명, 오빠 등 6명이었다. 언니 두 명은 비장애로 결혼하여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형편이 조금 나았지만 몇 년 전 아버지의 사망 이후에는 정신지체인 세 가족만 남게 되어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아버지가 생존 시에 언니들의 결혼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17세에 조기결혼을 시켜 집을 떠나게 했다. 언니 두 명이 결혼하여 집을 떠난 후, 피해자는 두 번의 결혼에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들은 결혼 후 거의 친정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아 정신지체인 세 명의 가족만 남게 된 상황이다.
정신지체인을 위협하는 또 다른 시설, 지역사회
세 식구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써 기초생활비 60여만 원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관리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동네이장이 통장관리를 하고 있었다.
본 상담소의 상담원이 피해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 세 식구의 머리는 빡빡머리였다. 알고보니 이장이 세 가족의 머리를 똑같이 밀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빠와 피해자는 매일 이장을 따라다니며 무보수로 이장이 시키는 대로 소똥을 치우거나 각종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반면에 피해자 가족의 집은 지저분하여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이불과 옷가지 등은 세탁을 하지 않아 악취가 진동을 했다. 먹고 있는 음식은 대부분 부패하여 위험한 지경이었고, 이들도 목욕을 하지 않아 몸에서도 악취가 풍겼다.
이러한 상황에도 이장은 이들의 생계비통장에서 매월 전액을 빼가고 있었으며, 이미 잔액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이장과 그의 부인은 이 세 식구를 보살피느라고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 해대고, 동네사람들도 이장이 그들을 돌보느라고 고생이 많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지역사회는 시설과 사는 곳이 다를 뿐 폭력적인 상황은 다를 바가 없었다.
다시 말해 시설장 대신 동네에서 권력을 가진 이장이 정신지체를 이유로 이들의 생계비를 빼앗는 등 재산권을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가족들의 노동착취와 신체적 자유를 박탈하고 있다. 이장은 이들 가족을 돌본다고 하면서도 성폭력에 노출된 정신지체 여성의 성적권리쯤은 아무래도 괜찮다고 방관하고 있다.
한편 면사무소 사회복지과에서도 매월 통장에 생계비를 입금하는 것으로 책임을 끝내고, 이들이 생계를 위해 잘 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사조차도 해 본 바도 없다. 그러면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피해자를 시설로 보내겠다고 서두른다. 상사가 빨리 조치를 취하라고 사회복지사를 채근하고, 방송사에서도 성폭력을 당했으니까 시설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치 안심하고 인간답게 살만한 시설을 만들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힘이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폭력적인 시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또한 우리사회의 가부장적 폭력문화와도 맞물려 있다.
▲상담소에서파견한가사도우미와함께빨래를하고있는피해여성(왼쪽)
가해자가 주인인 세상
피해여성에 대한 피해사실이 구체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자 가해자나 주민들은 피해자가 “꼬리를 쳤다”, “그러고 돌아다닐 때 알아봤다”, “억울한 가해자도 있다”, “합의금을 노리고 신고했다”, “피해자가 뭘 몰라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등 가해자의 잘못은 감추기에 급급했다. 오히려 이들은 한결 같이 피해자가 문제라고 반응한다. 그래서 피해자를 시설로 격리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경찰에서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가해자 가족들은 피해자가 합의를 해주지 않는다고 또다시 괴롭히고 있다.
성폭력은 힘의 문제다. 강한 쪽이 약한 쪽을 통제하고 이용하는 수단으로 성폭력을 사용한다. 따라서 남성이 여성에게, 여성 중에서도 비장애인보다는 장애여성에게, 장애여성 중에서도 정신지체여성이 보다 많은 피해위험에 노출된다. 가부장제사회는 남성에게 성을 적극적이며 허용적으로, 본능적이고 충동적이라고 옹호한다.
반면 여성에게는 소극적이고 억제해야하며 절대적 순결을 강요하는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 그래서 명백한 가해자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적절히 피해를 막지 않은 이유를 들어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단죄한다.
진술중심의 사법처리과정에서도 비장애남성 가해자는 사건을 은폐 축소 왜곡하기 일쑤고,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사실을 충분히 진술해내지 못한다. 오히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입증해내야 하는 불합리성을 갖는다. 이러한 사법기관의 장애감수성부재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폭력을 가하는 셈이다.
정신지체인을 둘러싼 성폭력의 고리
앞에서 언급한 가부장적 성문화와 아울러 인간의 성을 상품화하고 오락과 유흥, 향락과 퇴폐, 폭력성에 이르기까지 다기능적인 소모품만 이용하는 것이 성폭력과 성범죄를 조장한다. 뿐만 아니라 장애우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정신지체인을 철저히 무시하고 소외시킨다.
이는 가해자들이 정신지체인에게 접근을 용이하게 하고 곧 성폭력의 대상으로 만든다. 가해자들은 먹을 것과 적은 돈으로 피해자들을 유인하여 피해자들을 길들인다. 성폭력의 대상이 되어주면 돈과 먹을 것이 생기고 이것이 지속 반복되며, 폭력이라도 관심을 가져주는 상대가 생기는 것이다.
정신지체인 피해자들은 폭력과 비폭력을 구분해내기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적권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스스로 그것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지 못하며,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성폭력이 부당하다고 느끼더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알지 못한다.
정신지체인인 경우는 애초 발견부터 쉽지 않아 오랫동안 상황이 지속된 후에야 다른 이유로 발견되어 상담소를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가족구성원이 정신지체인인 경우 말할 것도 없다. 정신지체인들은 성폭력을 거부하거나 해결해야할 문제라거나 지켜야 할 권리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한편 지역사회 주민들도 정신지체인들을 함께 살아나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장애인이니까 그냥 그렇게 살아가도 되는 사람들 쯤으로 무시하며 지낸다. 행정기관에서는 “우리는 사법권이 없어서 조사권이 없다”라고 회피하고, 사법기간에서는 “고소고발이 없으면 개입하지 못한다”라고 저마다 책임을 회피하기만 한다. 그러는 사이 정신지체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반복된다.
상담소에서 피해자 및 가족들과 함께 하는 일
본 상담소에서는 가해자 조사와 처벌은 사법기관에 고소고발하고 피해자 및 그 가족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우선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지역사회 자원봉사단체를 연결하여 집수리를 지원하고 일주일에 한번 가사도우미를 파견하여 집안청소 및 반찬지원을 함과 아울러 피해자와 가족들이 청결한 습관을 갖도록 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와도 일주일에 한번 ‘자립생활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다양한 권리에 대해서 이해를 높여나가고, 일주일에 2회는 한글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더불어 충동조절과 담배와 술 등 물질의존에 대한 신경정신과 치료를 병행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상담소는 결혼 후 떠났던 언니들과도 만나 그동안 어려웠던 친정과의 관계, 결혼생활의 이야기들을 들어주며 친정으로 돌아오도록 했다. 언니들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여 포기했던 친정의 문제들과 직면하게 되었다. 언니들이 번갈아가며 반찬을 해오고 생활에 관여하게 되었다. 동네이장이 관리하던 통장도 큰 언니의 손으로 넘어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피해자는 변하고 있다.
한편 이장을 비롯한 동네주민들은 “왜 저런 애를 빨리 시설에 보내지 않느냐”며 채근한다. 아직은 주민들도 장애여성 한사람이 동네 망신을 시켰다고 말한다. 가해자가 여러 명 구속되거나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고 가해자 가족들도 새로운 피해상황에 놓여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본 상담소는 그런 주민들에게 시설은 안전한 곳도 아니며 피해자처럼 자유롭게 살던 사람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라고 설득한다. 또한 피해자는 아무 잘못을 한 것이 아니고 다만 장애 때문에 당한 피해일 뿐이라고.
그래서 피해자가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떠나 격리될 수 없다고, 필요하다면 가해자가 잘못을 했으니까 가해자가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주장한다. 정신지체인을 이웃주민들이 잘 보살피고 이웃으로 생각하고 도와주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상담소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지원을 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변화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니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정신지체인이 안전하고 인간답게 주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지역사회 만들기
정신지체인을 포함한 장애우가 지역에서 안전하게 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팽배해 있는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통해 주민의식을 높이는 것과 함께 정책입안 및 시행에 있어서 성인지적 관점과 장애인지적 관점을 필수적으로 도입해야할 것이다.
특히 중증장애우 가정이나 기초생계비 수급가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보호가 필요하며,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중증장애인을 지원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이 사건과 같이 특별한 문제 상황에 놓인 가정에 대한 특별지원제도가 필요하고, 가해자 및 가해자 가족이 피해자에 어떤 형태로든 재가해가 없도록 가해자 조치 및 피해자 보호제도를 마련해야한다.
상담소는 내년에 실행할 사업으로 시군단위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여 리 동단위로 ‘성폭력 가정폭력 없는 평화마을 만들기‘ 교육과 캠페인을 구상하고 있다. 주민들이 성폭력과 가정폭력은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인식과 함께, 이러한 폭력들이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고 가해자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주민스스로 평화로운 마을을 만들어 나가기에 참여하도록 하는 운동을 펼치고자 하는 것이다.
민관이 협력하여 지역사회 누구 한사람도 뒤처지지 않도록 당사자 관점의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주민이 주인이 되는 지역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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